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친정에 갔을때
조카와 그림을 그리다
우연히 할머니방에 누워서 드라마보시는 엄마 모습을 그렸었다.
할머니는 오후에는 늘 그러셨듯이 마을회관에 놀러가시고
엄마는 우리 아이들과 조카가 거실에서 북적거리면서 노는걸 봐주시다가
잠깐 할머니 방에서 쉬시는 참이었다.

지금은 할머니가 허리가 많이 아프셔서
오후에 회관에 못가시고
할머니 방에도 매트리스와 작은 소파가 들어와
방 풍경이 바뀌었다.

그림을 그릴때만해도 바로 얼마후에 이렇게 달라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림으로만,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어떤 시절.

할머니가 조금씩이라도 부디 나으셨으면 좋겠다.
바깥 출입을 못하시는 할머니 곁을 지키며 보살펴드리고 있는 엄마도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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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7.09.18 22:24




연수의 마지막 유치가 빠졌다. 

제 몸에 관심이 많은 연수는 윗쪽 어금니가 살짝 흔들릴 때부터 "엄마, 나 이 이빨까지 빠지면 이제 유치 다 빠지는거다~"하고 알려주었다. 

얼마후 갔던 치과 정기검진에서도 선생님께 "인제 연수 유치가 다 빠지는구나. 어른이는 충치 안생기게 양치 정말 잘 해야한다~"고 당부를 듣고 양치질 방법까지 꼼꼼히 교육받고 왔다. 

사진은 이가 빠지기 전날밤, 연수가 "엄마, 인제 진짜 많이 흔들려, 봐봐~~!" 하더니 "엄마, 나 이 이빨 사진으로 찍어줘. 내 마지막 유치잖아" 하고 부탁해서 찍은 것이다. --;;


그 날 밤에 애들 재워주려고 불을 끄고 옆에 앉아있는데 연수가 훌쩍훌쩍 울면서 나를 찾아서 깜짝 놀랐다. 

"엄마, 나 유치 빠지는거 싫어... 어른이 되는거 싫어.. 난 계속 아이로 살고 싶어. 나이 먹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싫고, 죽는 것도 싫어.. 난 계속 아이로 살꺼야.. 엉엉엉..."

갑작스러운 대성통곡에 나도 놀라고, 연호도 놀랐다. 일찍 곯아떨어진 연제만 세상 모르고 자고 있고.  


연수는 한참 울었다. 

이럴땐 뭐라고 말해줘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우선 나온 말은 "엄마는 어른이 돼서 좋은데..." 였다. 

"왜~?" 훌쩍거리면서 연수가 물었다. 

"응.. 어른이 됐으니까 너희들도 낳았잖아. 연수, 연호, 연제.. 엄마는 너희들 낳고 이렇게 같이 있어서 참 좋은걸.." 

"흑흑.. 그래도 난 어른이 되기 싫어.. 난 아이로 살꺼야.. 아이가 좋아"


'나도 그래' 라는 말이 마음 속을 맴돌았는데 미처 못했다. 

엄마도 아이일 때 참 좋았어.. 어른인 지금도 좋지만.. 가끔 다시 아이가 되고 싶기도 해.. 하고 말해줬으면 연수에게 더 위로가 되었으려나.


우는 형아 옆에서 뒹굴뒹굴 거리던 연호는

"그럼 나중에 어른 돼서 죽지않고 계속 살 수 있는 약이 개발되면 그걸 먹으면 되잖아.. 아님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나중에 그런 약 만들어지면 다시 깨워달라고 해서 그 때 먹으면 어때.." 하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진지하게 건넸다. 


냉동인간 이야기는 연수가 매달 받아보는 어린이 과학잡지에 실려서 며칠전 우리집 식탁 위에서 한참 흥미롭게 나눠진 화제였다. 

연호가 그걸 기억했다가 어른이 되면 죽게 되니까 자기는 어른이 되기 싫다고 우는 형아에게 뭔가 과학적 해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말을 꺼낸 것이다. 

평소같으면 뭔가 연호 말에 토를 달거나 그런게 아니라고 응수했을 연수인데

밤이고, 고단하고, 슬프고, 이는 흔들리고, 눈물은 자꾸 나서인지 연수는 아무 대꾸도 않고 

나를 붙잡고 한참 울다가 스르륵 잠들었다. 


잠든 아이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갔다.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사는 나라- 네버랜드에 있는 있는 피터팬을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다들 그런 마음이 조금씩 있나보다.. 어른이 되고싶지 않은 마음. 나도 그랬었나..? 

어른은 멋있고 힘있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고달프고 서러운 존재이기도 하다는걸 아이들은 다 간파하고 있는걸까?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 같은 것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감정인가보다.. 아이들이든, 어른들이든.

언젠가는 이 모든 것과 헤어져야 할 거라는 사실. 

인간의 피해갈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마음.  


연수에게 이 얘기도 해주었다. 

"연수야,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죽음 때문에 인간을 부러워했데.." 

"왜?ㅠㅠ"

"인간은 끝이 있다는걸 알기 때문에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산다고.. 신은 죽지 않는 존재니까 그러지 못하는데. 그래서 인간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데.."

연수는 별로 납득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스로마 신화 만화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신이 더 좋지, 결국은 죽게되는 인간이 뭐가 부러워...ㅠㅠ 열살 아들의 머리속은 이랬을까. 


역시 '엄마도 그래.. 엄마도 죽기 싫어..'하고 솔직하게 말해주느니만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울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학교 다녀와서 오후 간식으로 아껴놓은 치즈케잌을 먹다가 그 유치가 그만 덜컥 빠져버리고 말았다. 


"엄마, 이 빠졌어~!!! 헤헤~ 치즈케익을 먹다가 빠졌네~" 

연수는 웃었다. ^^

나도 웃음이 나왔다. 


자전거 타러 나가서는 신나게 씽씽 가면서 

"아~ 앓던 이가 빠졌다는게 바로 이거네~ 엄청 시원해, 엄마!" 했다. 


"아니, 밤에는 유치 빠지는거 싫다고 그렇게 울더니.." 했더니 

저도 민망한지 헤헤 웃으며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한다. 

^^ 


그래.. 우는 순간도 있고 웃는 순간도 있는 것이지. 

그게 삶이지. 





가을 들어서며 서늘해지는 날씨에 콧물재채기를 하던 연수는 며칠 배앓이도 했다. 

학교에서 양호실에 한시간 누워있다 괜찮아졌다는 날도 있었고, 병원약을 먹고 그럭저럭 나아진 뒤에도 한동안은 배속이 불편해 힘들어했다. 심하게 아픈건 아닌데 자꾸 아팠다 말았다 하니까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루만 쉬면 안되냐고 며칠을 졸랐다. 

그래서 또 아침에 학교가기전에 배가 아프다는 날, 하루를 쉬게 해주었다. 


학교를 쉬기로 하자마자 싹~ 낫는 꾀병성(?)이 짙은 배탈이었지만 엄마랑 둘이, 동생들 없이 오전을 보내게되었다고 좋아하는 연수를 보니 '이런 날도 있어야지..'싶어 웃음이 났다. 

그래서 처음으로 연수와 둘이 나들이를 갔다. 

잠깐 병원이나 다른 볼일보러 연수만 데리고 외출한 적이 한두번 있긴 했지만 

둘이서만 놀러를 간 적은 처음이었다. 


동생들 유치원끝나기 전까지 한나절, 짧은 외출이라 가까운 '강풀만화거리'에 갔다. 

우리집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면 갈 수있는 강동구 성내동, 전철역 '강동역'(4번 출구) 근처에 있다.  

쓸 일이 거의 없는 초등학생용 버스카드를 제 카드지갑에 잘 챙겨넣고, 엄마와 손을 잡고 가는 나들이. 

연수가 즐거워하고 나도 모처럼 큰아들과 오붓이, 내가 좋아하는 만화거리에 다시 가니 즐거웠다. 

강풀 만화의 여러 등장인물들이 그려진 벽화들과 예쁜 조형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는 만화거리는 

작은 골목길들을 굽이굽이 돌아다니며 숨겨진 벽화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풀 만화 <바보>의 주인공인 '승룡이'의 이름을 딴 만화카페 '승룡이네 집'에 들러 뒹굴뒹굴 만화책을 봤다. 

연수는 주호민의 '신과 함께(이승편)'을, 나는 마쓰다 미리의 '치에코씨의 소소한 행복'을 재미있게 보았다. 

차도 마시고, 승룡이네 집에 비치된 '강풀만화거리 벽화 지도' 팜플렛을 들고 본격 벽화 탐방에 나섰는데 

골목골목 찾아다니며 번호가 붙은 벽화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연수에게는 이런 오래된 주택가의 골목길이 낯설 것이다. 

숨어있는 벽화들처럼 숨어있는 예쁜 마음들, 아픈 사연들, 빛나고 어두운, 그러나 모두 소중한 삶의 순간들이 골목을 수놓는다. 

우리의 한 시절도 여기 잠시 깃들다 간다.  





연수는 이제 어린이와 청소년의 딱 중간 즈음에 서 있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아직도 다섯살 막내동생 만큼이나 어리광을 부리고 딱 그 수준에서 같이 싸우고 삐진다. 

또 어느 날은 제가 알게된 크고 작은 과학 상식들과 컴퓨터 게임과 세상의 일들에 대해 엄마에게 열심히 설명해주고, 물어보며 애써 이해해가기도 한다. 

언제 좀 의젓해지나... 한숨나오기도 하다가, 지금 이대로 딱 이 시절이 좋다.. 싶기도 하다.

유치하고 귀여운 열살.

마지막 유치가 빠졌다. 얼마 후엔 어른이가 모두 나겠지. 

자란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들어 간다는 것.. 모두에게 쉽지않은 이 길들을 잘 걸어나가길. 

그 길에 내가 한동안 계속 너의 친구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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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