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도 잘 놀지만 엄마랑 같이 노는게 훨씬 더 좋아요'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9.09 엄마, 설겆이하지 마세요. 10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잠들때까지 연수는 엄마랑 놀고 싶다.


엄마, 연수랑 자동차 경주해요~.
엄마, 이 책 읽어주세요~.
엄마, 요게 뭐예요?
엄마, 밖에 나가자!


늘 엄마를 부르고, 엄마의 동참을 바라고, 엄마의 눈길과 목소리를 원한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요청에 바로 응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응, 엄마 잠깐만 밥 안쳐놓고 할께..
응, 엄마 잠깐만 밥 차려놓고 읽자..
응? 뭐? 이리 가까이 가져와볼래..
응, 엄마 잠깐만 설겆이하고 나가자....



이 '잠깐만'이 너무 안타까웠을 연수가 얼마전부터 이렇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엄마, 밥 안치지 마세요. 연수가 안칠께요. 엄마는 이리 와서 자동차 경주해요.
안돼요. 엄마, 밥 차리지 마세요. 연수가 차릴께요. 엄마 책부터 읽어줘요.
엄마가 얼른 이리 와봐요.
싫어요. 엄마, 설겆이하지 마세요. 연수가 할께요. 엄마는 그냥 나가요



진지하다. 정말로 제가 엄마 설겆이를 대신하겠다는 듯이 개수대 옆에와 서서 나를 끌어내고, 제 손을 뻗는다.
아직은 턱없이 짧다. 너는 이제 겨우 개수대에 이마가 닿을까 말까한 세살배기인걸.. 
엄마와 함께 더 많이 놀기위해 연수가 찾아낸 그 어른스러운(?) 대책에 그만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마음이 찡했다.

얼마나 엄마를 원했으면...
엄마가 하고 있는 일들이 사는데 꼭 필요한, 그러니 누군가는 꼭 해야만하는 일들이란 것을 이해하고 나서 제 나름으로 찾은 방법은 엄마는 제가 하라는대로 얼른 와서 장난감 자동차와 그림책과 놀고, 제가 대신 엄마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도 더 놀아주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이 바라봐주지 못하는 것이.. 이 어린 아들이 온통 나를 원하는 이 짧은 시절동안 내가 더 절절하게 그 바램에 응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철부지 초보엄마가 때로는 몸이 피곤하고, 때로는 마음이 고단하여 마음을 다해 놀아주고 보듬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급한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라는 오래된 조언을 떠올리며 
설겆이와 연수와 노는 일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일인지 스스로에게 묻자 가슴이 철렁했다.  
연수가 깨어있는 시간에 집안일을 아예 안할 수야 없겠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지.

한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참 오랜 시간에 걸친, 긴 과정인 것 같다. 이런 생각으로 때로는 턱없이 조급해지려는 내 마음을 다독일 때가 있다. 어떤 아이가 되었으면.. 어떻게 키워야할텐데... 그런데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걱정이 드는 그런 때말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작은 순간순간들이 모여 그 긴 시간을 이룬다.
인디언은 함께 걷다가도 누군가 얘기를 하면 반드시 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을 향해 서서 들었다고 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책에서 그런 내용을 읽으며 경청한다는 것, 귀담아 듣는다는 것이 참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말을 할 때는 꼭 돌아봐야지.. 작은 결심들을 다지는 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