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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28 라디오를 듣는 시간 4
하루2012. 11. 28. 23:19
가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아침 나절, 연수가 만화영화를 잠시 보고 연호가 제 형 곁에서 뭔가에 몰두해 놀때 
그때 보통 나는 얼른 국을 끓이거나 반찬을 만들고, 설겆이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아무튼 집안일을 부리나케 하는 오전 시간이 있는데
그 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 

부엌 싱크대 찬장에 붙어있는 작은 라디오를 켜놓고 일을 하노라면
잠깐 아이들 생각이나 집안일 생각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디제이가 읽는 짧은 글 같은 것에 더 집중하게 될 때가 있다.
잠시 내 일상에서 벗어나보는 것 같은 그 잠깐의 시간이 좋다. 

아직은 어려 한가지 놀이를, 엄마 없이 오래 할 수없는 연호가
금새 '엄마~~'를 부르며 뛰어와 옷자락에 매달리지만
귤 하나를 까서 손에 쥐어보내기도 하고, 연수에게 '연호 데리고 이것 좀 하면서 놀아줘라' 하고 부탁하기도 하면서
어렵게 집안일을 하나씩 하는 동안
라디오는 멀어지기도 했다가, 다시 귀에 와서 붙기도 하면서 때로는 마음 뭉클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저녁이면 5시 좀 넘을때부터 부엌 라디오를 켠다.
내가 주로 듣는 방송은 KBS 1FM (93.1) 인데 오전에는 클래식 방송이, 저녁 무렵이면 국악과 월드뮤직이 나온다. 
저녁 6시에 시작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은 처녀시절부터 즐겨 듣던 방송이다.
퇴근하던 저녁, 한강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듣던 그 음악방송을 지금도 나는 제일 좋아한다.

몹시 고단했던 며칠전 저녁, 저녁밥상을 차리면서 무심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데
'오늘 하루도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하는 세음 디제이 정은아씨의 목소리에 그만 마음이 울컥했다. 
그래.. 모두 힘들다. 이 시간,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두가 오늘 하루도 참 애쓰고 힘들었을 것이다.
추운 저녁, 옷깃을 여미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거리의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는 작지만 따뜻한 위로의 인사..
씩씩한 아이들과 보낸 고단한 하루 끝에 부엌에 불을 밝히고 따뜻한 밥을 푸고 국을 데우는 지친 내게도 '수고많았다..'고 따뜻하게 말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얼마전까지도 연수는 엄마가 라디오를 틀면 저는 제 노래를 듣고싶다면서 
거실 오디오로 가서 동요CD를 틀곤 해서 
나는 맘편히 내가 듣고픈 노래를 조용히 듣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얼마전부터는 엄마의 라디오 청취를 방해하지 않게 되었다.
저녁 6시 반쯤하는 '일기예보' 덕분이다. ^^
연수는 일기예보 듣기를 좋아해서 내일은 어디에 강풍이 부는지, 기온이 어떤지, 눈소식이 있지는 않은지 집중해서 들으려고 애쓴다. 궁금한 것도 많아서 일기예보 도중에도 '엄마 그게 무슨 말이야?' 묻기 바쁘다. 
무튼 그렇게 좋아하는 일기예보 듣는 재미에 엄마가 라디오를 켜면 일기예보는 언제쯤 하는지 묻고 제 놀이를 하며 기다리다가 '연수야 일기예보한다~'하고 알려주면 라디오 앞으로 달려온다.

어느날은 오전에 클래식 방송에서 연수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벼랑위의 포뇨' 주제곡을 피아노로 연주한 음악이 나왔는데
연수는 '포뇨 노래가 나오네~!'하면서 무척 좋아했다.
'어제는 일기예보가 나오더니, 오늘은 갑자기 포뇨 노래가 나오네. 엄마, 포뇨 노래는 몇 시에 하는거야?' 하고 물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갑자기' 흘러나올 떄의 기쁨을 다섯살 우리 꼬맹이도 이제 알게 되었을까...^^

클래식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듣는 것은 좋아하는 나는
연수가 '엄마 이건 무슨 노래야?'하고 물어보면 가끔 제목이라도 아는 곡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얘기해준다.
'아기코끼리의 산책'이란 곡을 듣고 묻는 연수에게 '이건 아기코끼리가 꿍짝꿍짝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음악으로 만든거야..'하고 얘기해주었더니 재밌다고 좋아했다.

음악은 그것이 담고있는 많은 이야기속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그리고 음악속의 풍경은 다시 지금 내가 고민하고, 꿈꾸고, 살아가는 지친 삶의 면면과 연결되어
떄로는 위로를, 때로는 향수를, 때로는 슬픔과 행복을 조용히 마음에 안겨준다.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참 좋다. 
셋째를 낳고 또 한동안은 라디오 한번 켤 짬 없이 종종거리게 될 것 같지만..
그떄까지는, 이 겨울이 가는 동안은 
하루에 두번, 라디오를 들으며 일을 하고 잠시 식탁의자에 앉아 쉬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맙다.





며칠전 공지영씨 산문집에서 읽은 한 시조도 마음에 많이 남아 여기 같이 적어둔다.



저음으로 말할 것
잔잔하게 웃을 것

햇빛을 가득하게
음악은 고풍으로

그리고 목숨을 걸고
그 평화를 지킬 것


- 유자효 '가정'  

  











둘이 잘 논다. 그럼 엄마는 일하면서 음악도 듣고, 모처럼 잠시 앉아 쉬면서 노는 모습 구경도 한다.
오늘은 거실 매트가 두 녀석이 들어가 숨는 동굴로 변했다.





형이랑 하는 매트놀이, 신나~!!




사진에는 좀 위험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하게 넘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 

날으는 양탄자도 되었다가, 숨바꼭질하면서 숨는 동굴도 되었다가.. 매트 하나로 형제는 잠시 아주 즐거웠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