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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31 쭈쭈바는 왜 6

 

 

 

 




며칠전 아침먹고 노는데 연수가 갑자기 종이를 찾아오더니 '인디언'이 되야겠다며 종이를 잘라 머리에 꽂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인디언이 되었다. ^^;; 


 

 

 




다섯살이 되면서 얼굴이 위아래로 많이 길쭉해진 연수.

가끔은 아기같기도 하고, 가끔은 또 훌쩍 큰 형아같다. 

그래도 아직은 아기같을 떄가 더 많다.



 

 

 

 


그전부터도 그랬지만 요즘도 질문이 참 많은데.. 주로 '왜?' 하고 저는 쉽게 툭 던지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머리싸매고 한참 끙끙거려야하는 것들이 많다.

자연 현상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면 과학 지식이 필요하고, 단어의 뜻이나 어원에 대해 물으면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지식이 폭넓게 요구된다.

하지만... 아이는 다섯살. 그냥 떠오르는대로 성실히 대답만 해도 충분하다. ㅎㅎㅎ


며칠전 장보러 갔다가 연수가 열망하는 '쭈쭈바'를 하나 사주었다.

한참 즐겁게 쪽쪽 거리던 연수가 물었다. 

'엄마, 쭈주바는 왜 쭈쭈바지?'

'글쎄... 쭉쭉 빨아먹어서 쭈쭈바 아닐까?'

'음.. 쭈쭈 맛이 나서 쭈쭈바인 것 같은데~'


ㅋㅋ

'쭈쭈'를 빨던 아기 시절로부터 그리 멀리 오지 않은 연수의 경험이 빛나는 순간이다.

'그렇구나..! 쭈쭈 맛이 나서 쭈쭈바구나.. 연수 말이 맞는거 같아!'




 

 



아이들의 기억은 정말 강렬한 것 같다.

살아온 시간이 짧아서인지 그 안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어른들이 깜짝 놀랄만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아이들은 제게 일어나는 일들과 만나는 사람, 사물에 대해 주의깊게 관찰하고 깊이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베란다 텃밭에 심을 모종들을 좀 더 사러 조금 큰 화원에 갔었다.

쑥갓이랑 토마토 등을 엄마가 고르는 사이에 연수는 저쪽에서 어떤 키 큰 나무 모종을 보고 있더니 

'엄마 나 블루베리 먹고 싶어. 우리 블루베리도 키우자' 했다. 

연수가 보고있는 가느다란 나무에는 '불로베리'라고 아주머니가 직접 쓰신 것 같은 리본이 붙어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화원 아주머니 아저씨는 야단이 났다. 아니 어떻게 요렇게 어린 애가 블루베리를 아냐고.. 책에서 봤냐고 물어보시고, 그 녀석 참 신기하다 하시는데 나도 참 신기했다. 

다른 손님들이 또 들어오셔서 아주머니가 바빠지셨고, 그 블루베리 모종은 연호 아기띠하고 나온 내가 한손으로 들고 가기엔 좀 큰 것 같아 연수에게 오늘은 사기 어렵겠다 얘기하고 얼른 골라놓은 작은 모종들만 사가지고 나왔다. 


버스를 타러 가면서 연수에게 그 나무가 블루베리인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초록색 작은 열매가 달려있었는데 블루베리 모양이어서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주에 떡집에 갔을 때 주인아저씨가 연수에게 블루베리 말린 것을 몇 개 주셨는데 아마 그때 먹으면서 모양을 기억했나보다.

그날 나는 연호 돌떡을 맞추느라고 버둥거리는 연호 붙들고 아줌마와 떡얘기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연수는 그동안 아저씨가 준 블루베리를 요모조모 들여다보았던걸까..

 



 

 




그래도 그렇지... 마른 보라색 열매랑 어린 초록색 열매는 다를 것 같은데 어찌 그리 알았을꼬... 

신기하기도 하면서 살짝 두렵기도 했다. 

이 녀석.. 뭘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거지.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이 어리다고, 잘 모른다고 어른인 내 맘대로 막 밀어붙일 때도 많고, 말도 안되는 얘기로 윽박지를 떄도 있는데... 그런 것들도 다 기억하는거 아닐까. ㅠㅠ 

가끔은 아이들이 마치 귀머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앞에 두고도 어른들끼리 아이들 얘기, 다른 어른들 얘기를 할 떄가 있다. 

자기 얘기를 엄마가 어떻게 하는지 아이들이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을거라 생각하면 좀 조심하게 된다. 

말을 배우기 전, 아주 어릴떄의 아기들도 말이다. 

엄마의 평가(?) 혹은 흉, 혹은 아이를 탓하는 이야기... 모두모두 조심해야겠다.

 


 

 

 




'내가 커서 아빠가 되면 연호가 사달라는거 다 사줄꺼야. 장난감도 로보트도 다 사줄꺼야. 건전지만 빼고.'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라는 동요CD에 이런 노래가 있다. 


'나는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한살 두살 나이먹어 어른이 되면 

내 아들이 사달라는건 다 사줄꺼야 

자꾸자꾸 귀찮게 얘기 안해도

다 알아서 다 알아서 뭐든지 다 사줄거야'


^^

보람유치원 아이들이 직접 한 얘기를 기록한 '마주이야기'에 백창우 씨가 곡을 붙여서 만든 노래들인데 정말 재미있고 찔리는 내용이 많다. 

연수도 나도 저 CD의 노래들을 참 좋아해서 자주 부른다. 

둘이 각자 흥얼거리기도 하고, 함께 목청껏 부르기도 하고, 연수는 그 마주이야기들을 슬쩍 바꿔서 자기 하고픈 말을 하기도 한다.



무튼 김연수, 자기가 커서 아빠가 되면 왜그런지 모르지만 '연호'한테 연호가 사달라는건 다 사준댄다. ㅎㅎ

그 마음.. 변치마시길.

그 나이쯤에 연호가 갖고싶은 것이 장난감 로봇일지는 잘 모르겠다만... 

연수야, 네가 커서 이 글을 다시 보고 있다면 연호한테 전화해서 '요즘 너 뭐 갖고싶은거 없냐?'하고 물어서 꼭 사주길 바란다.

다섯살 여름에 네가 그렇게 말한게 있으니. ^-----^


근데 건전지는 왜 빼냐고 물어봤더니

'건전지는 연호가 먹으면 안되잖아' 한다. 

그렇지. 건전지는 아직 연호 금지품목이지.


연수 얘기 덕분에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아직 낯설고 상상이 잘 안된다. 

그러나 그런 날이 곧 오겠지.

늘 바라듯이 둘이 다정한 형제였으면 좋겠고, 따뜻한 어른들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나는.... 아주 잘 나이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만 48개월을 향해가는 내 고운 첫 아기 그리고 아빠.

고맙다.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