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꼭 날짜와 설명을 써달라고 한다.
'얼굴도 있고, 연기도 나고, 기관차와 객차의 연결부분에 동그란 것도 달린' 그런 기차라고 설명하면서 써달라고 한 것인데 내가 미처 자세히는 못 받아적었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해도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연수.
제 마음에 있는 생각과 풍경들을 너무 어려워말고 그저 쉽고 편하게 슥슥 그려낼 수만 있으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림이란 꼭 잘 그려야 맛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내 마음을 내가 표현할 수 있어서 내 맘이 시원하고 행복하면 그게 제일 좋은 거니까..
그림그리는 것,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기를..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어느 때고 종이와 연필이 있으면 그 순간에 마음에 남는 감동이든, 슬픔이든 꽉 막아두지 말고 조금씩 풀어내면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어서 그려준 연호 그림에도 똑같이 쓰고 사진도 한장씩 찍어두었더랬다.
연수의 그림이 이정도 형태를 띄게 된 것도 워낙 최근의 일이라 나로서는 참 대견하고 뭉클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떄부터도 사물의 형태도 잘 잡아내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연수의 그림은 다섯살까지도 늘 미로찾기 같은 선의 나열이나 여러 색을 이것저것 마구 칠해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
그걸보고 뭐라 하진 않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싶은만큼 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담아내는 그림 같은 것은 더더욱.
그리는 일과 색깔에 담긴 풍성한 느낌들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어린시절에는 제일로 중요한 거라 생각한다.
어른이 옆에서 자꾸 뭐라고 하고, 나무라거나 가르치면 오히려 그림이 부담스러워지고 싫어질까봐 한마디 하고싶은 것도 꾹 참는다. (에고~~ 참는게 젤로 힘들다.ㅠ)
앞으로 연수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 어떤 일기를 쓸까... 궁금하다. ^^
글을 배우기 전까지는 아마 엄마의 대필은 계속 되겠지? ㅎㅎㅎ
오늘은 유치원에서 조정경기장 숲으로 산책을 다녀왔단다.
연수는 첫날인 어제부터 산책을 기다렸다. 월요일은 마당에서 놀고 산책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간다는 얘기에 조금 섭섭해했었다.
오늘 산책다녀오는 길에 작년에 엄마와 함께 봤던 머루 열매가 있나 찾아봤는데 없었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멀지않은 작은 골목길의 담벼락에 붙어있던 마른 덩굴과 거기 달려있던 작고 까만 열매들을 보고 연수는 '머루열매 아닐까?' 했었다.
그 담벼락에서 까만 열매를 하나씩 따서 내게 주며 '엄마, 나 엄마랑 집에 가고 싶어'하던 다섯살 연수가 생각나서 나는 마음이 뭉클했다. 그때 어린 연호를 아기띠해서 안고 눈물을 참으며 '그래도 유치원 가야지'하고 달래보던 내 모습도 생각났다.
그때 연수를 데리고 그냥 집에 있자 하고 돌아오면서 사실 내 마음은 편하고 좋았다.
내 첫 아기. 품에서 떼어놓기가 참 어려웠던, 지금도 제일로 오래 마음에 품고 또 품게되는 나의 큰 아이.
연수가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고맙고 좋은지 모른다.
"엄마, 근데 산책가는 그 풀밭에는 새싹이 났더라. 오늘 새싹을 찾아서 봤어."
"정말? 벌써 새싹이 났어? 우와~~ 정말 예쁘겠다. 엄마도 보고싶다.."
"응. 정말 예쁘더라. 좀있으면 우리 아파트 풀밭에도 날껄? 엄마도 볼 수 있을거야."
"그래.. 맞아. 곧 볼 수 있을거야. 이제 봄이니까.."
.. 오늘 유치원 하교길에는 연수와 이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대신 써놓는 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