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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19 둘째가 오다 26
umma! 자란다2010. 10. 19. 20:47









둘째가 왔다. 
엄마 자궁속에 자리를 잡은지 이제 6주를 조금 넘긴, 아주 아주 작은 녀석이다.
연수낳고 2년동안 먹인 젖을 끊으면서 '이제 둘째 생각을 좀 해야지..'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연수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피임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터울이 조정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은 내심 걱정도 조금(?) 하고, 또 한편으로 방심도 하고 있었다. 
예전에 둘째 아이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글쎄요, 연수도 좀 크고 우리 상황도 이만저만해지면 가지려구요..' 했더니 
'아이(둘째)는 하늘이 주는 거야'하는 대답을 나도 한번, 신랑도 한번 각자의 선배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인상적인 얘기여서 마음에 길게 남았었다.
생명이 오는 때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가능한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명은 뜻대로 되지않는 일이기도 하다.
제 뜻을 가지고 제게 제일 좋은 때를 택해 생명은 온다고 믿는다.
하늘이 준 둘째.. 우리를 찾아와준 둘째. 고맙다.


둘째의 태명은 '평화'라고 지었다.
평화를 갖기 한참전에 내가 꿈을 꾼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강릉 고향집 논둑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논들이 죽 이어진 넓은 들판(平)에 푸른 벼(禾)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다. 
잘 자란 벼이삭들을 손으로 훑어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꿈속인데도 푸른 벼이삭을 손에 쥐어보는 느낌이 생생했다.  
깨고나서도 '이것 참 태몽같은 꿈이네...' 했었다. ^^; 
평화가 생기기 한달도 훨씬 더 전에 꾼 꿈이긴 하지만 임신이란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는 왠지 그 꿈이 태몽이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태명을 '들판의 벼', 평화라고 짓기로 했다. 
내 두번째 아이가 평화롭게 잘 자라주기를, 이 아이의 삶에 평화(平和)가 가득하기를 비는 마음도 담아서. 
함께 살아갈 우리들의 나날에도.


그러나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우선 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참 좋질 않다.
추석 명절쇠고 돌아와서부터 영 으실으실한 것이 몸살기운이 있어서 '명절쇠고온 후라 그런가부다'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낫지 않고 열이 나는듯하면서도 추운 기운이 몇주 동안 계속되었다. 
때마침 생리도 늦어져서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소에도 생리가 불규칙한 편인지라 속단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 테스트로 임신인 것을 확인하고 병원에 다녀온 뒤에는 '아 그래서 그랬구나'하고 반갑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지만 몸은 더 힘들어졌다. 
본격적인 입덧이 시작된 것이다. 

연수를 가졌을 때는 입덧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때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철없는 엄마아빠가 '속도위반'을 한지라 입덧을 할 형편도 아니긴 했다.
다음해쯤 하려던 결혼을 부랴부랴 당겨서 겨울에 하기로 하고 대학원 4학기 마무리와 결혼 준비로 바쁘던 그 가을에
나는 입덧 하나 없이 무던하게 잘 자라주던 똑순이(연수)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똑순이랑 둘만 있는 저녁에는 괜히 서글픈 생각에 곧잘 울기도 했지만 배속의 똑순이에게 늘 '고맙다 고맙다' 되뇌이고 쓸어주며 지냈다. 

당시에 똑순이 태명도 실은 한가지 노래때문에 지은 것이었다. 
처음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 이 아이를 뭐라고 부를까 고민할때 문득 옛날 인기TV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에서 들었던 노래가 생각났다. 
똑순이랑 아버지가 함께 걸어가면서 "똑순이 손잡고 아버지 손잡고~"하며 부르던 노래.
아마 그 아버지역은 탤런트 강남길씨가 맡았던 것같다. 뜬금없이 그 노래가 왜 생각이 났는지... 
아무튼 나는 그 노래 가사를 "똑순이도 괜찮고 엄마도 괜찮다"로 바꿔서 마음속으로 자주 불렀다. 
생각하면 참 불안하고 일견 서글픈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내 안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황홀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연수의 태명은 '똑순이'가 되었던 것이다. 
내 맘속의 이 구구절절하고 어찌보면 별것아닌 배경이야기를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은 "똑똑하라고 똑순이라고 지었냐?"고 물었지만 실상은 그저 '괜찮다'는 위로를, 격려를 스스로와 아이에게 주고싶은 마음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형편이 달라져서인 것인지, 
아니면 한껏 기대에 부푼 연수 아부지의 바램대로 '딸'이어서 그런 것인지
첫째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초반부터 입덧이 무척 심하다. 
뭔가 속에 들어가면 조금 잠잠하다가 살짝만 속이 빈다싶으면 여지없이 울렁거리고 미슥거린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입에 뭔가를 넣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물한잔으로 씻어내려도 보고, 귤 한개 까먹고 견디기도 한다.









속이 불편하고 힘이 없는 엄마가 연수의 놀이상대를 제대로 해 줄수도 없다.
연수는 누워있는 엄마옆에 와서 뒹굴기도 하다가 저 혼자 저쪽에서 놀기도 하다가 
웃음이 부쩍 적어진 엄마때문에 시무룩해하기도 하고, 엄마가 신경이 날카로울 때는 전과 달리 야단도 많이 맞는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엄마 혼자 임신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첫째 아이도 그 모든 과정을 함께 겪는다는 것을.

삼남매중에 막내딸로 자란 나는 언니오빠와는 다르게 아빠엄마에게 어리광을 많이 부리면서 컸다. 
언니오빠는 엄한 아빠엄마를 조금 어려워하는 기색도 있었지만 나는 무서울 때보다는 친근할 때가, 야단맞을 때보다는 어리광부리고 매달릴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원래 언니오빠에게는 처음부터 엄하셨고 나한테는 다르셨나보다, 나를 특히 귀여워하시는가부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아이를 키워보니 알 것 같다. 
첫째에게는 그 이후의 아이들이 알 수 없는 강렬한 유년기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동생들이 생긴 이후에는 제일 많이 야단맞고 엄하게 대해지지만 부모의 마음속에는 제일 큰 미안함과 고마움이 자리잡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형들은 부모와 함께 동생을 키워준 존재라는 것을.
어린 마음으로 많은 변화를 감당하고, 때로 슬퍼하고 때론 힘들어하면서도 끝내는 어린 동생을 향해 웃어주고 함께 놀고 즐거워하면서 동생의 성장을 늘 부모와 함께 지켜본 존재이니 부모님 떠난 뒤에는 형이 부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26개월에 젖을 끊은 뒤에도 한동안은 엄마의 빈 젖을 빨며 잠드는 버릇을 가지고 있던 연수는 
요즘 임신으로 예민해져서 가만 있어도 아픈 엄마 젖꼭지를 빨지 못하게 하자 낮잠도 제대로 못자고 밤에도 종종 잠을 설친다.
오늘도 낮잠잘 시간을 놓치고 하루종일 피곤하게 뛰어놀다가 급기야 저녁에 씻을 때는 코피까지 살짝 흘렸다.
어린 것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나 피곤한 것만 생각하면서 연수에게 너무 소홀했던 것 같아 어찌나 미안하던지..ㅜ   

남편도 나와 같이 임신상태다.
전과 달리 입덧이 심하고, 신경이 예민한 아내때문에 퇴근하면 요리하랴 설겆이하랴 바쁘고
온 집안을 붕붕 뛰어다니는 펄펄한 연수를 전담마크하며 노느라 진땀을 뺀다.
온 식구가 둘째를 같이 맞고 같이 키운다. 
이제 겨우 엄마 배속에 자리를 잡았을 뿐인데도 이 정도니 내년 봄에 태어나고 난 후에는 어느 정도일까.
온 식구가 같이 눈물콧물빼며 키우게 되겠지. 
평화가 웃으면 같이 웃고, 평화가 울면 같이 울고, 평화가 잠들면 같이 잠드는 날들이
처음 똑순이가 우리 곁에 찾아왔을때와 같은 그런 날들이 다시 또 찾아오겠지.      
이제는 기억도 살짝 가물가물한 그 날들은 참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휴... 그 초여름, 장미꽃이 피는 무렵에 삼년만에 또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좀 더 기운을 내야한다. 
밥상머리에서부터 꾸벅꾸벅 졸다가 밥숟갈 놓자마자 쓰러져 잠든 연수를 보며 엄마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늘어져 있으면 안된다...
내게는 똑순이도 있고, 평화도 있다. 이제 보살필 아이가 둘이 된다. 
곁에서 든든히 도와주는 남편도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입덧도, 약해지고 우울해지는 마음도 견뎌내야지. 
몸이 늘어진 와중에, 마음만 시커멓게 태워가던 논문 걱정도 그만 뚝!하고 할수있는만큼 해봐야겠다.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동안은 온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
생명있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산다. 
똑순이와 평화, 내 아이들도 나도 그런 강렬한 삶의 에너지를 지니고 자기 삶을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또 한번 엄마가 되는 과정을 시작하며 생의 의지를 다져본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