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저귀를 쓰는 이유'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2.02 천기저귀를 쓴다 18
umma! 자란다2012. 2. 2. 23:12








천기저귀를 쓴다.

연수 낳기 전에 출산용품 준비하면서 나는 자신만만하게 '천기저귀 쓸꺼야!'했다. 친정엄마는 '정말 쓸수 있겠냐' 하시면서도 딸의 큰소리를 믿고 천기저귀를 20장이나 사주셨었다.
그런데 막상 아기를 낳고 나니 모유수유하는 거며 잠재우기가 어찌나 힘든지, 내 입에 밥 한술 떠넣기도 쉽지 않아서 그만 천기저귀는 여름속싸개&목욕수건으로만 겨우 몇장 꺼내놓고 살았다.
그러다 연수가 7, 8개월쯤 됐을때 그제야 좀 정신이 들어 천기저귀를 쓰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하니 그럭저럭 할만해서  두돌지나 기저귀 뗄 때까지 종이기저귀는 외출용으로만 쓰고 주로 천기저귀를 쓰며 지냈다.

연호는 연수때 써본 경험이 있어 신생아 시절부터 천기저귀를 쓸 수 있었다.
연수 때보다 훨씬 바빠서 기저귀 빨래는 더 밀리지만..^^;;

천기저귀 쓰기가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
얼마전 이웃 아기엄마집에 놀러갔다가 무심코 연호 기저귀를 가는데 천기저귀인걸 보더니 그 엄마가 '딴 세상 사람같다'고 해서 그 말에 내가 더 놀랐다.
해보면 할만하고, 또 여러모로 이로움이 많은 일인데 너무 어려운 일로만 생각되는것 같아 블로그에 한번 써야지.. 하면서 돌아왔다. 내가 예전에 솔이엄마(도시자연육아) 블로그 글을 보고 천기저귀 쓸 엄두를 냈던 것처럼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음.. 못할건 아니네'하면서 써보시면 좋겠다. 










연수 낳고서 처음에 천기저귀 쓰기를 겁냈던 이유중에 하나가 안그래도 예민한 아이가 천기저귀가 젖으면 더 자주 잠을 깰까봐 겁이 나서였다. 그땐 정말 연수가 몇 분 더 자주느냐가 내 인생의 행복을 좌우하던 시절이었다.ㅜㅜ
그런데 지금 연호 키우면서 봐도 그렇고, 연수때 막상 천기저귀를 쓰고보니 천기저귀라서 특별히 아이가 더 자주 잠을 깨는건 아닌 것 같다. 깨어있을 떄야 기저귀가 젖으면 바로 알려주지만 졸려서 잠이 든 뒤에는 사실 잠을 깨는데 기저귀가 관건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천기저귀는 좀 젖었더라도 발진이 쉽게 일어나진 않는다. 아기띠 같은 것으로 오랜 시간 눌렸을때는 좀 빨개지지만 그건 종이기저귀도 마찬가지.. 

그담으로 겁났던건 빨래.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말려둔 기저귀가 다 떨어지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장마철에는 진짜 약간 긴장된다.ㅎㅎ) 

연수 때는 스무장으로도 그럭저럭 잘 썼다. 
천기저귀는 아주 잘 마르기 때문에(요즘 많이 쓴다는 땅콩천기저귀는 마르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지만) 
하루에 한번씩만 세탁기를 돌리면 금새 말라서 바로 개서 쓸 수 있다. 
연호는 천기저귀를 장만만 해놓았다가 쓰지 못했던 친척들께 더 받아서 40장을 가지고 쓰니 꽤 여유롭다.
커버도 넉장쯤으로 쓰다가 지금은 그 배쯤 생겨서 한결 넉넉하다.

오줌 기저귀는 세탁기옆에 따로 대야를 하나 마련해두었다가 나오는데로 거기 모아놓고 흰빨래 돌릴때 함께 넣어 돌린다. 
물에 담가두면 3~4시간 지나면 세균이 너무 많아진다고해서 물에 담그지는 않고 모은다.
좀 찜찜하면 빤 뒤에 햇볕에 잘 말리면 살균이 된다고 하고, 우리 아이들을 보면 어디서 말려도 기저귀 발진은 거의 없는걸 보면 괜찮은 것 같다. 

똥 기저귀는 욕실에 따로 대야를 마련해서 거기에 모은다. 
밤에 아이들 잠들고나면 똥기저귀 애벌빨래를 한다. 
오늘은 어떤 똥 쌌나.. 아까 기저귀 갈때도 봤지만 밤에 또 보면서 요즘 아이가 먹는 것과 감기기운 같은 것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본다. 내 아기 똥이니 그다지 더러운 줄 모르고 털어내고 가볍게 문질러 빤다. 젖먹는 아기 똥이라 냄새도 그리 심하지 않다. 비누칠해서 큰 들통에 넣고 물 붓고 푹푹 삶는다. 오줌 기저귀가 오래 묵었으면 이때 같이 헹궈 삶고, 똥묻은 아기 옷이나 기저귀 커버도 같이 삶는다.(커버는 오래 쓰고, 특히 자주 삶고하면 나중에 오줌이 샌다. 그럼.. 바꿔야지, 뭐. ㅎㅎ) 

들통이 무거울 때 욕실부터 가스렌지까지 들고가 올려놓는 것은 남편 몫이다.
연호가 깨서 내가 재우러 들어가면 빨래솥 불끄는 것도 남편 몫.(어느 집은 똥기저귀 애벌빨래를 아빠가 하는 멋진 집도 있다는데... 김준철씨는 애기 똥을 겁낸다. 흥!! ㅜㅜ)











비누칠해서 삶으면 누렇던 똥기저귀가 새하애지는게 나는 아직도 좀 신기하다. ^^;
깨끗하게 빨아진 천기저귀를 탁탁 털어 빨래대 가득 널어놓고나면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하얀 기저귀가 가지런히 널린 모습은 보기에도 예쁘고 무엇보다 오늘 할 큰 일 한가지를 끝냈다는 안도감이 든다. 건조하던 집안 공기도 새삼 촉촉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기저귀 빨래 다 되기를 자주 기다린다. 

연호가 8개월이 된 요즘은 하루에 보통 기저귀가 열두어장 나온다. 
크게 어렵지 않다고 썼지만 그래도 매일 그 빨래를 하는 데는 적지않은 수고가 든다.
귀찮기도 하고, 손목이 아프거나 힘들 때도 많다.
그래도 천기저귀를 쓰는 이유는..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기 떄문이다.

아기 한 명이 일년동안 쓰는 종이기저귀를 만들려면 나무 72그루가 필요하다고 한다.
게다가 그 종이기저귀는 땅에 묻어도 잘 썩지 않고, 태우면 기저귀만들때 들어간 독성강한 화학약품들이 방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종이기저귀를 써보면 10L짜리 쓰레기종량제봉지 채우는데 2~3일이 안걸린다.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많은 나무를 자르고 너무 많은 쓰레기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다.
깊은 밤, 욕실에 불을 켜고 철퍼덕 거리면서 기저귀에 비누칠을 하는게 고달파서 툴툴거리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연호 낳기전에 산후도우미를 신청하자 상담하는 분이 우리집에 오셨었는데 '특별히 요구하시는게 있냐?'고 묻길래 '천기저귀를 쓰고싶다'고 했더니 왜 굳이 천기저귀를 쓰려고 하냐고 물으셨다.
'종이기저귀는..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요.'했더니 '환경운동가시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고 싶다.
법정스님의 법문을 모아놓은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보기도 했다. 
'옛날 오래된 절들에 가보면 절 부엌에 조그많게 용과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여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와 물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산에 흔한 나무지만 허투루 많이 쓰면 호랑이가 화내고, 강에 흔한 물이지만 함부로 많이 쓰면 용이 화낸다는 뜻입니다.'
흔한 나무고, 흔한 땅이고, 흔한 물이지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한사람 한사람 자꾸 함부로 대하고 해치면 끝내는 그 고마운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 
호랑이와 용으로 상징되는 자연의 영혼들이 깊이 분노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나는 때때로 두려운 마음이 든다.

법정스님 법문이 마음에 많이 와닿아서 이제는 물도 좀 아껴쓰려고 노력한다.
연수가 목욕(놀이)하느라 욕조에 물을 많이 받아놓고 첨벙거리고나면 그 물을 그대로 뒀다가 밤에 똥기저귀 빨래에 쓴다.
여행작가 오소희씨는 아프리카 여행 후에 세수하거나 샤워한 물을 변기에 부어 물을 내리게 됐다던데 그 마음도 이해된다.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을 구하기위해 하루 종일 먼지날리는 거친 사막길을 오고가야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고오면 누구라도 그저 편하다는 이유로 세숫물 따로, 변기물 따로, 애벌빨래 물 따로 맑은 물을 그리 펑펑 쓰지는 못할 것 같다.

아빠엄마가 모두 피부가 좋지않아 아이들도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직은 아토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천기저귀를 쓰는 것이 아이들 피부를 위해 좋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땅도 건강해야 황사도 적어지고 공기도 맑아져서 우리 아이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이다.
천기저귀를 쓰는 일은 내게는 먼 미래까지 아이들의 건강을 빌어주는 내 나름의 방식인 셈이다.  











천기저귀를 쓰고 싶어하던 지인께 유아용품점에서 파는 얇은 정사각형 기저귀가 제일 잘 마르고 접기도 편하다고 추천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함받을 때 끈으로 묶었거나 안에 곱게 넣어온 소창두루마리가 있으면 그게 제일 좋을 것 같다.
손이 부족해 늘 동동거리는 육아에서 편리함만큼 큰 가치도 없어보이지만 
어떤 물건이든 그 안에 담긴 기운까지 생각한다면 할머니의, 그 할머니의 할머니부터 내려오는 따뜻한 기운들이 감싸고있는 집안, 장차 그 집의 안주인이 될 새식구를 맞으며 정성스럽게 준비한 소창천만큼 갓 태어난 생명을 따스하게 보듬어줄 천이 또 있을까. 
빨고 개기가 힘들다면 좀 짧게 자르고, 좀 길다면 개는 수고가 더 들긴 하겠지만 그만큼 또 푹신하니 좀 덜 반듯하게 개어지더라도 아이들은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아이들이 입는 것은 따스한 엄마의 숨결, 햇살, 바람, 할머니의 기운.. 그 모두일 것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