신혼일기2008. 1. 17. 21:16

도시락.

고등학교때는 하루2개씩 싸가지고 다니며 오전2교시 끝나면 바로 하나 까먹어주던 추억의 '도시락'

어릴때부터 밥순이였던 나는 하루세끼 밥을 꼬박꼬박 먹지않으면 마음이 우울해지고 몸에 기운이 빠지곤했다.

그래서 당에서 일할때도 아침밥거르고 출근한 날이면

잠시 주위를 살핀후 꼭 지하 분식집에 내려가 김밥 한줄을 (여유롭게 꼭꼭 씹으며) 사먹고 오곤 했다.

따끈한 콩나물국물과 깍두기를 같이 주시던 한양슈퍼 아저씨.. 생각나네.


앗. 갑자기 얘기가 딴데로 빠졌는데

아무튼 밥순이인 나, 밥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

그리고 또 희한하게 내가 지은 밥은 더 맛있다고 느끼는 입맛을 가지고 있다.

요즘 꼬박꼬박 하루 세끼 집밥을 챙겨먹는 '삼순이'로서 감히 말하건데.. 집밥은 왠지 더 달다.


도시락을 처음 싼것은 당 상근 2년차쯤 되던 때였다.

그전에는 하루 점심밥값만 받던 무급자원봉사여서 그런 내가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다니면 너무 불쌍해보일까봐

식당밥을 사먹었다.

당상근자가 너나없이 없이살던 시절이라 큰 은행이나 큰 회사들의 구내식당(2000~3000원짜리 식권을 팔던)이 단골집이었다.

일반식당도 그랬지만 구내식당밥도 거진 다 선배들이 사주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1년쯤지나 당이 살림도 펴지고, 나도 어엿한 정식 상근자가 되어 '월급'이란걸 받게 되었다. 아! 그때의 감동이란...!

그 월급도 요즘 20대(대부분이 비정규직인)의 평균임금이라는 '88만원'을 겨우 넘긴 정도였지만 그래도 월급통장에 매달 찍히던 그 월급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때 결심했다. "그래! 이제부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겠어!"

당원들이 만원, 이만원 힘들게 번돈을 쪼개 모아주는 피같은 당비에서 월급을 받아쓰는 처지에

밥값으로 풍풍 돈을 쓰기가 아까웠다.

'모아뒀다 다른 좋은데 쓰겠어!' 결심하고 한2년 열심히 도시락을 쌌으나

결과부터 말하면.. 돈은 모으지 못했다. ^^;;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늘 스르륵 없어져있던 월급, 얘들아 어디갔니?? ^^


아무튼 그래서 내 도시락의 역사는 꽤 긴 셈이다.

대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다시 1800원짜리 학교식당 밥을 먹느라 도시락은 안싸게 되었지만

뭔가 재빨리 후루룩 만들어 통에 담는 동작은 여전히 몸에 숙달되어 있다.


요즘 나는 그 실력을 발휘해 매일 도시락을 싼다.

결혼하면 신랑은 회사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역시.. 돈이 제일 크다. ^^ ㅋ

이런저런 결혼비용, 특히 집값(정말 1가구 1주택이 절실하다!!!) 부담이 넘 커서

둘이 머리를 맞대본 결과 매달 받는 신랑의 월급을 정말 아끼고 아껴야한다는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착한 우리 신랑은 군말없이 '도시락 먹기'에 동의했다.  

싸주는 내가 힘들까봐 줄곧 걱정했으나.. 나는 나름대로 생각해둔게 있었으니..

바로 '식기세척기'다!

뭔가 만드는건 좋아하지만 치우는건 안좋아하는 나는,

결혼선물로 살림을 사준다는 신랑 친구들에게 '식기세척기'를 젤먼저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장만한 혼수중에는 '스덴 도시락통'이 도자기그릇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시락싸기에 돌입한지 어언 9일이 흘렀다.

내일은 대망의 열흘째! 내일도 잘 싸보내면 무려 2주를 '무사고 도시락싸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주종목을 '도시락반찬'으로 정하고,

매일 한두가지씩 다른 반찬들을 만들며 열심히 요리를 연마하고 있다.

신랑은 어떤 맛이 나도 "맛있다~!"며 도시락을 깨끗이 비워오고

반찬만들며 내가 쌓아둔 설거지거리와 도시락통을 밤에 깨끗이 씻는다.

(물론 씻는건 '식기세척기'가 하지만, 그거 넣고 빼는게 사실 일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만 집어넣고, 나중에 너는건 다 사람일이며 그일도 참 피곤하듯이..^^;)


다행히 신랑도 나와 식성이 비슷한지 도시락밥을 무척 맛있어한다.

집밥이 달다는 내말에 적극 맞장구치며, 가끔 다른 사람들이 도시락을 안싸와 혼자 먹는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그런 날도 꿋꿋하게 잘 먹고 돌아온다.

신랑용돈에 점심밥값은 아예 책정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맘에 걸리는데

그래도 씩씩한 우리 신랑, 고맙다. ^^


내일의 도시락반찬은 며칠전부터 신랑이 먹고싶다고한 '꼬막찜'이다.

꼬막들은 지금 소금물속에서 열심히 해감을 토해내고 있다.

내일 자신들이 과연 어떤 맛을 내게될것인지 떨고있을지도 모른다.

힛.^^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