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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7 가을 소풍 6
umma! 자란다2010. 10. 27. 14:27









가을은 왠지 소풍의 계절같다.
단풍이 살짝 든, 낙엽이 제법 떨어진 숲으로 김밥 싸들고 한나절이라도 꼭 다녀와야할 것 같은.
이제 겨우 세살이 된 꼬마 녀석 손일지라도 꼭 잡고 '소풍가자~'하며 도시락가방을 들고 나서야할 것 같은.
그 가방에는 찐 계란과 사이다와 사탕, 과자같은 것들이 꼭 들어있어야 한다. ^^

ㅎㅎ 얼마전에 그런 소풍을 다녀왔다.
그랬더니 정말 큰 가을행사를 하나 잘 치른 것 같고,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한껏 푸근해졌다.

지난 봄쯤부터 내가 당원으로 가입해있는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의 애기 엄마들과 모임을 하고 있다.
그중에는 대학 시절부터 알던 선배언니도 있고, 처녀적에 당에서 만나 알게된 선배 언니도 있다. 
20대 초중반부터 알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들 애기엄마가 되어서 애들 손목 잡고, 도시락 가방 주렁주렁 매달고 나와 만나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아고.. 우리가 이렇게 나이들고 있구나 싶어 살짝 마음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이 모임에서 처음 만난 분들도 있다. 
그렇다해도 같은 애기엄마라는 처지가 서로에게 더 쉽게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것 같다. 
아이키우며 궁금한 것도 묻고, 엄마로 살며 고민되는 것도 얘기하고 서로의 집에 아이들 데리고 놀러가 하루쯤 기대 놀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든든해지고 금새 살가운 사이가 된 것만 같은 사람들.  

한 달에 두 번쯤 만나 지역의 어린이 도서관도 같이 다녀보고, 새로운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대해 의논도 한다.
엄마당원들이 관심있을만한 지역 복지, 육아나 교육문제에 대해 간담회 같은 활동도 기획중이다.
그래도 8월말쯤 가을 일정을 잡을때 제일 먼저, 제일 중요하게 날짜를 잡았던 것은 이 '가을소풍'이었다. ㅎㅎ
"가을엔 소풍을 가야지~~!" 이러면서.
"그 날은 큰 애들도 다 데리고 가자~~!" 하고. ^^












우리집에서 가까운 서오릉 숲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래서 아이들이 놀게 너무 많은 곳이다.
각자 긴 나뭇가지를 하나씩 주워서는 뭘하고 놀까... 궁리중이다.
세 살배기 연수는 형아들이 어떻게 노나 궁금하다.
형들은 첨엔 누구 나뭇가지가 젤 긴가, 굵은가로 기선제압에 나서더니 이내 나뭇가지를 '뱀'이라며, 서로 '나는 독뱀이다!' '나는 왕뱀이다' '나는 코브라~~!'하고 놀았다.
엄마는 뱀이라는 말만 들어도 질색이지만 아직 뱀이 무서운줄 모르는 연수는 형들을 따라다니며 '뱀이다~~'하고 신나게 놀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살, 다섯살 형아 둘은 이 날 유치원을 하루 쉬고 엄마와 동생들과 놀기 위해 소풍을 왔다.
숲에서 하루를 노는 동안 형들과 살짝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형아들이 있어 동생들은 더 신나는 날이었다.
형아들도 좋았으리라. 
비록 어린 동생을 따라다느라 바빠 한 열번쯤 불러야 겨우 한두번 제 곁에 와줄까 말까한 엄마한테 속상하고, 동생이 저보다 더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으면 부러워 뺏어보고 싶지만 그도 뜻대로 잘 안돼 툴툴거리긴 했어도 말이다. 
숲에서 나올때쯤 여섯살 제일 큰 형아가 엄마에게 살짝 말했다. 
"엄마, 유치원 안가고 동생들이랑 노니까 좋다.." 
엄마 마음은 기쁘면서도 조금 걱정이 들기도 한 것 같았다. "그랬어? 그래도 내일은 유치원가야지.. 친구들이 00이 어디갔나..  보고싶어했을텐데..." 
 
둘째를 갖고 나니 새삼 형아들에게 더 눈이 간다.
연수도 형이나 오빠가 될 것이다.
동생과 어떻게 지내게 될까, 잘 놀 수 있을까.. 서로 보듬어주면서 자라야할텐데...
아이들을 믿어봐야겠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충분히 부대끼고 투닥거리다보면 서로 보살피고 아껴주는 날이 오겠지..
이 날 큰 형아처럼 '동생들이랑 노니까 좋다'고 말하는 날이 오겠지.
엄마와 동생과 가족들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 노니까 참 좋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깃드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이 날 소풍은 오후늦게 서오릉에서 제일 가까운 우리집으로 자리를 옮겨 
통닭으로 엄마와 아이들의 이른 저녁까지 해결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끝났다. ㅎㅎ 












숲에 다녀오니 입덧도 한결 덜하고, 마음도 개운했다. 평화도 즐거웠나보다.
날이 너무 추워지기 전에 숲에 더 올 수 있으면 좋을텐데... 생각했지만 소풍 뒤로는 날이 바싹 추워져 집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몸이 더 괴롭고, 연수도 집에서 답답하다.

그래도 씩씩한 연수는 제가 기운없는 엄마 대신 설겆이를 해보겠다고 고무장갑 끼고, 변기의자위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제 간식그릇들을 열심히 헹구기도 한다. 
비록 싱크대 한쪽위를 물로 온통 흥건하게 적셔놓긴 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 예뻐 고슴도치 엄마는 또 사진만 찍고 말았다.
깨질 염려가 없는 그릇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위험한 일이라 '설겆이는 나중에 커서 하라'고 당부했다.
사진을 보니 새삼 흐뭇하다. 요즘 설겆이를 도맡아 하느라 고생많은 신랑에게도 참 고맙다. 아들도 당신 닮아 설겆이를 잘 할 듯하니 나는 참 기쁠 따름이라오..^^;
 










가끔은 이렇게 엄마일을 도우려고 애쓰는 의젓한 순간도 있지만 실은 요즘들어 부쩍 청개구리 노릇에 재미가 들어 뭐든 거꾸로해 엄마 속을 긁어놓는 장난꾸러기 아들이다. 

여전히 안아달라, 업어달라 요구도 많고
점심 먹기 전에는 배고픔과 고단함과 졸음이 한데 몰려오는지 한번은 꼭 울음을 터트리고 떼를 쓴다.
오늘도 결국 엄마의 호통과 한숨도 잔뜩 집어넣고 훌쩍훌쩍 제 눈물 콧물도 듬뿍 섞은 밥을 받아먹고 잠이 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엄마 배속에 이제 겨우 두달된 동생이 하나 생겼을 뿐, 연수는 변함없는 응석쟁이 29개월 어린아이일 뿐이다.
어느새 키는 90cm, 몸무게는 14kg를 훌쩍 넘긴 제법 큰 세살배기이지만 여전히 자다 깼을 때는 한참동안 엄마 품에 안겨 엄마심장소리를 들으며 남은 졸음을 달콤하게 즐기고싶은, 그래서 칭얼칭얼 '안아주세요~' 매달리는 세살배기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면 눈물 자국이 때때한 채로 잠든 연수가 안쓰럽다.
 
그래도 나는 어렵사리 잠든 연수가 우선 고맙고, 다시 울렁울렁 속을 흔들며 제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평화와 같이 앉아서 귤 한개를 그야말로 '평화롭게' 까먹으며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게 다행스럽다.

가을이, 힘들고도 예쁜 가을이 그렇게 가고 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