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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7 첫 눈 오는 밤 10
신혼일기2008. 12. 7. 20:54






눈이 많이 온다고 신랑이 회사에서 전화를 했을때
새댁은 막 똑순이에게 젖을 주려던 참이었습니다.

아침에 아주 작은 눈발 두어개 날리는걸보고도
"눈이다~ 눈이다~~!!" 하며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뛰는 새댁을 보고 '네가 아기냐'고 놀리더니..
눈다운 눈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싶었겠지요.

"눈이 엄청 많이 와~"라는 신랑의 말에 가슴이 쿵쿵 뛰었으나
아쉽게도 똑순이가 넘 졸려하는지라 베란다에 나가 보지 못하고 
그대로 소파에 앉아 젖을 물렸습니다. 
김이 서려 뿌연 베란다 창문으로 하늘하늘 떨어지는 눈송이들의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첫눈이 오는구나..
(혹시 첫눈이 아닌가요? 새댁은 올 겨울들어 첨으로 눈다운 눈을 보는 것이라 그냥 '첫눈'이라 부르겠습니다. ^^) 
올해는 똑순이에게 젖을 주며 첫눈을 보네...
내일 아침엔 눈덮힌 마을을 보겠네... 예쁘겠다..'

여기까지는 '첫눈오는 날'다운 참으로 바람직한 감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드는 생각들.

'길 미끄럽겠다...
신랑 집에 올때 조심해야겠네...
이제 차가 생기면 눈오는 날은 걱정이 더 많아지겠구나...
그나저나 차는 어떻게 사지...?
할부를 해야하나.. 저축통장을 깨는게 낫나.....'
ㅜㅜ


'시인이여 눈위에 기침을 하자'던 김수영 시인의 결기도
'눈이 오는 날/ 가난하였으므로 아버지는 행복하였다'던 정호승 시인의 애잔함을 떠올리는 것도 
생활의 크고작은 고민들 뒤로 훌쩍 밀려나 버렸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하였습니다. 

"야야~~ 밖에 봐라~~ 첫눈온다~~!!" 
신촌 껍데기집 골목에서 눈오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밤,
알싸한 그 밤의 공기가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에 느껴질 듯 한데-
어느새 이렇게 멀리 온 걸까요..

눈오는 밤엔 모름지기 허물없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둘러앉아
김이 허옇게 오르는 뜨끈한 오뎅탕을 앞에 두고 
다정히 술잔을 기울여야하는 법인데...
새댁, 다시 그 어둑한 주점 탁자에 앉을 수 있을까요?
똑순이가 크면..? ^^

오늘같은 밤은
주말 저녁에도 출근해 일하고 있는 신랑이 동료들과 따뜻한 오뎅탕에 술한잔 기울이고 와도 봐줘야겠다..
그게 살림과 육아에 묻혀 결기도, 애잔함도 잊어가고 있는듯한 요즘의 새댁이
마지막으로 남겨두어야할 낭만이 아닐까.. 문득 생각했네요.

엄마의 첫눈 타령엔 아랑곳않고
천사같은 아이는 코 잠들었습니다.
눈오는 밤이 깊어갑니다.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창밖으로 소리없이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는 고즈넉한 이 맛도 참 좋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