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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05 바다를 낳았다 24
umma! 자란다2013. 3. 5. 00:32

폭풍같은 출산이었다.
바다의 예정일이었던 3월 3일 새벽, 저녁부터 조금씩 심해지던 진통이 한밤중에 출혈까지 조금씩 생기자 잠든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병원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

진통을 참아가며 연호를 다시 안아 우리 방안에 재우고 난 후인 3시쯤부터 본격적인 진통을 시작해서 2시간 반만인 새벽 5시 45분에 바다는 세상에 태어났다.

병원에 도착한 후 자지 않고 진통하는 엄마 곁에서 아빠와 함께 있던 연수는 어린 동생이 태어나는 모든 순간을 즐겁게, 신기하게 지켜보고 아빠와 함께 바다의 탯줄을 잘랐다. 


세 아이를 임신해서 세상에 내어놓고 키우고 있지만 출산은 이번이 처음인 나로서는 정말로 신비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바다는 엄마의 바램을 모두 들어주었다.
아빠가 함께 있는 휴일에, 작은 형아가 잠든 새벽에, 진통을 너무 오래 하지 않고.. 건강하고 평화롭게 잘 만났으면... 했던 엄마의 바램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모두 들어줄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제 힘으로 엄마의 몸을 통과해 미끄러지듯 세상으로 나왔다.









바다가 태어나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김옥진 선생님의 '이제 아기 머리가 나올거야, 연수야, 잘 보렴~.' 하시던 밝고 다정한 목소리,
뭉클 하고 빠져나오던 작은 공같은 양막의 느낌, 곧이어 양막이 작게 팍! 하면서 터지고 바다의 머리와 몸이 쑥 빠져나오던 느낌...!
몸이 기억하는 느낌이란 놀라운 것이다.
지금도 바다가 내 몸에서 빠져나오던 그 순간의 여러 느낌이 생생하다.
그 느낌들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맙고, 행복한 일이었다.
살아가는 내내 두고두고.. 이 날을, 이 느낌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는 엄마에게 제가 줄 수 있는 제일로 큰 선물을 해주며 세상에 왔다.
고맙고 고마운 내 작은 아기. 나의 세번째 아기.








둔위(역아)로 있어 임신 39주에 제왕절개 수술로 첫아이 연수를 낳았을 때, 

나는 마취에서 깨어난 후 처음으로 젖을 물린 어린 연수가 내 젖꼭지를 꼭 새처럼 콕콕콕 빨았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그 느낌이 참 뭉클해서 수술로 힘들었던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가며 연수에게 젖을 물리며 내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었다.
둘째 연호를 낳았을 때는 브이백(제왕절개후 자연출산)을 시도하다가 다시 한번 또 수술을 거친 것이 슬펐지만
유도분만 도중에 심박동이 많이 불안해졌었던 연호가 다행히 큰탈없이 건강하게 잘 태어나 준것만으로도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어서
다른 생각않고 그저 고맙게 수술 후의 힘든 시간들을 견뎌냈다.
네 살이었던 연수가 엄마와 함께 병원의 작은 방에서 일주일을 보내면서도 씩씩하고 밝게 지내주어서 첫 수술때보다는 그 일주일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었다.
그래도 역시 수술의 기억은 몸과 마음 모두에 오래도록 괴롭게 남을만큼 힘든 일이었다.

내 몸과 마음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그리고 그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제일 해주고 싶었던 것은
기다려주는 일이었다.
떄가 될 때까지,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어하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부모로서 나는 그 일이 제일로 중요하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지켜주고 싶은 일이었다.
아마도 첫아이 연수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둔위라는 이유로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세상에 나오게 하면서, 그리고 그 후에 연수를 키우면서 이런저런 힘든 성장통을 겪을 떄마다 그 생각을 다지게 되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 제 힘으로 힘껏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오게 해주고 싶었고
자라면서 하나씩 해나가야할 독립의 일들도 등 떠밀리거나, 다그쳐지거나, 제가 해낼 기회도 빼앗긴채 다른 누구의 손에 의해 강제로 해지지 않고
조금 늦더라도, 어렵더라도 제 힘으로 하나씩 해나가면서 세상에 당당히 제 발로 서게 되기를 바랬다.
출산은 그 시작이었다.

바다가 그렇게 태어나주어서 너무 고맙고 정말 기쁘다.
앞으로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는 함께 잘 해내나갈 수 있을거라는 용기가 생겼다.








하고싶은 얘기가 정말 많은데 아직 정리가 잘 안된다.
그래도 내일 연앤네이쳐를 떠나기 전에 오늘밤, 너무 고마웠던 이 공간에서 이 글을 남겨놓고 싶었다.
두 아이 제왕절개 후 브이백이라는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던 내 출산을 받아주고 긍정적으로 늘 용기를 주셨던 박지원 선생님과
폭풍같은 출산의 순간에 정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김옥진, 박길순 조산사선생님,
그리고 늘 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장난꾸러기 두 형아를 따뜻하게 반겨주셨던 간호사 선생님들과 연앤네이쳐의 여러 식구들께 정말로 너무너무 감사하다.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바다는 이렇게 행복한 출산을 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평생 간직할 잊지못할 감동, 그 순간을 경험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걱정하시면서도 다 잘 될거라고 밝게 격려해주시고, 또 차분하게 응급상황들도 미리 준비해주셨던 박지원 선생님.. 잊지 못할 것이다.
김재영 선생님께 진료받았을 때 들었던 말씀도 잊을 수 없다.
'동의보감에도 이런 얘기가 있어요... 난산이라고 하는 것은 부잣집에나 있는 것이지 평민들의 가정에는 난산이 없다고요..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출산에 도움이 되요. 방바닥 걸레질하고 빨래하는 우리 어머니들 그 자세 있잖아요.. 그 자세가 제일 좋아요'
그 말씀이 잘 잊히지 않아서 그 뒤로 집에 돌아와 방바닥을 정말 열심히 닦았다.
아이들 키우며 살림한지 벌써 6년차지만 요 최근 한달여처럼 내가 우리집 방바닥을 구석구석 자주 닦아본 적이 없었다.
연앤네이쳐를 통해 알게된 플라잉요가를 주말에 했던 일은 두 아이키우며 잠시도 내 시간 갖기가 어려웠던 나에게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깊이 위로받고 풀어줄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박지원선생님이 권해주신 '히프노버딩' 책도 출산 준비하면서 마음에 참 큰 힘이 되었다.

남편도 나도 이번 출산을 통해 정말 많이 느끼고.. 또 배웠다.
우리가 부부로서, 세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고 함께 키우는 부모로서 정말로 한 걸음 더 깊게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천천히... 잘 새기고 정리하면서 우리 가족 모두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준 바다와 함께
잘 성장해가야겠다.


바다의 출산이 가까워오면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었던 여러 이웃들, 마음으로 따뜻한 기운을 보내주었던 모든 친구들...

그 모든 분들 덕분에 바다도 나도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모두들...
정말로 고맙습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