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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새댁 책2010. 1. 21. 00:13


정말 좋은 책을 만났다.
덕분에 부엌에 있는 시간이 훨씬 즐거워졌다.


평화가 깃든 밥상 - 10점
문성희 지음/샨티



요즘 우리집 식탁 위에는 이 책이 항상 있다.
낮에는 그 날 만들 음식이 나오는 쪽을 펼쳐놓고 오며가며 짬짬히 들여다보고,
밤에는 미처 못읽은 부분들을 천천히 조금 더 읽고 덮어놓는다.
내일 아침이 되면 또 어딘가를 펼쳐놓고 있을 것이기에 식탁 한 구석, 그 자리에 가만히 둔다.


쉽고 소박한 문성희의 자연요리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밥상 차리기
란 부제가 붙어있는 범상치않은 요리책,
바로 <평화가 깃든 밥상>이다.

이 책에 나온 요리들은 쉽다. 그런데 그 맛은 깊다. 
이게 참 신기하다.
뭘 그닥 하지 않는데, 바쁘게 굽고 볶고 후다닥 거리지도 않고 그저 천천히 익히고 푹 끓이는데 맛이 좋다.
초보주부가 부엌에 서서 뭘 하나 만들려치면, 그게 국이든 반찬이든 재료를 준비할때부터 끙끙대고 연기가 나며 타기 일쑤인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어수선하고 피곤한 분주함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너희들이 요가 상태에 머무르면서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면 많은 사람들이 유익을 얻을 것이다. 
너희들의 음식과 음료는 순수하고 소박하며 기품이 있어야 한다. 침묵 속에서 신의 사랑으로 만든 음식이 곧 마음을 만든다."
  
이 책에 자주 나오는 '슈마리트'(신의 가르침이란 뜻)다.
안정되고 차분한 마음, 즐겁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그 자체가 몸과 마음을 살리는 약이 되고 생명이 된다는 생각.. 
세살배기 아이와 씨름하다보면 밥때는 어찌 그리 금방 돌아오는지, 이번엔 또 뭘 해먹나.. 엄마는 고민인데 아이는 계속 저와 놀자 매달리니 부엌에서 조용히 식사 한끼 준비하기가 정말 어렵다.
이런 마당에 어찌 안정되고 차분한 마음을 담을 수 있으랴... 싶지만, 그래도 책을 본 뒤로는 요리하는 순간만큼은 한결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수 있는 제일 큰 이유는 부엌에 서있는 시간이 전보다 훨씬 짧아졌기 때문이다.

책 첫머리에 저자는 '요리 솜씨 비법1,2,3'을 간단하게 정리해놓았는데 그중 두번째, '쉽고 즐겁게 요리하기'가 참 와닿았다.

"부엌에 오래 있는 아낙치고 음식 솜씨 있는 이 없다"는 옛말이 정말 일리있는 말이예요. 모든 엄마들이 하루도 쉼 없이 하는 일이 부엌일이니 요리는 무엇보다 쉽고 간결해서 즐겁게 할 수 있어야해요. 밥상 위의 가짓수를 줄이는 것과 설거짓거리를 줄이는 것도 요리를 즐겁게 만드는 비결 중의 하나예요... 씻다가, 썰다가, 익히다가 하는 식으로 두서없이 이 일, 저 일을 섞지말고, 손질할땐 모든 재료를 손질해놓고, 씻을 땐 모든 재료를 함께 씻어놓고, 썰 땐 모든 재료를 다 썰어 요리할 순서대로 각각 큰 접시에 담습니다... 요리를 만들땐 그릇을 씻어가며 하는게 좋아요. 이 그릇 저 그릇 다 내어 사용하다보면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설거짓거리만 산더미입니다. 그러다 보면 두 번 다시 요리를 하기 싫어지니 설거짓거리를 미리 줄이는게 좋아요. (책 21쪽)

기본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이 작은 충고가 내게는 참 큰 것이었다. 이 일 저일 섞지말고 차근차근, 차례차례 해나가다보면 짧은 조리과정은 금세 끝나있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할 일은 연수와 놀며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는 일.

요즘 우리집 식탁에 자주 오르는 국인 '무호두탕국'.
가을무는 참 달고 맛있다. 무나물 같은 반찬을 해도 맛있고, 국을 끓여도 시원하고 단 국물맛이 좋은지 연수가 아주 잘 먹는다.
버섯은 집에 있는 한가지만 넣고, 호두나 밤은 넣을때도 있고 없으면 그냥 끓여도 맛있다.
이 요리 한가지를 하면서 나는 국물요리의 여러 비법(?)을 이제사 배우게 되었다.

(무, 버섯, 연근, 밤 같은 재료들을 썰어두었다가 간장과 참기름을 넣어 볶는다)
볶을 때 음식 맛이 결정되는데 간장과 참기름 향이 재료에 스며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 국물 요리인 국의 맛을 잘 내는 비결은 재료와 장맛의 어울림이므로, 국물안에서 서로 어우러질 수 있게 충분히 시간을 들여 끓이는 게 중요하다.


말린 애호박나물, 무나물, 버섯장조림.. 한번 만들어두면 끼니때마다 입맛을 살려주는 이 반찬들은 찾아보면 만드는 방법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다. 말린 애호박나물에 불린쌀을 갈아두었다가 쓰는데 그렇게 따로 뭔가 하나 더 준비해두는 것 정도가 제일 번거로운 것이니 그 외의 과정은 그야말로 씻어서 썰고, 냄비에 넣어 단순한 양념 두어가지 넣어 잘 익히면 끝이다.
재료의 풍미가 살아있으면서도 짜지 않고 입맛도는 반찬 한가지만 꺼내놓고 거기에 따뜻한 밥만 비벼줘도 아이는 잘 먹으니 내가 만들었지만 참 먹을때마다 알려준 분께 고마운 마음이다. 

저자인 문성희 씨 소개를 보니..

이십여 년간 요리 학원 원장으로 살면서 맛있고 화려한 요리를 만들고 멋진 요리상을 차리는 일에 몰두해왔다.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과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고 먹는 것이고, 그런 음식을 찾기 위해서는 마트가 아니라 밭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과 조리 과정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요리 학원을 그만 두었다...
거친 밥과 푸성귀, 생식가루를 먹고 사는 동안 점차 몸 세포가 변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끼면서 생명을 살리는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분이 갖고 있는 밥상의 원칙 열가지가 다 마음에 와닿는다. 그중 지금 바로 내가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것-채식-도 있지만 특히 공감하고 바로 우리집 밥상에 적용해보고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셋째, 먹을거리를 손수 재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득이할 때는 유기농 재배 농가나 협동조합, 유기농 매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구매한다...
다섯째, 되도록 조리 가공을 적게 한다. 신선한 날것을 많이 먹고, 익힐 때는 가열을 최소화하며, 양념을 적게 하여 재료의 신선한 맛을 최대한 살리고 살짝 찌거나 굽거나 데쳐서 먹는다.
여섯째, 조리법을 간단하게 하는 대신 한가지 요리에 다양한 채소를 골고루 사용하고 밥도 다섯 가지 이상의 알곡을 섞는다. 반찬 가짓수를 두 세개 이상 놓지 않으며, 조리된 음식은 서른여섯 시간안에 먹고 음식물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열째, 씨앗이 자라 꽃 피우고 열매 맺도록 한 흙, 공기, 물, 햇빛의 수고로움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내게 들어와 내 몸으로 모양을 바꾼 그것들, 곧 내 몸에게 자주 사랑을 보낸다. (책, 9-10쪽)


이 책에 나온 요리들을 아직 많이 해보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몇가지 해보면서 느낀 것은
한 요리의 조리 과정은 짧지만 음식 하나를 준비하는 시간은 길다는 것이다.
서너시간 전에 콩을 씻어 불려놓고, 말린 버섯이나 호박, 가지같은 나물도 불려놓고.. 약한 불에서 푹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있고
하룻밤쯤 재워두다가 불려두었다가 다음날 끓이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바쁘지 않게, 천천히 흘러간다. 콩이 불는 동안 아이와 책을 읽고, 집을 치우고 빨래도 한다.
하루밤 기다리며 내일 그걸 끓이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해하며 기다리는 것도 좋다.
조리과정이 단순하지만 맛은 깊은 것은 아마도 그 기다리는 시간들 때문이 아닐까. 그 시간에 실리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밥상을 바꾸는 것 만으로도 화석 연료는 물론, 물과 세제의 사용도 현저히 줄일 수 있었고, 쓸데없는 일손과 조리하는 시간도 줄여 부엌일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소유를 줄이게 되었지요.
내가 먹는 바로 그것이 나를 만듭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사랑과 행복의 에너지가 전달돼서, 먹는 사람도 충족함을 느낄 수 있어요.(10쪽)
나는 먹는 것이 단순해지면 생각이 단순해진다고 믿어요. 생각이 단순해지면 지각이 선명하고 명료해져서 삶 속에 복잡하게 파고든 여러 가지 불필요한 관계에도 휩쓸리지 않게 돼요. 불필요한 관계가 정리되기 시작하면 시간이 느슨하게 흐를 것이고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163쪽)



요리 한가지에만 해도 이만한 삶의 철학이 깃든다.
그러니 우리 삶을 이루는 한 가지, 한 가지 모두를 깊이 느끼고 진심으로 수행하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체득할 수 있을까..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보양식(모두 채소로 만든다 ㅎㅎ)이 가득한 '열두 밥상'과 이름들만 봐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곱 죽상'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안심 간식'과 약선 김치들, 효소와 소스 만드는 법까지 참 알차고 고마운 내용이 가득한 이 책, 평화롭고 건강한 밥상을 꿈꾸는 모든 지인들께 권하고 싶은 책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