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호와 '꿀벌' 책을 보는데 농부가 꿀을 따는 장면이 나왔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그물이 달려있는 큰 모자를 쓴 농부의 그림이 무척 신기했던지 연호가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이건 뭐야? 요정이야?"


^^

나는 웃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연호를 내 어린시절로 데려가서 외할아버지와 외증조할아버지가 벌통을 열어 꿀을 따시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쑥을 태워 나는 연기를 커피주전자처럼 생긴 분무기(그걸 뭐라고 부르지, 아빠?)에 넣고 '푸슉~ 푸슉~!' 흰연기를 나오게 해서 벌을 쫓고

긴 직사각형의 벌집판을 꺼내 뜨거운 물에 적신 긴칼로 밀랍 벌집을 살살 잘라내면 거기 가득 채워져있던 노랗고 진한 꿀! 


나는 연호에게 "아니.. 이건 사람이야.. 벌집에서 꿀을 꺼내가는거야." 하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김연호 하는 말.


"악당이구나!"


ㅎㅎㅎㅎㅎ


죄송해요, 아빠. 졸지에 악당이 되셨지 뭐예요. ^^

저는 그만 웃음이 터져서 그 뒤로 어물어물 잘 설명은 못 해주었답니다. 

벌이 만들어준 고마운 꿀을 사람이 잘 얻어먹는건 사실이니까요..


여름이면 꽃이 많고 조금 덜 더운 삽당령 깊은 산속으로 벌통들을 옮겨주고, 거기서 할아버지할머니가 여름 두달을 벌을 돌보며 지내다 오시고, 겨울에는 또 마당 한쪽 수십개의 벌통들에 따뜻한 천을 둘러주고, 설탕물로 부족한 겨울양식을 공급해주기도 하셨다는 얘기를 연호랑 또 나눌 날이 있을거예요. 

그때는 연호가 뭐라고 할지 벌써 기대됩니다. ^^ 






(양평 질울고래실마을에 놀러갔을 때 큰 움집앞에서 원시인 체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꼬마원시인 연호)



2. 


거실 소파위에 우리집의 좀 큰 인형들을 쭈루룩 올려놓는데 어느새 소파위를 빼곡이 채울만큼 인형이 많아졌다.

오늘 아침, 소파 앞에서 내 무릎을 베고 뒹굴거리던 연호가 인형을 쳐다보더니 문득 말했다. 


"하나가 빠졌네~?"


빈 자리가 하나가 큼지막했다.


"응~ 돌고래가..."

좀전에 보니 놀이방에 가 있더라고 얘기하려는 순간, 연호가 말했다. 


"탈출했어?!!"


ㅎㅎㅎㅎㅎㅎㅎ


평소 우리집 인형들도 자유를 원했던걸까..?

연호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던게 아닐까....


무튼, 네살 연호의 한마디 한마디에 왈칵 웃음이 터지는 요즘이다. 

세 돌이 지난 네 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참 좋다. 

놀자, 놀자, 엄마 같이 놀자~~ 하루종일 조르는 녀석이 귀찮을때도 있고, 심심해보여 측은할 때도 있지만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제대로된 대화로 종알종알 저만의 순수한 세계를 엄마에게 꾸밈없이 보여주고, 

마지막 어린 아기 티를 팍팍 내며 엄마 품에 매달리고 안기는 시절.

요 시절이 참 예쁘다. 

엄마와 함께 온종일 지내는 네살의 하루하루가 가을이 깊어가니 끝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아 문득 아쉽고 아깝고 그렇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