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10. 8. 14. 23:12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고 왔다.
8월 11일 저녁8시 공연표가 두 장 생겼다고, 함께 보러갈 수 있겠냐는 선배언니의 문자를 받고
나는 핸드폰을 말없이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마침 예비군 훈련중이라 저녁6시면 집에 도착하는 남편은 문자를 보더니 "안 돼~~~~~~~!"하며 도망쳤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연수는 엄마 젖을 먹어야만 잠이 드는 아이여서 남편은 밤에 혼자 연수를 재워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 말은 내가 연수가 자는 밤에 혼자 외출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26개월동안.
꼭 가야할 문상이 있었을 때  일단 연수를 재워놓고 혹시 자다가 깨면 남편에게 잘 좀 달래서 재워보라고 당부하고 부리나케 다녀온 적이 딱 한번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젖을 끊었고, 연수는 엄마 젖을 먹지 않고도 뒹굴거리다 잠들 수 있게 됐다.
낮잠은 몇번 엄마 없이 아빠와 자본 적이 있지만(주로 차에 태운채로) 그래도 밤잠을 엄마없이 과연 잘 수 있을까.. 
아이를 혼자 재우는 것이 아직 겁나는 남편인지라 저 문자를 보고 그만 질색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성의 힘은 무서운 것이어서....

마누라는 실로 몇년만에 밤외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며
뮤지컬 공연은 넘 비싼 것이라 평소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젖을 끊은 뒤의 연수는 대개 완전히 지칠 때까지 놀다가 잠이 오면 어느 순간 푹 쓰러져 잔다는 사실 등등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한 뒤에 남편은 그만 한숨을 푹 쉬고
기대에 찬 눈을 반짝거리며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나를 향해 "그래.. 재밌게 잘 보고와.."하고 말하고 말았다.



음하하..!!
그리하여 나는 몇년만의 저녁외출을, 역시 몇년만에 보는 뮤지컬 공연을 보러 연신내에서 역삼역까지 먼 길을 나섰다.
연수는 낮부터 엄마가 저녁에 어딜 다녀올지 거듭 얘기한 것을 듣기도 했고, 또 그날따라 낮잠도 안자면서 열심히 논 탓에 
졸린 눈을 하고는 아빠 품에 안겨 잘 다녀오라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고 웃어주었다.
가벼운 흥분속에 집을 나섰다. 한낮에는 그야말로 집중호우가 연신내를 강타해서 길이 온통 물바다였는데 다행히 저녁에는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져있었다.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고 책을 읽으며 목적지로 가는 그 모든 행동이 너무 단출해서 어색했다.
아이가 곁에 없으니 사방은 너무 조용하고 주위를 살필 일도 없다. 
역삼역 엘지아트센터에 도착해서 선배언니를 기다렸다. 
두 아이의 엄마인 선배언니도 이번 외출이 거의 2년만에 해보는 혼자만의 외출이었단다.
언니의 17개월된 둘째아이는 아직 모유를 먹는다. 두아이, 게다가 젖먹이 엄마의 외출준비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지하철도 2년만에 타본 언니는 오랫만에 꺼낸 교통카드가 인식이 안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충전도 안되고 해서 결국 일회용 전철표를 사려고보니 종이로 되어있던 일회용 전철표는 이제 사라지고 보증금을 내고 구입했다가 도착해서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플라스틱 전철표로 바뀌어있더라는 얘길 해주었다. 음... 나도 역시 처음 듣고 본 것인지라 무척 신기했다. ^^;
 









두 아줌마가 우여곡절끝에 무사히 만나 관람하게된 뮤지철 '빌리 엘리어트'는 정말 잘 만들어진 극이었다.
원작인 영화도 참 감동적이었었다.
영화에 영상이 있다면 뮤지컬에는 음악이 있는 것 같다.
영화는 영상을 통해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게 빌리가 사는 마을의 골목과 춤추는 빌리를 보여주었다면
뮤지컬은 음악을 통해 아주 힘있고 열정적으로 빌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건들을 부각시켰다.

뮤지컬의 주된 배경인 '영국 광산노동자들의 파업'이라는 사건은 배우들의 생생한 표정과 대사, 그리고 무엇보다 장엄한 합창을 통해 표현되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깊게, 힘차게 두드렸다.
아직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연대의 마음보다는 내 생활에 끼칠 불편을 걱정하거나 막연한 거부감을 갖는 것이 아직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은데 
영국 역사상 최장 파업으로 기록된 대처 행정부 시절의 광업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영국의 뮤지컬이 부럽기도 했고,  
그것을 원작 그대로 번역해서 2010년 한국의 대표적인 뮤지컬로 공연할수 있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야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무튼 촌스러운 나는 많은 관객을 앞에 둔 이렇게 큰 무대에서 
해고당하지 않고 계속 일하면서 꿈꾸고 마을을 지키고픈 광산노동자들의 투쟁, 노동조합으로 뭉쳐 스스로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실은 어린 소년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픈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이라는 이야기가 왜곡되지 않고 그려진다는 사실을 놀라워하고 어색해하며 지켜보았다.
물론 '빌리 엘리어트'는 광산촌에서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자라면서 제대로된 발레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마음깊이 춤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소년, 그 소년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의 날개를 펴가는 과정이 가장 뼈대가 되는 이야기고, 사람들도 빌리를 통해 꿈, 희망, 성장과 같은 메세지를 제일 많이 찾고 감동을 느낄 것 같지만 말이다. 
  
   
어린 소년 빌리의 발레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는 윌킨슨 부인의 캐릭터는 아무래도 뮤지컬인지라 다소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서 더 유쾌했고 재미있었다. 
빌리... 빌리를 비롯해 정말 멋진 꼬마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나는 솔직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 있다보니 아이들이 힘들 것에 마음이 자꾸 쓰였다.
2시간 30분이나 되는 긴 공연을 주연으로 소화하자면 얼마나 힘들까... 더구나 뮤지컬은 계속해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대사도 해야한다. 열 두서너살쯤 되었을 것 같은 소년소녀들은 거대한 극의 한 구성원으로 정말 손색없이, 멋지게 공연을 했다.
그런데 그 모습에 그만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이렇게 하루 저녁 공연을 하고나면 며칠은 몸이 아프지 않을까... 지켜보기만 하는 나도 큰 일한듯이 몸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기분인데 앞에서 뛰는 사람은 얼마나 더 에너지가 쓰이랴.
자신의 소중한 꿈이 있고, 무엇보다 재능과 열정이 있어 이 무대에 기꺼이 지원해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을 통과한 어엿한 배우들이지만 나는 왠지 이 어린 주연이 안쓰러웠다. 
모르긴 몰라도 서양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보다 덩치도 크고하니 같은 나이라해도 덜 안쓰러웠을 것도 같다. 


이런저런 감상과 여운을 남기며 빌리 엘리어트는 끝났고, 나도 화려한 밤외출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연수는 엄마가 집을 나선지 얼마 안돼 소파에 앉은채로 잠이 들었다 했다.
남편은 연수를 방에 데려다 눕히고 거실에서 조용히 회사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일찍, 더 평화로운 밤이 집에 찾아와 있었다.
오랫만에 먼 길을, 비속에 걸어다녀온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큼은 흐뭇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음악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날 공연은 뮤지철의 공식후원사인 신한카드 고객을 대상으로한 시사회였는데 입장권을 소지한 관객에게는 고맙게도 OST도 한부씩 무료로 나눠주었다. 
덕분에 집에 돌아와서도 때때로 뮤지컬의 감동에 빠져있을 수 있다.
연수는 엄마가 흥얼흥얼 따라부르는 뮤지컬 노래들을 저도 웅얼웅얼 흉내내보곤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영화2010. 6. 27. 23:00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쓴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는 '영화가 죽어가는 시대에 영화를 만든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질문과도 같았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시>의 팜플렛에 저런 내용의 이창동 감독의 말이 적혀있었다.  

<시>를 보며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게되던 질문은 '인간의 마음이 짓밟히는 시대에 인간의 마음을 지키면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감독의 전작인 영화 <밀양>에는 피해자가 용서하기도 전에 너무 쉽게 스스로를 용서해버리는 가해자, 그래서 '용서'를 통해 억지로라도 가해자가 준 고통을 넘어서 보려했던, 극복해보려고 몸부림쳤던 피해자를 마지막까지 조롱하고 처절하게 파괴해버리는 가해자가 등장했었다.
(영화의 원작인 이청준씨의 소설은 1980년 5.18 광주학살의 책임자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청문회에서 모티브를 얻어 씌여졌다고 한다. 피해자가 용서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용서해버리는 가해자, 피해자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도 잘 살고 있는 가해자들이 누구를 빗댄 것인지 알 수 있다.) 

<시>는 고통스러워하는 가해자, 죄의 무게와 그에 대한 대가(벌)를 회피하지 않기위해 애쓰는 가해자의 이야기였다. 
그런 면에서 다행스럽고, <밀양>보다는 덜 분노스럽지만 '과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더 멈칫하게 되는 영화였다. 
그 가해자가 권력자도 아니고 폭력적이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하고 또 약한, 젊은 세대로부터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김당하는 노인, 그것도 병든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 아프고 절박하다.

누구나 자기 삶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하지만
자기 삶을 지키기위해 타인의 존엄, 인간의 마음 같은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되고 버려지는 현실속에서
'시'와 '인간의 마음'같은 것이 설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시>는 그것들을 위해 기꺼이 자리를 마련하는, 자기 삶을 걸고 온 마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직접 가해자의 보호자란 위치때문에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버린 이 여인은
마침 인생의 풍파는 모두 겪고 지나간 것같은, 그래서 이제는 고단하지만 잔잔한 노년의 삶만 남은 것 같던 그 때  
생애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한번 써보려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젊고 쌩쌩한 것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버리는 '양심, 죄의 대가'같은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한다고 믿는 나에게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반가운 것이었다.
치매와 중풍으로 고통받는 노년, 장애여성, 자식을 잃은 엄마, 조손가정, 청소년 범죄,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들, 돈이 인간을 모욕하고 파괴하는 시대.. 이창동 감독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담담하게, 그러나 회피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드러낸다. 

사회 전체가 관심갖지 않는 '속죄, 반성' 같은 것을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고 고민하는 개인.
인간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려고, 타인의 죽음의 무게를 무겁게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 극중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란 주제로 시 강좌 수강생들이 한 명씩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순간 '나는?'하고 고민했는데.. 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려운 질문이었다. 천천히 오래 두고 답을 생각해야할 것 같은...
 
엄마가 된 뒤로는 모든 영화를 엄마의 자리에서 본다.
이 세상속에서 내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나는, 아이는 인간의 마음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 


+


영화가 끝난후 이런저런 생각들로 조금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상영관을 나서는데 
상영관 문앞에서 아빠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수가 엄마 부르는 소리 안들렸어?"
상영관 바로 앞까지 와서 엄마 엄마 부르는 통에 아빠가 혼이 났던 모양이다. 방음이 잘 되어 다행히 안에는 안들렸다. ^^;;

한달에 한번 엄마는 영화를 보고, 아빠와 아이 둘이 놀기로 했다. 
어제가 첫 날이었는데 내가 영화를 보는 동안 연수는 차에서 한시간쯤 자고, 나머지 시간은 아빠와 둘이 극장안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았다고 한다.
다행히 분수도 있고, 에스컬레이터도 있어서 재미있게 구경하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잘 기다리다가 마지막에 좀 엄마를 찾은 모양이다.
모처럼 아빠랑 둘이 시간을 보낸 것이 아빠와 연수 모두에게 좋았던 것 같다.
둘이 부쩍 친해져서 나를 뒤따라오게 하고 둘이서 손을 잡고 앞장서서 다정히 걸었다.(이런 일은 우리집에서 극히 드물다..^^;)

오랫만에 찾아가본 광화문 씨네큐브도 반가웠다. 
내가 본 일요일 한낮시간에는 주연배우인 '윤정희'씨와 비슷한 연배일법한 관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분이 색다르기도 했고 이제는 아기 엄마가 되어 정말 오랫만에 극장나들이를 한 나도 그분들과 크게 다를바 없는, 
보통의 극장가에서는 보기 드문 관객이다 싶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때까지 이 '보기 드문 관객'들은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자막이 다 올라간 뒤에야 불이 켜지는 극장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르신들은 불이 켜진 뒤에도 한참 그대로 극장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주 천천히 일어나셨다.  
씨네큐브에서는 30일까지 이창동, 임상수 감독 특별전을 한다 하니 혹시 <시>를 볼 수있는 곳을 찾고계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Posted by 연신내새댁
영화2009. 6. 17. 21:55


지난 일요일, 동네 영화관에서 봉준호 감독의 새영화 '마더'를 보고 왔습니다.
조조여서 그런지, 18세이상 관람가라는 등급때문인지, 아니면 가볍지않은 영화내용 때문인지 극장은 한산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신분증이 없어 영화를 못보는(본인들 주장에 따르면 스무살인) 아가씨들 여럿이 안타깝게 발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 역시 이 영화관에서 혼자 봤던 '영화는 영화다'(순전히 소지섭에 대한 새댁의 개인적인 애착으로 선택한~^^;) 이후
두 번째 극장 나들이였습니다, 똑순이 낳고 나서 1년 사이에 한. ^^

이번 영화관람은 똑순이가 오전 낮잠에 든뒤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개봉전부터 가끔 신랑과 '마더 개봉하면 나 꼭 보러갈래!', '응, 보고와~'하고 얘기했었지만 날짜를 정하진 않았었어요.
별일없는 일요일, 새벽일찍 일어난 똑순이가 마침 아침 10시쯤 오전낮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음.. 이제 뭐하지... 아, 마더! 이 시간이면 조조도 볼 수 있겠는데?'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시간표를 찾아보니 조조까지 40분이 남아있었습니다. 오호라~! ㅎㅎ

잠이 덜깬 신랑을 컴앞에 데려다놓고, '이걸 보러 다녀오겠소' 얘기하고
'똑순이가 깨면 과일간식을 주고, 같이 잘 놀고 계시오. 여유있으면 점심밥도 좀 해두시구랴~' 당부한뒤 신속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갑작스런 사태 전개에 신랑은 잠시 저항했으나 곧 체념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새댁을 배웅했습니다.

집을 나서 혼자 동네길을 걸어가며 잠시 그 홀가분함이 어색했습니다.
혼자 외출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업거나 안을 아이없이, 밀 유모차없이, 들 가방 하나 없이
홀홀단신 이렇게 길을 걸어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갑자기 자유의 기분이 밀려왔고, 
내 한몸만 움직이면 된다는 사실, 그 가볍고 편안한 느낌이 신기했습니다.
애기엄마가 되고 나니 그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작은 자유들에 더 없이 민감해지고 절실해집니다.

연신내역에 다 갔을때쯤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똑순이가 깨면 엄마를 찾을텐데.. 많이 울면 어쩌나..
엄마가 어딜 다녀올거라고 미리 말을 해줬어야하는데.
그래야 덜 겁내고, 나름대로 불안함을 이기려고 애쓰면서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릴텐데..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다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것 같고, 아빠가 함께 있으니 어떻게든 달래줄거라 생각하며 
불안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극장에 들아가 앉았습니다.


(아래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 사진은 다음 영화소개에서 퍼왔습니다. 다음 영화소개 바로가기


영화는 아주 잘 만들어져서
시종 긴장감과 서글픔을 안고 밀도있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새댁에게 가장 압권이었던 대목은 
김혜자가 검거된 '기도원 종팔이'를 면회하면서 "너 엄마 없어?"라고 물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너는 가족이 없니? 너 엄마 없어?" 거의 울부짖다시피 쏟아내는 이 질문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산지 이제 겨우 1년 남짓된 새댁의 가슴에 아프게 파고 들었습니다. 

이 무섭고 무기력한 사회에서, 보통 사람도 아닌 장애인으로 살면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쓴 너를 위해 싸워줄 단 한사람, 엄마가 없느냐... 는 질문.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늘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힘없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니, 공권력 자신도 무기력하고 무능해서 자신의 책임을 다할수 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봉 감독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길 했습니다.

돈이나, 지식이나, 권력이나.. 아무튼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제 이만큼이나마 갖춰진 사회 시스템이 자신들의 삶의 안전을 지키기위해 활용 가능한 것일 수 있으나
약자들에게는 아직 어림없습니다. 
그래서 약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최소한의 무기(가족)로 싸웁니다.
'괴물'에서 그랬듯이, '마더'에서도.

이 영화에서 최후의 약자(부서지는 존재)는 그 가족조차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고생 문아정(치매 할머니는 소녀를 보호할 수 없는 존재)이 그렇고, 기도원 종팔이가 그렇고, 고물상 할아버지가 그렇습니다. 
슬펐습니다. 
혼자여도 인간답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스스로를 지키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아직 너무 멉니다.
특히 돈이 없고, 장애가 있어도 혼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 사진은 역시 '다음 영화소개'에서 퍼왔습니다.


영화가 끝난후 뭐라 말하기 힘든, 감동인 것 같은데 너무 처연한 그런 감정이 밀려와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아주 대중적이고 탁월한 이야기꾼인 봉준호 감독의 새영화 '마더'가 
그 전작들(살인의 추억, 괴물)처럼 흥행하지 않는 이유는     
청소년 성매매라는 소재의 민감함도 있지만 
그보다 '마더'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선과 악이 분명하면 기꺼이 선의 편에 서면서 관객은 안심하고, 열렬해집니다.
악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내 입장으로 받아들이는게 기껍지는 않지요.
'살인의 추억'에서 관객은 무능하지만 최선을 다했던, '미치도록 잡고싶었다'고 절절하게 말하는 시골형사들의 편에 기꺼이 설 수 있었습니다.
'괴물'에서도 아무 소용없고 도리어 훼방만 놓는 공권력 대신 딸(손녀, 조카)을 찾아나선 그 일가족의 편에 서서 함께 분노하고 싸우면 되었고요. 

그러나 '마더'에서는 그 선이 없습니다.
김혜자와 고물상 할아버지의 첫만남에서 그려지듯
없이 살지만 도덕적인 개인들이, 너무도 비도덕적인 행동들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없게 하는 사회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온 제 마음도 한동안 불편했습니다.
나를 들킨 것같아서..
나도 내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엔 동물적인 본능만 갖고 험한 세상을 헤치고 다닐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들킨 것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선도 악도 아닌, 아니 선과 악을 모두 한몸에 지니고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있는 이 '사회'이기도 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사회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피묻은 손을 치마에 쓱쓱 문질러 닦고,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도록' 해주는 침을 놓고.. 
눈을 감고 춤을 추는 인간의 진한 비애를 가감없이 전하는 영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칸의 기립박수가 이해되었습니다.   




 
 + 사진은 역시 '다음 영화소개'에서 퍼왔습니다. 



영화관람의 후과는 커서, 
똑순이는 엄마가 돌아온 후 엄마 옆에서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은 낮잠도 깊이 들지 못해서, 엄마가 옆에서 사라지면 금세 '으앙~'하고 깼습니다. 
엄마가 영화보는 두시간 동안 아빠랑 잘 놀다가도 
'문득' 엄마가 생각나면 엄마가 있을법한 화장실 문앞으로 기어가서 문을 두드리고 울었다 합니다. 

다행히 어제오늘은 괜찮아져서 낮잠도 잘자고 밤잠도 잘 잡니다.
그래도 저 어린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안이 자리잡았을걸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엄마가 나를 두고 가면 어쩌나 하는.. 
앞으로는 어디 혼자 갈 일이 있으면 꼭 똑순이한테 여러번 얘기하고, 가능하면 미리 둘이 안녕하는 연습도 하고 다녀와야겠습니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영화보는 내내 집에 두고온 한살짜리 아들이 그렇게 마음에 걸렸다지요..
'엄마에 대한 신뢰'는 아이가 세상에 대해 갖는 최초의 신뢰라는데
세상에 아이를 내놓은 어미로서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인간의 마음을 가진, 그 마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키우기위해서는 신뢰가 제일 기본일 것 같습니다.




모처럼 본 영화가 하필 생각할게 많은 영화여서
한 며칠 애기업고 왔다갔다 하며 생각하고 조금 쓰고 또 생각하고 조금 쓰고(그러다 한번 저장이 안되서 날리고ㅠ).. 하다 이제사 글을 마무리합니다.

초하님으로 부터 '책나눔 동시이벤트'하신단 얘기듣고 참 좋은 뜻같아 '저도 꼭 참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만 해놓고 
정작 며칠 끌어온 이 글쓰며 쩔쩔매느라 때를 놓쳤습니다. 책나눔에 대한 고민도 영 부족했구요.
죄송하단 말씀과 함께 다음을 기약해야겠습니다. 혹 제 블로그오신 분들중에 관심있으신 분은 초하님 블로그를 방문해보셔요.
아주 멋진 책나눔 축제가 지금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영화2008. 5. 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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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이 블로그를 통해 추천하는 첫번째 '강추movie!'는 프랑스영화인 '뷰티풀 그린'(1996, 콜린 세로 감독, 99분)입니다.
원제는 포스터에 써있고, 영어 번역된 대로 '아름다운 초록'이란 뜻입니다.
저는 성공회대 도서관에서 비디오로 빌려 보았는데 그 비디오의 제목이 '뷰티풀 그린'이었답니다.
동네 비디오점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학 도서관을 통해서나 어떤 기회로든 꼭 한번 구해 보시길 권합니다.


우주 어딘가에 아주 아름다운 녹색 행성이 있습니다.
직접민주주의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채식만 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땀흘려 수확한 농작물을 회합에 가지고 나와 필요한 다른 곡물이나 야채와 교환합니다.
모두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자신의 필요보다 더 생산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일뿐 입니다.
농사짓는 시간을 제외한 다른 시간은 모두 덤블링같은 체조를 하거나 호수가에서 그네를 타거나
들판을 뛰어다니며 놀고 운동하고 쉬는데 쓰입니다.
아이들과 노인들 모두 건강하고 깔깔 웃고 눈빛은 부드럽고 표정은 따뜻합니다.
'원시인/원시공동체사회'를 연상시키는 이들은 실은 지구인보다 200년쯤 앞선 지능과 초능력의 소유자들입니다.

이 별에서 1년에 한번씩 우주의 다른 별에 교류차 사람을 보냅니다.
그러나 공해가 심한 지구는 제일 지원자가 없는 별입니다.
영화는 스트레스와 환경오염, 착취와 빈곤속에 괴로워하는 지구 사람들에게
그들이 잃어버린 순수와 따뜻한 마음을 되찾아주기 위해
지구에 온 그린행성의 밀라가 겪는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답답하고 힘든 일들 투성이인 요즘-
잠시나마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유쾌한 상상력'을 권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첫번째 강추movie로 선정했답니다.
마음만 먹는다고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이 이 아름다운 녹색 행성처럼 바뀌진 않겠지만
마음먹고 작은 무엇이라도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바로 곁의 이웃과 동료와 함께 시작하지 않는다면
이 무거운 현실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것말고 우리에게 다른 미래는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모니터 작은 화면으로라도 잠시 탈출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어떤 단체(?)의 홈페이지에서는 자세한 영화 소개와 함께 영화 동영상도 띄워 놓았더라구요. 밑에 링크해둡니다. ^^


http://synai.net/zb5/?article_srl=11892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