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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1 얼마만큼 자랐나 4
신혼일기2011. 5. 1. 22:17









밤새에 꽃나무가
얼마만큼 자랐나?

아기가 아장아장
꽃밭으로 가보네.

밤새에 병아리가
얼마만큼 자랐나?

아기가 갸웃갸웃
닭의 어리 엿보네.

밤새에 우리 아기
얼마만큼 자랐나?

해님이 우리 마당
밝게 비춰 보시네.


- 윤석중 동시 '얼마만큼 자랐나' 전문.











텃밭에 상추심고 일주일 뒤였던 지난 24일.
세 식구가 오전에 주말농장에 다녀왔다. 

상추가 많이 컸을까, 쑥갓 씨앗은 싹을 틔웠을까... 도란도란 얘기하며 가는 길이 즐거웠다.
가보니 상추들은 아주 조금 큰 것도 같았고(?^^;), 쑥갓 씨앗은 잠자고 있는지 소식이 감감했다. 
그래도 그게 밖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 잠잠한 것이지 땅 속에서는 지금 부단히 땅을 뚫고 여린 새싹을 내보내려고 씨앗이 온 힘을 기울이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상추도 고만고만 해보이지만 새로운 땅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짧은 일주일 사이에 잎사귀도 전보다는 넓혀놓았으니 대단하고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었다. 

   









이 날은 작물을 더 심으려고 간 것은 아니고 그저 궁금해서 보러 간 길이라 딱히 할일은 없어 그저 상추들 얼굴보며 웃고만 있었다. 
그래도 연수는 아쉬운지 농기구창고에서 삽을 꺼내달라더니 저렇게 몇번 밭을 다지고 두드렸다.
나는 영성농법을 실천하느라 박수를 힘차게 여러번 치면서 '잘 커라, 고맙다' 얘기하고 왔다. ^^











밭일 대신 이 날은 우리 텃밭 바로 건너편에 있는 한강을 만나러 가보기로 했다. 
주말농장이 있는 이 마을에는 '가래여울'이란 예쁜 이름이 붙어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근방 강가에 가래나무가 많고, 예전에 올림픽대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지금 강동대교 근처가 물살이 아주 센 여울목이었어서 '가래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적혀 있었다.

갈대와 잡풀이 무성한 언덕위로 자전거들이 달리는 것이 보였다.
차들은 다닐 수 없게 철문이 닫혀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녀 길이 만들어진 곳으로 들어와 올라서니 자전거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자전거도로를 건너면 만나는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 
큰 강을 본 연수. 조금은 얼떨떨하다.  










내려가보자~!
햇빛은 좋고, 강은 푸르다. 더구나 여기는 시멘트 싹 발라진 인공 제방이 아니라 흙과 물이 그대로 만나는 자연의 강. 
갑작스레 펼쳐진 강 풍경에 나도 놀라고, 마음이 시원해졌다. 
 










연수, 뛰어간다.











강물이 잘그락, 잘그락.. 자갈을 흔들고 있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강물 자락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게 얼마만인지.
작년 여름 여행 이후로 강가에는 처음 서보는 것 같다.
이사오고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두어번 가긴했지만 그곳도 아무래도 인공의 물인지라 이토록 여린 강의 느낌은 받지 못했다. 
강이, 한강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말을 걸고 있었구나.. 
 










연수는 조금 무서운지 아빠에게 손을 잡자고 해서는 강물 아주 가까이 가서 돌멩이를 몇번 던져보았다.
 










하늘과 구름도 참 예쁜 날이었다.











아빠, 좀 더 놀자~!
연수야.. 그만 가야해...











마음 같아서는 이 그림같은 강가에 오래도록 자리펴고 앉아 강물과 하늘을 쳐다보다 오고싶었지만...
우리가 여기를 빨리 떠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는 바로 이 사진 한가운데, 갈대밭 입구에 서있는 작은 팻말 때문이다.
팻말에는 작은 사진과 함께 이런 글귀가 써있었다.
"뱀조심"

헉!!! 뱀이라니!!!! -.-;;;;;
정말이야? 정말? 아~~~ 뱀이라니~~~~!!!

뱀은 내가 제일로 무서워하는 생물.
인공의 공원과 제방에서 그리 멀지도 않은 여기부터는 한강의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무척 고마우면서도
아... 뱀이라니... 생각만해도 소름이 오싹 돋아 나는 그만 '어서 가자, 어서 가자'하며 아이를 채근해 풀밭을 떠나고 말았다.
강가에서 사진 몇장을 찍은 것도 실은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림같은 강가를 떠나와 자전거도로로 올라가는 삭막한 이 시멘트 길위에서
그나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방에 싸온 간식을 먹었다...ㅠㅠ
 
그리고 두번째 이유인, 이날 오후에 우리집에 오시기로한 손님들을 맞으러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


일주일이 지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문득 궁금해진다.
한강의 뱀들.. 잘 있을까?
들쥐도 잡아먹고, 개구리도 잡아먹으면서 그 녀석들은 오늘 하루 잘 살았을까.
황사는 이리 심하고, 올봄은 날도 춥고... 방사능비까지 내리는 이런 힘든 세상에 그 녀석들도 얼마나 살기가 고단할까..

한강이 살아있는 강이었을 때는
강변의 모래들이 자정작용을 해줘서 물도 깨끗하고 
수심이 얕아 여름에는 해수욕하는 인파도 참 많았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가래여울'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니 예전에는 여기에 나루터가 있어서
멀리 강원도 정선에서부터 나무파는 사람들이 굵은 나무기둥을 묶어만든 뗏목을 타고 내려와 가래여울을 지나 마포로 갔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래.. 사람들이 강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던 그 날들에는 외려 뱀있는 강가에 내려가는 일도 지금보다는 덜 무서웠겠지.
뱀들도 사람 많은 곳에는 나오질 않았겠지..
한강을 온통 시멘트로 발라버린후 살곳잃은 뱀들은 개체수도 많이 줄었을테고, 그나마 남은 녀석들이 여기, 가래여울부터 두물머리로 이어지는 그나마 남은 야생의 강가와 풀밭에 어렵사리 모여살고 있겠지.
<헤이세이 너구리 대전쟁>의 너구리들처럼 사람에게 쫓겨 평화롭게 살던 숲을 잃고 헤메고 또 헤메다 겨우 살아남았겠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이 녀석들을 야속해할 것도 아니고 되려 미안해해야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무섭고 아쉬운건 어쩔수가 없네..ㅜㅜ
봄에는 연수를 데리고, 가을에는 평화까지 데리고 텃밭에 나와 푸성귀를 따고 이곳 강가에서 오래 바람을 쐬고 싶었던 내 꿈이
뜻밖의 뱀소식으로 주춤하게 된 것이..

자연은 좋지만 뱀은 포용할 수 없는 나의 편협한 자연관을 반성하며
예전에 보았던 최성각 작가의 산문집 <달려라 냇물아>를 다시 들춰보았다.
환경단체 '풀꽃세상'과 '풀꽃평화연구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작가에게도 뱀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나서였다.

"뱀에 대한 공포는 학습된 것인지 본능적인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던 저로서야 뱀에 대한 공포가 학습되었을 리 없는 노릇이었습니다만, 뱀은 징그럽고 미끈거리고 독이 있다는 것마저 알았을 때에는 공포스러운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중략)..  하지만 "어떤 못된 뱀도 나쁜 사람보다는 착하다"는 말을 우연히 만난 이래, 제게 뱀은 더이상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지만, 사십 중반이 넘자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자들은 거기에 뱀이 사람을 더 두려워한다는 말까지 덧붙이고 있어서 그 말에 대한 제 공감은 깊어지기만 합니다." (최성각, <달려라 냇물아> 134~145쪽, 녹색평론사)

흑. 아직 내가 삼십대중반이기 때문일까... 철없는 나는 아직 사람보다 뱀이 무섭다. ㅜㅜ  
하지만 이 분도 다른 글에서는 이렇게도 썼다.
 
"사람을 만나면 뱀이 더 놀란다는 말도 있고, 그 말에 십분 공감도 하지만 안 만나면 사실 더 좋은 생물이 바로 뱀이다. 뱀이 보이는 순간 그 일대의 공기 밀도가 달라진다...(중략)..  뱀 이야기를 카페에 올렸더니만, 정선에 사는 시 쓰는 한 선배가 "거위를 키우면 뱀이 안 나타난다"고 조언했다. 본시 나는 귀가 엷은데다 그 선배가 직접 거위를 키우고 계신 분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믿었다. 선배는 뱀이 종소리를 싫어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거위를 구하는 일보다 종을 구하는 일이 더 쉬워서 나는 일단 철물점에서 작은 종을 얼른 구했고, 있던 풍경도 그 이음새를 다시 살핀 뒤 밤에 마당에라도 나갈라치면 소학교의 소사아저씨처럼 때 없이 흔들어대곤 했다. 그러면서도 "거위를 구해야지, 거위와 함께 살아야지". 다짐하기 시작했다." (같은책, 16쪽)


다음에 가래여울 한강가에 갈 때는 필히 종을 들고가야겠다.
그리고 행여 여러해후에 내가 꿈꾸는대로 마당있는 시골집에서 살게된다면.... 꼭 거위를 키우리라. 
 
이번 주말에는 비도 많이 오고, 황사도 심하다해서 텃밭에 다녀오지 못했다.
우리 상추들은 잘 있나... 그 여린 잎들이 이 비와 바람을 잘 견뎌내고 있을까.
이웃밭들에 있던 마찬가지로 어린 고추, 토마토, 로메인 같은 채소들도 궁금하고 걱정된다.
조그마한 우리집 울안을 넘어.. 관심가는 생명들이 이 봄, 더 생겼다. 감사한 일이다. 
어서 날이 좋아져서 텃밭에 나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