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아침, 서울은 착한 도시같다.
온밤 빨갛게 불밝히던 교회 십자가들도 다 꺼지고
하얀 눈을 덮어쓴 건물들과 골목길은 면사포를 쓴 신부같다.
멀리 눈을 맞고선 북한산이 도시와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는
겨울 아침-
착한 사람들의 눈물이 모여 눈이 되는건 아닐까...
뜬금없는 생각을 문득 하며
정호승 시집을 펼쳤다.
아버지
- 정호승
눈이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가난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
빚잔치를 하고 고향을 떠나
숟가락도 하나 없이 식구들을 데리고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만 쳐다보며
내 집 한칸 없이 살아오신 아버지
눈이 오는 날이면 언제나
가난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