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mma! 자란다2008. 8. 1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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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새댁이 애기낳고 퇴원해서 집에 왔을때 처음 일주일간 산후조리를 담당해주셨던 친정엄마가
낮잠을 주무시는 모습입니다.
무더운 날, 산모랑 아가가 있으니 창문도 제대로 못열어놓는 더운 집에서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낮에 잠시 아가가 잘때 엄마도 잠이 드셨는데 새댁이 잠든 엄마를 살짝 카메라로 찍어두었습니다.
저 작은 몸으로 우리 형제 셋을 다 낳아 키우시고.. 이제는 손주들 뒷바라지까지 해주시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십니다.

발자크라는 소설가는 '사람의 얼굴은 한폭의 풍경이다. 한 권의 책이다.'라고 말했다는데
얼굴만이 아니라 사람의 몸 전체가 한 폭의 풍경이자 한 권의 책인 것 같습니다.
아니, '글로 쓰면 책 한권도 넘을' 인생 이야기가 한 사람의 몸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새댁이 그걸 실감한건 애기낳고 처음으로 목욕탕에 갔을때입니다.

7월의 후반부에 새댁은 강릉 친정집에 2주쯤 아가와 함께 내려가서 조리를 하고 왔습니다.
산후조리 대부분을 서울집에서 여러 분들의 도움속에 잘 보냈지만, 막상 혼자 갓난아기를 돌보려니 힘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멀긴했지만 아가를 데리고 친정에 잠시 다녀온 것입니다.
그때 엄마에게 아가를 맡기고 출산후 처음으로 새댁 혼자 외출을 할 수 있었는데
아, 몇 주만에 아기랑 떨어져 혼자 길을 나서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구요.
잠시지만 왠지 발길이 안 떨어지기도 하고, 또 혼자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신나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렇게 찾아간 곳이 대중목욕탕입니다.
목욕탕은 임신했을때부터 가지 않았으니 거진 일년만에 가본 것입니다.
새댁은 냉탕에서 시원하게 슬쩍슬쩍 수영하는 재미에 목욕탕을 무척 좋아하는데다
일년 가까이 때를 못밀어 몸이 마구 근질근질하던 차라 무덥던 어느날 아침, 룰룰랄라 신나하며 목욕탕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가고싶던 목욕탕 문앞에 섰는데 선뜻 들어서지 못하겠더라구요.
몸매때문이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자리도 아직 남들이 알아볼 정도로 남아있고,
산후조리6주동안 모유수유 한다고 엄청 먹어 배살이 하나도 안빠져 있었거든요.
임신중에 새댁은 10kg 정도 살이 쪘었는데 아가가 태어나고 나니 딱 아가몸무게인 2.8kg만 빠졌지 뭡니까.
남들은 양수무게 등등해서 한5kg 정도는 빠진다는데-
거기다 저는 너무 밥과 국을 많이 먹어서 시간이 갈수록 되려 살이 쪘답니다ㅜ.ㅜ
부풀었던 배는 꺼지면서 두껍게 늘어졌고, 골반과 허벅지, 팔뚝도 장난아니게 넓어졌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옷을 벗기가 주저되었지만... 어렵게 시간내 찾아온 목욕탕인데 돌아갈 수는 없고..
큰맘먹고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주섬주섬 옷을 벗고.. 아무도 새댁을 주목하지 않았건만 혼자 괜히 쭈뼛거리며 탕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목욕을 시작했는데.. 이것참.
얼마안가 괜히 쭈뼛거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댁 주변을 오고가는 아주머니들의 배는 대부분 새댁보다 더 크고.. 많이 늘어져있었습니다.
 
웃음이 나오려고 하다가 이내 '에고. 나도 이 세상에 사람을 낳고 키운 저 수많은 어머니들중에 한 사람이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몸이 그 사람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 아파서 수술을 받았던 사람, 혹은 지금 어딘가가 불편한 사람,
아기를 낳고 키우다보니 배살은 늘어지고, 팔뚝은 굵어진 많은 엄마들..
대여섯살쯤 되보이는 딸아이를 데리고 온 어떤 젊은 엄마는 무척 많이 말랐더군요.
원래 마른 체형이기도 하겠지만 아이 키우느라 고단한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엄마의 삶이 그 몸매에서 보이는것 같았습니다.
저 사람은 아직 아가씨구나.. 에고, 좋을 때다..
저도 모르게 목욕탕을 오가는 많은 여자들을 한명 한명 쳐다보며
그 사람의 몸이 이야기하는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습니다.
제 시선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어야 할텐데.. 혼자 생각하고 만 것이긴 하지만 잘못된 추측도 있었을텐데.. 이제와 돌아보니 슬쩍 걱정도 됩니다.

아무튼 어딘가 상처나고 이지러진 몸들,
이 상처가 열심히 살아온 삶이 남긴 흔적이라면
그저 깨끗하고 매끈한 몸매보다 덜 아름다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외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더 아름다운 몸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새댁, 씩씩하게 때를 밀고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냉탕에 들어가 슬쩍 수영도 해주었습니다.
아, 똑순이가 얼른 커서 시원한 바다나 풀에 들어가 함께 수영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아가씨때 입던 55사이즈의 옷들은 더이상 입을 수가 없고,
튀어나온 배와 팔뚝은 쉽게 들어가지 않더라도..
더 많은 사랑과 더 깊은 인생의 맛을 알아가며 새댁, 오늘도 힘을 내야겠습니다.

그리고 나날이 몸이 자그맣게 오그라드는 것 같은, 환갑을 맞은 우리 친정엄마가 제 눈에는 정말로 예쁩니다.
나날이 더 예뻐보입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08. 8. 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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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젖을 먹이다 무심코 창밖을 쳐다보니
하늘은 환한데 쏴아하고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시원한 빗줄기를 한참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다 아이를 보니
어느새 아이는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다.
무릎위에서 곤히 자는 아이를 그대로 두고 잠시 더 비구경을 했다.

우산을 받쳐쓴 할머니 한분이 무성한 나무가지들 아래로 골라 걸으며 조심스레 골목길을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자리 한마리가 날아오더니 베란다 창틀 아래에 붙어 비를 피한다.
우리집은 15층인데 이렇게 높은 곳까지 날아오르다니.
라디오에서는 남도민요 '농부가'를 배우는 사람들의 노래소리가 신나게 울려나오고
소나기내리는 환한 하늘에서는 이따금씩 천둥소리도 우르릉 들려왔는데
아기는 아랑곳않고 잘도 잤다.
비냄새가 섞인 시원한 바람이 온 집안을 휘젖고 다녔다.

한참을 내리던 비가 그칠무렵 아기도 잠에서 깨어났다.
칭얼거리는 아기를 토닥이며 무슨 큰 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얘기한다.
"아가야, 네가 자는 동안 소나기가 왔단다. 이번 여름 마지막 소나기일지도 모르겠어.
우르릉 하고 천둥도 많이 쳤단다. 잠자리 한마리가 우리집 베란다창틀 아래에 와서 비를 피하고 갔어.
높이 올라왔는데 무사히 친구들에게 잘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얘기하다 바라보니 아이는 다시 잠이 들어있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세상과 처음 만난 너도, 처음 엄마가 된 나에게도 지난 여름은 참 쉽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래도 어느새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입추 즈음에 와서 돌아보니
무사히 살아낸 우리 모두가 신기하고 대견하구나.
생애 첫 여름을 살아낸 아가야, 이 다음 계절은 가을이란다.
너에게는 모두 처음 만나는 계절들..
작은 네가 자고, 깨고, 자라는 이 날들이 어쩌면 엄마에게는 인생에서 제일 아름다운 날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자라, 아가야.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