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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7 엄마와 아들, 밥상머리 마주이야기 12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샀더니 사은품으로 돗자리가 따라왔다.
모든 택배 박스를 저부터 열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열심히 탐색하는 연수가 놓칠리없다.
혼자 끙끙거리고 단추를 열더니 저렇게 안방 가운데에 떡하니 펴놓았다.

"연수 돗자리 폈구나.. 소풍온 것 같네." 했더니 정말로 이제 그 위에서 소풍을 할 참이다.
제 물고기 장난감을 작은 통에 넣어서는 '도시락'이라고 갖고와서 돗자리위에 상을 차린다.
마침 점심에 먹던 주먹밥 남은게 냉장고에 있어서 꺼내가지고 와서 곁에 놓았더니
흐뭇해하며 제 도시락에 물고기 한입 먹고, 주먹밥 한입 먹고 한다.
이 날은 다행히 돗자리 덕분에 평화롭게 저녁을 먹었지만 평소에는 어림없다.

요즘은 연수랑 밥먹는게 전쟁이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처럼 엄마는 부글부글.... 끓고 또 끓는다.
원체 화를 못내는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라 엄마 혼자 속으로 삭힐 떄가 많지만.. 
날도 더운데.. 엄마 혼자 울그락불그락 하자니 이러다 병나지.. 싶어 
오늘은 밥먹으며 있었던 몇가지 일들을 적어보련다. 



1. 연수 고양이 됐네~


연수가 물을 또 쏟았다.
우유든 물이든 쥬스든... 자꾸 쏟는다. 
좀 먹고나면 잔에 남아있는 것을 얼른 쏟아버리고 재미있어한다. 가끔은 쏟아놓고 혀로 핥아먹는다.
그 장난이 하도 심해서 타일러도 보고, 큰 소리도 내보았지만 아직은 계속한다.

오늘은 연수가 식혜를 쏟았다. 

엄마: 연수야, 쏟으면 안돼.. 음료수는 잔에 담아 마시는거야...
연수: (얼른 식탁위에 쏟아진 식혜를 핥아먹으며) 연수 고양이 됐네~!

핥아먹으건 고양이나 강아지가 하는 일이라고, 너는 사람이니 잔으로 마시는 거라고 괜히 말해줬다.ㅜㅜ

연수가 하도 물이나 음료수를 쏟고 뿌리는 장난을 좋아해서 
나는 우리집 바닥이 연수가 맘대로 장난쳐도 되는 흙이나 돌 바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야외 식사'.
날이 좋은 요즘 가끔은 점심에 주먹밥같은걸 싸가지고 아파트 마당에 나가 먹는다.
정자 그늘에 앉아 먹으면 고맙게도 좀더 먹고, 물은 아스팔트 바닥에 뿌리거나 부어본다.

휴... 이렇게 키우는게 맞나.. 고민도 된다. 
어릴때 나는 엄마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는데 그게 참 싫었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는 그렇게 심하게 야단을 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말로 설득하고, 이해시킨다는 것, 자발적으로 행동을 바로잡아가게 한다는게 참 어렵다.
나는 더 기다릴 수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연수에게 잘 하는 일일까.. 그런 고민이 들곤 한다.

  

2. 기다려봐~


그림책없이는 밥상에서 밥을 먹지 않는 연수, 오늘도 어김없이 그림책을 보는데
그만 원두막에서 수박먹는 아이들 그림이 나왔다.

연수: 맛있겠다! 수박~~ 연수도 아삭아삭 수박 먹고 싶어!
엄마: (이제 밥은 안 먹겠다는 얘기구나.. 한숨을 쉬며) 그래, 엄마가 다음주에 한살림에 주문...
연수: (엄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다려봐~~ 한살림 아저씨가 갖다 줄꺼야!

연수가 먹고 싶어 하는 많은 것들을 두고 내가 저 말을 참 많이 했었나보다.

우리집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한살림 아저씨, 고맙습니다. 연수가 늘 무척 기대하면서 기다린답니다.
그런데 우리 연수, 밥 좀 꿀떡꿀떡 잘 먹게 해주는 그런 약은 한살림에 혹시 없을까요? 

엄마가 이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연수는 수박을 생각하며 새로운 장난을 시작하는 중이다.

연수: (반찬들을 집어 바닥에 던지며) 수박이 툭~! 수박이 툭~!!!
엄마: (얼른 그릇을 치우며) 김연수!!!! 누가 음식을 바닥에 던져! 먹는걸로 그런 장난치는거 아냐!!
연수: 딘다루가 '연수야 그러지마~'해..

딘다루는 '아프리카 아프리카'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 소녀의 이름이다.
그 아이는 먹을 것이 부족해 배가 고프다고, 우리가 함부로 음식을 버리면 그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얘기를 하며
딘다루가 '연수야 그러지마' 할거라고 했더니 그 이후론 장난을 쳐놓고는 저 혼자 저 말을 쫑알쫑알거린다.

으이구~~~~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다는 명언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   




3. 인도 사람


다른 아이들은 야채를 안먹고 다른 것만 먹어 편식이 심하다는데
연수는 야채만 먹고 다른 걸 안먹는 편식이 심하다.
오늘 저녁에도 소고기무국에 버섯이랑 당근같은 야채들을 같이 넣어 끓여줬더니 소고기와 밥만 빼고 다 건져 먹었다.
그것도 손으로....

24개월이나 된 녀석이 제 손으로 숟가락질해서 밥을 푹푹 떠먹으면 얼마나 고마우랴..
야채만, 그것도 손으로 건져먹으니 엄마가 분통이 안 터질 수 없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을 걸어보았다.

엄마: 연수야.. 밥도 먹어야지. 그리고 숟가락이나 포크로 먹어야지.
연수: 손으로 먹어!
엄마: 손으로 먹는건 숟가락이나 포크를 못 쓰는 아기들이 하는거야..
       (생각해보니 꼭 그런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꼭 아기들만 그런건 아니지만.. 인도에서는 어른들도 손으로 밥을 먹는데..
연수: ! (계속해서 손으로 집어먹으며 흥미롭다는듯 쳐다본다)
엄마: (호응에 고무되어) 그 나라 사람들은 손이 별로 더럽지않다고 생각하나봐. 뭐 손은 원래 더러운건 아니지...
        (드디어 삼천포로 빠진다) 연수야, 우리 다음에 인도에 여행가보자.
연수: (그) 사람 찾아서!
엄마: 으응? 그래... 가서 손으로 밥먹는 사람이 어디 있나 찾아보자...^^;;
        그 사람이 연수보면 무척 반가워하겠네. 같이 손으로 먹는 사람 만나서. 
연수: (그) 사람이랑 연수랑 같이!!
엄마: 그래... 같이 손으로 밥먹으면 되겠네...--;;;;

대화가 이렇게 바람직하게 마무리되고 있을 즈음... 
갑자기 연수가 포크를 집어들더니 국에 들어있는 야채들을 콕콕 집어먹기 시작했다.   
왠 갑작스런 심경변화??
그 속을 다 짐작할 수야 없지만... 엄마는 하여튼 반가웠다.
인도에 가서 그 사람이랑 같이 밥먹기 전까지는 손은 아껴둘 셈인가? 제발 그래라~~~!










'마주이야기('대화'의 우리말)'는 아이들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말, 너무도 하고싶어서 터져나오는 그 귀한 말들을 귀담아 듣고
아이들 말을 모든 놀이와 생활과 교육의 중심에 놓아주자는 교육방법(교육운동)이다.
박문희 선생님이 쓰신 "마주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만큼 자란다"(보리출판사)는 책을 보고 나서 
나도 연수 말을 더 귀담아 들어줘야겠구나.. 생각하고 이 카테고리를 만들었는데
첫 글이 연수 흉보는 내용이 되어버려서 미안하다.

그래도 이 녀석아.... 엄마 마음도 좀 알아줘라.
하긴 엄마가 너를 더 잘 키워야 네 밥먹는 습관도 좋아지겠지..
엄마가 반성해야할 일인 것 같아 안그래도 요즘 엄마가 고민이 많다.

만 두돌을 채우고 세 살에 접어들며 엄마도, 아이도 새록새록 고민하고 클 일이 많다.
휴... 힘내자...!!!!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