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나무들2010. 7. 28. 14:58









여행 7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아주 가는 실비가 내린다.
비가 와도 아침산책을 안할 수는 없어서 연수와 아빠는 우산을 받쳐들고 자연휴양림 안을 슬슬 걸어다닌다.
세살 남자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는 작은 방안에서는 감당이 안된다.

혹시 몰라 챙겨온 연수 우산과 장화가 톡톡히 빛을 발했다.
좋아하는 장화와 우산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 연수는 비가 반갑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에는~ 우산 쓰고 장화신고~ 그렇게 하고 나가는 거지요~"
노래인지 말인지 여행중에 말이 한층 는 연수가 재잘재잘 떠들며 앞장선다. 


지난 밤에 도착한 숙소는 전남 순천 금전산에 자리잡은 '낙안민속자연휴양림'이다.
순천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인 낙안읍성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금전산에 머무르는 삼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덕분에 금전산을 둘러싼 아름다운 안개는 실컷 보았다.
떠나는 날 아침에야 날이 갰는데 멀리 내려다보이는 낙안들판 풍경도 아름다웠다.

휴양림 안에는 사람만큼 많은 다람쥐가 산다. 아니, 우리가 못 봐서 그렇지 사람보다 더 많이 살 것이다.
그 중 몇 마리가 늘 연수의 산책길에 살짝 살짝 동행했는데 연수는 서울에 돌아와서도 금전산 다람쥐들을 자주 추억했다.
그래.. 엄마도 또 보고싶다. 우리집 돌계단에도 다람쥐가 앉아있었으면 좋겠구나..
그치만 다람쥐는 서울 우리집이 그닥 편치 않을거야..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순천에 온 것은 남편이 보성차밭을 보고싶어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계산에 있는 선암사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양쪽 모두에서 가까운 순천에 숙소를 잡았다. 
우선 보성부터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차밭을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수가 우산을 받치고 걸어가기에는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보를 보니 오후엔 그칠 것도 같다해서 차밭이 있는 산을 타고 그대로 내려와 가까운 율포해수욕장에 들렀다.

남해 바다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강물 만나서 바다로 간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연수랑 내가 자주 부른 노래처럼.. 우리도 흘러흘러서 우리가 사는 땅의 제일 남쪽 바다까지 왔다.
용현계곡에서 출발해서 서해바다를 지나 깊은 산과 큰 강들을 따라 여기 남해까지.
우리 세 식구.. 먼 길을 참 씩씩하게 왔다.   










여름이라 해도 흐린 날 바다바람은 추웠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 바람을 맞으며 춤을 춘다.
연수는 출줄아는 유일한 춤인 '짝발뛰기'를 해가며 모래사장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지난 밤에 연수는 여행와서 처음으로 토를 했다.
평소에도 거의 토하는 일이 없었는데 졸릴 때쯤 심하게 울더니 그만 그 전에 먹은 포도를 왈칵 다 토해버렸다.
포도는 연수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 과일이라 광주에서 장볼 때 큰맘먹고 비싼 것을 두 송이 샀었다.
포도 한송이를 숨도 안쉬고 급하게 먹은 탓인지, 광주에서 낙안읍성 쪽으로 들어오는 꼬불꼬불한 국도길에 속이 불편했었던 것인지 알 수없지만 연수의 토는 엄마아빠를 일순간 긴장시켰다. 
어린 연수에게는 너무 무리한 여행인게 아닐까... 어린 것이 힘들고 고단한데 말을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과 자책으로 어제 저녁 우리는 조금 무거운 분위기로 잠이 들었었다. 
   
이럴떄는 내가 아직 젖을 먹이고 있다는게 다행스럽다.
아이에게 엄마젖은 세상에서 제일 큰 위안이고 안식이다. 
연수는 먹은 것을 다 토한 지친 몸으로 엄마젖을 천천히 잘 빨아먹고는 곤히 잠들었다.
그 젖이 연수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한번 뒤집어졌던 위장속도 쓸어주고, 날카로와졌던 마음도 부드럽게 다독여주기를 빌었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나면 밤에만 먹이는 이 젖도 끊을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나는 연수의 만병통치약 하나를 잃은 것같이 허전하고, 때때로 연수가 아프기라도하면 불안할 것이다.
 
연수는 밤새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다시 기분좋게 잘 웃고 잘 놀았다.
다행이었다. 연수가 많이 힘들어하면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가자고 엄마아빠끼리 얘기했던 터였다.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는 않았지만 씩씩한 연수를 보니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것 같았다.
고맙다. 연수야.. 남은 여행도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가자. 











율포에서는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바람도 차고 해서 실내에서 놀기로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율포 녹차해수탕' ^^
녹차해수 물놀이장도 있지만 역시 실외고, 어른이나 아이나 뜨뜻한 물에 들어가 좀 쉬는 것도 좋겠다 싶어 목욕탕으로 갔다. 
아빠는 홀홀단신 남탕으로 가고, 연수와 엄마는 여탕으로. 
결과부터 말하면 아빠는 잘 쉬었고, 엄마는 운동 아주 제대로 했다.

남도 할머니들의 사투리가 이쪽 저쪽에서 튀어오르는 오래된 목욕탕은 정겨웠다.
쉴 새 없이 이 탕 저 탕을 오고가며, 또 쫑알쫑알 쉬지않고 떠드는 연수가 재밌어서 할머니들은 웃었다. 
"아고~ 뭐라는겨? 쪼그만 놈이 참 쉬지도 않고 떠드네잉~" ^^;;

지난 봄에만 해도 목욕탕의 큰 탕들에는 무서워서 들어가지 않던 연수는 이번 여행에서 물놀이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아니면 만 25개월쯤되면 호기심이 겁을 이기는 것인지 이번에는 제 가슴까지 차오르는 목욕탕 물에 들어가 신나게 걸어다녔다.
냉탕도 가고, 온탕도 가고.. 3개쯤 되는 큰 탕들을 번갈아 들어가며 노는 세 살짜리 아이를 따라다니려니 나는 목욕의자에 느긋하게 엉덩이 한번 붙일 수가 없었다. 목욕하러 온게 아니라 목욕탕 안을 산책하러 온 셈이다. 무려 한시간 반동안...ㅠ.ㅠ   
 
점심을 먹고 다시 차밭들이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오니 밑에서는 내리지 않던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차밭 입구에 있는 매점 간판에 크게 '우산 비옷 카메라 음료수"라고 써있는 걸로 보아서 
여기서는 비오는 날이 맑은 날보다 많을 것도 같았다.
우산을 받쳐쓰고 살살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비보다 더 큰 문제는 목욕하고 밥도 먹은 연수가 본격적으로 졸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보성차밭으로 통칭되는 이 지역의 많은 다원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듯한 '대한다원'이 바로 큰 길옆에 있어 거기에 가보기로 했다. 차밭으로 가는 길에는 키 큰 삼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었다. 
이 길을 본 것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이 있다 싶을만큼 아름다운 길이었다.

입구에 가서 대한다원을 소개한 입간판 글을 읽어보니
차는 원래 따뜻하면서도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것이어서 일부러 주위에 키큰 나무들을 빽빽하게 심어 그 습도를 보장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녹차를 대량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인공적으로 차를 대량생산하기위해 적합한 산지를 물색하다가 전남 보성일대가 제일 적합하다고 평가되어 시험포전을 만들었다고 적혀있었다.

이번 여행을 하며 절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차에 대해서도 천천히 좀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 모르는 눈에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이 조금씩 보이기는 하지만
역사와 깊은 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 깊은 감동이 있지 않을까.











차밭은 아름다웠다.
앞으로는 녹차를 마실때 이 풍경을 떠올리게 되리라.
빗방울을 매달고 있던 작은 차잎들과 차나무들로 만들어진 길고 푸른 이랑들을.
사람도 그가 자란 고향을 알면 왠지 그 사람의 정서나 감정 한자락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듯이 
차의 고향을 보고나니 녹차에 대해서도 조금 더 친근하게, 그윽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린 우리 아들은 너무 졸렸다.
엄마 등에 업혀 거의 반쯤 잠든 녀석을 업고 넓은 차밭을 계속 걸어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비도 조금씩이지만 계속 온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오기로 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보니 전국의 아름다운 곳마다 초등학생쯤 되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가족여행객이 정말 많았다.
그래...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방학이 남아있는가. 너무 일찍부터 많이 다니면 나중에 갈 데가 없어질꺼야... 가자 가자, 그만 돌아가자. 보성차밭은 연수 좀 큰 뒤에 또 오자.










갈 때 가더라도 여기까지 왔는데 녹차아이스크림은 하나 먹고가야지. ^^
연수는 사랑하는 '아크림'을 보더니 무거운 눈꺼풀을 번쩍 쳐들었다. 











잠든 연수를 차에 태우고 먼저 찾아간 곳은 벌교읍내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이었는데 아쉽게도 월요일, 휴관이었다.
순천에서 보성으로 나오는 국도의 이름도 '조정래길'일만큼 보성벌교는 '태백산맥'이라는 뜻깊은 소설의 무대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살아있는 작가의 이름을 길 이름으로 한 것은 작가 입장에서 왠지 쑥스러울 것도 같았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소설이 준 감동과 결연함, 그전까지 몰랐던 현대사에 대한 충격 같은 것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어서 보성, 벌교까지 왔으니 한번은 다시 그 이야기속에 빠져봐야할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벌교를 지나며 표지판을 보니 고흥도 가까이 있었다.
대학시절에 나는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달려 고흥 친구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행여 귀향을 한다면 아마 그때는 고흥에도 다시 한번 가보게 되지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정래길을 되돌아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숙소에 가기전 '낙안읍성'을 잠시 산책하기로 했다. 
    

 








이 길은 낙안읍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위 길이다.
꽤 넓고 평탄해서 성곽을 빙 돌며 읍성 안과 밖을 볼 수 있다.
도련님이 땅을 밟지 않으려고 하셔서 전속 하인 둘이 낑낑거리며 유모차를 들고 제법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야했다. -.,-

도련님, 어떻게 전망은 마음에 드시는지...?  
음~~ 좋구나, 너는 거기서 계속 그렇게 뛰어오도록 해라...











도련님, 유모차에 탄채로 들꽃들을 흐뭇하게 보고있다. 
"이건 강아지풀, 이건 개망초..." 
이름도 제법 많이 기억한다. 
연수가 풀꽃들을 좋아해서 함께 여행하는게 훨씬 수월하다.
어딜 가든 풀꽃 한송이 피어있으면 한참 보고 놀 수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성곽과 관아, 민가들에 연수가 관심을 가지기야 어려웠지만 초가집 돌담을 따라 곱게도 만들어진 화단에 핀 야생화와 도라지꽃들은 어린 연수를 즐겁게 해주었다.











수로가 있다. 나리꽃 떨어지고, 도라지꽃 떨어지는 작은 수로.
어딜 가든 수로있는 마을이 나는 좋다.
이 수로도 400년전에 이 읍성이 만들어질 때 함께 만들어졌을까.
이 수로를 따라가면 성곽 밖에는 물레방아간이 있다. 빨래터는 어디쯤이었을까.. 
지금도 이 오래된 마을에는 사람들이 산다. 
마을에 사시는듯한 아주머니 한 분이 읍성 안에 있는 벤취에 앉아 핸드폰 너머에 있는 아저씨와 부부싸움을 하고계셨다.
"당신이 그라믄 안되재..!!" 
이 읍성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 같은 대화를 들으며 낙안읍성을 나왔다. 해가 저물고있었다.   











숙소에 돌아온 아빠와 아들이 뒹군다.
연수는 엄마아빠 겨드랑이털 만지는걸 정말 좋아한다. 만지기만해도 쑥스러운 기분을 참기가 어려운데 잡아당기기까지 한다.
따그닥 따그닥 아빠 등위에서 말을 타던 연수가 드디어 아빠 겨드랑이털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벌러덩... 도망간 아빠를 향해 무지막지한 발차기를 날린다.
세살 아들이 찬 것이 뭐 얼마나 아플까.. 하겠지만 맞아보면 진짜 아프다.
불쌍한 아빠.. 안쓰럽다.
하지만 평소엔 주로 엄마가 당하던 것을 여행때만이라도 아빠가 당해주니 고맙고 좋기 그지없다. ㅎㅎ

여행을 하며 아빠와 연수는 눈에 띄게 친해졌다.
2주의 휴가.. 연수가 태어난 후로 이렇게 아빠와 오래 있어본 것은 처음이다.
일년에 두어차례 연휴를 제외하면 주말 외에는 거의 아빠와 놀지 못하는 도시 아이들, 연수도 그중 하나다.
아빠가 큰 마음을 먹고 어렵게 낸 두 주일의 휴가는 늘 아빠에게 목말라있는 아이에게는 그야말로 단비같은 시간.
여행 전에 연수는 한동안 아빠에게 뽀뽀를 해주지 않았다. 아빠가 '연수야, 뽀뽀~'하고 다가가면 도망가고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버리곤 해서 아빠도 엄마도 마음이 아팠다.
여행을 하면서 연수가 다시 아빠한테 뽀뽀를 한다. 꼭 안아주기도 한다. 물론 저렇게 발로 차고 털도 많이 뽑지만 말이다. ^^;

아빠에게도 천천히,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여행 7일차, 여기 순천에서부터 아빠가 연수 밥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에도 내가 부탁하면 아빠가 연수에게 밥을 먹이긴 했다. 조금 먹이다 금새 '잘 안먹어' 하면서 포기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연수 밥그릇과 숟가락을 챙겨서 먼저 먹이고, 끝까지 먹인다.
엄마가 부탁하기 전에 옷도 갈아입히고 자주 손과 얼굴도 씻어준다.
'말하기 전에' 가 중요하다.
연수를 지켜보며 연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 아빠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아이와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러니까 평소에 아침 일찍 잠깐 얼굴보고, 주말에만 아이와 놀아줄 때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자신이 아이의 주양육자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은 바로 이 것이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