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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4 미사리 봄물빛 8
여행하는 나무들2011. 3. 14. 00:46









3월의 두번째 주말. 날이 참 포근했다.
늦잠없는 연수 덕분에 온가족이 함께 일어나 아침먹고 주말맞이 집청소까지 하고나니 할일이 없다.
봄햇살이 밖으로 나오라고 부르는 것 같다.
어딜 갈까.. 슬슬 걸어 동네 산책을 할까, 아니면 차를 타고 좀 멀리 갈까.

문득 이 집으로 이사올 때 말로만 듣던 '미사리 조정경기장'이 집에서 멀지 않다고 얘기하며 웃었던 생각이 났다. 
손빠른 남편이 슥슥 검색해보더니 "우리집에서 3.5km밖에 안돼! 걸어서도 가겠다~"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하여 연애 시절에도 못가봤던 '미사리'로 세식구가 봄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미사리 봄물빛이 어떨까..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새로 지은 아파트 동네들을 끝으로 서울을 벗어나 하남에 들어서자마자 
보금자리주택을 짓기위한 LH공사의 토지수용에 항의하는 주민대책위원회의 플랭카드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팽창하는 서울의 외곽풍경은 어디나 비슷할지 모른다. 
그린벨트를 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고.. 원주민에 대한 이주.생계대책과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래된 주택가 안에서 진행되는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도 원주민들의 분노와 한숨과 절망이 섞인 플랭카드가 걸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지어진 아파트들중에 서민주거안정대책으로 공급되는 소수의 장기전세아파트 세입자인 나는 이 살풍경의 수혜자인 것이다. 왠지 죄송하고, 마음 불편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플랭카드 행렬이 끝나는 즈음에 미사리가 있었다.
 











미사리조정경기장(공원)에 들어서며 우선 그 큰 규모에 깜짝 놀랐다. 
어디에 차를 세울까.. 경기장을 따라 죽 늘어선 주차장들을 빙 둘러보다가 이 자동차놀이장을 발견하곤, 연수보다 엄마가 먼저 흥분하고 말았다.
"와~! 연수 저거타면 진짜 좋아하겠다! 연수야, 저기서 자동차탈까?"
"좋아~!!!"
연수, 차에서 내리자마자 쌩~ 달려간다.










놀이공원에 별로 가본적이 없는 연수. 진짜 모터달린 차를 운전해보는건 처음이다.
바닥에 있는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가고, 발을 떼면 멈추는 단순한 작동이지만 혼자 잘 탈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핸들이며 의자가 고장난 것도 좀 있어서 여러 대를 바꿔타가며 신중히 골라야했다.










처음에는 좀 긴장하는듯하더니 이내 씽씽 잘도 탔다.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지방에 계신 연수 할아버지할머니께서 우리집에 놀러오시면 여기에 꼭 모시고오자.. 고 아빠랑 둘이 얘기했다. 
연수가 이렇게 자동차타는 모습을 보시면 할아버지할머니는 너무 좋아하실 것이다.
아마 내내 웃으며 연수 곁에서 함께 놀아주시겠지.. 올 봄에 그럴 날이 꼭 있기를.  
  









가다 서다만 반복하는 단순한 자동차운전이 심심해보이기도 해서 처음엔 "30분을 언제 다 채우냐"고 걱정하던 아빠. 
첫운전하는 아들 뒤를 슬슬 따라다니며 다른 차와 부딪히지 않게 봐주다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다 가있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버티는 연수와 실갱이하다 결국 30분을 더 타기로 했다. --;;
작은 자동차 한대를 30분동안 타는 비용이 무려 5천원.
"앞으로 아들 둘을 여기 와서 몇번만 태우면 차 한대 사는 비용이랑 맞먹겠다"며 "연수야, 아빠가 너 차한대 뽑아줄께!"하고 호기롭게 장난감자동차 검색에 나서셨으나... 저렇게 큰 아이차를 싣고오려면 우선 아빠차부터 큰차로 바꿔야한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확인하고 포기하셨다. ㅎㅎ
씽씽카(킥보드)나 네발자전거 정도는 싣고올 수 있을테니 연수가 자동차는 한번만 타고, 그런 것들을 더 좋아해주기를 바랄뿐이다.
  









2km에 달하는 긴 조정경기장 옆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길게 펼쳐져있었다. 
여름이 오면 이 잔디밭이 모두 물가를 찾아나온 가족들의 돗자리로 가득 차겠지...
우리도 이제 집에 누가 놀러오면 차로 10분 거리밖에 안되는 조정경기장으로 꼭 같이 놀러나오자고 얘기했다. 













 
연수는 큰 잔디밭의 규모에 압도된듯 혼자 아주 멀리까지 걸어가보기도 하고,
뒤에 천천히 따라가고 있던 엄마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오기도 했다.










"연수야~!" 부르면 33개월 연수가 뒤돌아보고..










"욱아~!" 부르면 서른세살 욱이가 뒤돌아본다. 7개월 평화도 함께 본다. 











봄날, 뛸 수 있어 행복한 연수.
연수와 아빠와 함께 걸을 수 있어 행복한 엄마.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군것질이다.
불량식품인줄 알면서도 아이손에 아이스크림 콘 하나를 들려주고, 가족이 함께 달달한 웨하스 과자 한봉지를 까먹는다.
몸에 안좋은줄 알지만.. 유원지 벤치에 앉아 입가에 달콤한 크림을 묻혀가며 흘릴세라 조심히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돈 벌어서 뭐에 쓰나.. 이런데 나와 어린 아들에게 아이스크림 사주는데 쓰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내 몸은 사실 리트머스 종이같아서 불량식품을 먹고나면 어김없이 배탈이 난다.
육식을 과하게 해도 탈이 나고, 라면같은 것을 먹으면 얼굴 가득 붉은 여드름이 돋는다. 
처녀시절에 여드름때문에 심하게 고생했던 나는 음식조절을 잘하지 않으면 이내 증상이 심해지는데
아이 낳고, 집밥 해먹으면서 많이 좋아졌다. 가끔 이렇게 바깥음식으로 군것질을 많이 하고나면 몸 여기저기가 불편하다. 
이런 내 몸을 아이들에게 물려줄까 두렵고, 행여 내가 어린 손에 쥐어주는 달달한 군것질거리들이 아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그러니... 유원지 군것질의 낭만과 행복도 정말 최소한으로 자제해야겠지...
    










연수가 졸라서 4인용 가족자전거도 한번 탔다.
혼자 앞자리에 의젓하게 앉아 강도 보고, 하늘도 보면서 연신 쫑알거리던 연수. 많이 컸다.











네 식구의 무게를 온전히 혼자 감당하느라 무척 고생했던 아빠.
네 식구를 태우고 2km에 달하는 조정경기장을 따라 왕복 4km를 달린후.. 저녁에는 완전히 KO하셨다.
김기사, 늘 고마워~^^;;











아빠가 태워주는 자전거에 앉아 편안히 바라보는 강물은 시원하고 맑았다.
경기장에서 1인용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자연의 물길을 끌어다쓴 것 같긴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든 경기장인만큼 직선으로 곧게 뻗은 물길이 좀 경직되어 보였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산자락과 하늘빛을 담은 푸른 강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시원하지만 춥지 않은 바람을 맞으며, 가장자리로 밀려오는 잔잔한 물결을 보고 있자니 봄이구나.. 싶었다.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었다. 잔디밭위로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

따뜻한 봄날, 반가운 누군가와 '번개'라도 해서 함께 오고 싶었는데
워낙 서울의 끝이라 급히 연락해서는 쉽게 달려올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가까이 사는 이도 없어 우리 가족끼리만 단촐하게 다녀왔다.
다음에는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가서 한나절 재미나게 놀고 우리집에 와 밥도 같이 먹고 했음 좋겠다.






++ 덧. 데이트코스로 유명한만큼 미사리에는 멋있는 찻집, 맛있는 밥집도 많은 것 같다.
연수 아부지가 찾아낸 첫번째 맛집은 발리식 해물바베큐집. 매콤하고 맛있었다.









"오오~ 어디 한번 먹어볼까~"
(연출사진이다. 모델 표정 좋고~~ㅎㅎ)










밥을 다 먹고 나오면 마시마로를 구워준다.
마당에 피워진 모닥불앞에 앉아 약간 탄듯하면서도 달달한 마시마로를 먹고있자니 어린 시절에 먹던 '뽑기'(일명 '달고나') 생각이 났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린 아이들을 황홀하게 하는 달달한 맛의 세계.
햇빛, 바람, 마시마로.. 왠지 코끝이 싸아해지는 그리운 느낌, 이런게 봄느낌인가 싶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