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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4 겨울 단상 4
umma! 자란다2009. 12. 24. 22:25


겨울, 날이 추워 밖에 한발짝도 못 나가는 날이 많다.
다행히 어제오늘은 따뜻해 연수도 나도 신나게 옷을 챙겨입고 놀러나갔다.

밖에 나오면 놀게 천지다.
길가에 떨어진 소나무잎도 줍고 작은 물웅덩이에서 찰박거리며 물장난도 친다.
발길가는데로 동네 골목을 걸어다니다가 널찍한 공터를 발견했다.
단단한 흙으로 된 교회 주차장. 
크고 작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 골목에서는 그만한 공터도 운동장처럼 커보였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보니 눈도 마음도 한순간 시원했다.

참 뭘 많이도 짓고 빽빽하게 채워놓고 산다. 이 도시에서는. 
비어 있어야 이렇게 잠시라도 마음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데.
지난 여름에 우리가 곧잘 가서 놀았던 공터에는 가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이제는 빌라건물이 들어섰다.
그 공터에서 연수는 새끼고양이를 보고 제가 먹던 삶은 고구마를 주고싶어 한참 따라다녔었다.
고양이는 멀리서 연수를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뿐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았다. 우리는 한참 기다리다가 결국 고구마를 양지바른 곳에 놓아두고 아쉬워하며 돌아왔다.
새로운 공터를 발견한 것이 무척 기뻤다.

공터를 본 연수의 얼굴에도 반가운 기색이 어리더니 그 흙땅을 향해 신나게 뛰어간다.
우리는 살짝 언땅에 박혀있는 돌멩이를 발끝으로 파내고, 그 돌멩이를 주워 여기저기 옮기며 한참 놀았다.
나뭇가지를 주워서 땅위에 선을 긋기도 하고 그냥 뛰어다니기도 했다.
  
오랫만에 밖에서 많이 놀아서 피곤했던지 연수는 낮잠도 일찍 자고, 오늘은 저녁잠도 일찍 들었다.

매일 좁은 집안에서 똑같은 장난감과 똑같은 책을 가지고 씨름하느라 힘든건 엄마만은 아닐거다.
매일 읽는 책이지만 번번히 재미있게 듣고, 할 줄아는 몇마디 단어를 가지고 수십번씩 제 나름의 얘기를 엄마에게 건네며
엄마가 한번 더 눈마주쳐주고, 좀더 오래 저랑 같이 장난치고 놀아주기를 바라며
'엄마! 엄마!' 끝없이 부르는 아이도 이 겨울을 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 자주 밖에 나와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칠만 지나면 해가 바뀌어 세 살이 되긴해도 19개월 어린 아가인지라 날이 추우면 아직은 겁이 난다.
마트처럼 따뜻하고 큰 건물안에 들어가 여러가지 구경을 하는 건 아빠가 있는 주말에 잠깐씩 하긴 하지만
그렇게 사람많고 복잡한 곳에 오래 있으면 답답하다.
문화센터는 어떤 곳일까.. 한번도 가보지 않아서 궁금하다. 아이가 즐거워할만한 프로그램이 많이 있겠지.
나는 아직 어린 아이에게 애써서 뭘 가르칠 생각은 없다. 무슨 자극 같은걸 일찍부터 줄 마음도 없다. 
하지만 아이는 매순간 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 들려오는 소리들, 사물의 촉감..같은 모든 것에 몸의 감각을 활짝 열어놓고 제 속으로 쑥쑥 받아들이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경이로울 정도다.

얼마전 동네 골목에서 포크레인이 3일정도 공사를 한 적이 있었다. 레미콘 차도 한번 왔다갔다.
마침 아이랑 밖에서 놀고있다 그 소리를 들었다.
아이는 꽤 높은 아파트 계단을 지치지도 않고 올라가더니 꼼짝않고 선채로 포크레인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평소에도 집에서 그림책으로 보고, 친척과 이웃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포크레인 장난감을 가끔 가지고 놀기는 했다.
그런데 그 3일동안(소리만 나면 나가자해서 3일 꼬박 참관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오더니
집에 와서 너무도 열심히 장난감 포크레인의 삽과 레미콘차을 움직이며 본 것을 그대로 따라하려고 낑낑거리며 애썼다.
푸욱푸욱~ 지이이잉~ 제법 소리도 실감나게 섞어가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아이들은 정말로 스폰지처럼 세상을 받아들이는구나.. 하고 실감이 나면서
조금은 엄숙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 어떤 것을 경험하게 해줘야할까.
물론 내가 보여주지 않는 것들도 자라다보면 접하게 되겠지만, 내가 애써 보여주지 않으면 못 보는 것들도 있으리라.
세상의 아름답고 고운 풍경들,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 아름다운 음악, 경이로운 생명들, 감동적인 책과 영화..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열망이, 
3일 연속 포크레인 공사현장을 참관하고 돌아온 엄마의 마음에도 피어올랐었다.

그러나 이 겨울, 동굴 속의 곰들처럼 우리는 작은 집안에 웅크리고 앉아 거의 하루종일 그림책만 읽고 있다. 
너무 많이 읽어서 이런저런 걱정도 생겼다.
내가 책을 읽을 때만 얘랑 오래 놀아줘서 얘가 책에 집착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우선 들었다.
소꿉놀이나 블럭쌓기같은걸 할때는 책을 읽을때처럼 엄마가 진득하게(일단 편 책을 다 읽을때까지는 꼼짝없이 있게되니..) 옆에 붙어있어주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그런건 아닌데 자꾸 그렇게 된다.
다른 놀이를 할 때면 잠깐 같이 놀다가 '그래, 그거 하고 있어~'하고는 아이 곁을 떠나 요리나 설겆이같은 집안일을 자꾸 하게 된다. 그럴때 아니면 짬이 안나기도 하고, 그때 해야만 하는 일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이에게는 어느 정도 반복되는 패턴이 각인되었으리라. 책을 꺼내야만 엄마를 오래 옆에 잡아둘 수 있다..고 생각할까봐 문득 무서워진 뒤로는 다른 놀이도 더 오래 같이 재밌게 하려고 노력중이다.

아이에게 책이 점점더 재미있어 지는 것도 같다.
이제는 혼자 가끔 책장을 넘기며 조용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책을 보면서 하는 놀이도 많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 나오면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물이 나오면 크게 외치기도 한다.
책에 나오는 아이나 동물들이 짓는 표정이나 행동도 따라해보고, 그려진 사물을 손으로 가린후 엄마가 '** 없다~'하고 말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잠시 후 손을 떼면 '까꿍!'도 크게 외쳐줘야한다. ^^; 
책읽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아이를 보며 무척 흐뭇하다가도 어느 날은 걱정을 한다.
책보는 것도 좋지만 몸으로 더 뛰고 부딪히고 놀아야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일찍부터 활자와 매체(종이도 매체니)에 너무 빠져드는건 아닐까..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래서 일찍부터 함께 그림책을 많이 읽고 있지만,
북스타트운동에서도 얘기하듯 '하루 15분, 부모와 함께 다정히 앉아 읽는'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건 돌전쯤 가능했던 얘기고, 그 이후 책의 즐거움을 조금씩 더 알아가더니 언젠가부터는 몹시 집중해서 줄기차게 계속 보자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같은 책도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이 책 저 책 바꿔가며 잠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읽자고 하는 날도 있다.
책이 있어야 밥을 먹는 때도 있다. 거저는 절대 안먹겠다고 버티다가 책을 읽어가며 밥숟가락을 입에 넣어주면 그제야 모른척 슬그머니 받아먹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이런 습관이 들었는데 고쳐야지.. 생각하면서도 잘 못하고 있다. 우선은 밥 먹이는게 급하단 마음에..-.-;;










초보 엄마가 아직 아이들의 책읽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도 하고, 중심이 덜 잡혀있어서 이런저런 걱정만 많다.
날이 따뜻해서 밖에 나가 뛰어놀 수 있으면 사실 너무도 쉽게 해결될 고민들인데..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겨울밤이다.

책도 좋아하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도 좋아하고, 음식의 맛과 스스로 먹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는 아이로..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자.. 아이를 키우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보면 결론은 늘 '잘 클거라 믿고 즐겁게 키우자'가 된다.  ^^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는 너무도 다른 이브. ^^
아이가 하루종일 잘 논 뒤에 일찍 잠든 것만으로도 참 행복해지는 애기엄마의 이브.
그러고보니 성모 마리아님도 아기엄마시구나..
이전 어느때보다 성모에 대한 애틋하고 따뜻한 감정이 생겨나는 크리스마스다.
예수보다 성모 마리아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도 내가 아기엄마가 되어서겠지. 그전에는 같은 여성이었어도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예수님도 한 엄마의 한 아이인 것이다.
고요한 밤이 깊어간다.
세상 모든 어머니와 그 아이들에게 축복이 함께 하는 성탄절이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