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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06 어른들의 정과 보살핌 속에 3







사랑받았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가끔 우리 친정부모님을 떠올리며 '내가 참 복이 많구나.. 우리 엄마아빠같은 부모님을 만났으니..'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무슨 일이 잘 안되면, 내 우유부단한 성격이나 짧은 생각으로 덜컥 큰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이런저런 고질적이고 헤묵은 원인들을 다 끄집어내서 원망하다가 결국에는 '이게 다 울 엄마아빠 때문이야..ㅠㅠ'하며 애꿎은 엄마아빠를 탓한다. 
그런데 얼마전 문득 '우리 엄마아빠같(이 침착하고 꼼꼼한)은 분들이 어쩌다가 나같이 덜렁거리고 속썩이는 딸을 두셨을꼬...'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죄송해하다 못해 엄마아빠를 측은하게 여기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내 나이도 삼십대 중반을 넘었다.
요전에 '민들레'를 읽다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이라는 작가가 '내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 것이 부모님 탓이라고 원망하는 태도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버려야합니다'라고 쓴 것을 읽고 한참 웃었다.
그래.. 나도 이제 그만 해야할 때가 되었어.. 하고. ㅎㅎ


우리 부모님이 이 글을 보시면 많이 억울하실 것이다.
사실 나처럼 말 안듣는 딸도 드물텐데.
스무살 이전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나는 단지 모범생스럽게 자랐다는 기억만 가지고 있지만 그때도 엄마아빠께 꾸중도 많이 맞고 걱정들은 일도 많을 것이다)  아마 지금 김연수를 보건데 필시 나도 조렇게 엄마아빠 말 안듣고 뺀질뺀질 까불거리던 미운 꼬맹이였을 것 같고, 
스무살 이후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엄마아빠 말씀을 안듣고 내가 하고싶은 일들만 하며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도 왜 저런 생각을 했느냐... 하면.
내 부모님들이 내게 늘 참 큰 분들이어서 그랬다.
그 말씀대로 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말씀을 늘 아주 많이 의식하고 살았다.
싫든 좋든 많이 의식하다보니 때때로 부모님의 재촉에 쫓겨 마음이 급해지고, 조바심나서 실수하기도 했다고, 그게 내가 부모님 탓을 하는 내용들이다.
 
구체적인 삶의 여러 사안에 대한 생각이 다르더라도 
마음으로는 늘 깊이 사랑했고, 그런 내 사랑을 전해드리고 싶었고, 또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진정으로 벗어나보지 않았다.
부모님 말대로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바램이란 테두리에서 아직은 크게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다. 
(요건 내 생각이고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 안하실지도...^^;;)

그래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고, 속상한 상황이 내 삶에 벌어질 떄 
실은 모두 나에게서 비롯한 일이고, 내 결정과 행동에 대해 내가 책임지고 감당해야하는 일들인 것이 분명한데도
어린 아이 투정부리듯, 6살 김연수가 뭐든 잘 안되면 '엄마 떄문이야!'하고 말도 안되게 화내는 것처럼
똑같이 나도 '엄마아빠 때문이야' 하고 억지로라도 한 끄트머리 원인은 부모님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나말고 누구라도 한 명은 탓할 사람이 있어야지.. 하는 심정인 것도 같다.
영향이 깊었든, 압력이 거셌든.. 어쨌든 결정은 늘 내가 했으며, 내 인생은 내 선택과 행동의 결과인 것인데.
 
억울하시겠다. ^^
나도 김연수가 뭐든 엄마아빠탓이라며 말도 안되는 억지쓸 떄 우스우면서도 화가 나던데 
우리 엄마아빠도 그러시겠네.. 
그래도 김연수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무려 서른여섯살이나 된 자식인 나는 이제 부모님 탓하는 일은 고만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원래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니지만... 
기왕 쓴 이야기의 결론은 그래서 이제는 탓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런 말도 안되는 탓하기를 그만 하려면 이제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원하는데로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고 내게서 비롯된 일들에 대해 책임져야하고.. 

 
근데 이 얘기가 왜 나왔냐면.... 
사랑받고 왔다는 얘기를 하려다 나온 것이다. 
아이들도, 나도. 

다른 부모님들도 다 그런지 모르겠는데... 
우리 엄마아빠는 아주 매력있는 분들이시다, 적어도 내게는.
여기서 말하는 매력은 타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란 면에서 권위와도 비슷하다.
닮고 싶고, 따르고 싶다.
사랑이 깊고, 부지런한 분들인 엄마아빠는 우리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손주들에게도 참 극진하시다.
마음으로 의지하고 싶고, 언제나 나를 위해 손을 내밀어주는 분들.
어린 손주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게임을 하고, 자전거를 태워주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향긋한 할아버지의 머릿기름으로 단정하고 예쁘게 손주들 머리를 빗겨주고 로션을 발라주시는 분들.


깊은 사랑을 받아보면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말썽꾸러기 김연수가 외할아버지가 조근조근 일러주시는 말씀때문에 조금은 철든 모습을 보일만큼.
엄마도 속상해서 떠먹이다 만 밥을 여섯살 연수에게 한숟갈 한숟갈 떠먹여주시던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연수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강릉에서 지냈던 지난 일주일 동안  
몸과 마음을 모두 포근하게 다독여주시는 어른들의 정과 보살핌 속에
아이들도, 나도 무척 행복하게 지내다 왔다.

아이들에 대한 정이 깊으시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어하시는 외가 어른들께 다녀오면 
아이들은 오래도록 어른들을 그리워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을 늘 반갑게 맞아주는(엄마아빠는 대개 졸려서 새아침을 맞아 싱싱하게 깨어나는 아이들한테 좀더 자라고 윽박지르거나, 종달새같이 재잘거리며 걸어오는 말에 비몽사몽간에 시큰둥하게 대꾸하기 일쑤인데...ㅜㅜ) 외할머니와 
해님이 많이 올라 아침 찬기운이 좀 가실 때쯤이면 맑은 공기 마시라면서 형들은 물론 어린 연제까지 따뜻하게 안고 마당에 데리고 나가 나뭇잎들 만지게 해주시고, 깔깔거리며 뛰게 해주시는 외할아버지.
이불 속에서 어린 시절처럼 맘껏 달콤한 게으름을 부리다가 뒤늦게 일어난 엄마가 세수하고, 아침상 차리는데 거드는 시늉을 하는 동안 
연제는 증조할머니 품에 폭 안긴채로 두 형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앵기댕기 가매꼭지 올라가다가 따깨똥!'하는 다리세기 놀이를 재미나게 하고
증조할머니 쳐다보며 벙글벙글 웃고 뒤집다가 '따로마' 하며 세워주시는 손길에 신나서 펄쩍펄쩍 뛰던 
사람 많은, 아니 아이들과 잘 놀아주시는 어른들이 많은 외가의 아침풍경.. 
자란 후에 우리 아이들은 기억할까.
연수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6년동안 여름 겨울로 한번씩 외가에서 일주일이나 이주일쯤 지낼 때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이 풍경을 세세히 다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속의 따뜻한 기운들은 아마 우리 아이들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서 어른이 된 후에도 외가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포근해 질 것이다.

외가에서 돌아온지 나흘쯤 지났다.
돌아오는 날부터 언제 외가에 또 가는지 묻는 아이들에게 
이번에 심는걸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지켜보았던 배추가 크게 자라 김장할 때쯤 다시 가자고 말해주었다.
그때는 잠시 하룻밤자러 다녀오는 것이 되겠지만 
아이들도, 나도 벌써 다시 외가갈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
(우리들 때문에 엄마는 또 밥도 제때 못드시고 나 밥먹는 동안 연제 안고 업고 종종거리시고, 아빠는 연수연호 차에 태우고 경포며 아이스크림 가게로 다니느라 분주해지시고, 가까이 사는 언니도 친정으로 자주 달려와 펄펄한 세 조카 데리고 놀아주느라 고단해지겠지만...ㅜㅜ 쓰고 보니 어쩌다 나는 이리 '민폐'의 삶을 살게되었는가 싶어 더 미안하고 서글프다ㅠ)





















아침저녁으로 잠깐 아빠와 함께 있는걸 제외하면 
거의 종일 어른이라고는 엄마밖에 없는 집에서 지내는 세 아이들은 모두 어른의 정이, 다정한 눈길과 손길이 그립고 아쉽다. 
저희들끼리 껴안고 뒹굴며 부족한 엄마손, 어른품을 채워보기도 하기만 
그래도 늘 온기가 부족한 것 같다.
식구들 밥 챙기고 청소며 빨래같은 기본적인 집안일도 다 못해 종종거리는 엄마는
어느 아이 하나 오래도록 원하는 만큼 안아주고 놀아주지도 못하다가 
하루를 마감할 즈음이면 고단하기만 엄청 고단해서 아이들보다 먼저 쓰러진다. 
그런 순간이면 나도 참 어른들이 그립다.

그래도 힘을 내야지..
어른들이 내게 주신 사랑이 있으니까.
내가 받은 사랑이 나를 지켜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욱아 네 뒤에는 언제나 엄마아빠가 있다.
그러니 어깨 쭉 피고,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아라..'
아빠 목소리 들리는 것 같다.
아직도 참 모자라고, 좌충우돌 실수하고 좌절하는 딸이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내 삶을 살아가야겠다 생각하는건 
그 마음의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잘 헤쳐나갈 것이다.
세상에는 더 어렵고 고되고 힘든 일도 얼마나 많은데
세 아이 키우는 일로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처럼 징징거리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중요한 것들을 생각해야겠다. 
내 삶에도, 아이들에게도.. 마음에 중심을 잡고 다리에 힘을 주고 가는 것이다.
하는 일은 밥짓고 빨래하고 아이들 씻기고 젖주고 재우는 일이 전부이지만
내 삶의 하루하루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다.

사랑받은 기억의 힘으로 말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