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애벌레는 아마도 배추흰나비 애벌레인것 같다.. 부디 고운 나비 잘 되었기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6.29 흙에서 놀자 4
umma! 자란다2013. 6. 29. 23:58






지난 봄, 산후조리 마지막으로 강릉친정에 가있을 때..
연수랑 연호가 제일 좋아한 곳 중에 하나는 외갓집 밭이었다.
감자도 자라고, 옥수수도 자라고, 고구마며 온갖 맛있는 곡식들이 자라는 밭 끝자락에 조금 빈 땅이 있었는데
여기는 돌이 꽤 많았다.

연수는 거기 엎드려 한참 혼자 조물거리며 놀기를 좋아했다.
하루는 '엄마, 밭에 가보자. 내가 발굴한 공룡 화석 보여줄께' 하기에 '거기 공룡 화석이 있어?' 물었더니 그렇단다.
연제 잠든 틈에 연호 손잡고 바람같이 내달리는 연수 뒤를 천천히 따라가 보니 
저렇게 근사한 '공룡 화석'이 발굴되어 있었다. ㅎㅎㅎㅎ

'진짜지? 진짜 멋진 공룡 화석이지?'
'그래.. 정말 멋지다..' 

음. 아마도 이런 순간이 지난 5년간 너를 키우면서 매일같이 흙투성이가 된 바지를 빨아온 엄마가 가장 뿌듯한 순간이겠지..? ^^  










ㅠㅠ
이런 일도 있었다.
외가집 밭에 다녀온 연수가 엄청 신나하며 '엄마, 엄마, 이것 봐!'하고 연제 젖먹이는 내 눈 앞에 쓱 들이밀어서 그만 '꺄~~~악!!!!'하고 비명을 지르게 했던 
이 오동통한 애벌레..

너무 깜짝 놀라 '얼른 절로 갖고가! 마당으로!! 얼른~~!!!'하고 하도 크게 소리지르는 바람에 
연수도, 소리지른 나도 그만 머쓱해졌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리질러서 미안.. 근데 얼른 치워줘. 아가는 아직 어려.. 벌레는 아가 가까이 가져오지마.. 그리고.. 얼른 손에서 내려놔, 풀숲에 놔줘..ㅠㅠ' 울다시피 말했다.

정말로 크고 통통한 녀석이었다.ㅠ
어째 너는 저런 녀석을 겁도 없이 그렇게 집어들 수가 있냐......
내 속으로 낳았지만 정말 그 머리속에 뭐가 들었는지 잘 알 수 없는, 여섯살 사내아이는 
엄마의 지나친 반응에 그만 눈물이 글썽할 정도가 되었다.

'엄마, 이 애벌레 내가 키울꺼야... 내가 키우면 안돼?'
'연수야.. 애벌레 원래 어디 있었어?'
'상추밭에... 내가 상추 잎사귀에서 찾았어!'
'그랬구나.... 그럼 거기 다시 놔주자... 그래야 나비가 되지, 우리가 데려갈 수는 없어... 애벌레는 밭에서 살아야돼..'
'싫어! 우리집에 데려갈꺼야! 내가 키울꺼야!!'
'.... 암튼! 일단 지금은 내려놔...ㅠㅠㅠ 얼른, 저기 현관밖에 화분에라도 내려놔라, 제발.'
'싫어! 난 이 애벌레가 좋단 말이야! 내려놨다가 어디로 가버리면 어떡해..?'
'..........그래도 손에 계속 들고있지마, 애벌레도 무섭고 힘들거야... 그럼.. 내려놓고 우선 엄마 전화기로 사진을 찍자. 그럼 혹시 사라져도 사진으로 계속 볼 수 있잖아.. 우리가 서울까지 얘를 데려가긴 어려워... 외갓집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자주 보고싶으면 외갓집 마당에 있는 화단에 풀어줘... 어서!' 

연수는 눈물을 훌쩍거리면서 애벌레를 현관에 내려놓고 
내 전화기를 들고가서 여러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애벌레를 다시 고이 집어서 현관 계단 밑에 있는 작은 화단에 놓아주었다. 
그 날 하루는 마당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애벌레가 뭘하고 있는지 내게 알려주었고.. 

그런데 저녁쯤에 애벌레는 사라졌다.
아마 제가 살던 상추밭으로 돌아갔나보다고, 아니면 어딘가에서 고치로 변해서 나비될 준비를 하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연수를 위로해주었다.
마음속으로는 '휴..'하는 안도와 '정말 어딘가로 잘 갔겠지?'하고 애벌레를 걱정하면서... 

느닷없이 어린 꼬마의 손에 잡혀 낯설고 거친 시멘트 바닥이 대부분인 마당 한복판에 떨어졌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꼬.. 애벌레.ㅠㅠ
미안하다, 얘야.. 부디 좋은 곳에서 다시 풀 잘 먹고 꼭 고운 나비 되렴..

집에 돌아와서 연수에게 '세밀화로 보는 나비애벌레'(권혁도 그림, 길벗어린이) 책을 사주었다.
애벌레에게 보인 엄마의 격한 반응을 사과할 겸.. 
나도 좀 꼼틀거리는 것들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을 덜어보고자..
그리고 연수가 좋아하는 애벌레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어떤 곤충(나비)들이 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책을 보니, 
작가는 아파트 화단에 있는 나비 애벌레들을 보면 데리고 들어와 집안 베라단에 있는 화분에서 키운다고 했다.
수목소독도 자주 하고, 풀도 자주 깍는 아파트에서는 나비 애벌레들이 아무래도 잘 자라기가 어렵단다. 
그렇구나... 그래서 키우기도 하는구나. 
그리고 나비 애벌레들이 징그럽고 털같은걸로 몸을 무섭게 꾸미는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지 실제로 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송충이 같은 나방 애벌레는 사람을 쏘기도 하니 조심해야하고, 나비 애벌레를 보면 절대 손으로 잡지 말라고 일렀다.
다른 곤충들도 마찬가지.. 사람이 잡거나 밟으면 애벌레나 곤충들은 쉽게 다치고, 잘 자라기가 어려우니 그저 눈으로만 잘 구경하고 '잘 커라'하고 말해주라고 하니 연수도, 연호도 우선은 알았다고 했다.
그래도 어린 마음에 신기한 곤충들을 그저 구경만 하고 있긴 어렵겠지... 

위험은 최대한 조심하게 가르치되
아이들이 자연의 여러 생명들에게 갖는 관심과 애정은 지켜주고 싶다.
자연의 여러 생명들이 참 곱고 예쁘다는 것, 모두가 다 제 역할이 있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곤충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은 사람도 살기 힘든 곳이라는 걸 아이들이 이해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연수는 흙놀이를 참 좋아한다.
흙이랑 물이랑 노는걸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까... 
옷이 더러워진다고, 손이 더러워진다고 질색하는 어른과 아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른들이 괜찮다고 열어주면 아이들은 정말로 오래오래 흙과 물 속에서 자유롭게, 그 보드라운 감촉을 손으로 마음으로 느끼며 행복하게 잘 논다.

나는 그런 놀이가 좋다.
딱딱하고 차가운 플라스틱 놀이감들보다 말랑말랑하고 무궁무진한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놀이감으로 흙만큼 좋은게 있을까.
그 위에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둑을 쌓을 수도 있고, 퍼담아 밥을 할 수도 있고, 나뭇가지와 꽃을 꽂아 생일케익도 만들 수 있다.
흙이 아쉬운 아파트에서는 겨울에 함박눈이 오면 그 눈을 흙처럼 가지고 놀 수 있다. 
봄여름가을에는... 흙을 찾아가야지. 흙이 있는 곳,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땅이 있는 곳, 마당을 찾아가야지.

나는 많이 노는 아이들이 유연하게, 부드럽게, 행복하게 클 거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놀이감들을 가지고 원없이 많이 놀아보며 아이들이 자랐으면 좋겠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좁은 실내에 갖혀서 자라지 말고, 넓은 자연속에서 뛰고 뒹굴며 자랐으면 좋겠다.










도시의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에도 흙과 돌과 수도가 있는 마당이, 모래더미가 하나씩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와 손잡고 뛰고 걸으며 산책할 수 있는 푸른 숲길이 가까이 하나씩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교사들이 아이들의 흙묻은 손을 씻겨주는 일과 흙묻어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혀주는 수고를 번거로워하지 않고 기쁘게 해주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모든 창의력과 상상력과 넓은 마음과 이해심과 우리 주위의 생명과 먹거리와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자연을 마음껏 느끼고 경험하며 놀아보는 가운데, 자연의 품에 온전히 안겨볼 때 
진정 반짝이는 별들처럼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라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런 내 나름의 기준으로 연수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찾아왔다.
부모와 함께 하는 삶의 여러 면면이, 집에서의 많은 경험과 시간들이 실은 아이들을 자연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라게 하려고 할때 제일 중요하겠지만
하루중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유치원같은 기관에서도 되도록이면 그렇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랬다.










세 아이 키우며, 특히 이제 갓 세상에 태어난 갓난아기 막내를 키우며 
위의 아이들을 마음껏 자연에서 뛰놀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파트의 작은 흙땅에서도 아이들은 흙놀이를 할 수 있고, 비록 인공의, 그래서 자주 더러워지는 냇물이지만 그래도 집 가까이 있는 냇물에서 발담그고 돌멩이를 던져볼 수도 있긴 하다. 
아파트 화단에도 철따라 꽃도 피고, 나무에는 산수유며 매실과 모과도 달린다.
아직 몇 년안된 신생 아파트단지라 나무들도 모두 여리고 마음껏 흙놀이를 하기는 어렵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키워야할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지내야할까.... 

고민이 많은 밤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