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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9.14 외할머니의 수건
  2. 2009.09.10 친구 오는 날 8
하루2017. 9. 14. 23:11



화장실 수건걸이에 고운 분홍색 수건이 걸려있는데 

'용계2동 노인회 봄놀이 기념'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예전에 외할머니댁에 갔을 때 받아온 새 수건들 중에 하나인 모양이다. 


용계동은 우리 엄마가 결혼한 직후(?) 정도에 외할머니가 삼랑진에서 대구로 이사하시면서부터 살아온 동네다. 

그래서 어린 시절 우리에게 외할머니는 '용계동 외할머니'였고, 외갓집은 항상 동대구역에서 내려서 찾아가는 용계동에 있었다.

용계동 외갓집에는 젊은 막내외삼촌의 책들이 많이 쌓여있는 벽장이 있는 작은 방이 있었고,

꽃이 예쁘게 핀 작은 화단과 수돗가가 있는 마당이 있었고

누군가 한 가족, 혹은 한분이 세들어 살던 작은 툇마루가 딸린 건넌방이 있었다. 


연호가 아주 어릴 때, 외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던 적이 있다. 

내 결혼식때도 외할머니는 연로하셔서 멀리 서울까지 못 오셨었고 

나도 결혼 뒤로 어린 아기들 낳고 키우느라 외갓집까지는 잘 안 가보았어서 

외할머니를 한번 뵙고 싶어서 강릉 엄마와 우리 네 식구가 함께 모처럼 대구 외할머니를 뵈러 갔었다. 


많이 편찮으셨다가 다행히 좀 나아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어릴때 외갓집 갈 때처럼 엄마랑 여행하는 기분으로 찾아간 곳은 

용계동이 아니고 조금 떨어진 옆동네였다. 

외할머니는 이사를 하셨던 것이다. 


오래된 집을 할머니 혼자 돌보며 지내시기에는 힘들겠다고 생각한 외삼촌들이 의논하셔서 

외할머니께 가까운 동네의 아파트 1층집을 구해드린 것이다. 

외할머니도 자식들의 의견을 따르셔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셨는데 

그 얼마 후에 아프셔서 한동안 고생하시다가 다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 즈음에 우리가 찾아간 것이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 외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불고기볶고 시금치나물 무쳐서 차려주신 점심을 맛있게 먹고는

엄마와 외할머니 모시고 시장에 갔었다. 

엄마가 옷을 사드리는 동안 외할머니는 시장 옷집 아주머니에게 "둘째딸이 왔다"고 하셨고, 아주머니는 "딸이 오니 얼굴이 환해졌다"며 같이 반가워해주셨다.

옷도 사고, 할머니 좋아하시는 멍게살도 사고는 할머니 가고싶은 곳- 용계동 집을 보러 갔다. 


한동안 비어있었어도 용계동 외갓집은 깨끗했다. 할머니 사실 때처럼 깔끔했고, 마당의 화초도 싱싱했다. 

용계2동 마을회관에 두유 한박스를 사들고 놀러가니 외할머니의 친구들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둘째 딸이고, 둘째 손녀고, 손주사위고, 증손주들이고.. 소개를 쭉 하고 할머니들이 꺼내다주신 음료수를 한병씩 먹는 동안

외할머니와 친구분들은 요즘 노인정에 누가 오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런두런 얘기들을 나누셨다. 

외할머니는 평소의 밝고 높은 목소리 톤으로 돌아가 계셨다. 


분홍 수건을 보며 그 날의 풍경이 후루룩 떠올랐다. 

할머니는 슬프셨을 것이다. 

삼십여년을 산 정든 집을 떠나는 것이, 정든 마을과 이웃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지하철 두 정거장을 지나 찾아와야하는 거리. 

예전처럼 아침 저녁으로, 아니 거의 하루 종일 드나들며 얼굴보고 이야기나눌 수 있었던 익숙하고 좋은 사람들과 

그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 힘드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셨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작년에 리엔파크를 떠나 미사로 이사오며 슬펐던 것처럼

그리고 이내 몸 어딘가가 아파져 한동안 고전했던 것처럼

할머니도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고 나는 이제야 분홍수건을 보며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5년전에 외할머니를 뵈러 갔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다. 

내 생각처럼 그래서가 아니라 그저 연로하셔서, 혹은 몸 어디가 특별히 약해지셔서 아프셨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사가 할머니께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이셨을지 그때의 나는 가늠해볼 줄 몰랐던 것이다.


그때 외할머니는 새로 이사간 아파트의 경로당에는 아직 잘 안 나간다고 하셨었다. 

낯설고 서먹하셨겠지..

그 뒤로 사촌동생이나 엄마를 통해 드문드문 들은 소식은 외할머니가 건강히 잘 지내신다는 것과 

외할머니의 1층집이 동네 할머니들이 많이 놀러오셔서 같이 밥도 드시고 화투도 치시며 즐겁게 지내시는 사랑방처럼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올여름에 외할머니를 만나고온 엄마는 외할머니도 허리를 많이 아파하신다고 알려주셨다.


다시 외할머니를 뵈러 가고 싶다. 

내년 봄쯤에는 엄마를 모시고 찾아뵈러 가야지.  


자매애.. 라는 것이 여성이 살아가는데 정말로 중요하구나.. 하고 요즘 많이 느낀다. 

혈연으로 이어진 자매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 친구, 아이들 친구 엄마들, 다양한 삶의 공간에서 만나는 여성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서로 도와주고 마음을 나누면서 쌓아가는 자매애.

자기애 만큼이나 어떤 여성들에게는 절실하고 중요한 관계이고 감정인 것 같다.  


내 삶을 오늘도 함께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자매들이 고맙고

1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조금은 아픈 마음 자리를 들여다보며 조용히 손을 얻어 따뜻하게  만져주고픈 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09. 9. 10. 21:45








아침부터 아빠랑 목욕하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은 똑순이,
거실에서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립니다.

오늘은 멀리 사는 친구가 놀러오는 날입니다.
실은 엄마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똑순이랑 생일이 5일 차이나는 딸이 있습니다.
흠흠. 그러니 오늘은 똑순이에게 드문 '여자친구'가 그 엄마를 따라 우리집에 놀러오는 날인 것입니다. 

^-------------^ 








동그랗고 큰 눈, 포동포동한 몸집이 너무 귀여운 친구, 크이짱이 도착했습니다! ^^
우리집에 들어올 때는 예쁜 주황색 원피스를 입고 왔는데 밥먹고 노느라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야 
아줌마가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못 남겨놔서 아쉬워요~
아무래도 아들만 키우다보니 딸키우는 엄마들이 예쁜 원피스 입히고, 예쁜 레이스양말 신겨 데리고나온 모습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아쉬운데로 똑순이를 좀 더 이쁘게 꾸밀까봐요~^^;;

 






'크이짱, 너 이거 볼래?'
아니.. 이 녀석, 어디서 엄마껄 들고와서 여자친구에게 주나 싶어 깜짝 놀랐는데
알고보니 크이짱 엄마 가방에서 꺼낸 것이었습니다. ^^;;








둘이 아주 진지합니다.
똑순이가 화장품(?)을 손에 바르는 시늉을 하자 크이짱이 주의깊게 봐주고 있습니다.
음... 똑순아, 입가에 밥풀 못 떼줘서 미안하다.








둘이 소파에 나란히 앉혀놓고 사진찍기, 겨우 성공~!
이제막 15개월을 지난 두 녀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찌나 열심히 움직이는지
같이 사진찍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 아이들이 많이 커서.. 그때도 둘이 친구라면 이 사진을 보고 많이 웃겠지요? ^^









사실 엄마들끼리도 얼굴은 이 날 처음 본 것이었습니다.
크이짱의 엄마인 YD님과 친구가 된 것은 이 블로그를 통해서였어요.

비슷한 시기에 엄마가 된 두 여자가 블로그와 메일을 통해 아기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결혼과 육아와 삼십대 초반의 삶을 헤쳐가며 느끼는 고민들이 참 많이 닮아서 '내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친구가 됐어요. 
마치 새학년올라가 새친구를 사귄 소녀들처럼 즐거웠습니다. ^^

봄부터 얼굴 한번 보자.. 했던 것이 9월, 초가을의 문턱에서야 겨우 만났어요.
오랜 친구들처럼 허물없이 얘기하고, 밥먹고, 애기들보며 웃다보니 금새 헤어져야 했습니다. 
전세대란이라는 이 가을에 집이사로 고민하는 것까지 어쩜 똑같냐며
대한민국에서 첫아이키우며 정신없이 사는 초보엄마들의 한숨과 행복과 걱정근심을 두서없이 풀어놓던 수다를 접고
커다란 애기 기저귀 가방을 챙겨 친구는 일어섰습니다.

짧은 만남이어서 더 아쉽고,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이 짠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깜빡하는 건망증도 비슷하여
친구가 두고간 아기 보온밥통을 핑계삼아 다시 만날 날을 열심히 잡아볼 것 같습니다.

  
 






'크이짱, 잘 가~ 다음에 또 재밌게 놀자!'

우리들도, 아이들도 서로에게 좋은 친구들로 함께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