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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0 바다와 엄마만의 시간 6
하루2013. 2. 20. 21:27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덕분인지 오늘은 잠이 잘 안와서 사진만 정리해두었던 포스팅을 쓰기로 했다.

주말 아침이면 나는 혼자 집을 나선다.
아이들의 여벌 옷가지가 들어있는 묵직한 비닐봉지대신 내가 읽을 책 한권과 물통, 지갑 정도만 들어있는 단촐한 가방을 메고.
아이들은 운동가는 엄마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이제 아빠와 함께 만화영화도 보고 맛있는 간식들도 먹을 마음에 들떠서 신나게 배웅해준다. 

아파트앞 큰길을 건너 동네로 들어서면 우선 성당에 들린다.
잠시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하기 위해서..









종교는 없지만 나는 많은 신들께, 우리 주위의 자연과 영혼들에게 종종 기도를 한다.
때로 그 기도는 어떤 누구에게 보내는 것도 아닌, 그저 내 마음을 한번 더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흩어진 기운과 정성을 오롯이 모아보려는 노력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누구에게라도, 간절한 소망과 바램을 담은 내 작은 목소리를 우주의 어느 누구라도 좀 들어주었으면... 하면서 마음속으로 빌고, 얘기할 때도 있다. 소녀시절부터 그랬는데, 어른이 되고보니 왜이리 빌 일이 더 많은지... 기도하는 마음이 늘 절박하다.

아기예수를 안고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나는 바다를 건강하게 잘 낳을 수 있기를, 
세 아이들을 내가 잘 돌보고 키울 수 있기를 깊이 머리숙여 매번 빌고 있다.

기도가 일상의 지속적인 한 부분이 되어있지 않은 요즘은, 매일 일어났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이런저런 내 삶의 크고작은 문제들에 마음이 허둥대기 일쑤인 요즘은 
마리아상앞에서 기도하는 짧은 순간에도 기도하고픈 말들이 머리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거나 
기도하던 중에도 불쑥 다른 생각이 치고 들어와 허방짚기 일쑤다.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마음을 차분히 해보려 노력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리아상 앞에 서있는 시간만큼은 바다와 나와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만, 
우리들의 가장 간절하고 절실한 소망 딱 한가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마음모으기.  



기도를 마치고 돌아서서 성당 큰문을 걸어나오면 작은 전통시장인 우리동네 고덕시장. 
손님많고 맛도 좋은 순대국집에서는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식당앞을 청소하고, 때로는 떡집에서 붉은팥시루떡 한판이 금방 나온듯 무럭무럭 흰 김을 올리는 모습을 구경하며 시장길을 걷는 순간이 좋다. 

어느 주말 이른 아침에는 슈퍼에 빈병을 팔러오신 할머니 곁을 지나갔다.
"한 병에 30원 씩이니께.. 990원이네유~?"
다리를 구부리고 할머니 곁에 쭈그려 앉아 병을 세던 주인 아저씨의 구수한 사투리.
추운 아침, 할머니의 손에 어렵게 쥐어진 천원의 무게를 생각하며 내가 무심코 지갑을 열어 쓰곤하는 천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을 지나면 전철역이 있다. 
혼자서 전철역 계단을 천천히, 힘들지 않게 걸어내려가는 기분이 묘하다. 
손잡은 아이없이, 밀어야할 유모차없이, 아기띠에 안은 아기도 없이... 오로지 나 혼자 몸만 타박타박 걸어서 내려가는 길.
그 느낌이 시원하고 편안하면서도 어떨 때는 서운하고 썰렁하기도 하다. 
지난 5년동안 아이들과 거의 떨어져본 적이 없던 나에게 요즘의 이 시간은 언젠가 아이들이 다 커서 내 곁을 떠난 뒤에 내가 보내게될 시간을 미리 잠깐 맛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곧 시작될 세 아이와 함께 하는 고단하고 어려운 날들 전에 잠시 주어진 달콤한 마지막 휴식 같기도 하다. 

쉴새없이 이어지는 어린 것들의 이야기와 질문에 응대할 일없이 혼자 천천히 둘러보는 전철역과 전철안 풍경은 몇번을 봐도 아직 새롭다.
전철을 기다리면서 스크린 도어에 붙어있는 시들을 천천히 하나씩 다 읽어본 날도 있는데 
그중 청담역 7호선 플랫폼에 있는 시들이 내게는 제일 좋았다.  

저 '구름 한조각 손에 쥐고 혼자 달렸다'는 시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아마도 바쁘고 가난했을, 혹은 세상을 먼저 떠나셨는지도 모르는 아빠를 그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해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해도 
아이들이 어릴때 우리가, 내가 부모로서 해주어야할 단 한가지는
아이들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 어린 날의 곁을 지켜주는 것.. 그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 옆에는 내가 그전부터 좋아하던 고두현 시인의 '남으로 띄우는 편지'도 있어 얼마나 반갑던지..
봄이 오고있으니까... 내 블로그를 봐주시는 이웃들께 그 시도 함께 선물하고 싶다. 



남으로 띄우는 편지 

고두현


봄볕 푸르거니
겨우내 엎드렸던 볏짚
풀어놓고 언 잠 자던 지붕 밑
손 따숩게 들춰보아라
거기 꽃 소식 벌써 듣는데
아직 설레는 가슴 남았거든
이 바람 끝으로
옷섶 한 켠 열어두는 것
잊지 않으마.
내 살아 잃어버린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빛나는 너.











지하철을 타고 내가 찾아가는 곳은 바다를 출산하려고하는 병원이다.
주말마다 한 시간씩 요가교실이 열리는데 막달인 지금, 무겁고 여기저기 쑤시는 몸을 좀 풀어주기도 하고 출산에 도움이 되는 자세와 호흡을 연습하기도 할겸 2월들어 요가교실에 등록했다.

설연휴도 있었고해서 지금까지 4번을 다녀왔다. 
요가를 처음 한 날.. 나는 울 뻔 했다.
힘들어서가 아니고 행복해서.
온전히 나와 바다에게만 집중해서 조용히 움직여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고요한 명상음악을 들으면서 마지막에 엄마 자궁속에 있는 아가처럼 포근히 나를 감싸는 해먹속에 편히 누워 쉴때 
아직 처녀인 요가 선생님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말 애쓰고 있다고, 지금까지 정말 잘 해왔다고 스스로를 많이 칭찬해주세요, 다독여주세요'하고 얘기하는데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두 아이의 엄마로 늘 종종거리며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실수투성이에 대책없이 꿈과 낭만과 욕심만 많은 내 삶을
그래도 정말 잘 해왔다고, 애썼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안에서부터 다독여주고 인정해주라는 얘기에 그만 날서있던 마음이 뭉근하게 풀리면서 울고싶은 기분이 되어 버렸다. 
셋째 출산을 앞두고 긴장도 되고, 걱정도 많아 겉으론 웃으면서도 마음 버거운 순간이 많았는데 
막달에 이 병원에서 요가도 하고, 의사선생님의 조언대로 식단조절도 하고, '히프노버딩'이라는 자연출산 책도 읽고 하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가벼워지고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바다도 건강하게 잘 낳을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고, 혹시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이 한달 동안 내가 느낄 수 있었던 평화로움과 행복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을 받았다는 생각이다. 












엄마가 집을 나서서 걷고 전철을 타고 1시간 요가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세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아이들은 아빠와 집에서 이렇게 보내는 모양이다. ^^
아빠가 타준 핫쵸코를 다정하게 먹는 이런 평화로운 순간도 있지만 좀 눕고싶은 아빠를 어떻게든 일으켜세워 그림책을 읽어달라, 이거하자 저거하자 조르며 지지고볶는(?) 풍경을 안봐도 다 알 수 있다.
그래서 참 고맙다. 만삭의 아내에게 아내만의 시간을 선물해주는 남편의 마음이, 언제나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이 사람의 헌신이 지금 정말 고맙다. 











아이들이 잠든 밤, 남편이 일찍 퇴근한 날에는 아파트옆 냇가길을 걷기도 한다.
이번 주는 날도 춥고, 또 아빠가 일이 많아 늦게 온 날이 많아서 별로 못 걸었지만 지난 주에는 꽤 여러번 걸었다. 
걸을 수 있어 참 좋다. 
걸으면서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고, 막히고 꼬여있던 생각들이 어느새 길처럼, 길을 따라 스르륵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혼자서, 오랫동안 걸을 수 있어 좋다.
연수 유치원때문에 한동안 고민이 많았는데 걷고 또 걷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수는 지금까지 엄마 얘기를 참 잘 들어주었어.. 이제는 내가 연수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들어줄 차례야..'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던지...
연수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실 그순간 내가 생각하고 알고있었던 것과 어제오늘 연수와 얘기하며 들은 것이 또 다르지만 큰 방향은 찾은 것 같다. 연수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자는 것으로..
여섯살이 될 때까지 연수는 정말 잘 커주었다. 건강했고, 엄마를 참 좋아해주었고, 어린 동생이 태어나 세살이 되도록 자라는 모습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곁에서 지켜보면서 때로 투닥거려도 동생을 참 예뻐하고 좋아하며 지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또 고맙다. 이제는 내가 연수가 원하는 것들을, 하고싶어하는 일들을 알아주고 힘닿는 데까지 도와줘야할 때.
둘째 동생을 맞는 연수 마음도, 처음 형이 되는 연호 마음도 엄마가 깊이 안아주고 보듬어줘야할 때..
걸으며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마음의 힘을 키우며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바다를 낳을 때 병원의 우리 방문에 붙일 문패를 만들었다. 

고향바다인 경포바다와 지난 가을 우리가 무척 사랑했던 제주 월정리 바다를 생각하며 바다를 그렸다.

세 아이와 남편과 함께 건강하게 그 바다를 다시 찾아가는 풍경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행복했다.


바다가 건강하고,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건강하고

연수와 연호 두 형아들이 건강하고, 우리들을 언제나 든든하게 감싸주는 남편이 건강하게 우리 곁에 함께 있다면

그 어떤 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다 괜찮다... 다 천천히 풀어갈 수 있는 일들이고, 삶이다.

요즘은 이 생각만 하며 지내려고 한다.

다 잘 될거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있다면.


바다 만날 날이 멀지 않았다. 

바다야, 그동안 엄마 배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정말 고마워.

네가 세상에 나오고 싶은 시간에, 네 힘으로.. 아름다운 세상과 만나자꾸나.

우리 모두 너를 사랑하고,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고맙다.. 고맙다.. 우리 아기. 엄마도 힘낼께, 너의 길을 아름답게 지켜줄 수 있도록. 함께 할 수 있도록.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