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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6 자연스러운 변화 6
umma! 자란다2011. 4. 6. 11:20









남편이 회사 점심시간에 찍어서 보내준 민들레 사진.

어제는 연수와 동네 뒷산을 산책하다가 올봄 들어 처음으로 제비꽃을 보았다.
양지바른 담벼락 아래, 진한 보라색 작은 꽃잎.
따뜻했던 주말을 지나고 나니 목련나무들도 하얀 꽃봉오리가 몰라보게 부풀어 있었다.

봄이.. 이제야 온 것 같다.
어느 해보다도 길고긴 진통끝에.











일요일에는 올림픽공원에 처음 가보았다.
이사한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 크고 오래된 공원은 아름답고 한적했다. 
몽촌토성의 잔디위로 봄볕이 따뜻하게 일렁거렸고, 미술관(soma)옆 넓은 잔디밭에 펼쳐진 조각들은 한번에 다 둘러 보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큼직하고 신기한 조각품들이 그저 그늘을 드리운 큰돌이나 나무처럼 여사로워질 때까지 천천히, 자주 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점심먹으러 갔던 파스타 집에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졸린 연수가 엄마를 꼭 껴안더니 뽀뽀를 퍼부어 주었다.
우린 이런 사이라구~ 대로변에서 자유롭게 뽀뽀하는 사이! ^^ 아빠, 부럽지? ㅎㅎ











우릴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친 김에 더 찐~하게. ㅎㅎㅎ












올 봄들어 처음 돗자리를 펴보았다. 이만큼 날이 따뜻해졌다는 것이 신기하다. 
몸무거운 엄마는 연수와 아빠가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동안 돗자리 위에 길게 누워 해바라기도 잘 해주었다. 
평화에게도 따신 봄볕이 전해졌기를. 











남편이 아이폰으로 찍어 트윗에도 올린 올림픽공원 풍경.
연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도 엉키는 것 하나없이 모두들 푸른 하늘을 양껏 차지하고 날았다.
늦은 오후쯤 되니 가족체육대회라도 열린 것처럼 소풍나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하늘처럼 땅도 여럿이 함께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복잡하다는 생각보다는 여럿이어서 더 즐겁고, 구경하는 재미도 더 있었다.
이런 곳에 가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모두 이런 잠깐의 휴식이 더없이 귀하고 절실한 소시민들이구나... 하는 동질감이 진하게 든다. 내일이면 또 바쁜 일터로, 복작복작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지라도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하는 휴일 한때만큼은 얼마나 인간답고 아름다운지. 
그러나 일요일에도 일해야 하는 엄마아빠가 있고, 모처럼의 공원 나들이가 어려운 아이들도 많다.
휴일의 권리, 휴식의 권리, 가족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있는 권리... 그런 것들이 더없이 사무치는 날들이다.  













이 날 오후 늦게 커튼설치 기사님이 오셔서 우리집 거실과 안방, 연수 놀이방에 예쁜 커튼을 달아주고 가셨다.
밤에 연수는 느닷없이 제 놀이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연수방에도 커튼을 달아야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귀여운 고양이커튼을 발견해서 "이걸로 달아줄까?" 물었을 때 연수는 무척 좋아했다.
커튼있는 집에 가서 그 뒤에 숨어 숨바꼭질도 하고, 까꿍놀이도 했던 기억이 있어 우리집에도 커튼을 단다니 참 좋았나보다.  
그런 연수를 보고 아빠가 장난삼아 "연수야, 이제 고양이커튼 달고나면 연수방에서 연수 혼자 잘까?"하고 물었더니 대뜸 "응!"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 얘기를 기억했던지 고양이 커튼이 달렸으니 이제 제 놀이방에서 혼자 자겠다는 연수를 보며 웃음이 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진지하면서도 뭔가 어색한 말투. 짐짓 다 큰 아이처럼 의젓하게 보이고 싶으면서도 실은 엄마가 잡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듯한 시선..^^

연수가 이런 시선과 말투를 종종 쓸 때가 있다.
온가족이 외출준비로 바쁜 주말 아침 같은 때.. 옷입자며 따라다니던 엄마가 끝내 폭발해서 "빨랑 옷 안 입어?! 엄마아빠 다 가는데 너 혼자 집에 있을거야?"하고 묻기라도 하면(이건 연수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닌데 엄마아빠는 흥분하면 가끔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한다) 연수는 짐짓 시무룩해진 체하며 "응, 안갈래. 연수 혼자 집에 있을래."하고 대답한다. 
바보같이 제 발등찍은 엄마는 그만 어물어물.. "더 크면 혼자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같이 가야해. 얼른 옷입고 가자, 연수야..." 하고 달랠 수 밖에 없다.
놀이터에서도 이제는 그만 집에 가야한다며 앞장서 걸어가는 엄마를 마지못해 따라오면서 "엄마 혼자 가.. 연수는 여기 계속 있을래."하고 버텨보다가, 또 따라오다가 하는 연수에게서는 '혼자서도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있는 큰 형아'가 되고싶은 마음과 '엄마가 제 뜻을 좀 따라주었으면..'하는 바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말에는 '설마 엄마가 나를 여기 혼자 두고 가지야 않을테니..'하는 믿음도 들어있다. 

아무튼 이 날 저녁 '혼자 자겠다'는 연수의 고집은 마침 몰려온 졸음과도 겹쳐서 아주 완강한 상태가 되었고, 
나와 남편은 서로 마주보고 난감해하다가 결국 연수방에 이부자리를 펴주었다.  
대견함 반, 서운함 반.
연수는 34개월이 되도록 한번도 엄마와 떨어져 자 본 적이 없다.

그런 녀석이 제 뜻대로 혼자 자게 된 것이 신나는지 이부자리에 쏙 들어가서 눕더니 곁에 앉은 나에게 "엄마, 나가." 했다.
나는 나대로 감상에 젖어서 안그래도 콧날이 시큰거리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다.
얼른 불을 끄고 눈물을 닦고는 연수 옆에 누웠다. "연수 잠드는거 보고 나갈께. 그리고 연수야, 자다가 엄마 보고싶으면 안방으로 와. 아직은 연수도 어리니까 혼자 안자도 돼. 나중에 더 커서 무섭지 않으면 그때 혼자 자도돼.." 

결국 연수는 이날도 안방에서 잘때와 별다를 바없이 엄마에게 옛날 얘기를 두어편 듣고, 엄마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몇차례나 조물락거리고 뒤척뒤척하다가 잠이 들었다. 
혼자 재울까.. 하다가 맘 약한 나는 '첫 날이니까.. 오늘은 방이 어떤지도 좀 봐야겠고..'하면서 결국 연수 옆에 가서 장난감들 사이의 비좁은 틈에 끼어잤다. 
여느 떄처럼 연수는 자다가 두어번 깼고 그때마다 엄마가 옆에 있는지 확인하고는 내 옆으로 와서 다시 누워잤다.  

다음날도 연수는 놀이방에서 혼자 자겠다고 했다. 이 날은 나도 연수를 혼자 재울 생각이었다. 
내 생각보다는 이르지만 혼자 자고싶어하는 마음이 들 때, 제 뜻대로 해내게 된다면 스스로 더 뿌듯해할 것 같았다.
하지만 둘째날 밤 연수는 결국 자다가 한밤중에 엄마를 찾아 안방으로 왔다. 마침 나도 불을 많이 때지않다가 어제오늘 보일러를 세게 튼 놀이방에서 새가구냄새 같은 것이 너무 심해서 잠든 연수를 안방으로 데려왔으면..하고 남편과 의논 중이었다.
연수의 '혼자 자기' 1차 시도는 이렇게 끝이 났다. ^^;  












변화와 성장.
아이들의 삶은 매순간 저 두 단어로 가득차 있는 것 같지만 
곧 동생이 태어나는 34개월 연수에게는 제 내부에서 우러나는 목표들뿐만 아니라 밖에서 부딪혀오는 도전들도 적지않다.
엄마아빠는 '곧 형이 되니 이렇게 해야한다'고 강요하는걸 조심하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연수는 은연중에도 많은 압력(?)을 받는것 같고, 제 스스로 궁금해하는 것도 많다.
평화가 태어나면 자동차에서 어느 자리에 타는지를 먼저 궁금해한 것도 연수였다.
"글쎄.. 평화 자리는 어디에 하면 좋을까?"하고 물었더니, 아빠 옆자리에 하란다. 뒷좌석에 있는 엄마 옆자리는 연수 자리니까.
그래서 너무 어린 아기는 앞자리에 탈 수가 없고, 큰 형아들은 앞자리에 앉을 수 있다. 앞자리에 앉으면 아빠가 운전하는 것도 잘 보이고, 밖에 차들도 잘 보일텐데... 정도로 엄마 아빠가 얘길하면 그 뒤로 연수는 속으로 갈등을 많이 한다.
그래서 어느 날은 자기 카시트를 앞좌석으로 옮겨달라고해서 거기 앉아 제법 며칠 잘 타기도하고, 또 어느날은 엄마 옆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연수가 처음 카시트를 떼서 아빠 옆 앞좌석으로 갔을때는 3년동안 꽉 차있던 옆자리가 널찍하게 빈게 허전하고 어색해서 눈물쟁이 엄마는 또 콧날이 시큰해졌었다.

앞자리에도 갔다가 뒷자리에도 왔다가, 혼자 자겠다고 놀이방에 이부자리를 폈다가 또 돌아오기도 하면서
연수는 그렇게 자라간다.
하루 아침에, 아니 며칠 아이를 울리더라도 아이 혼자 자도록, 동생에게 엄마 옆자리를 빼앗기다시피 양보하도록 만들고 싶지않다.
천천히, 제 마음의 힘으로 엄마 옆에서 한발짝 떨어지고, 동생 자리도 만들어주고 저만의 세상을 조금씩 더 키우게 되었으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성장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오듯이, 연녹색 새싹과 여리고 눈부신 꽃잎들이 가지를 뚫고 솟아오르듯이...
그런 자연스러운 변화들이 천천히 흘러가는 우리들의 삶을 채워주었으면.

자연스럽다고해서 치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겨울을 이겨낸 새싹을 보면 누구나 눈물겹듯이, 어느날 갑자기 핀 것 같은 작은 들꽃도 얼마나 치열하게 온겨울 제 생명을 지키고 힘을 키웠을지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
어린 아기가 자라는 것, 형이 되는 것, 제 힘으로 할 수있는 것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더디고 지루하고 걱정스러워서 떄로는 옆에서 짜증도 내고 채근도 하게 되지만 그나름대로 얼마나 애쓰고 있는 것인지만은 잊지말고 알아주어야겠다.. 다짐한다. 
 










엄마의 친한 친구인 지은이모가 놀러온 날. 
연수가 아주 어렸을때 이모랑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고 얘기했더니 다다다다 뛰어가 제가 잘 가지고노는 엄마 카메라를 들고왔다.
"연수가 엄마랑 이모랑 사진 찍어줄께~!"하더니 이렇게 예쁘게 찍어놓았다. ^^
생후3개월 연수를 조심스레 안고 사진을 찍었던 이모는 그 연수가 어느새 이만큼 커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보고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랬다. 그렇게 감격스러운 일이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이. 


방사능 비가 온다, 온다 해서 불안하기도 하고 '이번 지진으로 인해 우리가 겪을 어떤 불안과 고통이라도 일본인들이 겪고있는 것에 비하면 아주 너무나 작은 것'이라는 한상진씨의 메일 내용이 떠올라 슬프고 안타깝다.
저 아름다운 봄꽃들 위로, 엊그제 엄마아빠가 고향밭에 심으셨다는 감자 싹 위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뛰노는 잔디밭 위로 내리는 방사능비.
생각하면 눈물겹고, 그럼에도 살아있는, 자라는 모든 것들이 또 고마운 봄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