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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1 천수관음보살 4
umma! 자란다2011. 4. 1. 23:54



며칠전, 연수와 아파트 놀이터로 걸어가는데 우리가 가는 놀이터쪽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남의 집 아이 우는 소리가 여사로 들리지 않는다.
꼭 내 아이 우는 소리인 것만 같고, 그게 아니더라도 왜 울까, 엄마는 어디 있을까, 엄마가 달래도 그치지 않는 울음이라면 그 엄마는 얼마나 난처하고 속상할까....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놀이터에 도착해보니 우는 아이는 두돌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왜 우냐, 울지마라' 곁에 서서 달래고있는 엄마 품에는 아기띠를 매서 안은 어린 동생이 안겨있었다. 

"아기, 응응, 안으!" 
큰아이는 이 말을 반복하면서, 제가 타고온 유모차를 손으로 두드려가며 서럽게 울었다. 

"아기 여기 내려놓으라고? 아님 아기를 안으라고?"
아이 말을 알아들어보려고 애쓰는 그 엄마의 답답함과 난처함과 속상함이 남일 같지 않았다. 

늦가을쯤 몸풀고 겨우내 갓난아이와 큰 아이를 데리고 참 씨름을 많이 했을 것같은 엄마였다. 
이제 겨우 봄볕이 좀 따셔져서 늘 집안에만 있는 큰 아이에게 미안해 어렵게 둘째아이를 아기띠에 안고, 큰 아이는 유모차에 태워 아파트 놀이터로 쉽지않은 나들이를 나선 것 같았다. 
츄리닝바지에 두꺼운 겨울 코트를 입고, 짧은 머리를 한 그 엄마에게서 몇 달 뒤의 내 모습이 보였다. 

어렵사리 나온 나들이에서 큰아이는 제 성에 차지않고 어려운 무언가에 부딪혔던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 품에 안기고 싶은데 품에 안은 어린 동생에게 행여 찬바람이라도 들새라 코트깃까지 세워야하는 엄마가
큰 아이까지 안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말로 달래고, 그만 들어갈까 물어보고, 울며 매달리는 큰아이를 겨우겨우 끌고 놀이터를 떠나는 그 엄마의 난처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보고있는 내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은데
정작 나는 도울 수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
 
나라도 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울때는 어느 아이라도 제 엄마에게 안겨서 위로받고 싶지 낯선 아줌마 품에 안겨 울음을 그칠리도 없고..
그 흔한 사탕도 하나 들고나오지 않은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 날 놀이터에서 스쳐갔던 애기엄마의 잔영이 오래오래 머리에 남았다. 
 






신영복 그림, '생각하는 손'
<나무야 나무야>(1996. 6. 돌베게)에 수록. 신영복 홈페이지 '더불어숲' http://www.shinyoungbok.pe.kr 에서 담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 그림을 찾아보았다.
양손에 큰 보따리를 들고, 큰 아이 걸리고 작은 아이 업고 장에서 돌아오는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의 머리위에 올려진 임이 떨어질까봐 뒤에서 걸어오는 내내 불안했던 어린 날의 신영복선생님이 '저 아주머니에게 손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하고 생각했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였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손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내 몸이 둘 아니 셋이었으면..'하고 바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특히 아이가 울 때..
우는 아이도 안아 달래야겠고, 하던 일도 마저 해야겠고, 내 몸도 고단하고...
그래서 그만 나도 같이 울고싶은 심정이 되어 우는 아이를 안고 발만 동동 구를 때.

어느새 연수는 34개월 제법 큰 아이가 되어 엄마를 그렇게 발 동동 구르게 하는 순간은 훨씬 적어졌다.
그러나 이제 두 달뒤, 평화가 태어나면.. 
갓난쟁이 돌보느라 분주한 엄마 곁에서 큰 아이는 섭섭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하여 아마 때때로 저도 갓난아이처럼 굴고 싶어지겠지... 
말이 아닌 울음으로 우선 저부터 안아달라고 막무가내로 떼쓸 때도 있을 것이다. 

많이 의젓해졌다해도 놀다 넘어져 어디가 좀 아프면 엄마 품에 달려와 안겨야 위로가 되고
울음이라도 터졌다치면 엄마 윗도리 속에 제 손을 쑥 집어넣어 은근슬쩍 엄마 젖가슴도 만지고 겨드랑이도 꼭 쥐어봐야 맘이 풀리는, 여전히 어린 내 큰 아이. 
그 큰 아이도 안아줄 수 있게 내게 팔이 두개만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지금도, 실은 조금 조급한 마음이 들어 내 몸이 한 개만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보고싶은 책들도 좀더 읽고, 글도 쓰고 할 내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온종일 내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아이와 놀고, 밥 해먹고, 집 치우며 보낸 고단한 하루가 끝날 무렵 
아이를 재우다가 그만 몸이 피곤해 나도 같이 잠들어버리거나
요행히 잠이 안들더라도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거나 한 날은 마음이 무척 우울해진다. 
평화가 태어나기 전에 책도 글도 내가 좋아하는 그 무엇이라도 가능할 때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하는데..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데...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 중에 아이셋을 키우며 글을 쓰는 평온님의 '평온한 강가에서'란 블로그가 있다.
아이 하나 키우면서도 시간이 없다고 허덕이는 내가 보기에 평온님은 정말 신기하고 부럽기 그지없는 분인데
언젠가 그 분 글에서 '맘편히 잠 한번 푹 자봤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보고 뜨끔했었다.
세 아이를 돌보며, 것도 셋 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도 보내지 않고 온전히 하루종일 돌보고 키우면서
밤에는 책 읽고, <민들레>와 여러 매체에 실을 원고를 쓰고 또 짬짬히 블로그까지 쓰는 그 분은 정말 잠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게 너무나 힘들지만, 또 너무나 원했던 삶이므로 어렵지만 행복하게 그 삶을 살아가신다.















+ 얼마전 둘째아이를 낳은 친구집에 놀러갔다. 둘째는 큰 아이와 딱 두 돌 터울로 태어났다.
본디 부처님 같은 성격인 친구는 두 아이가 다 기저귀에 똥을 싸놨던 다급한 순간을 웃으며 얘기해주었다.
그녀와 두 아이에게 축복과 평화있으라..! ^^ 
아마 그럴 것이다. 아이가 둘이라는 것은 행복도 두 배라는 것을 친구와 함께 지내며 느낄 수 있었다.




'천수관음보살'은 천개의 손을 가진 부처님.
그런데 그 천개의 손마다 눈이 하나씩 있다 한다. 천개의 손, 천개의 눈.
눈이 있는 손은 마음이 있는 손. 마음이 있는 손은 단순한 집합이나 맹목이 아니라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손. 
그저 짐을 들어주고 일을 거들어주는 손이 아니라 아픔을 쓰다듬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악수의 손이라고 신영복 선생님은 저 글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몸의 손은 두 개뿐이지만
마음의 손만은 좀더 여러 개를 지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들의 마음도 어루만져주고, 이웃들 생각도 하고, 글도 쓸 수 있는 손. 눈이 있어 책도 보고, 세상도 밝게 볼 수 있는 손..
 


두 아이 데리고 놀이터에 나왔던 그 엄마는 오늘 잘 지냈을까. 
아이들이 울면 그 엄마도 마음으로 함께 울텐데 오늘은 좀 덜 힘들었을까. 
다음에 혹시 놀이터에서 또 만나게되면 봄햇살아래서 수줍게 인사라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