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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28 공동체텃밭, 우리의 위로 2


어린 시절을 기억할때 자주 떠오르는 장면중 하나가 밭에서 놀다가 바라본 고향마을 풍경이다.
지금 친정집이 있는 그 자리가 내가 아주 어릴때는 완만하게 경사진 큰 밭이었는데
거기 적갈색 부드러운 흙에 쪼그리고 앉아서 놀다가 주위를 둘러보는게 대여섯살 무렵의 내게는 참 좋았던 모양이다. 
파란 하늘도 좋고, 건너보이는 땀봉의 키큰 소나무, 밭 뒷산의 나무들, 소꿉놀이 단골장소였던 길건너 옥계집 담장 밑에는 황매화 노란 꽃이 울타리처럼 무성했다. 석류나무도 있었고...

강일동으로 이사온 후에는 늘 텃밭농사를 지었다. 이모님이 지으시고 나는 젖먹이들을 안고 따라다니기만 한 것이지만 밭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다 올해는 동네에서 자연놀이 함께 하는 이웃엄마들과 아이들데리고 같이 텃밭농사를 지어보기로했다.

강동구 공동체텃밭은 주민 5인 이상이 모임을 이뤄 신청하면 모임별로 5-6구좌를 분양해주는데, 무료인 대신 수확물의 70%를 기부해야한다. 우리가 기부한 채소는 강동구내 친환경농산물 판매매장인 '싱싱드림'에서 판매되고 그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분들을 돕게 되는 구조. ^^

아이들과 함께 농작물을 키워보는 것만해도 좋은 배움인데 어려운 이웃분들도 도울 수 있으니 정말 좋겠다.. 싶어 이웃엄마들과 마음을 모은 것이었다. 우린 1주일에 한번씩 자연놀이도 해야(?)하는데 텃밭에 가면 흙과 곤충과 풀나무가 천지니 자연놀이 프로그램도 따로 안짜도 되는 그야말로 1석 3조~~!! ㅎㅎㅎ

땅이 좋고 풍경도 좋아 인기가 많은 공동체텃밭인데 어린 애기엄마들이 모여서 해보겠다는 마음이 기특했던지 다행히 선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3월부터 우리의 공동체텃밭 농사가 시작되었다.





8가족이 함께 짓는 6구좌 텃밭은 넓다.
공동으로 짓는 밭 2구좌에는 감자를 심었고, 가족별 밭에는 각자 심고싶은 씨앗들과 모종을 자유롭게 심었다. 땅을 고르고 비료도 뿌리고 심으며 몇주가 흘렀다. 아이들은 잘 놀고, 벌에 쏘이기고 하고, 옆집 텃밭의 새싹 밟아서 혼도 나지만 밭에 가고싶다고 자주 말한다. 밭도 아이들을 기다린다. 야트막한 수영산안에 포근하고 아늑하게 안겨있는 공동체텃밭에 들어서면 땅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만 같다. 
아이들은 새싹도 반가워하지만 보고싶어 하는게 또 있다.

 

바로 이 분들!

흰염소 가족, 검은 염소 가족, 토끼 가족이 텃밭 저 위, 산밑집에 살고 있다. 아이들이 뜯어주는 싱싱한 풀을 "맛있음메~~"하고 오물오물 받아먹고 겅중 뛰어오른다. "킁!" 하고 콧김이라도 내뿜으면 애들은 깜짝 놀랐다가 깔깔깔~!!^^

아이들과 동물들이 참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이번에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과는 또 다르게, 염소와 토끼에게 풀을 주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왜 예전에, 농경과 목축이 중요한 일이던 시절에 아이들에게 소나 양의 풀을 먹이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은 생명을 보살피는 일을 좋아하고, 또 특유의 부드러움과 생명력으로 동물들을 사랑하고 함께 어울린다. 아이들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염소들이 풀을 잘 먹으니까 아이들은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풀을 뜯어먹였다. 염소집 근처에는 마침 부드럽고 여린 풀이 무성해서 아이들 손으로도 죽죽 잘 뜯어 먹일 수 있었다. 넓은 풀밭에 너희들도 나올 수 있다면 좋겠지.. 우리 꼬마들도 한나절 너희들을 데리고 들에 가 풀을 먹이며 놀 수 있으면 좋겠지. 나는 혼자 꿈을 꾸었다.

 

 




엊그제 아빠가 출근한 일요일에도 아이들이 하양이(아기염소)가 보고싶다고해서 밭에 다녀왔다. 공동체 텃밭은 집앞에서 버스 3정거장 거리다. 이제는 연제도 잘 걷고 버스도 잘 타서 유모차없이도 잘 다닌다. 된장국, 김, 김치에 밥만 싸서 밭으로 갔다.

아이들이 하염없이 염소에게 풀을 뜯어먹이는 동안 나는 염소우리 위쪽에 있는 원두막에 앉아 도시양봉팀이 키우는 벌통도 쳐다보다가 하늘도 보다가 했다.
이 곳은 어쩌면 이렇게 내 어린시절의 집과 뒷산 같을까.. 누가 나를 위해 준비해준 위로의 공간에 와있는 것처럼 나는 텃밭 원두막에 앉을 때마다 목이 살짝 메인다.

 




텃논에는 올챙이가 정말 많았다. 요즘 늘 장화를 신고다니는 연수는 올챙이 한마리를 손바닥 물웅덩이에 담아와 내게 보여주고는 쏜살같이 다시 논으로 뛰어갔다. 고향의 아빠도 지금 논물을 채우고 계시겠지... 밝은 햇살 아래서 고향 들판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아이들은 없는 찬에도 밥을 잘 먹고, 나도 성오언니네에서 받아온 고들빼기 김치해서 밥한그릇 잘 먹고 돌아왔다.

 

 

 

 


공동체텃밭에는 다같이 가도 좋고, 우리끼리 가도 좋다. 뒷산 한바퀴 산책해도 좋고, 그냥 가만히 밭에 새싹난 것만 보고와도 좋다. 우리보다 앞서 다녀간 누군가가 6개밭에 모두 물을 주고 갔구나.. 물기가 남은 흙을 보며 가만히 짐작하고 고마워할수있어 좋다.

농사를 잘 지을줄 모르는 내가 그저 밭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자연 가까이 지내고싶어서 덥썩 벌인 일인데 잘될까.. 걱정될 때도 있다. 그래도 몇년 밭에 따라다녔다고 나를 믿는 다른 엄마들도 있는데 잘 안크면 어쩌지? 소복이 난 이런저런 새싹들은 언제, 어떻게 속아줘야하나? 이모님 밭에 따라갈 때 더 단단히 봐둬야지.. 이번에 강릉가면 아빠엄마한테 과외 많이 받고 와야지.. 속으로 다짐하고 있다. ^^





 
 

농사는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어린 아이들 키우는 엄마들의 일상도 힘든 순간이 많다.

그렇지만 밭에 와있을때 우리는 힘든 중에도 잠시 어떤 넉넉함과 고요함, 평화로움을 느낀다. 아주 짧은 찰나일지라도 '아' 하고 잠시 날선 마음을 내려놓고, 어깨에 힘을 빼고, 흙처럼 부드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공동체텃밭에서 위로를 얻는 것이 나만은 아니어서,
함께 하는 엄마들 아이들 모두 땅과 친구와 생명들 안에서 마음 한자락 따뜻하게 적시고 위로받으며 
같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고맙고 좋다.

봄이 깊어가고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