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일기2008. 1. 18. 21:14
꼬막의 고향은 어디일까.

아침도시락을 싸고 남아있던 꼬막들도 마저 삶아서 반찬으로 만들어두려고
박박 솔로 문지르며 꼬막을 씻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꼬막...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고장은 전라남도 보성과 벌교다.
조정래 선생의 소설 '태백산맥' 때문이다.
며칠전에 신랑이 '꼬막찜'을 먹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우리는 태백산맥 얘기를 했다.
음.. 그 소설을 읽은 이후로는 왠지 '꼬막'하면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고..  살짜쿵 야한(?) 대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웃으며 "아무튼 꼬막찜은 정말 맛있어!^^"라고 대화를 마무리했었다.

소금물에 담가놓은 이 꼬막들이 토해낸 모래와 이 녀석들의 겉껍질에 묻어있는 물때는
그럼 전라남도 어느 뻘밭, 서해안 어느 바닷가에서
모래와 파도와 바위틈에서 이 녀석들이 간직하고 온 것들인 셈이다.
나는 잠시 그 푸른 바다를 생각했다.

꼬막 껍질의 물때를 잘 벗겨서 바가지 같은 곳에 담아놓고 있다가
모든 꼬막을 거의 다 손질해갈때쯤 바가지를 보니
바가지 바닥에 연한 붉은빛이 도는 물이 고여있다.
꼬막의 피였다.
그 순간 이 꼬막이 나처럼 살아있는, 생명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래, 살아있는 생명이야.

내가 요리하는 모든 재료들은 사실 다 우리처럼 생명있는 것들이다.
배추도, 파도, 마늘도, 멸치와 다시마도.... 다 생명있는 것들이
그 생명을 우리에게 준 것으로 우리는 오늘도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문득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숙연한 감정이 밀려왔다.

뉴스에서는 태안 주민들의 연이은 분신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 절망감... 나는 짐작도 잘 할 수 없는 절망감이 그 분들을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 바다에서는 생명있는 많은 것들이 죽어가며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 비명소리를 들으며 누군들 마음이 온전하랴...

오늘 내가 차리는 따뜻한 이 밥상이 누군가들의 눈물이 아닌 웃음과 행복에 바탕을 둔 것이기를 바란다.
태안 어민들이, 이땅의 모든 먹거리를 생산하시는 분들이
웃으며 '생명'을 키우고, 그 생명으로 인간이라는 '생명들'도 살려주실 수 있기를 빈다.

태안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원봉사의 물결은 정말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힘을 모아 제대로된 책임과 반성, 재발방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해야할 것이다.
거대재벌회사의 크레인이 일으킨 사고인만큼, 그 기업이 제대로된 보상과 응당한 사회적 책임을 지기를 바란다.
평범한 국민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 회사가 돈을 내 유출된 기름도 다 걷어내고, 주민들이 입은 물질적, 정신적 피해도 보상해야하는것 아닌가 싶다.

바다가 죽으면 우리도 죽을 것이다. 땅이 죽어도 마찬가지다.
요즘 밥상을 차리면서 나는 그런 것을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건강한 생명의 밥상을 모두다 즐겁게 나눠먹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