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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22 연수 아픈 날 4
umma! 자란다2014. 2. 22. 01:04




연수가 많이 아팠다.


화요일 오후에 어린이집 마치고 와서 동네에 있는 작은 실내놀이터에 가서 한참 신나게 방방(트럼팰린)을 뛰고 왔다.

그 날 밤에 자는데 몸이 많이 힘든지 끙끙 앓고 자꾸 깨더니 다음날 아침 일어났는데 머리가 뜨끈했다.

안하던 기침도 콜록콜록 터져나왔다.


어린이집에 한동안 신종플루를 앓는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들께서 전염을 주의해달라고 여러번 당부하셨고 어린 동생들도 걱정되고 해서  주에는 연수를 며칠 어린이집을 쉬게 했었다. 

가을 초입에 기침감기를 앓고 나은 뒤에는 겨우내 연제가 자주 훌쩍거리고, 연호가 감기를 오래 앓을 때에도 옮지않고 거뜬하게 잘 지내던 연수였다. 이제 많이 커서 면역이 좀 강해졌나부다... 생각했는데.


겁이 덜컥 났다. 

어린이집도 그렇고, 실내놀이터에는 초등학생 형아들도 많은데 혹시 신종플루가 옮았나..? 

오랫만에 너무 많이 뛰고 놀아서 몸이 힘들어서 그런가? 

놀이터에서 땀난 채로 찬바람쐬고 집에 와서 감기에 걸린걸까....?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휘리릭 머리속을 지나갔다.

오늘은 어린이집을 쉬라 이르고, 좀 있다가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안그래도 연제가 요즘 매일 동네 소아과에 가서 귀치료를 받고 있었다.

한동안 감기도 안 걸리고 잘 지내던 연제는 지난주 토요일부터 갑자기 오른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병원에 가니 '외이도염'이라고 진단하셨다.

고막 바깥쪽, 그러니까 귀의 입구 정도 되는 곳에 물이 들어가서 잘 마르지않고 고여있다보면 생기는 농으로,

아기도 아프거나 하지는 않고 귀가 좀 답답하고 축축해서 기분이 안좋으니 평소보다 보챌 수 있고, 

따로 약도 없고 병원에서 잘 닦아내고 집에서는 드라이기 찬바람을 쐬어 잘 말려주면 나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좀 놓였다.

그래서 월요일, 화요일 계속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이 면봉으로 외이도에 고여있는 농을 닦아내주시고

적외선을 잠깐 귀 속에 쬐어주는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연제는 밥도 잘 먹고 잠도 평소처럼 잤지만 때때로 귀를 답답해했고, 자다 깨면 불편하고 아픈 기색으로 울어서 엄마인 나도 좀 예민해져 있던 차였다.


이런저런 생각은 많지만 어린 아이들 다 데리고 한번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지라 

우선은 졸려하는 연제를 재워놓고 연수 상태를 지켜보며 이것저것 꼭 필요한 집안일을 부지런히 했다. 

점심먹고 오후에는 연제가 또 한번 낮잠잘 때 연수랑 연호까지 낮잠이 들어 온 식구가 한잠 달게 잤다.

잠을 자고 나니 연수는 열이 많이 내렸고, 컨디션도 한결 나아보였다. 

그렇지만 평소보다는 훨씬 힘들어보였고, 물어보니 제법 거리가 되는 병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아이들 셋을 옷입혀 차에 태웠다.

평소에는 나 혼자 아이들 태우고 운전하는 일은 거의 안한다.

아이들 모두, 어린 연제까지도 카시트에 잘 앉아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가끔 내려달라 보채고 울 때도 있어서

아직 초보운전인 내가 세 아이태우고 혼자 다니는 일은 되도록 안 했다.

보통때 같으면 연수는 자전거타고, 연호는 유모차태우고, 연제는 내가 아기띠해서 안고 걸어서 15분쯤 거리에 있는 동네 소아과병원에 가겠지만 

연수가 아프니 어쩔 수가 없었다.


조심조심 차를 몰아 병원 근처까지 가서 차를 잘 세우고, 큰 아이들 내려주고, 연제 아기띠에 안고 병원으로 갔다.

연수는 이제 열이 내려있었다. 

가슴과 등을 청진하고 귀, 코, 목을 두루 살핀 선생님은 신종플루를 의심할 상황은 아닌 듯하니 기침콧물약만 우선 처방하고 경과를 보자 하셨다.

연제는 귀가 거의 다 나아 앞으로는 집에서 잘 말려주시기만 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연수 약을 짓고, 아이들과 약속했던 작은 로봇장난감이 붙은 비타민 하나, 로봇 그림이 그려진 밴드 한통을 사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다 나은듯 좋아하며 펄쩍펄쩍 뛰는 연수와 형이 아픈 덕분에 좋아하는 로봇밴드를 얻어 기쁜 연호, 엄마 품에 안겨 바깥구경에 신난 연제를 보니 

힘들어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 너희들 데리고 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모두 기쁘니 엄마도 좋다. 크게 아프지 않으니 정말 고맙다..    

우르르 병원건물 지하에 있는 마트로 가서 아이들 좋아하는 바나나와 딸기를 샀다. 

집에서 과일 먹고, 물 많이 마시면서 푹 쉬면 잘 나을꺼야.. 얘기하며 차에 태워주고 집까지 조심조심 운전해서 잘 돌아왔다.

오전에 미리 만들어둔 카레로 저녁도 모두 잘 먹고 다 괜찮을 것 같은 안도감에 푸근히 잠들었다.

 

그런데 그 날밤에도 좀 끙끙 앓으며 잤던 연수가 목요일 아침에는 식구들 중에 제일 늦게까지 늦잠을 자더니 

아침밥도 먹지 않고 계속 졸려했다.

식탁에 앉아서 힘들고 졸린 표정을 짓고 있는 연수에게 '좀 더 자고 먹을래?' 했더니 그러겠다며 안방에 들어가 다시 누웠다.

연호, 연제 밥 먹이고 치우고 있다가 건너다보니 연수는 벌써 잠들어있었다.

가서 이마를 짚어보니 다시 열이 뜨끈했다.


연수는 한참 자다가 동생들 노는 소리에 잠이 깨서 거실로 나왔다. 

물을 한컵 다 마시고, 아빠가 연수 아프다는 얘기에 어제 퇴근하며 사놓은 '포카리스웨트'도 한 잔 마시고

소파에 앉아 동생들 노는 것 좀 보는가 싶더니 또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기는 했다.

여섯살 봄에 기침감기가 오래 가다가 병원에서 '축농증' 진단을 받고 항생제를 많이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연수는 약만 먹고 나면 자서, 거의 하루 종일 잤다.

이번에는 약도 먹지 않았다. 

전날 병원에서 콧물기침약을 지어오긴 했지만 병원가기 전부터도 기침콧물은 거의 안나고 있었어서 먹이지 않았었다. 


연수는 이번에도 종일 잤다.

몸이 뜨끈뜨끈해지긴 했지만 체온계로 재서 높은 열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오래 못 잤던 사람처럼, 평소에 조금씩 부족했던 잠을 오늘 다 자려는 사람처럼 

잠깐 일어나 물 마실 때를 제외하면 자고, 또 잤다.


한시도 쉬지않고 뛰고 까불고 법석 떠는게 하루의 전부이다시피한 일곱살 사내아이가 

마치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을 맞은 고단한 아버지처럼

어딘가 머리만 닿으면 혼곤한 잠에 빠지는 모습은 낯설고 애처로웠다.

하지만 열이 올라 조금 끙끙 댈때는 제외하면 조용히 잠든 작은 아이의 몸은 평온해보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 좀 쉬어야해요, 엄마...'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점심에는 밥을 푹 끓여만든 죽을 연수에게 떠먹여 주었다.

연수는 소파에 앉아 얌전히 잘 받아먹었다.

한그릇을 다 먹고 나자 연수는 잠시 동생들을 보며 웃고 놀더니 또 잤다.







낮에도 계속 자는 형이 신기해서 연호는 계속 형 주변을 맴돌았다.

'엄마, 낮인데 형아 왜 계속 자? 

'응.. 형이 아파서 그래.'

'형이랑 놀고싶은데.... 내가 깨울까?'

'아니... 형아 좀 더 자게 놔두자. 형아 몸이 괜찮아지면 형아가 일어날꺼야.' 

'왜 자꾸자꾸 자?' 

'형아 몸이 아픈거 낫게 하느라고 열심히 일하느라 그래. 그 일이 지금은 제일 중요해서 다른 건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몸이 형아한테 코 자라 하는거야.


그러다 형이 잠시 깨면 기운없는 형아는 정작 암말 안 하는데 제가 나서서 

'엄마, 형아 좀 안아줘라' 했다.

'연수야, 엄마가 안아줄까?' 물으니 얼른 '응!' 한다.

소파에 앉아 안아보니 아파서 그런가.. 연수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잠시 엄마 품에 폭 안겨있던 연수는 다시 스르르 소파에 기대 누웠다.








어린 연제도 계속 자던 큰 형아가 깨면 반가워서 형 앞에 와서 웃으며 놀았다.


연수가 자니 낮에는 온 집이 바람잔 솔처럼 조용했다.

연제도 잘 때는 나도 졸렸지만 연호가 안 자니 나까지 잘수는 없었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 졸음을 깨우고 잠든 연수 이마도 짚어보고, 콩나물무국도 끓이고하며 낮시간이 조용조용 흘러갔다.


엄마의 긴장이 전해져서 저도 나름 긴장했었던지 종일 조용히 잘 놀았던 연호가 저녁이 되니 유난히 엄마한테 매달렸다.

형이랑 못 놀아서 많이 심심하기도 했을테고, 또 낮잠을 안자 졸리기도 했던 연호는 엄마밖에 어울일 사람이 없으니 자꾸 매달리고 연제에게도 자꾸 시비(?)를 걸어 울리고, 그러다 결국 저도 울기를 반복했다.  

연수가 해주던 몫이 참 크구나.. 새삼 알았다.

연호랑 같이 잘 붙어서 놀고, 연제도 '잼잼 곤지곤지 까꿍'해주며 놀아주고 

그도 아니면 그저 혼자라도 연수가 왔다갔다 신나게 뛰어다니고 노는 것만으로도 동생들은 같이 따라다니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래저래 하루해를 잘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는 조용해서 평화롭기도 했던 것 같던 집이 

저녁쯤되니 어린 동생들은 이래저래 울고, 연수는 아직도 자고, 나는 종일 집 밖에 한발짝도 못 나가보고 아이들 외에는 아무도 못 만난 것이 문득 답답하고, 불안하고, 너무 힘이 들었다.

겨우겨우 저녁먹고 잠자리를 차리는데 그때쯤에야 연수가 조금 기운을 차리는게 보였다.

연호의 로보트 얘기에 '흐흐흐흣'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보니 '아 괜찮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탁 들었다.

연수는 웃음이 많은 아이다. 재미있는 장난을 좋아하고, 늘 웃는다. 깔깔깔, 낄낄낄, 흐흐흑, 여섯살쯤 되니 하도 개구진 장난이 심해져서 나는 깨소금 냄새 풍기는 요녀석의 장난기어린 얼굴과 웃음도 못마땅해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웃음이 많은 아이여서, 깊은 아픔을 견뎌낸 뒤 몸과 마음이 기운을 차리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웃어준 것이어서

정말 고마웠다.  

연수는 연호에게 저희들이 좋아하는 로봇 장난감 얘기를 하고, 이불 장난을 조금 했다.

그리고 나서 연호는 잠들었고, 연수도 또 잠들었고, 연제도 조용해진 방에서 젖을 먹고 잠들었다.

  

집은 다시 고요해졌고, 나는 연수 아픈 것에 대해 책을 찾아 읽은 다음 마음을 가라앉혔다. 

평소와 참 다른 하루였다.

펄펄한 녀석들의 북새통에 집은 난장판이 되어 정신이 하나도 없고, 그러다 형이 동생을 울기라도 하면 달래고 야단치느라 집은 더 시끌벅적하고 내 마음도 울그락불그락 널을 뛰지만 

누군가 아프니까 그런 '보통의' 날이 그리웠다.



  






금요일인 오늘 아침. 

연수는 컨디션을 80%쯤 회복한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놀아야지. 이렇게 노니까 이제 너같다.. ^^;;


오늘은 왠지 연수가 좀더 의젓해진 것 같았다.

아프고나서 그런가...

그전같으면 벌컥 성을 냈을만한 연호의 장난이나 실수에 가만히 참고, 조용히 대응하는 모습을 여러번 내게 보여주었다.

까부는 것도 살짝 덜했고.... 역시 아직은 좀 아픈 모양이다. ^^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제 힘으로 몹시 아픈 것을 견디고 일어난 연수가 대견하고 고맙다.

요즘 몸살감기가 얼마나 독한지 엄마도 앓아봐서 잘 안다.

내 큰 아이는 이제 더는 아프다고 징징거리며 엄마에게 업어달라 안아달라 매달리는 어린 아기가 아닌 것만 같다. 

스르르 잠들어버려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혼자 누워 아픔을 견딜 줄도 알고, 

깨어있을 때에도 그저 말없이 엄마에게 기대 눈물을 닦고, 물과 음식을 고맙게 먹고, 투정도 짜증도 내지 않았다.

정말 많이 컸네.... 









세 아이 중에 누군가 아팠다가 나으면 잘 나아준 아이도 너무 고맙고, 

다른 형제들 아픈 와중에 함께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잘 지내준 아이도 참 고맙다.

두루두루 모두모두 고맙고 또 고맙다.


연수가 아플때 집에서 걱정없이 쉬게 해줄 수 있는 것도 고맙다.

전염성 강한 질환이 돌 때면 어린이집을 쉬게 할 수도 있는 처지인 것이 고맙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아이들이 아프면 얼마나 더 마음이 아프겠는가.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마음 아프고, 전염성 질환이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지 말아달라고하면

갑자기 또 집에서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분을 찾거나, 엄마가 어렵게 휴가를 내거나 해야할텐데 얼마나 어렵고 힘들까.

신종플루처럼 일주일 정도는 어린이집 등원이 불가해지는 질환은 더 무서울 것이다. 

아픈 아이도 걱정이고, 그 아이를 맘편히 푹 쉬게 해주기 어려운 환경도 걱정이고....

그에 비하면 내 집에서 언제든지 아이를 쉬게 해주고, 내 손으로 돌봐줄 수있는 내 상황은 훨씬 수월하고 감사한 일이다. 



이번 아픈 것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아프면서 큰다고 했다. 

잘 견뎌내고 연수의 마음에도, 몸에도 단단하고 고운 나이테가 한 겹 더 자라기를 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