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침, 텃밭에 다녀왔다.
아파트 건물들이 늘 시야를 가로막는데 익숙해져 있다가
하늘이 막힘없이 탁 트여있고, 멀리 산자락들이 달려가는 풍경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는 곳에 나오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집에서 차로 10분만 달리면 이렇게 너른 평지가 펼쳐져있는데
답답한 아파트 단지안에만 갇혀지내는 삶이 안타까웠다.
연호낳고 여름내 못와본 텃밭에는 어느새 가을이 가득 펼쳐져있었다.
우리 텃밭은 이모님께서 살뜰하게 가꾸신 덕분에 배추며 열무같은 가을작물들이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모님은 무덥고 비많던 지난 여름, 연수를 데리고 가끔 텃밭을 돌아보셨다.
연수는 가지 두어개, 고추 여남은개, 파 한웅큼을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와서는
"엄마, 우리 밭에서 딴 거야!"하고 자랑스럽게 내밀곤 했다.
비료도, 약도 뿌리지않는 우리 밭에서 자란 작고 못생긴 그 열매들을 보면서 나는 참 뭉클했었다.
초여름 어린 모종을 심던 날도 생각났고, 영성농법이라고 박수쳐주고 돌아다녔던 만삭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작은 수확이나마 텃밭좋아하는 조카며느리가 기뻐할 걸 생각하시고 챙겨보내주시는 이모님의 다정한 마음도 느껴졌었다.
어느새 가을이 성큼 온 들판에는 작디작은 국화과의 꽃이 넝쿨을 이루고 피어있었다.
나는 그저 쳐다보고 '아 예쁘다'하는데 이모님은 자분자분하게 꺽어서 저렇게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주셨다.
연수와 나는 오래오래 그 꽃을 보면서 지냈다. 작은 컵에 꽂아서 식탁위에 올려두고 밥먹을때마다 쳐다보았다.
작은 꽃한다발로 이렇게 가을이 풍성해지는구나... 알았다.
나도 아이에게 이렇게 예쁜 들꽃 다발을 만들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싶다.
등에 업힌 연호에게도 들꽃향기를 맡게해주고 싶었다.
연호야, 예쁘지... 꽃이란다. 예쁜 들꽃..
일요일 텃밭 나들이는 늘 오전 9시쯤 시작된다.
이 날도 집에 돌아오니 열시 반.
일요일은 아이스크림 먹는 날! 연수가 일주일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바로 그 날. ^^
고대하던 '콘'(꼭 정문앞 슈퍼에서 사야한다. 생협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맛있단다ㅠ)을 하나 들고 연수는 한껏 행복해했다.
주말이면 연수와 둘도없는 짝꿍이 되어 놀이터로, 도서관으로 신나게 돌아다니는 아빠도 콘 하나 먹고 으쌰으쌰!
일요일 아침 텃밭의 행복. 아이스크림의 행복.
네살 연수가 기억할 순 없더라도 행복한 그 기운만큼은 연수 마음안에 마르지않는 우물로 남아있다가
나이든 어느날 고단할때 찰랑찰랑 차있는 그 물을 마시고 기운차릴 수 있었으면..
텃밭에서 솎아온 여린 배추잎으로 된장국을 끓여먹었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밭이 있다. 작은 밭이.
도시의 뿌리뽑힌 삶이지만 작은 조개발 하나만큼, 꼭 그만큼은 땅을 딛고 살고있는 기분이다.
작은 발바닥으로 전해져오는 땅의 기운, 땅의 온기를 받으며 몸과 마음 모두 큰 위로를 받는다.
올 가을, 연수연호와 더 자주 밭에 나가봐야겠다.
가래여울의 하늘만 보고와도 남는 장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