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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5 아픈 시간 6
umma! 자란다2010. 11. 5. 01:13








몸은 고단한데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이다.
요며칠 저녁마다 그렇다.
혓바늘이 돋아서 아픈 연수는 어제보다는 덜 보챘지만 오늘은 더 늦게 잠이 들었다.
이 겨울에도 살아있는 모기 한마리가 안방에 들어와 일찍부터 불을 끄고 누운 우리를 앵앵거리며 물어댔다.

간신히 연수가 잠들고나서 나와 시계를 보니 11시.
요사이 자꾸 밤잠을 설치는 연수를 더 일찍부터, 푹 재워보려던 생각은 오늘도 실패할 것 같다.
아주 어린 아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요며칠 연수는 밤잠이든 낮잠이든 거의 1시간 간격으로 깨어서 엄마를 찾고 운다.
자다 깨면 안아달라고 조르거나, 엄마 팔을 베고 겨드랑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한참 조물거려야만 다시 잠이 드는 아이를 보며 요즘 이 아이가 무슨 괴로운 일이 있나, 어려운 것을 참고있나.. 걱정이 된다. 

동생이 태어날거라고, 엄마 배속에서 아기가 자라고 있다고 한두번 얘기도 듣고 엄마 병원에 함께 가서 아기의 심장소리도 엄마아빠와 함께 들어보기는 했지만 아직 어린 연수가 크게 실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아빠도 아직 많이 남은 일을 굳이 자주 이야기하지 않는게 나을 것 같아서 동생 이야기를 연수와 거의 하지 않았다. 
형이 될것이니 이제는 의젓해져야해... 같은 말들도 조심했다. 미리부터 부담을 주거나 동생의 존재를 달갑게 여기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엄마의 변화는 24시간 늘 엄마와 붙어지내는 이 아이에게 예민하게 포착될 수 밖에 없겠지..
엄마가 기운이 없고, 예전보다는 덜 씩씩하게 저와 놀고, 저를 더 많이, 더 오래 안아주지 않으려 한다는 기색을 눈치챘는지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고, 힘들었을까... 

밤잠을 설치는 것과 혓바늘이 돋는 시기는 거의 엇비슷하게 찾아왔다. 
아이가 아프면 그나마 실낱같이 나를 지탱해주던 자신감이 급격히 무너진다. 
내가 잘 하고 있는걸까..

나는 내가 아이를 아주 잘 키울 수 있을줄 알았다. 막연하고 조금은 우쭐거리는 마음도 포함된 자신감이었다. 
다른 일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데... 그 정도도 못하겠어. 하는.
그래서 나는 내 아이가 조금은 특별하게(?) 자랄 줄 알았다.
말도 아주 잘 듣고, 똘똘하며, 성품도 온화하고 안정감있고 균형있게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저 평범하게 큰다.
말을 정말 안 듣고, 떼도 많이 부리고 손가락을 빨거나 물어뜯으며 어딘가 조금은 불안해보이는 그저 그만한 보통 아이로.
 
그래서 속상하다는건 아니다. 그만그만하게 커주는 것만도 실은 고맙다. 
이렇게 아프고, 잠을 설치고 어딘가 자라는 것이 힘들어보일 때는 저 어린 것을 더 평화롭게, 행복하게 지내게 해주지 못하는 것같아 부족한 내가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다. 
   









오늘은 오전에 연수와 동네 시장에서 이것저것 장을 봐가지고 오다가 가끔 간 적 있는 놀이터에 들렸다. 
늘 아파트 놀이터에서만 놀다가 동네 놀이터에 나오니 그것만 해도 새로운 환경인듯 아이도 엄마도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그 놀이터에는 키큰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많아서 큰 잎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다. 
오랫만에 키큰 나무를 올려다보며 벤치에 앉아있으려니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또 한 번의 가을이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다.
컨디션이 좋지않은 요즘은 낮이든, 밤이든 책도 거의 못 읽고 집에 오는 신문 몇쪽 겨우 펼쳐보는것 말고는 달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신문에 실려있는 세상 소식들은 기륭전자투쟁이 6년여만에 협상에 성공해서 비정규직 해고 노조원들이 정규직으로 고용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고, 
전태일 서거 40주년을 앞두고 또다시 자기 몸을 불사른 금속노동자의 아픈 소식도 실려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아프고도 힘든 일들을 쏟아내며 덜커덩덜커덩 어렵사리 돌아가는데
나는 이 어린 아이 하나를 키우는 일이 우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일인 것처럼 아이만 품에 품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잠시 무거워졌다. 
 
집에 돌아와 물감놀이를 하자는 연수의 말에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다.
오늘 본 플라타너스 낙엽과 키큰 나무를 그리다가 문득 윤도현밴드가 부른 '나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 살아가다가 또 살아가다가 
그 사랑에 마음이 아플 때에
고개 숙인채 울다가 속으로 울다가 잎새 하나 띄워보냈네
우린 세상 숲속의 나무
한결같은 마음 하나로 
나를 둘러싼 이곳 이 땅에서
나만큼의 그늘의 드리지
우리는 모두 세상 숲속의 나무


'나만큼의 그늘을 드리지'란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지금 내가 드리울 수 있는 나만큼의 그늘.. 그 그늘안에서 누가 쉴 수 있을까. 
내 아이는 그 속에서 잘 뛰어놀며 내게 매달려 잘 자라고 있을까.
내 품이 더 커지고 깊어지면 더 많은 이들을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연수가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나도 얼른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 평화도 무럭무럭 잘 컸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