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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일기2012/01/27 23:37









명절 얼마전부터 좀 아팠다.
그전 주말에 반가운 지인들을 만나느라고 밤늦게까지 조금 무리한 외출을 하기도 했고, 
주중에는 나름대로 명절 준비를 한다고 좀 부산하게 움직였더니 몸에 탈이 난 것이다.

사실 제사며 명절에 대식구 지낼 준비야 지방에 계신 시어머니께서 다 하시고, 나는 아이들데리고 짐꾸려 내려가기만 하니 명절준비라 말하기 부끄럽다.
그저 오랫동안 빨지 못했던 연수 겨울파카와 연호 아기띠, 겨울담요, 포대기 같은 겨울장비들을 욕조에 넣고 발로 좀 밟고 손으로 북북 문질러 찌든 때를 빼는 애벌빨래를 한게 다다. 
밖에 나가면 어떻게든 흙바닥을 찾아 엎드리고마는 연수의 겨울파카는 하필 흰색이라 어찌나 새까맣게 떄가 묻었는지 힘을 잔뜩 줘서 한참 세게 비뼈빨아야했고, 형한테 물려입은 연호 겨울옷과 담요며 수유쿠션커버 같은 것들도 자주 손빨래를 하지 못하는 게으른 내 성정상 모처럼 한번 빨자니 부끄러울 정도로 떄가 많았다.ㅠ
그것들 빨고, 며칠 모은 천기저귀 빨아 삶고 차례로 세탁기에 돌린 다음날 팔이 욱신욱신하더니 그 길로 몸살이 와버렸린 것이다. 에구.. 이 부실한 인사같으니라구..

명절에 꼭 새옷을 입어야만 설빔이랴, 게으른 엄마가 모처럼 손빨래 좀 해서 우리 아이들 깨끗한 옷을 입혀주자..
자주 뵙기 어려운 시부모님 오랫만에 뵈러갈때 아이들 옷도 제일 꺠끗하게 입히고, 아기 물건도 깨끗한 것 보시면 어른들도 흐뭇하시겠지.. 깨끗이 빤 포대기로 어머니가 연호 업고 외갓집 마실가시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연수 데리고 미용실가서 머리까지 예쁘게 깍아 돌아오니 이제는 가방쌀 일만 남았구나.. 싶었다. 
아직도 할 줄 아는게 없어서 명절이 널널하기만한 며느리의 명절 준비는 이렇게 끝났다.









명절 앞두고 시작된 몸살감기는 시댁에 가서 한층 심해졌다. 재채기에 콧물에... 코가 막히니 눈물도 덩달아 자꾸 났다.
안그래도 연호가 엄마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터라 제사 음식 준비도 연호 낮잠잘때 겨우 튀김 조금 거드는 것으로 끝났는데, 대식구 식사준비며 설겆이까지 도맡아 하시는 어머니께 내 감기 걱정까지 하시게 해 참 면목없었다.
어머니는 잠시 앉을 짬도 없이 바쁘게 종종거리시는 중에도 떡국끓일 사골국물 냄비뚜껑위에 배즙팩을 얹어 따뜻하게 데웠다가 먹으라고 챙겨주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연호도, 연수도 엄마 감기 옮지 않고 건강하게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면서 3박4일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 사촌들같은 대가족에 둘러싸여 재미나게 지내다 돌아왔다는 것이다.
나도 오히려 집에 있을때보다 더 편하게 매끼니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맛있는 음식먹고, 연수는 나랑 뚝 떨어져 아빠나 사촌형이랑 노는 동안 연호만 이리저리 안고 업고 놀면 되었기때문에 감기앓는 것이 괴롭긴 하였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앓을 수 있었다. 고모네가 온 뒤로는 시댁에서도 종가집 큰며느리 노릇하느라 쉴틈없이 고단하게 일했을 고모가 친정에 와서도 어린 조카달고있는 내 대신 설겆이며 어머니 도와 이런저런 일들을 다 해주었다.  







+ 연수가 제 이마에 '상주곶감' 라벨을 붙이고는 '엄마, 나 로이같지?'하고 포즈를 취하길래 너무 웃겨서 쓰러질 뻔했다. 연호랑 아빠에게도 붙여주겠다해서 그러라고 하고 '상주곶감 삼부자' 사진을 찍었다. ㅎㅎ 연수는 다같이 '로이놀이'를 해야하는데 깔깔 웃기만 한다고 사진찍을 때는 그만 삐져버렸다. 아무튼 상주곶감은 맛있다. ^^ 많이 사랑해주세요~~~! (저, 곶감하는 분들 많이 압니다. 혹시 명절에 선물로 주문하시고프면 제게 연락하셔도 돼요~. ㅎ)




어머니는 일이 많아 힘들었고, 나는 아파서 힘들었던 설 명절을 쇠고 올라오며 한가지 결심을 했다. 
다음 명절에 내려갈 떄는 꼭 내 손으로 몇가지 음식을 장만해서 내려가야지..
대식구의 식사 챙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제사 음식도 준비하면서 매 끼니 돌아오는 식사 준비를, 그것도 모처럼 모이는 가족들이니 뭐하나라도 맛있는 국이나 반찬거리를 챙겨서 차린다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급한데로 맛있는 식당이라도 가서 한끼 별식으로 해결하고 올 수있으면 좋겠지만 돌도 안된 어린 아기들이 달려있는 집이니 그도 쉽지 않다.

나도 참 철없는 며느리고 엄마다 싶다.
어머님이 하도 편하게 해주시고 솜씨좋은 분이라해도 그렇지 어쩜 그리 마음놓고 그저 얻어먹을 생각만 하고 내려갔는지...
다음에는 꼭 내가 연수삼촌 좋아하는 '돼지고기냉이볶음'도 재워가고, 불고기도 재워가고, 실버스푼 돈까스도 몇팩 싸가서 제사음식하느라 바쁜 날에는 튀김하던 기름에다 돈까스도 얼른 튀겨 식구들 점심밥상으로 차려내고 해야지.
 
아버님은 모처럼 작은댁 삼촌들까지 어린 아기낳아서 다 데리고 제사모시러 온 것이 너무 기쁘셔서 
설날 낮에도 조카들과 약주하시고, 저녁에는 외갓집가서 또 약주하시고 돌아오시는 길에 
'작은 집 아들이 오니 내가 얼매나 기분이 좋은지, 나는 기분 최고다! 기분 최고!!'하는 말씀을 연신 하셨다.

아버님의 그 마음, 오래 뵙지는 못했지만 집안의 사정을 이제 조금은 알게된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 
형제가, 자손이 내집, 작은 방들마다 그득그득하게 모여 다정한 얘기 나누고 아이들 재롱보며 함께 웃는 명절.
그보다 행복한 날이 또 있을까.
아버님 행복해하시던 모습 오래 기억하고 싶고,
그 행복 이해하고 누구보다 공감하시면서도 할 일이 너무 많아, 작은 몸으로 혼자 감당하셨던 고된 일감이 너무 많아
아버님과 같이 웃지 못하시던 어머님 모습도 마음에 아프게 오래 남을 것 같다.

다음 명절엔... 내가 더 잘해야지. 
아프지 말고, 씩씩하게,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보듬어야지..

새해, 모두 복 많이 받으세요.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2/01/21 01:45






뚱구 빵구... 가끔 아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연수 신생아 시절에 산모도우미 해주셨던 이모님이 연수를 안고 '둥구 둥구 둥구 둥구~'하면서 재워주셨는데 그 말이 마음에 들어서 그때부터 별명삼아 '둥구야~'하고 불렀다.
내 오랜 블로그이웃들은 연수가 똑순이였던 시절(^^) 가끔 내가 '김둥구'라고 썼던 것을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둥구 둥구 하다가 '뚱구'가 된 연수에게 동생이 생겨서 그 녀석은 바로 '빵구'가 되었다.
연수가 '엄마 왜 내가 뚱구야?'하고 묻길래 '음... 뚱뚱해서 뚱구야'했더니 '그럼 연호는 왜 빵구야?'하고 물었다.
'연호는... 빵빵해서 빵구야' 하고 둘이 킥킥 웃은 뒤로는 뚱구빵구에 뜻붙이는 놀이를 가끔 한다.

'엄마 내가 왜 둥구야?' '둥글둥글 잘 놀아서 둥구야~' 
'연호가 왜 빵구야?' '빵긋빵긋 잘 웃어서 빵구지~' ^^









둥글둥글 잘 놀고 빵긋빵긋 잘 웃는 두 녀석 덕분에 겨울나기가 고단해도 잘 견디고 산다.
종일 집에서 셋이서만 노는 것이 큰형아에게도 어린 동생에게도 이래저래 심심하고 어려울텐데도 
잘 지내주고, 웃어주고, 또 아픈데없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고맙다.. 뚱구빵구.

아이들은 늘 엄마 마음을 읽고 있는것 같다.
엄마가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들은 금세 그 기색을 알아챈다. 
겨울나기를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이 나때문에 힘들었을까봐 뒤늦게 걱정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들. 
24시간, 그야말로 꿈속에서도 함께 붙어있는 일생에 그리 흔치않은 시기를 살아내고있는 엄마와 아이들이다.
더 고마워하고, 더 아껴주고, 다독여줘야한다.
그래야지.. 내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내게 해주는 것처럼..









연호는 요즘이 아기시절 중에서도 제일로 예쁜 시절이다.
이제 막 앉기 시작한 통통한 젖먹이 아가처럼 예쁜 존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엄마만 보면 웃고, 두 팔을 벌려 나를 안고, 뺨에 침이 가득한 뽀뽀를 해주고, 엄마 젖을 먹느라 온통 엄마 가슴에 얼굴을 부비는 아가. 
너무, 너무 예쁘다. 
8개월 무렵의 아가들이 이렇게 예쁘다는걸 나는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연수 키우던 시절에도 '아 예쁘다'했겠지만 어쩐 일인지 그리 오래전도 아닌데 벌써 까먹고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그때는 워낙 조심스럽고 첫애기 돌보는 일이 낯설고 힘들 때라 이렇게까지 마냥 예쁘게만 바라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8개월 아가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아는 사람은 지금 8개월 아가를 키우고 있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것도 둘째면 더욱..^^









'저, 앉았습니다~ㅎㅎ'









'어우아아!' 
엄마만 보면 세상에서 젤로 기쁘게 웃는 요녀석이 비슷하게 옹알이만 해도 고슴도치 엄마 귀에는 또렷하게 '엄마'하고 부르는 걸로 들린다. ㅎㅎ 
요즘은 보행기를 타고 못가는 데도 없고 못 집는 것도 없고.. 그래서 살짝 말썽꾸러기 시대로 들어서려는 조짐이 보인다.
그래도 아직 나는 못 믿겠다.
이 녀석이 형아같이 말 안듣는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 다섯살이 될 거라고는. ^^;;
한없이 말랑말랑하고 여리기만한 아기 살결이 어느새 뼈가 단단하다못해 살짝만 부딪혀와도 몹시 아픈 다섯살 단단한 사내아이 몸이 될거라고는..ㅜㅜ 









'음.. 엄마가 믿고싶지 않은 거겠지. 나도 형아랑 똑같아질거라구~~!'

그래, 그렇겠지..
그러니 그전에, 요렇게 보드랍고 여린 시절에 더 많이 안아보고 볼 부벼야겠다.
통통한 젖살이 빠지기 전에...^^ 









자, 이제 우리 촐싹까불 오도방정 다섯살 김연수 차례!

요즘 내가 연수한테 하는 양을 가만히 되짚어보다가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다.
'팥쥐엄마'.
어쩌면 옛날이야기 '콩쥐팥쥐'에 나오는 팥쥐엄마는 계모가 아니고, 그냥 둘째를 낳은 친엄마가 아닐까..
둘째를 낳고 보니 큰애가 하는 짓은 모두 야단칠 일 뿐이고, 마침 또 한창 말썽 많이 부릴 나이가 된 큰아이는 미울 때가 너무 많은거다.
말못하고 웃기만 하는 둘째는 당연히 야단칠 일도 없고 그저 예쁘고 애틋하기만 하니 둘째는 볼때마다 껴안고 볼부비고 뽀뽀하고, 첫째는 볼때마다 인상쓰고 한숨쉬고 야단치기 바쁘다.
그러니 첫째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그 다정하던 우리 엄마맞나?'싶을 수밖에... 
나를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하던 우리 엄마가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첫째는 내 엄마는 죽고, 팥쥐엄마가 팥쥐를 데리고 우리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게 된 거.. 이게 혹시 '콩쥐팥쥐이야기'의 진실은 아닐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참을 넋놓고 앉아 할만큼 요즘 내가 연수한테 하는 일이 참 그르다.
더 웃어주고, 어린 동생 샘내서 어리광부리는 것도 넉넉하게 받아주고, 다섯살한테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은 조급하게 짜증내지말고 기다리고.. 그럼 참 좋을텐데 어째 오늘도 그렇게 각박하게 굴었니.
반성한다. 미안하다.. 연수야.










연호 놀으라고 애기적 놀이감을 꺼내놓았더니 당연히 연수가 먼저 차지하고 앉는다.
구슬들을 옮기면서 맨 마지막 구슬은 연호, 그 앞에 것은 연수, 그앞은 엄마, 아빠란다.
그런데 다들 저끝까지 옮겨놓고 연호 구슬만 이쪽에 덩그라니 남겨놓는다. 연호 혼자 떨어졌단다.
'어떡하지'했더니 '연호는 올 수 없어. 그냥 혼자 있어야해' 했다.
한참 그 상태를 즐기더니 나중에는 연수 형아가 가서 데려오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렇게 노는 연수를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짠했다. 











얼마나 속상한게 많겠는가.
이 놀이도 하고싶고, 저 역할도 하고싶고 엄마를 상대로 하루종일 하고싶은 놀이랑 말이 가득가득한데
엄마는 아무리 불러도 미적미적,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제 얘기는 그저 대충 건성으로 '응, 응' 응대만 할뿐 흡족하게 놀아주질 않으니 나라도 너무 속상하고 화나겠다..
 
밤에 잘때 내가 연호 젖을 물리느라고 연수에게 등을 보인채 돌아누워있으면 연수는 뒹굴거리다 내 등 뒤에 와서 내 옷속으로 제 손을 넣어 엄마 등을 만져보기도하고, 때로는 내 등에 자기 등을 가만히 붙여보기도 한다.
잠깐 그러다가 저만치 멀리 굴러가서 혼자 잠이 드는 아이의 기척을 등뒤로 다 느끼고 있지만 연호가 깰까봐 다정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다. 연호가 깊이 잠들고 나서야 연수가 아직 잠이 안들었으면 연수 곁에 가서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팔베게를 해주기도 하지만 엄마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 같은 서운한 마음이 그 정도로 풀릴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우리 연수.. 연호에게 참 잘 해준다.
아주 다정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호에게 심한 장난을 치지 않는 것만 해도 나는 연수가 어린 동생을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고마워하고 있다.
처음 연호태어났을 때 툭툭 때려보던 것도 얼마 안지나 거의 없었졌다.
익숙한 제 공간에 새롭게 출현한 동생의 존재가 낯설고 엄마 품을 뺏긴 것이 속상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어른들이 하도 질색하니 장난끼가 발동해서 굳이 더 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연호가 제 장난감 만지는 것도 때때로 눈감아주고, 가끔은 제 동생이라고 무척 챙겨주기도 한다. 주로 그게 이렇게 제가 썰매에 태워 끌어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 등이지만..^^;;










연호는 태어나서부터 늘 형과 함께 였다.
그게 가끔은 연호에게 미안할 때도 있다. 엄마와 단 둘만 있는 집안의 고요.. 같은 것이 연호에게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네살배기 형은 늘 번쩍번쩍 뛰어다니고 큰 소리를 지르고 연호를 깜짝 놀래킬 때도 많았다.
연호는 그런 형이 무서워 울기도하고, 깊은 잠을 못자 힘들어하기도 했다. 
연수를 키우던 시절의 그 고요한 안정감을 지금은 꿈꾸기 어렵다. 
물론 그래서 심심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연호는 엄마와 단둘이 오랜 시간 평온하게, 차분하게 교감을 나누기가 어려웠다.
이것이 동생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대신 형아가 보여주는 다이나믹한 세계가 늘 어린 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줄 것 같다.
엄마와의 교감도 짧은만큼 더 강렬해지는 것 같다.










연호에게 형아는 엄마 다음으로 제일 가까운 사람이고, 그래서 아마 연호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는 제일로 믿고 의지하는 든든한 존재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 저를 질투해 좀 괴롭힌 적도 있지만 그래도 연호는 늘 형아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동경하고 배우면서 자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연호에게 연수가 있는 것이 고맙고 좋다.
연호가 연수와는 아주 다른 생각을 하고, 아주 다른 삶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연수는 연호를 뒤에서 늘 지켜봐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연호도 힘들때는 언제고 연수 곁에 찾아와 잠시 기대었다 갈 수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 그렇게 지내다오.










연수에게도 연호는 밉기도 하지만 애틋하기도 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 될 것이다.
제가 다섯살이었을 때 이렇게 슬쩍 깔고앉는 것으로 미운 마음을 한 올 풀어내기도 했던..









뚱구 빵구를 키우며 내가 얻는 것이 참 많다.
일상의 매순간에 그렇지는 못하지만 가끔 이렇게 천천히 돌아볼 때
부모님, 내 형제자매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관계들과 삶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게 뭘까..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애를 둘이나 낳고나서야! 아기를 갖기전에 이런 생각을 해야하는거 아닌가..ㅠ)
아이를 낳는다는건.. 앞으로의 내 삶이 늘 그 아이와 함께 펼쳐진다는 것.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의 모든 순간을 이제 시작하는 내 아이와 다시 한번 더 사는 것.. 이번에는 부모의 자리에서.

아이를 낳고나서 '내 삶'은 어디 갔나.. 싶을 때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지만, 내 삶은 어디 간게 아니라 그대로 있다는 것. 내 삶은 계속 진행중이고 이제 늘 거기에 아이가 함께 있다는 것. 그러니 '아이와 상관없는 내 삶'을 꿈꿀 수는 없으며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뚱구 빵구.. 내 사랑. 
내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까.. 새해를 맞으며 잘 생각해봐야겠다.
나는 어떻게 자라날까, 어떻게 살아갈까. 내 아이들과 함께.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12/01/13 00:47














남편이 저녁약속이 있어 늦게 오는 날이면 6시쯤 서둘러 저녁상을 차린다.
이유식먹는 연호까지 셋이 밥상에 둘러앉아 먹다 놀다 먹이다 하다보면 7시.
졸려 하품하는 아이들데리고 얼른 안방에 들어가 연수 그림책 읽어주며 연호 젖을 먹인다.
거의 잠들뻔한 연호를 연수가 한번 건드려 깨워놓고 둘이 헤헤거리며 장난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살짝 한숨..
한시간쯤 둘이 웃고 까불고 엄마를 타고넘고 뒹굴다가 연수 먼저, 그담엔 연호가 다시 한번 젖을 먹고 잠든다.
 
하루가, 짧고도 길었던 겨울 하루가 겨우 끝난 것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좀더 일찍 잠들어 8시에 거실로 나왔다.
한시간쯤 남은 집안일을 해놓고 모처럼 컴퓨터앞에 앉았다.


휴... 이번 겨울은 유독 힘들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지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합니다만 감옥에 사는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하지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하시던 신영복선생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한구절이 자주 생각날 정도였다. 
나는 겨울보다 여름이 지내기 훨씬 나으니 그냥 없이 사는 사람인가보다.. 하면서.

왜 올해 겨울이 유독 힘들게 느껴질까... 생각하다 문득 이것이 두아이와 함께 보내는 첫번째 겨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 힘들지.. 힘들 수밖에 없구나.
세살 터울 나는 두 아이, 그것도 둘째는 이제 막 만7개월을 채운 갓난아이.
아직도 참 여리디 여린 어린 아기를 보듬고 지내는 첫 겨울이니 힘든게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강일동으로 이사와서 처음 지내보는 겨울이기도 했다.
어느정도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새집에서 처음 지내보는 계절, 그 계절의 풍경과 삶은 또 낯설었다.
이 계절까지 살고나야 온전히 1년을 채우게 되고 이 동네의 사시사철을 다 겪어본 것이 되지.. 그래.. 여러모로 어렵고 낯설고 조심스러운 날들이다. 그러니 이만큼 힘든거지.. 조금만 더 힘내서 잘 살아내자.. 











(결론이 너무 일찍 나왔다.. 
기왕 시작헀으니 이 겨울, 우리 네식구가 어찌 버티고 사는지 궁시렁은 다 떨어야하는데. ^_^;)



어린 아기가 있으니 아무래도 겨울 바깥출입은 조심스럽다.
그래도 어지간히 춥지 않으면 두터운 겨울옷입혀 아기띠해서 안고, 두터운 담요로 또 한번 덮고는 하루 한번쯤은 바깥 나들이를 한다. 무엇보다 연수가 놀이터나 공터에 나가 흙도 만지고 자전거도 타고 뛰기도 하면서 놀아야하기 때문이고, 연호가 밖에 나가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낮잠도 달게 자기 위해서다. 무거운 연호 안고 연수랑 축구공도 몇번 차고 날쌘 녀석 뒤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오면 나는 어깨며 허리가 좀 아프지만 그래도 그렇게 바깥 나들이를 하는게 나에게도 기분전환이 되어 좋다.  

몹시 추운 날은 집밖으로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작은 아파트 방안에서 두 아이와 종일 뱅글뱅글 돌 수 밖에 없다.
그런 날이 며칠 계속 될 때면 마당있는 집생각이 간절했다.
아무리 추워도 현관문열고 바로 내려설 수 있는 마당이 있으면 하루에도 몇번씩 그 마당을 들락거리지 않을 수 없을텐데..
나는 마당에서 이런저런 설거지하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무엇이든 가지고놀고 땅도 파고 하면서 계절을, 자연을 고스란히 느끼며 사는 그런게 진짜 사는거지..
12월에 강릉 친정집을 다녀와서 더 마당있는 집이 간절해졌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느날은 너무 그 생각이 절절해서 충남 홍성으로 귀촌해 남편은 지역신문기자로, 아내는 텃밭가꾸고 아이키우며 살고있는 솔이네(블로그 '도시자연육아')에 연호낳고 첨으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언제들어도 씩씩한 솔이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그리운 마음이 왈칵했다. 올해 5월에는 솔이네에도 둘째가 태어난단다. 그전에 꼭 오세요, 지금이 제일 좋아요, 와서 아빠들은 나무도 좀 같이 하고(솔이네는 나무보일러때는 한옥집이다) 우린 맛있는거 같이 해먹고 그래요. 하는데 바로 짐싸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애써야했다.
설 지나면.. 2월이나 3월에는 꼭 가야지.. 

 
겨울해는 짧고 종일 집에 붙어있으니 밥때는 또 어찌나 금새 돌아오는지.
7시에 아침차려 출근하는 아빠와 함께 먹고나면 10시께엔 간식, 1시쯤엔 점심, 낮잠 한숨 자고 4시쯤에 또 간식, 저녁7시엔 퇴근한 아빠와 함께 저녁. 
날로 아는게 많아지는 연수는 먹고싶은 것도 어찌 많은지 '오늘 점심메뉴는 뭐야?' 묻고 '오늘은 오믈렛먹을래~!'하고 선언하질 않나, 저녁엔 삼겹살이 먹고싶다하고 시시떄떄로 옥수수, 구름빵, 곶감, 아이스크림.. 먹고싶은 간식도 가지가지다.
그거 다 대령하면서 연호 이유식도 만들고, 어른들먹을 반찬과 국도 만들고 하자면 부엌에 서있는 시간이 정말 많다. 다행히 요즘은 연호가 보행기를 타서 형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하고, 사과 한쪽 깍아서 손에 쥐어주면 조그만 이 다섯개로 오물오물 갉아먹느라 한참 조용해서 그짬에 부엌일을 부지런히 한다. 그 시간도 지나고 안아달라 칭얼대면 얼른 둘쳐업고 남은 요리도 마저 하고, 때로 설겆이도 하고 그러다보면 짧은 겨울해가 어느새 저물고 있다.

 
겨울이라 남편이 조금 일찍 퇴근하는게 정말 다행이다.
'띠릭~!'하고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연수는 정말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는 듯이 '아빠~~~~~~~~!!!!!'하고 달려간다. 그 반가운 목소리! 아빠가 평생 들어본 것중에 제일로 자기를 반기는 목소리아닐까. ㅎㅎ 
연호도 보행기를 타고 짧은 다리를 놀려 부지런히 달려간다. 아빠가 집에 오면 연호는 이제 아빠가 가는 데로만 졸졸 따라다닌다. ^^;
낮잠을 안잔 날이면 아빠가 도착할때쯤이 연수에게는 무척 졸린 시간이다. 아빠가 저녁약속이 있는 날이면 연수가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푹 자기때문에 좋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빠가 일찍 오는게 훨씬 좋다. 연수가 많이 웃고 행복해하니까 그게 더 좋다. 종일 셋이서만 얼굴보고 지내다 저녁에 다시 보는 아빠 얼굴은 얼마나 새롭고(?) 반가운지 모른다. ㅎㅎ 어떤 날은 아빠 얼굴이 그날 우리 셋이 서로의 얼굴말고 처음 본 '다른 사람'일때도 있으니..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빠여서 반갑고 좋은 것이다. 아빠가 집에 있으면 집안 공기부터가 다르다는 말을 나는 이제 실감한다. 다정하고 든든한 어른의 존재, 내 아빠, 내 남편의 존재. 
신영복 선생님 말씀이 맞다. 겨울은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곁에 있는 사람의 체온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는 계절이다.
 













겨울나기가 참 쉽지 않구나... 싶던 어느 날, 작은 일 두가지를 시작했다. 
새들에게 쌀을 주는 것과 고구마를 물에 담가 키우는 일. 










우리집 앞에는 키 큰 소나무 서너그루와 작은 정자가 있는 아파트 마당이 있다.
이 소나무에 까치들이 자주 와서 운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좋다.
고향집에서 듣던 까치 소리도 생각나고, 고향 동네에 가득한 크고 굵은 소나무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소나무 꼭대기가 마침 4층인 우리집에서 가까워 까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몹시 추워 밖에 나가기 어렵던 어느날, 문득 고향집 마당에 새들 먹으라고 쌀을 뿌려주던 엄마아빠 모습이 생각났다.

 







'연수야, 우리도 외할머니처럼 새들한테 밥주자!'하고는 창문을 열고 베란다밖에 쌀을 조금 뿌려주었다.
저 턱은 아파트 각 동마다 4층에만 있는 가느다란 건축장식물이다. 
처음에는 베란다 난간에 밖으로 매다는 긴 화분을 걸어서 그 안에 쌀을 놓아두려고 했는데 마침 우리층에는 저 시멘트바닥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얼마나 고맙던지! ^^

연수와 나는 생각날때마다 창문밖에 있는 쌀을 확인해보았다. 
며칠동안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눈이 조금 오고난 뒤에 보니 쌀알이 부스러져있길래 눈에 젖어 그런줄 알았다. 
'왜 새들이 안 먹지?'하고 연수는 서운해했다.
'새들이 아직 우리집앞에 쌀이 있는줄 모르나봐... 좀더 지나면 알게 되겠지..'하고 연수를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날, 무심코 안방 베란다를 쳐다보다가 이녀석을 보았다.
안방 베란다밖에 뿌려놓았던 쌀을 콕콕 쪼아먹고 있던 녀석.
내가 쳐다보는걸 알았는지 종종종종 턱을 따라 걸어서 거실쪽으로 갔다.
'연수야, 새가 왔어!' 하고는 연호를 한팔에 안고 한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부지런히 따라갔다.










첫날은 우리를 보자마자 날아갔던 비둘기.
두번째 마주쳤을 때는 우리가 거실에 가면 안방쪽으로, 안방으로 따라가면 또 거실로 이쪽저쪽 왔다갔다하며 우리를 피해다니기는 했지만 날아가지는 않았다. 
셋째날에는 요리 우리를 들여다보며 연수 한번 보고, 나 한번 보고, 쌀 한번 먹고 한다.
늘상 소나무에 와 앉아있는 까치가 쌀을 발견할 줄 알았는데 먹는 눈치 빠른 녀석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새들도 같이 오지않고 늘 요 녀석 혼자 오늘걸 보면 '여기는 내 구역!'하고 선언을 한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요녀석이 쌀을 다 먹고 간 뒤에 내가 '연수야, 비둘기가 쌀을 다 먹고갔네' 했더니 연수 하던 말. 
'친구들도 같이 먹게 좀 남겨놓지.. 다 먹고 갔네.' ^^
그래.. 그러면 좋을껄..

겨울은 생명들에겐 너나없이 힘든 계절이다. 
가지끝 붉은 감들은 까치밥으로 남겨놓으시는 어른들 마음처럼, 양지바른 마당가에 쌀낱 흩어주시던 엄마아부지 마음처럼 연수와 나도 하루에 한번씩 우리 먹을 쌀을 아주 조금 새들과 나누어 먹으며 겨울을 함께 나고 있다.
연수는 '엄마 오늘도 새들한테 밥줘야지. 우리 매일매일 주자'하고 잘 챙기고 있다.
햇볕비치는 창가에서 새를 기다리고, 새가 밥먹고 똥싸는 모습도 지켜보고 그러다 또 동생이랑 풀쩍거리고 놀면서 이 겨울이 가겠지.
고구마싹 자라는 것도 보고, 햇볕 잘드는 곳에 데려다주기도 하면서..

마당이 아쉽고, 나무와 바람과 새가 아쉬운 도시의 유년.
올 겨울은 아쉬운데로 거실 창가에서라도, 밖에 못나가는 날은 집안에서라도 새와 고구마싹을 바라보자.













이번 겨울이 지나고나면 나는 그야말로 천하무적 두애기맘이 될 것 같다.
두 아이와의 첫겨울.. 셋이서만 하루종일 얼굴 맞대고, 세끼 밥 해먹고, 지지고볶고 웃고울면서 살아냈으니...
그리고 맞는 새봄에는 우리, 훨씬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지내든 이 겨울보다야 낫겠지. ^------^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겨울을 잘 견디고난 새싹들처럼 새봄에는 우리가 더 단단해진 몸과 마음으로, 서로 더 깊이 결속되고 서로 더 사랑하면서 세상속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는, 이 아이들보면서 견딜 수밖에 없다.
내게는 햇살인 이 아이들을 보면서.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