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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6 할머니 어디에 - 강릉일기(3) 10
umma! 자란다2010. 5. 6. 23:28







강릉에 간지 며칠이 지나자 아침에 눈떠서 연수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정해졌다.
"할머니. 어디에?"

비몽사몽 잠에서 덜깬 엄마가 "으응.. 할머닌 1층에..." 하고 대답하기 무섭게 연수는 방문을 열고 나서며 말한다.
"할머니한테. 가자"
엄마가 좀더 이불속에서 미적대고 있으면 한번 더 단호하게 말한다. 
"1층에 내려 가자. 할머니한테 가자"
"그..으래.. 연수야 엄마랑 같이 내려가자..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미처 뒤따라가기도 전에 연수는 혼자 1층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며 중얼거리고 있다.
"연수 혼자 내려가"










할머니랑 연수랑 운동한다.
강릉에서 돌아온 뒤에도 "연수야 운동할까?"하면 할머니한테 배운대로 팔을 흔들고 허리를 구부린다.









둘이서 꼭 끌어안고 뭘 그리 열심히 보는가 했더니...









오리다.
여기는 우리집에서 걸어서 10분거리에 있는 강릉대학교 교정.
'자하연'이라는 연못에는 제법 큰 오리들과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옛날 우리 엄마는 나를 저렇게 뒤에서 꼭 끌어안고 사진을 찍곤 하셨는데
이제는 연수가 그 품에 안겨있다.
오랫만에 하얗게 화장도 했는데 눈을 그렇게 꼭 감고 있으면 어떡해.. 그래도 예쁘다, 우리 엄마. ^^









할머니 따라 밭에와 강낭콩 심는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을까, 활짝 웃는다. 우리 엄마.

연수는 외갓집에 온지 며칠이 지나자 집안 식구들이 각자 할 일(?)에 대해 나름대로 감을 잡았다.
주로 외할머니와의 문답식 대화를 통해서다. ^^
할머니가 묻고 연수가 대답한다.

"연수야, 할아버지 어디 가셨지?" "논에"
"증조할머니는?" "회~관"
"엄마는?" "이층에. 공부"
"그럼 연수는?" "할머니랑 노~올아" 
"아구 내새끼~ 잘도 알지!" 하고 할머니는 연수를 끌어안아서 볼을 한참 부비고, 또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신다.
    







봄날의 촌은 늘 바빠서 매일매일 새로운 일이 끊이지 않았다.
오늘은 모상자에 흙을 채운다.
연수는 그 곁에서 알짱알짱하면서 흙도 만지고, 제 양동이에 조금 흙을 받아 쏟고 퍼담고 하면서 놀았다.









한창 바쁜때에 집에 와있으면서 일손도 거들지 못하는게 죄송해 밖에 나가볼라치면
연수 잘 놀때 너는 어서 들어가 책보라고 등떠밀어 들여보내시던 부모님. 
엄마아빠는 매일 농사일로 바쁘고 고단하신 와중에도 연수를 데리고 바다에도 다녀오시고, 시장에도 다녀오시고 틈틈히 나에게 맛있는 것을 먹여주려고 데리고 외식을 나가시곤 했다.
자식이 가고싶은 길을 가도록 묵묵히, 헌신적으로 지켜주고 밀어주던 우리 부모님처럼 나도 연수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며칠 뒤에는 흙을 채운 모상자에 볍씨를 뿌리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덮은 후 논에 가서 못자리를 만드셨다.
이 일은 크고 힘든 일이라 이웃의 어른들을 세분이나 모셔와 함께 일했다.
모두다 우리 아버지만큼이나 나이가 많으신 분들.
이제 몇년만 지나면 이 분들도 모두 농사를 그만두실 것이다. 그 뒤에는 누가 봄에 볍씨를 논으로 내갈까.










경운기옆에 서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연수.
시골에서 경운기 소리를 한참 듣고온 연수는 서울에 와서도 '두두두두' 하는 소리가 밖에서 나면
"하부지, 경운기이~!"하고 외치며 베란다 창가로 달려가곤 했다.










까만 숯, 빨간 고추.
엄마가 장을 담그셨다.
"나도 가르쳐줘" 했더니
"김치도 못 담그는게... 어디 장을 넘봐. 김치부터 배워!"하는 야단이 돌아왔다.
에이... 내가 올가을엔 꼭 혼자 김치 한포기 담그고 만다!









이건 강원도식 막장이다.
된장에 보리쌀 넣고, 고추가루 넣고, 소금넣고 만든다. 짭쪼롬한 이 막장맛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언젠간 배우고말테다..^^









할머니가 막장 만드는걸 구경하던 연수..









직접 소금바가지를 들더니 할머니 장 그릇에 붓는다.
그만 됐다고 해도 멈추지 않는다.. 올해 장이 짜면 연수 덕분이다.









"요건 작년에 담근 간장, 옆에건 올해 간장... 할머니 설명하시고 연수 열심히 듣는다. 
사진사의 요청에 부응한 연출 사진이다. ㅎㅎ
 








연수가 엄마아빠 이외의 누군가와 함께 이렇게 오랫동안 많이 놀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전에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만났을때 잠깐씩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슈퍼나 놀이터에 다녀온 적은 있지만 늘 금방 엄마에게 돌아오는, 아주 특별하고 짧은 만남이었을 뿐이다.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연수는 엄마와 떨어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엄마와의 분리를 받아들이고, 그에 적응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외가집에 있는 동안 바로 지척이긴 하지만 '엄마는 이층방에 공부해'라고 말하며 의젓하게 손을 흔들고 할머니에게 놀러가는 연수를 보며 나는 그 성장이 너무도 대견하기도 하고 한켠 허전하기도 했다.
그래봐야 1시간이 채 안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차타고 멀리 바다나 시장에 따라갔을때는 2시간도 훌쩍 넘기기도 하고, 할아버지 차안에서 엄마를 찾지도 않고 할머니품에 안겨서 잠이 든채로 돌아오기도 했다. 
할머니와의 애착이 따뜻하게 형성된 덕분이고, 밖에는 연수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자연이 가까이 있었던 덕분이다.
또 엄마는 늘 이층방에 있으므 보고싶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했으리라. 
두 돌이 가까워오는 연수는 외가집에서 지내는 동안 그렇게 한걸음 또 쑥 컸다.









엄마가 계셔준 덕분이다.
내가 태어나 지금껏 자란 것도, 내 아이가 태어나 이렇게 자란 것도
모두 엄마가 계셔준 덕분이다.

고맙고 또 감사하다.
내일모레는 어버이날이다.
당신 마음에 언제고 시들지않는 꽃이 있어 우리들은 그 꿀을 먹고 그 향기를 마시며 이때껏 자라왔다.
짧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활기차게 걷던 젊은 날의 엄마는 참 예뻤다. 나는 엄마의 그 사진을 참 좋아한다.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엔 주름이 많아졌지만 지금의 엄마도 참 아름답다.
고단하고 수고로운 당신의 생, 그 자체가 아름다운 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당신께 꽃이 되고 싶다.










논둑길을 뛰어 할머니한테 가자.
마음은 다시 고향집이 바라보이는 저 길위에 서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