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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3 18개월 연호 12
umma! 자란다2012. 12. 13. 00:04




연호가 18개월을 꽉 채워간다.

이제는 제법 따라할 수 있는 말도 여럿이고, 사물들의 이름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이즈음의 제일 큰 변화는 그림책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림책은 형아의 전유물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연호도 그림책을 한두권 들고와 거기나온 동물들 이름과 소리 듣는걸 좋아하기 시작하더니

18개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엄마 무릎을 차지하고 앉아서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보리아기그림책처럼 그림이 크고 글밥이 적은 책은 한번 앉아서 꽤 여러권을 보고

이 책에 나온 곤충이나 동물이 다른 책에도 나온다는 것도 기억해서 책을 보다말고 같은 동물이 그려져 있는 다른 책을 또 찾아오기도 한다. 


마냥 어린 아기인 것만 같은 둘째가 또 한번 쑥 자랐구나.. 싶어서 뭉클하기도 하고 

연수때 한번 겪었던 일임에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아이들의 성장을 하나씩 맞닦뜨리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리고... 더 힘들기도하다. 


요녀석, 책 좀 본다 싶더니 틈만 나면 책장의 책들을 우선 빼놓기부터 한다.

우르르 빼놓고 그중에 하나 골라서 집안일로 바쁜 엄마를 쫓아다니며 얼른 읽어주라고 성화다.

'엄마 지금 바쁘니 조금 있다 읽어줄께' 하면 인제는 제법 잘 수긍하고 저 혼자 그림보고 예전에 엄마가 읽어준 내용을 대략 다 기억해서 책장도 술술 넘기는 형과는 달리

인제 책읽기 시작인 연호는 '좀있다 읽어줄께'가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듯 끈질기게, 막무가내로 조른다.

엄마가 설겆이하는 싱크대 밑에 서서 제 책을 받으라고 엄마 몸에 대고 책을 밀고밀고 하다가 엄마가 계속 책을 안 받으면 설겆이통 물속에 책을 첨벙 빠뜨려버리니 

18개월 아가가 그쯤 하기 전에 고무장갑 벗고, 하던 설겆이 잠시 멈추고

부엌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에 앉히고 책 한권 읽어주고 보내는게 상책이 된다.

     







"그래.. 연호 덕분에 엄마도 잠깐 다리 좀 쉬어보자..."하며 

정말로 부른 배를 하고 설겆이를 한참 하다보면 뻐근하게 아파지는 허리와 다리에 잠시 휴식을 주며

아이를 앉히고 그림책을 읽는다. 


때로는 연수가 연호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연수가 아기시절에 보던 그림책들, 지금 연호가 좋아하는 그 책들을 연수는 거의다 외우고 있어서 

우리 다섯살 형아는 비록 글을 모르지만 그래도 두살배기 동생을 앉혀놓고 유창하게(^^;;) 읽어내려간다.


"꼭꼭 숨어라 청설모가 술래다~" 

"없다 멍멍 강아지 어~~없다 까꿍!"

"주세요 사과줄까? 아니아니~~"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연호야, 아야가 읽어줄께, 이리와~"하고 불러서 읽어주는 어린 형아와 

그 앞에서 눈을 초롱하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어린 동생의 모습은 고맙고 웃기고 짠하다. 

 

때로 둘이 서로 자기 그림책부터 읽어달라며 조르고, 서로 엄마 무릎을 차지하겠다고 다투기도 하고

같이 잘 놀다가도 투닥거리고 속상해서 울음보가 터질 떄도 있지만 

엄마한테 야단을 맞고 나서도 금새 언제 그랬냐는듯 아이들은 다시 깔깔거리고 같이 다정하게 논다. 

야단쳤던 엄마만 아직 속이 상해있고 아이들은 돌아서면 까먹고 또 재밌는 무언가를 찾아서 몰두하고, 같이 하고 즐거워진다.

둘이 다정할 때의 여러 모습중에 특히 재밌는 모습은 연수가 연호 귀에 대고 뭐라고 귀속말을 속닥속닥하면 연호도 형아 귀에 대고 "아우우 아토토"하고 속살거리는 모습이다. 그리고는 둘이 같이 또 킥킥대고 좋아한다. ㅎㅎㅎ 







어느 날은 그림책에서 아기가 인형을 어부바 해주는 장면을 보고 저도 어부바를 하고싶다고 제 인형을 찾아들고 왔다.

연호의 단짝친구 인형인 '뽀에띠'는 키가 거의 연호만한 늘씬한 토끼인형.
담요를 포대기삼아 묶어주었더니 발꿈치까지 닿는 인형과 담요를 업고 좋다고 거실을 왔다갔다 했다.









18개월 즈음은 아이들이 아기시절 동안 보고 듣고 관찰했던 가족들의 많은 행동과 말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도 하고, 제 것으로 소화해서 따라하고 구사해보는 시기인 것 같다.

두돌쯤 되면 완연해지는 아기에서 아이로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연수 키울 때도 어느날 갑자기 아이가 고집도 세지고, 힘도 세지고, 뭔가 주관이 강해지면서 아이 돌보는 일이 새로운(새롭게 힘들어지는ㅜㅜ)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는 느낌을 막연히 받았던 때가 18개월 무렵이었다. 

그때 그 얘기를 블로그에 썼더니 내가 참 좋아하고 의지하던 선배맘 언니가 "그 무렵이 딱 그런 무렵"이라며 "엄마가 본격적으로 도를 닦아야할 시기"라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연호는 요즘 누군가 자기를 꾸짖는 것 같으면 바로 정색을 하고 "아빠!"하고 말한다. 

아빠를 부르는게 아니고, '나빠!'라는 말이다. 

'아'소리를 다른 소리보다 쉽게, 잘 내는 연호는 형아도 '아야'라고 부른다. 그래서 연수가 삼촌을 '아촌'이라고 불러보라고 연호에게 시켰더니 '아또'라고 따라해서 그 뒤로 삼촌은 '아또'가 되었다.

그러더니 어느날부터 '나빠'도 나름대로 소화해서 '아빠'라고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형아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좋아보여서 저도 해보려고 집어들었다가 형아 힘에 밀려 뜻대로 안되면 "아빠!"하면서 형아를 때려보기도 하고,

밥 먹다 말고 식탁의자에서 내려가려는데 엄마가 "밥 다 먹고 놀아야지"하면 엄마를 항해 "아빠!" 한다. 

형보던 책 뺏으면 안돼, 밥 잘 먹어야 튼튼하게 잘 크지... 등등 타이르고 야단치느라 엄마 목소리가 평소랑 좀 다르게 가라앉는다 싶으면 바로 연호도 "아빠!" 한다.


어린 마음에도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속이 상하고, 제 맘 몰라주는 엄마와 형아가 야속하겠지.. 

그 맘이 이해되면서도 저를 화나게 했으니 고 작은 손을 들어 투닥투닥 때려주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연호보는 앞에서 가끔 너무 화가 나서 연수를 때렸던 것이 연호의 뇌리에 깊이 새겨질만큼 강한 인상을, 충격을 주었나... 그래서 연호가 '나빠!'하면서 저도 사람들을 때리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뜨끔하고, 마음이 아파진다. 

연수가 가끔 속상하면 엄마에게 "엄마, 나빠!"하고 외치곤 하니 '나빠'라는 말은 아마 형아에게 배웠을 것이지만

때리는 것은 형아가 연호를 때린 것이야 장난으로 머리 쿵 하고 한번 쥐어박고 엄마한테 혼나서 바로 그만둘 때가 대부분이니 

손바닥을 펴서 탁탁 때리려는 모습은 정말로 엄마를 흉내내는 것인 것만 같다. 

 


사람은 누구나 쉽게 상처받는다. 아이들도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에 민감하고 예민한,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은 더 그럴 것이다.


자기 의견이 생기고, 주장이 강해지는,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여린 목소리를 내보기 시작하는 아기.

무력하기만한 갓난아기에서 이제 조금씩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음식을 먹고, 무언가 제가 원하는 것들을 가지고 놀아보면서

점점 더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상의 주인이 되어가는 아이.

그 아이의 시절에 내 둘째 아기 연호가 들어서고 있다.


엄마는 더 조심하고, 더 힘껏 들어주고, 더 스스로를 다잡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더 많이 안아주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제 힘껏 세상과 맞닦뜨려보느라 더 쉽게 지치고 상처받는 아이를 보듬어주지 않으면 안되리라... 

엄마 품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어 다시 훨훨 세상을 날아다니다 지치면 또 엄마품으로 돌아와 쉴 수 있도록..

마음은 이런데, 현실에서는 날로 몸도 커지고 무게도 만만치않은 녀석이 목청높여 떼쓰고 고집부리고 울고하면 보듬어주고 달래주기보다는 엄마도 '누가 이기나 해보자'하는 심정으로 버팅기며 속만 잔뜩 상해할 때가 많으니...

둘째엄마인데도 아직 나는 갈 길이 멀구나.. 도를 얼마나 더 닦아야하는 것인지 까마득해진다. 









바다가 생긴 후 어느 순간 연호의 모유수유가 낮잠들 때 한 번, 밤잠들 때 한번, 그리고 새벽녘에 잠이 살풋살풋 깰때 두서너번 젖을 빠는 것으로 줄어들었다.

어린 나이에 동생이 생겨서 엄마 젖도 오래 먹이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프고, 아직 어려 말귀를 알아들을 수있는 나이도 아닌데 강제로 젖을 어떻게 끊나... 하는 것도 걱정이었는데   

신기하게 동생 생기고 나서부터는 자연스레 젖먹는 횟수를 줄여가더니 이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젖을 

그저 잠들때 위안을 얻는 정도로만 한참씩 빨고는 말아서 내가 따로 젖끊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임신기간을 그럭저럭 잘 보내왔다.  

그래도 동생 태어나기 전에 잠잘때 젖찾는 것도 이제는 그만하게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엄두가 잘 안난다.

출산까지 석달이 채 안 남았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는 아마도 잠들때 빨기만 하던 엄마 젖과도 안녕을 해야할텐데... 얼마나 허전하고 서럽고 그래서 얼마나 많이 울까.. 저 작은 눈에서 눈물은 또 얼마나 흐를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엄두를 잘 못 내겠다.     



이도 빨리 나고, 그 덕분인지 일찍부터 밥도 잘 먹어서 젖이 줄어도 다행히 잘 커주었던 연호. 

동생이 생긴 후에는 꼭 뭘 알고 그리 해주는 아이처럼 밥도 더 잘먹고 더 잘 놀고 젖은 거의 찾지 않았던 연호. 

젖살도 일찍 빠지고, 철도 일찍 든 것만 같은 어린 연호를 보며 고맙고 안쓰럽고 미안한 지금의 마음들이 아마 이 아이가 자라는 동안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을 것이다.


연호는 얼굴도 나를 많이 닮았고, 때때로 성격도, 하는 행동들도 나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 더 아프다. 

어린 시절과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를 힘들게 하곤 하는 내 성격의 면면들은 연호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호는 엄마와는 다를꺼야. 그럼..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고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삶을 살아갈.. 독립적이고 고유한 존재, 연호란다.

그래도 내 삶이, 나라는 사람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너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네게 남기는 영향도 있을테니..

나는 최대한 노력할께. 좋은 사람이 되도록.. 좋은 삶을 살도록..


18개월을 채우고 이제 곧 세살이 될 내 어린 아기. 

연호야, 사랑한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