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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9 달콤한 말 - 강릉일기(2) 8
umma! 자란다2010. 4. 29. 13:21


1. 달콤한 말






 

‘아니, 싫어’의 반대말로 ‘좋아’를 배운 연수.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빵 조아”, “따꺼책(스티커책) 쪼아”


바람은 조금 불지만 햇볕은 더없이 따뜻했던 아침
할머니와 엄마를 따라 밭에 나와 밭고랑 사이를 걸어다니던 연수가 문득 나를 향해 달려오더니 내 목을 껴안으며 말했다.


“엄마, 쪼~~아”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어본 말중에 가장 달콤한 말.
연수가 태어나 22개월만에 내게 해준 최초의 고백.  












2. 점입가경









아침에 잠에서 깬 연수가 부시시 일어나 앉더니 제가 누워있던 하얀 이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이. 왔다”


나는 너무도 감격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쏟아내는 아이가 귀하고 고마워서 가슴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자리에 누운 채로 연수를 끌어안고 볼에다 뽀뽀를 퍼붓고 있는데 연수는 몸을 빼며 말했다.


“엄마. 일어나”


그러더니 발딱 일어나서 내 등밑에 손을 집어넣으며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내가 견디다못해 일어날 때까지...
“엄마. 일어나. 엄마. 일어나. 엄마. 일어나...”


그때 깨달았다.
나도 드디어 아이한테 잔소리듣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말을 배워가는 녀석은 이제 곧 ‘엄마 빨리 일어나, 늦잠자면 게으름뱅이야’하고
장황하고 입바른 소리들을 내게 해댈 것이다.
좋은 시절은 다 간 것인가..







3. 봄날 오후, 고향 산책









이 오래된 의자는 내가 태어났을때부터 우리 집에 있었음직하다.
내가 어릴때 내 할아버지는 이 의자에 앉아서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손에 쥐고 
12시 땡하면 '전두환 각하께서는'으로 시작하는 '땡전뉴스'를 듣곤 하셨다.
더러는 따끈한 한낮의 햇볕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기도 하셨는데 나는 육중한 할아버지의 몸을 지탱하는 이 작은 의자가 쓰러지지 않는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낡을대로 낡은 양철의자가 신기한 연수.








이젠 제법 사진기앞에서 포즈도 잡을 줄 안다. 입모양은 영 어색하지만.. 포즈는 좋구나. 우리 꼬마^^








마당 끝, 밭으로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
매화꽃잎이 점점이 떨어진 이 예쁜 길로 아침저녁 부지런히도 오르내리던 연수.









산에는 진달래꽃 피었다.
예전에 나는 이 산모퉁이 길을 따라 국민학교로 걸어다녔다. 연수랑 오랫만에 그 길을 다시 걸어봤는데
지금은 가는 길에 무형문화재인 강릉 관노가면극을 전승하는 '민속문화예술전수회관'이 생겨 길이 아주 크고 넓어졌다.






 



이 작은 산 안에는 나와 친구들의 소꿉놀이터이자 비밀아지트가 있었는데
부러진 소나무가지들을 모아 만들었던 그 아지터는 벌써 옛날에 없어졌겠지.
정월대보름이면 이 산 언덕에 모여 보름달 뜨는 모습을 보고 쥐불놀이를 하던 옛날 어른들, 옛날 아이들 생각이 났다.















진달래 연한 분홍색. 봄날의 진달래가 아니면 잘 볼 수 없는 여리고 고운 색.
자연은 인간이 만든 인공의 사물들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흉내낼 수 없는 경지의 아름다운 색과 모양을 지니고 있다. 
많은 예술과 건축과 패션이 그 자연을 모방하고 싶어하고 그대로 옮겨놓고 싶어하지만 좀처럼 성공하기가 어렵다. 
일부만 성공해도 그 작품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그러니 직접 자연을 만날 때의 감동은 얼마나 크랴... 









봄 논둑길에는 쑥이 푸르게 올라오고, 곧 모자리들이 만들어질 논의 흙은 푹신하고 촉촉했다.
엄마가 국민학교 다닐때 아침저녁으로 밟고 다니던 논길을 연수는 신나게 잘 뛰어다녔다.
삼십년 세월이 잠깐 같았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내가 다닌 국민학교.
이리로 걸어가다보면 3층 교실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욱아 빨리와!"하고 부르는 친구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럼 나는 가슴이 뛰고 걸음을 더 빨리해서 얼른 학교에 가곤 했다.
내 아이도 그렇게 재밌게 놀 생각에 가슴 설레어하며 학교에 가게될까.








쑥 뜯는다. 이 날 소꿉놀이의 주 반찬.









멀리 보이는 외가집으로 이제 돌아간다.
할머니 기다리시겠다. 얼른 가자.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