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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1 팬티 부자가 가르쳐준 것 8



1. 팬티 부자










"엄마, 이거 망토처럼 해줘~"
어제 오후, 연수가 곧잘 가지고노는 엄마 스카프를 들고와서는 그림책에서 본 '앙팡맨'처럼 망토를 해달라고 했다.
목에 가볍게 묶어주었더니 흡족해서 이리저리 흔들어보다가 이내 망토자락을 펄럭이며 거실 소파에 오른다.

자.. 망토까지 갖춘 이 분의 전체패션을 공개하자면..









짜잔~~~!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복바지위에 한벌 더 입어주신 팬티가 포인트다.
ㅎㅎㅎㅎ
그제 오후부터 이렇게 입고 지냈다.

팬티와 내복 바지 정도는 혼자서 입을 수 있게된 연수.
'와~ 우리 연수, 혼자서도 팬티 잘 입는구나!'하는 엄마아빠의 칭찬에 고무라도 될라치면
이내 보이는대로 팬티를 가져와서 바지 위에 더 입는다.
그러면 엄마아빠는 그 모습이 웃겨서 깔깔깔.

어제는 드디어 세벌째 팬티를 껴입으며 자랑스레 한마디 덧붙였다.
"이 것 봐, 연수는 팬티부자야~~"

총 여섯벌 되는 제 팬티들을 두고 '팬티부자'라 자부하다니.. 그 소박한 마음이 고맙다고 해야할지, 우습다고 해야할지. ^^

"연수야, 근데 고추가 '아고~ 답답해' 하지 않을까?"
"왜?"
"고추 위에 너무 옷을 많이 입었잖아.. 고추 안아파?"
"안 아파. 연수는 팬티부자니까!"
 
잠시후, 쉬마렵다는 연수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서 겹겹이 입은 바지와 팬티를 힘겹게 내려주었더니...
이크. 옷에 잔뜩 눌려있던 고추가 그만 펴지지 않고, 오줌이 그대로 옷으로 주르르 흘러버렸다. ^^;;;;

팬티부자는 역시 다르다. 쉬야 한번에 팬티 석 장을 적시다니.. 
그 뒤론 마른 팬티를 못 찾아 내복만 입고 있는 연수.
 










늦은 오후, 해바라기 하는 연수.
저렇게 창에 하염없이 붙어서서 바깥구경을 하는 연수를 보고 있으면 뒷모습이 좀 쓸쓸해보이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나도 어디 창밖으로 훌쩍 걸어나가고 싶어진다.
슬리퍼를 가볍게 끌면서 자그마한 아이 손을 잡고.. 차지않은 바람이 부는 봄날 저녁 내내 별생각없이 걸어다니다 오고 싶다.

 



2. 좋은 것도 많아?









엄마가 첨으로 집에서 타준 코코아를 마시고, "오~ 맛있는데!"하는 연수. ^^



어제 연수 데리고 단지 건너편 주택가 안에 있는 재래시장에 다녀왔다.
'말우물공원'이라는 제법 크고 오래된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동산 산책까지 하고나면 긴 재래시장 길이 바로 이어진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로 된 야채가게에 들렸더니 체구가 큰 할머니와 까만 고양이 한마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마수걸이쯤 될듯한 우리의 등장을 반가워하시며 이것저것 덤도 얹어주시고, 연수가 고양이를 좋아하자 이름이 '솔이'라며 물지않으니 겁낼 것 없다고 다정히 얘기해주셨다.
요즘 야채값이 너무 비싸지만 단골들이 찾기 때문에 종류별로 아무리 비싸도 다 가져다놓아야한다고 얘기하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돌아오면서 나도 아무래도 이 할머니 야채가게에 단골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연수에게도 다음에 솔이 보러 또 오자 했더니 좋단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할머니에게 산 마늘 봉지를 열어보고는 크게 실망했다. 
가게 저 안쪽에서 까만 봉지에 담아주실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오래되고 상한 마늘이 제법 섞여 있었다. 
깐마늘 2천원어치 달라는 내 말에 마늘값이 너무 비싸 그렇게는 못 판다며 3천원치주마 하셔서 그러시라 했는데, 
양은 제법 많았지만 그 중에 상한 것도 너무 많았다.   

"뭐야~. 상한 마늘이 너무 많잖아. 너무한다...!"

씩씩거리는 내게 연수가 물었다.
"엄마, 왜?"
"아까 할머니네 가게에서 산 마늘말야.. 안 좋은게 너무 많아. 에이, 속상해~." 
"안 좋은게 많아?"
"응."
"좋은 것도 많아?"
"응?" 

나는 가만히 마늘을 내려다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좋은 것도 많아."


그래. 좋은 것도 많았다.
그 많은 마늘 중에, 군데군데 상한 구석이 있는 마늘도 많았지만 말짱하니 좋은 마늘도 많았다.
마트에서 팩에 담아 깔끔하게 랩씌워파는 천원, 이천원짜리 깐마늘의 양을 생각하면 까만 봉지에 스덴 그릇으로 퍼담아주신 3천원치 깐 마늘의 양은 참 많은 것이었다.
손님이 뜸한 재래시장에서 까둔지 오래되어 좀 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샀어야했을 할머니의 마늘이다. 
그것이 나이고, 내게 마늘을 팔수있어서 할머니는 참 좋으셨을 것이다. 
나도 상한 부분을 도려내는 손질을 좀더 해야했을뿐, 마늘을 넉넉하게 많이 얻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까만 고양이 솔이가 있는 할머니네 야채가게. 
연수 덕분에 잃을뻔 했던 단골가게를 마음안에 다시 담아둘 수 있었다.
33개월 연수. 하루에도 몇번씩 엄마 마음의 균형을 찾아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대하게 해준다.

고맙다. 연수야.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