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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2012. 11. 1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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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시절의 첫 집은 한옥이었다. 
살짝 비탈진 넓은 밭을 내려다보며 아담한 뒷동산 품에 폭 안겨있던 마당 넓은 기와집.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났고, 열살 무렵까지 살았다. 

어린 시절에, 기억이 존재할만한 시절부터 치자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았던 그 집의 많은 풍경들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왼쪽부터 할아버지할머니가 사시던 사랑방, 엄마아빠가 살던 작은 방, 증조할머니가 계시던 안방, 그리고 밑으로 큰 계단을 쑥 내려서면 아궁이와 가마솥, 흙바닥을 한 큰 부엌이 있었다. 
그 부엌을 꼭지점으로 집은 ㄱ자로 꺽어져서 아래쪽으로는 작은 고모가 살던 건넌방과 온갖 물건이 가득한 광이 붙어있었다.
집 뒤켠에는 장독대가 있는 뒷마당과 물을 쓸 수 있는 수도가가 있었고 작은 언덕위쪽에 집안일을 도와주시던 영세할머니와 그 아드님들이 살던 작은 행랑채가 있었다. 행랑채로 가는 언덕에는 큰 가마솥 아궁이가 있어서 집에 큰 일이 있을때는 엄마가 거기서도 국을 끓이곤 하셨다. 그 곁에 밤나무에서 가을이면 밤송이들이 툭툭 떨어져 어느날은 언니가 머리에 밤송이를 맞고 울기도 했었다. 아래 밭으로 가는 길에는 화장실과 소들이 사는 우사가 있었다.
 
뒷동산이라고 했지만 뒤와 옆으로 꽤 넓은 야트막한 산이었던 뒷산에는 아빠가 키우시던 사슴들이 여러마리 살았다. 
녹색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사슴 축사안에서 산비탈에 난 풀들을 뜯어먹고 또 떄론 철망 근처까지 와서 나를 보던 고운 사슴들이 기억난다.

강릉은 소나무가 많은 고장이다.
어느 눈 오던 날, 사랑방에 붙은 대청마루에 서서 하얗고 굵은 눈송이들이 쏟아지는 하늘과 뒤산의 키 큰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은 아마 설날이었던가보다. 나는 고운 한복을 입은 것이 설레고, 멀리 살던 친척과 사촌들이 모두 모인 것도 신나고, 떄마침 큰 눈이, 함박눈이 밤부터 내려서는 날이 환해진 아침에도 쏟아져내리는 장면이 좋았던 모양이다. 
차례를 준비하며 잠시 모두 대청마루에 나와 눈을 보던 그 아침 풍경이 이리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집의 방들도 모두 잘 기억난다.
우리 남매중 제일 큰 언니는 대학생이던 작은 고모와 함께 건넌방을 썼다. 
그래서 그 방에서는 예쁜 고모와 언니 냄새가 났다. 물건들도 모두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어린 내게는 그 방에서 노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어느 겨울에 작은 고모는 친구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붓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아주 여러장 정성껏 만드셨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거드는게 좋았다. 
나는 증조할머니와 함께 안방에서 지냈다. 집의 본 마루와 붙어있는 안방에는 증조할머니의 물건들이 들어있는 오래된 낮은 옷장이 있고, 그 위로 이불이 곱게 개어져 올려져 있었는데 나는 그 이불 위에 올라가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다. 어둑한 오후, 거기 가만히 누워있으면 가족들이 안방문을 열어보고도 나를 얼른 못찾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높은 곳을 좋아한다는걸 나는 잘 안다. 숨어있는건 더 좋아하고..^^ 
오빠는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잤다. 사랑방에서는 할아버지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의 머릿기름, 작고 까만 트랜지스터라디오.. 어린 시절, 나는 오빠와 그닥 사이가 좋지않은 여동생이었지만 그 방에서 가끔 꿍짝꿍짝 재밌게 놀았던 기억도 난다.

부엌도 눈에 선하다. 
한겨울, 부엌 가마솥에서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팥시루떡을 쪄내시던 할머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팔시루떡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밤잠도 참아가며 그 순간을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내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기도'라고 불리던 겨울 행사는 집 안팍의 여러 신들께 그 한해도 액운없이 무탈하게 잘 지낼 수있기를 빌면서 팔시루떡과 얼큰한 명태국을 시원하게 끓여 대접하고 그 깊은 새벽에, 자지않고 기다린 혹은 자다 깬 어린 아이들까지 함께 맛있게 나눠먹곤 했다. 
그 한옥집 부엌의 큰 가마솥에서 할머니가 고으시던 달콤한 엿, 두부를 직접 만들어 큰 보자기로 두부 물을 짜내던 풍경... 
엄마와 할머니께는 허리가 끊어질듯한 고된 노동이셨을 그 모든 수고로운 부엌일들이 어린 내게는 행복하고 맛있고 더없이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늘 열명이 넘던 대식구의 먹거리를 마련하고 농사일을 해내시느라 고생하셨던 어른들 덕분에 유년의 나는 참 풍요로운 추억들을 새기며 자랄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고보니 어른들의 젊은 시절인 그 시간이 얼마나 눈물겹게 지나갔는지 알 것 같다. 
사랑방 할머니 곁에 누워 들었던 옛날이야기들도 잊을 수 없다. 떼굴떼굴 구를만큼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달은 밝고, 창호지바른 문밖으로 바람소리가 들리던 그 밤에 할머니 팔을 베고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좋은 밤동무가 있었던가..  지금 그 할머니께서 노환으로 많이 편찮으시다. 멀리서 소식만 듣고 아직 내려가 뵙지 못해 죄송하다. 이번 주말에 뵈러가면 오래오래 꼭 안아드려야지.. 


어린 시절의 꼬맹이 욱은 대책없고 무모하고 망아지처럼 뛰어놀기 좋아하고 언니오빠에게 잘도 대드는 막둥이여서 크고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는데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너무 재밌고 신이 나서 제법 경사와 커브가 심한 마당 아래 길로 아빠의 큰 자전거를 타고 쌩~ 내려가다 그대로 엎어져 여기저기 까지고 다친 적도 있었다.
쓰고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별로 달라진게 없고나. ㅜㅜ
  
큰 벽돌이 드문드문 깔려있던 그 길가에는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던 수도가가 있었고, 우리집의 첫자동차였던 갈색 트럭 '세레스'가 세워진 차고가 있었다. 반대쪽 밭 입구에는 벌통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벌통에서 꿀을 모으는 날, 우리집에 놀러왔던 내 어린시절 친구는 벌에 쏘여 엉엉 울면서도 맛있는 꿀을 얻어먹고 좋아하기도 했었다. 어느 해에는 그 밭에 딸기를 심어 딸기 달리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았던 기억도 난다.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고있던 어느 여름 저녁, 나 혼자 동네친구들과 어두울 때까지 놀다가 식사시간에 늦게 들어와서 마당에 서서 야단맞던 기억도 난다. 시멘트로 된 뜨락, 그리고 그보다 높은 마루에 앉아있는 식구들이 얼마나 까마득히 높아보이던지.. 고개를 푹 숙이고 흙마당 위에 서있던 일곱살, 여덟살 무렵의 까맣고 조그만 여자아이.. 생각난다.
ㅎㅎ 이런 기억도 있다.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내일이 개학이었던가.. 혼자 속태우며 밀린 방학숙제를 하느라 건넌방에 엎드려 낑낑대고 있는데 아빠가 마루에 앉아 언니오빠와 얘기를 하고 계셨다. 방학숙제는 다 했냐는 아빠의 물음에 다 했다는 모범생 언니오빠의 대답이 들려왔고, 그래야지 숙제는 미리미리 잘 해야지.. 하는 흐뭇한(ㅜㅜ) 대화가 울려퍼지는 속에 나는 얼마나 마음이 다급해졌었던가.... 

햇볕 따뜻한 봄날, 그 뜨락에 세수대야를 놓고 엄마가 부엌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다 부어주시면 거기에 머리를 감던 기억도 난다. 참빗으로 긴 머리의 이를 잡아주신 적도 있고.. 여름에는 뜨락에서 봉숭아를 찧어 손가락에 감잎을 감아 봉숭아물을 들였었다. 우습고 촌스럽고 따뜻한 그 모든 풍경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 안에 열살 무렵까지의 어린 욱이 지금도 늘 숨쉬고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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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친정집인 양옥집이 지어진 것이 1987년 이니까(시멘트 벽에 지금도 준공기념일자가 적혀있다) 아마 내가 열살되던 해에 나의 첫 집인 한옥은 새로 나는 고속도로 부지에 포함되면서 헐려 버렸다. 
안방에서 뒷문을 열면 보이던 예쁜 장독대 풍경과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던 너른 밭풍경을 잃고 우리는 새 양옥으로 이사했다.
그 집에서 십년을 살고 스무살이 되면서 나는 서울로 와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양옥집에서 보냈던 십대 시절에도 집에 대한 추억이 있고, 이십대를 보낸 서울의 여러 자취집들에도 잊을 수 없는 여러 추억들이 그 공간에 깃들어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첫집과 거기서보낸 유년기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이 풍성한 기억을 다른 곳에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십대부터는 본격적인 학창시절이라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많아 상대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기억은 유년기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집에서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도 많이 줄었고..
하지만 공간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 보고 즐기고 그 속에 깃들어 놀 수 있는 꺼리들이 양옥부터는 훌쩍 줄어든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양옥집에서도 마당은 넓었지만 예전에 한옥에 살 때처럼 그 마당에 큰 멍석을 펴놓고 가족들이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부터, 곶감만들 감을 마당 가득 따놓고 기계를 돌려가며 감껍질을 깍던 일도 없었고, 할아버지가 짚을 꼬아 새끼를 만드시는 일도 없었다. 
뒷마당 아궁이에서 국이 펄펄 끓고, 그 수도가에 둘어앉아 국거리를 다듬는 엄마와 할머니 곁에서 무언가를 얻어먹는 재미에 기웃기웃거리는 일도 없어졌다.

처음으로 하루 반나절을 다녔던 여섯살의 유아원은 동사무소 직원이었던 예쁜 여선생님이 혼자 수십명의 농촌 꼬마아이들을 모아놓고 노래도 가르치고 미숫가루도 한그릇씩 타주던 곳이었는데 
허름하고 큼직한 마을창고 안에 차려졌던 그 유아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우리집 뒷산 좁은 산길에서 참았던 똥을 바지안에 싸고는 '엄마~!!!'하고 부르며 어기적어기적 뛰어왔던 기억.. 
그 와중에도 봄이었나, 가을이었나 그 산길에 빛나던 햇살은 참 예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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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을 아파트에서 키우며 이 아이들은 유년시절의 집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게 될까... 궁금하다.
놀이터 어느 틈새에서라도 흙을 찾아내고 거기서 땅을 뒤지고, 나무가지와 돌로 무언가를 만들고 풀벌레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긴 하지만 
내 아이들은 어떤 풍경을 기억하게 될까... 생각하면 때로 마음아프다.
앞동 뒷동 똑같이 키큰 아파트로 둘러싸인 집, 작은 풀밭과 나무와 비오면 생기는 작은 물웅덩이에서 철벅거리면서도 마냥 신나고 행복해지는 아이들이지만
다 자란 어느날 '내 인생의 풍경이야'하면서 떠올려볼 수 있는 키큰 나무숲, 함께 살던 여러 생명들, 뛰어놀던 들판의 풍경이 없다는 것이 미안하다.
아이들이 꼭 나와 같은 기억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높은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집 풍경은 크게 슬플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는 그저 일상의 일부, 자연스럽고 어쩌면 그것이 이 아이들에게는 안도스럽고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그래도 도시의 엄마는 고민한다.
아이들을 조금 더 땅이 가깝고 하늘을 가리는 것이 적고, 마당과 숲이 있는 곳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다고.
신 신고 현관 문만 열면 바깥인 집에서 아이들끼리도 얼마든지 마당에 나가 놀다가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집의 추억을 갖게 해주고 싶다고.
다음 집을 구할 때면 꼭 그런 집을 찾아야지.
요며칠 이사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 진행중이긴한데.. 여러모로 엄두내기가 쉽지는 않다. 
마침 살아보고싶은 마당있는 집을 알게되어서 아이들 데리고 남편과 함께 한번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 집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는 하지만 내년 봄에 태어날 바다와 아직 어린 연호가 계단많은 주택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이런 걱정, 저런 걱정에 쉽게 발걸음이 떼지진 않는다. 
그러다 내 어린 시절의 집에 대한 생각이 나서 이모저모 되새겨보다보니 '그래, 연수가 더 크기 전에, 학교에 다니기 전에 마당있는 집, 시골동네에서 자라면 좋을텐데..'하는 마음이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 
좀더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요즘 아파트 주차장에는 이사 트럭들이 심심치않게 보인다. 겨울, 봄... 이사철이 돌아오고 있나보다. 이 도시에서 마음편히 내 가족과 발뻗고 누울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 하나 마련하는 일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아이를 낳기 전, 처음 결혼하고 신혼집을 구할때는 왜 그랬는지 꼭 '아파트'를 구하려고 했다. 
부모님이 그걸 바라시기도 했지만 나도 왠지 '아파트' 정도는 살아줘야(?)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축에 들 것 같아서 다른 생각은 전혀 안해보고 아파트를 찾았다.
도시의 삶에서 아파트만큼 관리하기 편하고 사는데도 큰 불편없도록 갖춰진 집도 많지않으니 형편만 되면 아파트에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아이도 키우고 나이도 먹고 하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내가 살고싶은 삶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다. 
지금 아는 것들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후회도 들지만 
때늦었기도 하거니와 그 때는 그게 가능하지도 않았다는 걸, 조금씩 더 살아보고 느끼고 찾아가야 '나'란 존재도, 그 존재가 원하고 살아가고 싶은 방향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서 그 동안의 시간을 고맙게 여겨야겠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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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꼬맹이들은 안방 이불장의 이불을 모두 끄집어내고 이불과 쿠션을 계단삼아 사뿐히 밟고 올라가서는

이불장 2층에 자기들만의 침대를 꾸미고 거기서 한참 재밌게 놀았다.

이 모든 것이 다섯살 연수의 힘이면 가능하다.

연호는 형아가 만든 2층 침대에 저도 올라가고 싶어서 고단하다고 드러누워 이 모든 사태를 수수방관하기만 하는 엄마 옆에서

'엄마, 아야~, 응응~~'(저도 아야 옆에 데려다달라는 말) 수차례 조르고 낑낑거리고 야단이었다. 

그래도 꿈쩍 않고 결국 지친 연호를 낮잠까지 한숨 재우며 같이 잔 엄마가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 번쩍 안아올려주자 연호는 좋아서 저 위에서 춤도 추고 아야랑 나란히 누워보며 뒤늦게 소원을 풀었다.


어느 집에 살든 아이들은 잘 놀고 잘 클 수 있다. 

재미있게, 행복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면서. ^^

그래도 이 펄펄한 사내녀석들을, 것도 셋이나 데리고 놀 일을 생각하니 엄마는 마당이 간절해진다.

집 밖에 풀어놓고 힘을 많이 빼야 저녁에도 일찍들 자고, 밥도 잘 먹고 하겠지? 

다가오는 겨울은.. 그래도 둘이고 아직 어리니 지낼만 할 것이다. 

힘을 내자, 힘을 내. 

오늘 오후처럼 몸안의 동력이 다 소진된 것같이, 밧데리 떨어진 자동차마냥 꼼짝하기 싫고 짜증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때가 자주 오지 않기만  바라면서...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