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2008. 5. 1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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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택배가 왔다.
스티로폴 박스 안에 층층히 들어앉은, 꽁꽁 잘도 싸매놓은 봉지봉지를 하나씩 열때마다
달랑무김치, 얼린 나물, 얼린 떡, 마른반찬이 자꾸자꾸 튀어나온다.
보물상자가 따로 없다.

며칠전에 울 엄마 전화로 말씀하시길-
"달랑무김치(총각김치를 우리동네에서 이렇게 부른다^^;) 안 먹고싶나? 김장김치만 먹으면 맛이 없을긴데... 아 낳고나면 이가 상해서 달랑무김치 같은건 한동안 못먹는데이~ 내가 맛있게 담가서 보내줄테니 낳기 전에 많이 먹어래이~"
하시더니 정말로 많이도 보내셨다.

김치냉장고 통에 넣고보니 큰통으로 반통도 훨씬 넘는다. 손도 크시지.. 우리 엄마.
이제 출산이 한달도 채 안남았는데 매일매일 달랑무김치만 먹어도 하루에 몇개 못먹는데... 언제 다먹나.
공시랑거리며 김치통에 옮겨담는데 문득 알싸한 김치양념 냄새가 엄마 냄새 같아서 코끝이 찡해졌다.
언제나 맨손으로 그 매운 양념 다 버무리며 대식구 입에 넣어줄 김치를 산더미같이 담그곤 하시던 엄마.
발갛게 양념물이 밴 투박하고 작은 엄마의 그 손 덕분에
오늘까지 우리 형제들, 우리 가족들 행복하게 밥숟갈 부지런히 입안에 떠넣으며 건강하게 살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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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이 가까워오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살아오는 내내 엄마 도움 안받고 지냈던 순간이 없지만, 요즘처럼 엄마에게 많이 의지하고 의논하며 지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잘난 딸, 대학다니고 일 한다고 바빴던 20대에는 엄마랑 뭔갈 공유한 적이 거의 없었다.
요즘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얘기한 적도 거의 없고, 엄마의 삶에 관심을 가진 적은 더욱 없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때라고 크게 달랐을까..

그런데 엄마는 늘 내게 뭔가를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셨다.
참 이상하지.. 자식들은 부모와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데 그토록 인색한데
부모님들은 어쩜 그렇게 끊임없이 나눠주고 보듬고 살펴주시는지. 자신의 온 삶을 통털어서.

나도 이제 곧 그 불가사의한 '엄마'의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
준비가 잘 되어있어서가 아니라 눈앞에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에
나도 엄마처럼 어떻게든 내 아이를 먹이고 보살피고, 최선을 다해 키워낼 것이다.
그리고 나도 엄마처럼 자그마하게 늙어가겠지.
내가 아주 늙은 뒤에도 우리 엄마가 계속 나보다 좀더 늙은채로 살아계셔서
나중에는 내가 엄마에게 "이 더 약해지기 전에 달랑무김치 많이 드셔~"하면서 김치도 담궈드리고
둘이 같이 어디 여행도 가고 재밌는 영화 구경도 다니면서
그렇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어버이날 즈음에 신랑의 동료분들이 집들이선물로 꽃다발을 사다주셨었는데 가만보니 거기 카네이션이 들어있었다.
예비엄마, 처음으로 카네이션을 받아본 것이다.
멀리 고향의 엄마아빠께는 전화밖에 못드렸는데.. 이 꽃, 마음으로나마 고향 부모님께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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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