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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6 바람이 분다 꽃이 흔들린다 - 담양 소쇄원 (2010 여름여행 9일차) 4
여행하는 나무들2010. 8. 6. 23:14










금전산을 가득 채운 안개는 어느 날보다 진했다.
아빠가 창밖을 바라보며 "구름인가 안갠가.." 하고 말한 것이 재미있어서 연수는 거듭거듭 그 말을 따라하며 웃었다.
"구름인가~ 안갠가~!"













밤처럼 어두웠던 세상이 천천히 밝아졌다.
구름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안개가 천천히 걷힌 것도 같다.
천천히, 천천히 우리도 이제는 짐을 챙기고 다시 세상속으로 나갈 시간이다.











여행 마지막날 아침, 오래오래 낙안민속자연휴양림안을 산책했다.
삼일동안 머물면서도 날이 흐려 가보지못했던 물놀이장에도 들어가보고 서울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굴피나무며 여러 풀과 나무들도 구경했다.
민속놀이장에 있는 투호도 재미나게 던져보고 잔디밭과 평상에서 한참동안 놀았다.
여행지에서의 아침도 이제 마지막이다. 숲 속의 아침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시고 계곡물소리를 듣으며 어린 연수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던 날들이 꿈같아질 것이다. 












9일간의 여행동안 연수는 아주 많이 큰 것 같았다.
말도 많이 늘고 힘도 세졌다. 무엇보다 매일 새로워지는 풍경과 낯선 장소로의 이동, 자연속에서의 많은 놀이들이 연수에게 큰 자극과 인상을 남겼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이 금방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연수의 내면을 조금 더 풍성하게, 따뜻하게 채워주었기를 빈다.  











순천에서 서울까지는 300km가 넘는 먼 거리.
이번 여행길에 우리가 들리고 싶었던 두 곳, 담양과 전주를 거쳐서 올라가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담양에서 점심을 먹고 전주에서 저녁을 먹고 가는 것이다. 둘 다 남편의 추천 맛집이 있다. ㅎㅎ

밥먹으러가는 길에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콰이어길에 들렸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첫장면은 택시기사인 주인공이 너무도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달리는 것이다.
택시는 이어서 농부가 일하고있는 푸른 들판을 지나고, 그 하늘위로 공수부대를 태운 헬기가 날아간다.
그 아름다운 가로수길이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이다.

이른 낮잠에서 깬 연수를 태우고 가족 자전거도 한바퀴 탔다.
사진이 무척 멋있게 나올줄 알았는데 긴 여행에 시달린 카메라가 그만 고장이 나서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담양시내에 있는 '승일식당'은 밖에서 보면 조그만 가게같지만 안에 들어가보면 어찌나 큰지 깜짝 놀랄 정도다.
맛은 더 놀랍다. 돼지갈비가 다 구워진채로 나오는데 어린 연수도 잘 먹고, 어른들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가게입구에 있는 화덕에서는 갈비만 굽는 아주머니가 세 분쯤 따로 계실만큼, 손님많고 바쁘고 정신없는 맛집이었다.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
작은 산 하나쯤은 될만한 큰 대나무숲이 들판 곳곳에 동그란 섬처럼 서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숲은 부드럽게 수런거렸다.

짧은 한나절이라 담양에서 많은 곳에 갈 순 없어 딱 한곳, 소쇄원을 찾았다. 
식영정, 면앙정 같은 조선시대의 정자들도 가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연수가 좀더 크면,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담양 곳곳을 여행해보고 싶었다. 
대숲들이 섬처럼 드문드문 솟아있는 마을길을 달려 이 정자에서, 저 정자로.. 메타세콰이어길도 지나고 너른 논길도 지나며.
    
 









소쇄원의 내원으로 가는 대숲에 사는 오리들.
검은 오골계들이 검푸른 대나무 사이로 걸어다니며 목청껏 울고 있었다.












소쇄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광풍각'.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을 가진 이 정자는 소쇄원을 찾은 손님들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했다한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소쇄원을 찾은 많은 손님들이 이 정자에 앉아 소쇄원을 관통하는 개울을 바라보며 더위를 식히고있었다.

소쇄원은 중선중기에 양산보(梁山甫,1503~1557))란 이가 조성한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죽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낙향하여 소쇄원을 만들었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소쇄원을 구성하는 큰 두 건물중 또 하나인 '제월당'이다.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었다 한다.
500년 세월을 버티고도 누각은 튼튼하게 서있었다. 어린 객은 그 마루바닥 위에서 제 집처럼 구르고 뛰었다. 
'제월당' 현판의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라한다.

조선중기 호남 문인들의 교류처에 와 앉은 선글라스 김 선생님, 시 한 수 읊어달라는 청에
"별다방 미스김은 아메리카노 다 됐느냐 콩다방 미스최는 까페라떼 아직 멀었느냐..." 하고 계신다. 부끄럽다. --;;;;;
그러나 나보고 읊어보라했어도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들고있던 소쇄원 여행안내책자를 거꾸로 놓고 열심히 보고계신 김연수씨.

연수는 아빠엄마보다는 시에 대한 감성이 있는 것 같다.
얼마전 엄마와 작은 동산에서 풀꽃을 보며 놀던 연수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분다
꽃이 흔들린다
....
꺽자!"

둘째연까지 듣고 나는 말도 못하게 감동을 받았다.
24개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하다니... 이건 정말 한편의 시야! 하고 감탄하다가
마지막 연을 듣고는 그만 푸~!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쨌든 고슴도치 엄마는 이 것을 김연수의 생애 첫 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운율도 좋고 대구도 있고.. 3연의 반전도 멋지지 않은가! 라고 양껏 흐뭇해하면서.  











여행책자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나... 슬며시 밀쳐놓더니 누워버린다.
무더운 한낮, 단잠 한숨 자고가면 정말 좋을 곳이구나.
저렇게 귀를 대고 누우면 이 정자 주인들이 시대와 정치와 문학을 두고 나누었을 대화들이 자장가처럼 울려나올 것 같던 마루.













소쇄원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이 나무물통이다.
나무속을 파고 작은 구멍들을 뚫어서 나무안을 흐르는 물이 아래 개울로 떨어지게 해놓았다.
구슬을 엮어 만든 발같다.
가는 물줄기들이 일으키는 작은 물보라가 큰 더위를 정말 멀리도 밀어내주었다.
이 작은 장치 하나로 소쇄원을 관통하는 작은 개울은 보통 개울이 아니라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정원의 훌륭한 정원수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소쇄원 안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 
광풍각으로 갈 때, 또 제월당으로 갈 때 개울위로 놓인 가느다란 나무다리를 건너다보면 속세와의 격절감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건너왔다'는 것.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대숲 사이로난 좁은 길을 통과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비현실적인 어떤 공간, 낙원으로 들어서는 느낌. 비밀의 정원으로 입장하고있다는 기분.
정원은 결국 그런 장치와 상징들로 가득찬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연수는 시원한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놀았다.
어딜가든 이제는 물이 있으면 서슴치않고 들어가 첨벙거린다.












깊은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것인지 냇물은 아주 찼다.
연수는 개울물을 거슬러 계속 올라가보고 싶어했다. 나도 연초록 대나무 숲이 우거진 저 길로 더 걸어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야할 시간.. 아쉬움을 안고 겨우 발길을 돌렸다. 
 











저녁 무렵 우리는 전주시내에 도착했다.
연수는 차가 달리는 동안 오후낮잠을 한번 더 잤다.
긴 여행의 마지막 저녁, 연수도 엄마도 꽤나 노곤했다. 몇 걸음 걷다 연수가 길가의 돌위에 주저앉았다.
전주의 느낌은 정갈하다. 왠지 그렇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릴때쯤 다시 와서 천천히 이 도시에서만 며칠 있다가면 좋겠다.
여행은 해도해도 허기진 구석이 생겨서 다음에, 또 다음에 하고 자꾸 계획만 늘려놓는다.











우리 식당 바로 옆에옆 식당앞에 이 큰 개가 있었다.
연수는 꼼짝도 안하고 서서 한 20분은 이 개를 보고 있었다.
아빠가 혼자 식당에 가서 세사람 몫의 저녁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무료한 개가 하품하고, 공연히 앞뒤를 두리번거리고 밥그릇을 덜그럭거리며 굴리는 것을 내내 지켜보았다.












처음엔 지켜보는 우리를 좀 의식하는 듯하더니 저도 지루해졌는지 기지개를 쭉 켠다.
연수는 큰 개앞에서 좀 긴장했다. 길 건너편 가게계단에 앉아서 보자했더니 기어코 개 앞에 가서 봐야한다고 가서는 
딱 저기서 더 움직이지 않는다. 이만큼의 거리를 두고 연수는 신비한 존재라도 만난듯 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 뻘속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게, 파도에 닳은 둥근 조약돌, 식당앞의 큰 개. 
대단치도 않아 보이는 그 것들의 무엇이 아이 마음을 뭉클하게 할까. 엄마는 옆에서 짐작해볼 뿐이다. 

 










맛있는 전주비빔밥 한그릇을 끝으로 여름여행은 끝났다.
여러 사람에게 걱정과 폐를 끼치며 다녔던 여행이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세식구에게는 작은 매듭 한번 정도는 짓는 여행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길고 자유로운 여행을 한 남편에게도, 결혼과 출산을 포함해 꼬박 3년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떠나본 나에게도, 생후 2년을 꽉 채우고 처음으로 먼 여행을 소화한 연수에게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행을 포함해 남편이 낸 2주간의 휴가는 우리 세식구가 가장 오래 같이 있어본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일상에 복귀했다.
연수는 다시 산더미같이 그림책을 꺼내놓고 읽어달라며 엄마를 못살게군다.
꽃게보행기만 소파위에 올려진채로 다시 여행을 꿈꾸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벌써 2주가 넘었는데 이제서야 여행기를 끝낸다. 휴....
여행사진을 다 정리하고, 이렇게 포스팅도 다 하고나니 비로소 여행이 다 끝난 것같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우리 가족에게는 오래오래, 작은 것 하나라도 더 기억해두고싶은 추억이라 길게도 썼지만
더운날, 땀흘리며 고생하시는 이웃들께는 저희들끼리만 신나게 놀러다닌 얘기를 줄창 늘어놓는 것 같아 죄송했다.

세살배기 아이와 지지고볶으며 오늘도 더운 하루를 용케도 살았다.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그때는 좀 더 푸근하게,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더 큰 연수와 동행하게 되겠지.
9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한 한달은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것 같던 여행가방에 다시 눈이 가는 요즘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