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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16 연호야 연호야
umma! 자란다2014. 2. 16. 00:16





 


키우다보면 참 애잔해지는 아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 둘째, 연호 말이다.


연호는 다정하고 살가운 성품을 타고 났다.

어릴 때부터 순했고, 길게 우는 법이 없었고, 잘 웃었다. 

얼굴 모습도, 하는 행동도 하도 예쁘고 앙증맞아서 늘 딸같은 아들이었다.


세 살 터울의 호랑이같은 형아가 으르렁 소리지르고 펄쩍펄쩍 뛰어 쫓아오면

무서워 얼른 엄마품에 달려와 숨고, 울지만 

그런 형아에게 어느새 또박또박 바른 말로 타이르기도 잘 하고, 먼저 장난치며 함께 깔깔 웃고 뛰어놀 때는 

꼭 친구같기도 한 의젓한 동생이다.


한 살배기 동생이 제가 노는 쪽으로 기어와 제 장난감을 잡으려하면

제 형이 제게 했듯이 동생을 때리거나 겁주기는 커녕

"엄마, 아기가 자꾸 와~" 하면서 울듯한 표정으로 도망오는 마음 여린 형이다.


  







귤을 까면 반을 뚝 잘라서 "아가, 먹어라~"하고 제 동생에게 나눠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 자리에 없는 식구를 찾아서 꼭 입에 넣어준다.
딸기를 씻어서 거실에 있는 식구들 같이 먹으라고 가져다주니
조금 먹다 말고 부엌에 있는 나를 황급히 부르며
"엄마, 빨리 와서 먹어~, 안그러면 형아가 다 먹어~!" 한다.


며칠전에는 잠자리에서 제가 읽어달라는 그림책을 다 읽어주고
이제 형아가 가져온 그림책 읽어주자 하고 읽는 동안
누운 내 머리맡에 앉아서 가만히 듣다 말고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

"우리 엄마 참 예쁘다... 엄마, 난 엄마를 키울꺼야."

"뭐라고? 엄마가 예뻐서 엄마를 키워줄 거라고~? ^^"

"응. 난 엄마를 키울꺼야!" 

"ㅎㅎㅎ 에고.. 고맙다, 연호야.."


강아지가 예뻐서 강아지를 키우듯이, 
꽃이 예뻐서 꽃을 키우듯이
엄마가 예뻐서 엄마를 키우겠다는 세살배기 아들의 말은
얼마나 달콤한 위로와 찬사로 들리던지..

하루의 피곤이 온통 밀려오는 저녁 잠자리에서, 
몸에 남은 힘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모조리 쥐어짜는 심정으로
너희들의 하루를 평화롭게 마무리해주려고 정말로 엄마가 얼마나 애쓰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 순간 네가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으로 고마움과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어서 
연호야.. 정말 고맙다.










작년 가을과 겨울 초입에 연호가 많이 아팠었다.

가벼운 감기가 괜찮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하면서 오래 갔다.

그러다 수족구가 지나갔고, 알레르기성 비염처럼 콧물이 쉬지않고 흐르기도 했다. 

나중에는 중이염이 와서 하룻밤 귀가 많이 아프다며 엉엉 울어서 우선 해열진통제를 사먹고 자고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후에는 귀에서 이틀쯤 고름이 나오기까지 했다.

나는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놀랐다. 

다행히 모두 크게 위험한 병들은 아니어서 그럭저럭 쉬고 놀고 하면서 나아갔고, 중이염은 항생제를 이틀 정도 처방받아 먹고나니 다행히 잘 나았다.


연호가 오래 앓는 동안 나는 함께 오래도록 마음을 앓았다.

연호가 아픈 것이 모두 내 탓 같았다.


두 돌을 채우고 맞은 가을, 

제 또래들이 아직도 아기 대접을 받으며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을 때에 

벌써 형님이 된지 반년도 넘은 연호는 훌쩍 큰 아이 태가 나고 있었다. 

유모차를 타거나 아직 엄마에게 업혀다닐 나이에 연호는 유모차를 동생에게 내어주고 그 옆에서 제 힘으로 걸었다.

앞장서 뛰어가다 넘어질 때도 많았다.


동생이 태어난 봄부터 쉬를 가리기 시작해 두 돌 전에 기저귀를 떼었던 연호는 

어느새 화장실도 엄마 없이 혼자 다녀올 수 있었다. 

아기 변기말고 저도 어른변기에 쉬를 하겠다며 까치발을 하고 서서 야물딱지게 쉬를 했다.

연수에 비하면 밥도 훨씬 잘 먹는 편이었고, 멸치나 나물반찬도 잘 먹어서 엄마를 감탄하게 하곤 했다.  










하지만 아직은 엄마 손길이 더 많이 가야하고, 차근차근 가르쳐줘야 하는 것도 많은데

어린 동생 돌보느라 바쁜 엄마가 연호에게 미처 못 해주는 것들이 많았다.


밥상을 차리면 밥을 좋아하는 연호는 우선 제 식탁의자에 와서 앉는다.

아직 숟가락질이 서툴어 엄마가 도와줘야하는데 

엄마가 동생 이유식부터 먹이느라 분주해서 연호 밥 먹는 것을 잘 도와주지 못하면 

연호는 저 혼자 포크로 반찬 좀 집어먹고 하다가 그만 밥 안먹고 놀고있는 형아 곁으로 가버렸다. 

많이 큰 연수는 밥은 꼭 먹어야한다는 걸 알아서 나중에라도 식탁에 와서 차려놓은 제 밥을 다 먹지만 

아직 어린 연호는 한번 식탁을 떠나면 그 뒤로는 잘 돌아오지도 않고, 따라가서 먹여도 밥을 잘 안 먹는다.

밥을 딱 먹으려고 왔을 때 얼른 도와주며 먹여야하는데 

식구들이 식탁에 앉으면 따라와서 바둥거리고 저도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는 연제를 챙기다보면 자꾸 그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한꺼번에 세 녀석 밥을 먹이고 내 밥도 먹어야하는 정신없는 식사시간이 끝나고보면 

언제나 제일 적게 먹고, 잘 챙겨주지 못한 것은 연호였다. 


그러다 감기에 걸려 코도 막히고 목도 붓고 하니 밥은 더 안 먹으려 해서 

따뜻한 꿀차같은 것을 타주면 그것으로 배를 채울 때도 많았다.

과일이나 빵같은 간식을 좀 먹고, 우유나 미숫가루 같은 편한 음식만 찾았다. 

감기를 오래 앓았던 그 시점에 연호는 정말 잘 안먹었고,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겠지만 

여러모로 엄마 손길이 제일 부족해서 연호가 아픈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마음 아팠다.











수족구 때문에 손바닥에 허물이 다 벗겨졌을 때 나는 오랫만에 연호에게 젖을 먹여주었다. 

동생이 태어나던 20개월까지 잠이 올 때 엄마 젖을 먹었던 연호는 

동생에게 엄마 젖을 양보한 후에는 잠이 올 때 엄마 젖을 만지기만 했다.

울고싶을 떄도, 기분이 안 좋을 때도, 그냥 엄마에게 안기고 싶을 때도 연호는 늘 엄마 품 속에 손을 넣어 엄마 찌찌를 만졌다.

그렇게 엄마 냄새와 엄마 촉감에 폭 안겨있다 가는 것이 어린 연호에게는 얼마나 큰 위안일까...

가끔 연호는 '엄마 찌찌에 뽀뽀할꺼야' 하면서 젖을 쪽 빨기도 하고, '나도 엄마 찌찌 먹을래'하고 젖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반장난으로 조르는 것이라 '아기 먹어야지..'하고 달래면 웃으면서 입을 빼곤 했다. 

     

그런데 수족구에 걸렸을 때 

코가 막혀 밥을 잘 삼키지도 못하고, 기운없이 너무 아파하는 연호를 보니 너무 가엾고 걱정스러웠다.

엄마 찌찌 달라고 조르는 연호에게 '그래, 연호 너무 아프니까 엄마 찌찌 먹고 얼른 나아라..'하며 찌찌를 주었더니 

아픈 와중에도 좋아하며 마음껏 빨아먹었다.   

그 뒤로 연호는 "엄마, 연호 손바닥 또 아프면 엄마 찌찌 먹어?"하고 종종 물어본다. 

웃으면서 '그래' 대답해주면 너무 좋아한다.








- 연호가 그린 '사과' 그림을 형 그림 옆에 붙어놓고- ^^




연수를 키우면서 보니 아이들은 정말 금방(?) 큰다는 것을 알겠다.

언제 제 손으로 밥을 떠먹나.. 걱정되던 연수도 여섯살이 되니 저 혼자 밥 한그릇 어찌어찌 다 잘 먹고, 

더이상 엄마 찌찌는 찾지도 않는다. ^^

가끔 안아달라, 업어달라 조르기도 하고

밤에는 '엄마, 내 옆에서 자면 안 돼?' 하는 아직 어린 일곱살이지만  

엄마 품을 파고드는 어린 시절은 벌써 지나갔다.  

이 놀이 하자, 저거 만들어달라 요구는 많지만 혼자 쓱쓱 만들고 그리며 놀기도 잘 놀고, 제 손으로 옷입고 치우며 할 줄 아는 것도 많다.  

어쩌면 동생이 둘이나 있는 큰 형아여서 저도 빨리 엄마 무릎에서 밀려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호도 금방 클 것이다.
아직은 엄마에게 툭하면 뛰어와 안아달라 조르고, 걸핏하면 엄마 찌찌를 찾지만 
이 시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큰 형아와 늘 어울려놀아 놀이도, 말도, 행동도 형아를 똑같이 따라하는 연호는 더 금방 의젓해질 것이다.

그러니 그 때까지는 
쉬지않고 엄마를 찾는 네살 연호의 청을 부지런히 들어줘야한다.
저 혼자 할 줄 아는 놀이는 많지 않고, 변덕은 또 죽 끓듯이 심한 우리 네 살 형님꼐서 
'엄마, 내 수레 어디 있어?' 찾으면 얼른 대령하고
'엄마, 트라이탄 합체 해줘~, 해 달란 말이야~~'하면 또 낑낑거리며 그 뻑뻑한 3단합체 로봇을 들고 끙끙 거릴 일이다.

다정한 연호는 그러면 내게 꼭 칭찬을 해준다.
엄마가 화도 안내고, 저희들 청을 들어주며 포근한 밤을 맞고 있노라면 '엄마가 있으니까 참 좋다, 그지?' 하고 제 형과 엄마 머리맡에 앉아 얘기하기도 하고, 
제가 해달라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엄마, 참 잘한다!' 감탄하며 좋아서 박수도 짝짝짝! 친다.






-형님 일년. 그 사이 아기에서 아이로 훌쩍 자란 우리 둘째.언제나 애틋하다-




겨울 동안 형아가 어린이집 가고, 동생은 낮잠자는 한시간 남짓한 시간이 연호가 엄마와 단 둘이 보내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엄마는 커피를 마시고, 연호는 간식을 먹고

둘이 함께 블럭이나 공룡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소파에 꼭 붙어앉아 책을 읽노라면 

연호의 팔딱팔딱 뛰는 심장이 '행복해요! 행복해요!'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직은 너도 어리고 동생도 어려 

엄마도 너희들도 모두 많이 힘든 시절이지만

지나고나면 또 이 시절이 얼마나 그립고 예쁜 시절일까.

그리고 지금 너는 정말로 너무 너무 예쁘단다.

엄마는 너를 볼 때마다 감탄하고 웃게 돼.


힘내서 우리 같이 잘 자라자.

언제나, 언제까지나 사랑한다. 연호야.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