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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07 서른 셋, 세 개의 생일상 12
신혼일기2010. 12. 7. 23:26




어제부로 나는 서른 세살이 되었다.

만으로 꽉채운 서른셋. 아직 만으로 세살도 안된 아이를 생각하면 와. 나는 참 얼마나 많이도 산 것인지. ^^;
세 식구가 함께 사는 집. 생일을 맞은 나를 위해 식구별로 한번씩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음식만큼 정성과 마음이 깃드는 일도 드문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생일 저녁, 남편은 회사에서 돌아와 스타게티를 만들어주었다.
'알리오 올리오'라는 이 담백한 스파게티는 올리브유와 마늘과 소금과 스파게티면만으로 만드는 정말 단순한 스파게티인데 담백하고도 향긋한 맛이 입안에 오래남아 자꾸 먹고싶어지는 스파게티였다. 
스파게티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짬짬이 열심히 레시피 찾아보고, 추운 퇴근길에 재료들 사들고 와서 정성껏 만들어준 남편. 눈물나게 고맙다.
비록 처음이라 맛은 조금 심심했지만 나는 정말 맛있었다. 언제나 이 스파게티를 먹을 때는 남편이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늘 이 사람이 해주는 이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참 행복했다.











퇴근하는 신랑을 기다려서 만들어주는 스파게티까지 먹고나니 밤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평소 연수와 둘이 먹을때는 7시면 먹는 저녁밥인데 이 날은 참 늦긴 했지만 연수도 나도 잘 기다렸고, 맛있게 먹었다. 
늦더라도 아빠랑 같이 먹을 수 있으니 좋은 것이다.  

아빠가 생일선물로 사온 국화꽃 화분도 참 고마웠다. 
분홍빛 꽃송이와 싱싱한 초록빛 잎사귀들은 오늘 하루 동안에도 몇번이나 연수와 내 시선을 머물게 했다. 
그 밝은 빛이, 은은한 향기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 축하합니다아! 후우!!!"
내 품에서 꼼지락거리던 갓난쟁이가 어느새 엄마의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줄 수 있을만큼 자랐다.
제 노래가 끝나면 손뼉도 손수 치고, 촛불도 제가 다 끈다.
이렇게 보니 웃는 눈꼬리가 아빠랑 고모랑 할머니랑 똑같구나, 우리 연수.










그리고 연수가 차려준 소꿉놀이 생일상.

"엄마 엄마, 생일 축하해~. 연수가 맛있는거 해줄께~!" 하고 제 부엌으로 달려가서 소꿉놀이 세간들을 다 꺼내놓고(우선 와르르 한번 다 쏟고 시작..) 한참 뚝딱뚝딱 자르고 담고 한다.
택배박스를 붙여서 만든 연수의 밥상에 한 상 가득하게 차려준 음식들을 "와~ 참 맛있다!"하고 냠냠 먹는 시늉을 하는 동안 내내 참 행복했다. 아이도 정말 행복하게 만들고 먹는다.  
다 먹고 나면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따뜻한 차도 끓여주는 센스쟁이.











나중에 이 아이가 커서 진짜 제 주방을 갖게되면
그때도 내게 손수 따뜻한 밥 한끼와 차 한잔을 끓여주었으면 좋겠다.
아이 집에 놀러가면 아이의 여자친구나 부인이 요리한거 말고, 아이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기를. ^^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해 잡채를 만들었다.
생일 전날 저녁, 내일 아침 생일상에 놓을 맛있는 음식을 한가지는 만들어야지.. 생각하며 슥슥 분주하게 손을 놀려 만들어보았다.

이 음식은 사실 내 어머니께 마음으로 드리는 음식이다.
연수를 낳은 뒤부터 나는 내 생일마다 고향에 계신 엄마를 생각했고, 엄마께 드리는 마음으로 음식을 한가지씩 만들었다.
재작년에는 엄마가 내 생일에 서울에 오셨었는데 그때도 잡채를 만들어서 함께 먹었고,
작년(생일)에는 도토리묵을 처음으로 만들어서 단촐한 내 생일상에 올려놓고 엄마를 생각하며 먹었다.
어설픈 실력이지만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그 음식이 들어가는 내 몸과 마음만은 감사의 정으로 그득하게 채우고 싶었다.










그래도 어느새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는 3년이 흘렀는지라 
이번에 만든 잡채는 입맛 정직한 남편으로부터 '예상외로 괜찮다. 아주 맛있다'는 평을 들었다. ^^
친정 엄마아부지께도 이 잡채 맛을 보여드려야하는데... 집에만 가면 푹 눌러앉아 쉬기 바쁘니. 언제쯤 철이 들까나.
  










서른셋 생일이 행복하게 지나갔다.
올해는 엄마 배속에서 엄마가 먹는 모든 음식들을 함께 먹으며 엄마 생일을 함께 보낸 평화도 내년에는 한자리 어엿하게 차지하겠지.
휴.. 그때는 또 갓난이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며 참 정신없는 와중에 서른넷이 되겠구나.
그러고보니 서른셋 생일은 참 근래들어 조용하고 차분했던 생일이었던 것 같다.

밤에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방에 누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서른셋, 내가 놓치고 가는 것은 무엇인지...
어린 아이키우며 사는 즐거움과 고단함에 푹 빠져 있는 요즘의 내가 혹시 너무 소홀히 여기고 있는 중요한 어떤 것이 없는지..
내가 하던 공부, 내가 관심가지고 있던 사회활동들, 그 가치들과 시급함에 너무 마음쓰지 않는 것은 아닌지.
뒤척뒤척 생각은 길었지만 답은 뾰족하지 않았다.
서른셋의 내 삶은 아직은 좀 안개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아이들을, 남편을, 그리고 그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깍고 다듬고 뭉그러진 나를 부둥켜안고 이 안개를 헤치고 나갔을때 어떤 세상과 마주하게 될까.
어떤 세상으로 가는 길을 나는 열 수 있을까.
내 삶이 궁금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