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40개월의 다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10.15 함께 여는 새날 12
umma! 자란다2011. 10. 15. 01:19










한동안 블로그를 쓰지 못했다.
뚱구빵구들과 보내는 하루가 퍽 고단하였던 덕분이다.
아침6시반부터 시작해서 저녁7시반까지 열세시간동안 풀타임으로 노는 연수와 함께 이리저리 뛰면서 짬짬히 연호를 업고안고 재우는 하루.
해가 지고 드디어 아이들이 밤잠에 들고나면 그때부터는 다 내 시간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저녁밥먹고 수북히 쌓인 집안일들 하고나면 대략10시. 그 사이에도 번갈아가면서 꺠서 우는 뚱구빵구 달래서 다시 재우다가 결국 10시 좀 넘으면 연호 젖물리다 나도 같이 잠들어버린다.
그러면 또 하루가 끝...
 
어느 날은 이게 뭐하는 건가.. 싶다가, 또 어느 날은 애들이 탈없이 무럭무럭 잘 커주는 것만해도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이냐... 하며 혼자 가슴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어느새 10월도 반이 지나갔다.
연수는 40개월을 꽉 채우고 41개월차에 들어섰고, 연호도 곧 5개월에 접어든다.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 기록하지 못한 생각들.. 
매일매일 뒤집어졌다가 겨우 다시 추스르곤하는 내 마음. 
육아의 날들은 그 날이 그 날같고 늘 똑같은 날같기도 하지만 긴 흐름으로보면 기승전결이 있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며칠, 혹은 몇 주에 걸쳐 아주 심각해졌다가 천천히 해결점을 찾게 되는 일들.  

지난 1, 2주 동안은 연수때문에 마음이 많이 괴로웠다.
시작은 연호의 기침감기였다.
연호가 기침을 좀 하다 가래도 끓기 시작해서 며칠동안 바깥출입을 자제했다.
연수도 '동생이 아프니 집에서 놀자'는 말에 잘 수긍해서줘서 밖에 나가자 조르지 않고 며칠을 잘 보냈다.
다행히 연호 감기가 사그라질 무렵, 연수 낮잠에 문제가 생겼다.
밖에서 활발하게 뛰어놀며 에너지를 써야할 아이가 하루종일 집안에서만 놀다보니 낮잠자기를 점점 어려워했다. 
졸립기는 한데 잠은 안 들고.. 몸은 고단하고 정신은 산만한 상태로 오후 내내 집안을 휘젖고 다니고 엄마에게 매달렸다.

오후에는 엄마도 피곤해서 잠깐 누워 쉬고싶은데 연수가 낮잠을 안자니 그럴 수도 없고, 
'아이고 모르겠다'하고 연호 젖물려 누워있으면 오전에 밖에서 논 날은 누운 엄마 옆에 와서 뒹굴거리다 잠들기도하던 연수가 
졸립기는해도 잠들 정도로 고단하진 않으니 엄마 등을 타고 누웠다가 머리도 잡아당기다가 
끝내는 연호에게 굴러와서 밀고 머리로 들이받고 해서 결국 엄마를 폭발시키곤 했다.
소리도 지르고, 떄로는 화가 너무 나서 연수 등짝을 세게 때리기도 했다.

'엄마 아파'하면서 엉엉 우는 연수를 보면 미안하다가도 
내 감정을 내가 추스르지 못해서 연수를 더 때리고 싶은 것을 참느라 속으로 무진 애를 써야했다.
동생을 괴롭히면 엄마가 무척 싫어한다는걸 알면서도 엄마를 도발이라도 하려는 듯이 동생을 울리는 아이가 밉살스럽게 여겨져서 '지금 저 녀석 따귀를 한 대 때리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겨우겨우 참고, 손이 막 들리려고하는 것을 간신히 간신히 눌러 참았다.

저도 힘들어서 그러는 것을.. 졸립기도 하고, 그래서 엄마한테 더 응석부리고 매달리고싶고, 싫은 잠청하기는 그만 하고 엄마랑 신나게 놀고싶은데 엄마가 어린 동생때문에 제 맘에 맞춰주지 못하는 것이 속상해서 그러지... 
이해하면서도 그 순간에는 너무 미웠다.

연수에게 소리지르고, 그래서 연수가 울고 엄마와 형아의 큰소리를 듣고 연호까지 덩달아 우는 일이 몇일 이어지자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 다 잠도 못자고 괴롭기만한 오후가 셋 모두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길것 같았다. 

그렇게 지지고볶는 동안 다행히 연호의 감기는 한결 덜해져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고, 연수의 낮잠을 억지로 재우지 않았다. 
낮잠을 안자도 된다고하니 연수는 너무나 좋아했다. 대신 엄마가 고단하니 30분만 누워서 쉬겠다고 했더니 그전처럼 누운 엄마를 괴롭히지 않았다. 
옆에 누워 그림책을 읽어달라는건 여전하지만,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옆에누워 놀다가 자주 거실에 나가 시계를 보며 이제 시간이 얼마나 됐나.. 살펴보았다. 
내가 요령을 좀 피우느라고 '아고 엄마가 힘드니 10분만 더 눕자, 20분만 더 눕자'하고 시간을 자꾸 늘려서 한시간 가까이 누워있으니 그때서야 다시 엄마와 연호에게 뒹굴고 부딪혀오기에 얼른 나도 일어나고 연호도 팔에 안았다. 

그렇게해서 이번주부터는 연수가 낮잠을 안자는 대신 저녁7시쯤부터 밤잠을 자고있다. 
연호도 대략 그 즈음에는 잠이 든다. 
힘들다 힘들다해도 나도 이럭저럭 이 새로운 리듬에 적응이 되었나보다. 오늘 이렇게 블로그를 쓸 수 있게된 걸보면..^^; 










힘든 한 매듭이 또 지어지는 것 같다.
내 안에 잠재되어있는 폭력에 대한 욕구를 확인하고 많이 놀랐던 시간이었다.
어린 아이를, 저항할 수 없는 어린 아이를 심하게 때리고 싶은 욕구가 내게 잠재해있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가 무섭기도했다.
또 어떤 특정 상황이 특히 나를 걷잡을 수 없는 분노속으로 확 끌고들어간다는 것도 알았다.

연수가 연호를 아프게해서 연호가 울면 나도 모르게 연수의 손을 아프게 꽉 잡게 된다. 그 순간 화가 확 나고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머리속은 정지. 연수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연수를 안방밖으로 내보낸 뒤 문을 닫아버리기도 했다.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기도 쉽지않다. 어린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심지어 때리는 스스로가 너무 싫은데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연수는 제 앞에서 엄마가 문을 닫고 가버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저만 떨어뜨려놓고 가버려서 불러도 오지않는 엄마... 
예전에 연수가 두돌반쯤 됐을때 심하게 울고 떼를 쓰는데 그 상황을 견디기가 굉장히 힘든 때가 있었다.
나는 우는 연수를(그것도 발가벗은 애를... 아마 목욕하고나서 옷을 안입겠다고 떼를 쓰다가 울었나보다) 집안에 두고 혼자 아파트 현관문을 닫고 나와버렸었다. 이 울음소리에서 벗어나고싶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벗어날거야 벗어날거야...'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겨울이었는데 나는 실내복만 입은채로 후다닥 뛰어서 관리사무실로 갔다. 등기우편 찾아가라는 전화를 아까 받았던게 생각나서였다. 100m쯤 떨어져있는 관리사무소에 다녀오는 동안 가슴이 얼마나 쿵쿵 뛰었는지 모른다. 5분정도 시간밖에는 안 걸리는 출입이었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 흐른것 같았다.
우리집 현관문은 무거워서 연수 혼자 열수는 없다는걸 알고 나간 길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아이가 나를 찾아 밖으로 나왔을까봐 뒤늦게 너무 무서웠다. 돌아와서 문을 열어보니 연수는 내가 나갈때 모습 그대로 똑같이 현관앞에 서서 '들어와 엄마 들어와' 하고 소리지르며 울고있었다.  
그때 이후로 연수가 그걸 제일 싫어한다는걸 알면서도 나는 연수가 연호를 울려서 화가 나면 연수를 방밖으로 몰아냈다. 
정말 나쁘다.. 정말 나쁜 엄마다..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내 분노를 내가 다스릴 수가 없었다.

결국 서너차례 이 일을 반복하고 나서 아예 화날 상황에 빠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함정'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빠지는 함정..
연수도, 나도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그 상황을 만들지 말자.. 이 함정에서 그만 빠져나가자.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연수를 대하는 마음도 다시 풀려서 
도서관으로 놀이터로 놀러다니고 맛있는거 챙겨먹이며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서럽고 아픈 시간도 있었지만 언제그랬냐는듯 아이는 헤헤 웃고 잘 놀고 잘 잔다. 
그렇지만 아픈 상처는 없어지는게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있다가 비슷한 함정이 다시 나타나면 '흠칫'하고 아이를 두렵게 할 것이다.
그런 긴장감과 두려움을 아이에게 주었다는 것이 미안하다..  
나 또한 자라면서 받은 상처와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내 아이에게도 그런 상처를 주고있다니..

어릴때 나는 부모님께 맞은 기억은 많지 않다. 
아버지는 한번도 때리시지 않은 것 같고(우리 아빠는 아주 엄한 분이시라 어쩌다 야단만 한번 치셔도 온집안이 숨을 죽였었다), 엄마는 가끔 부지깽이나 파리채같은 것으로 삼남매를 쪼로록 세워놓고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때리셨지만 그도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물론 그것도 무섭긴했다) 
두살 터울의 오빠에게는 어린 시절에 몇 번, 아프게 맞았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나는 오빠가 동네 큰형들 여럿에게 맞고 아파서 엉엉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오빠는 자기가 우는 것을 내게 보인것이 속상해서 보고있는 나를 때렸었다. 그때 나는 오빠를 가여워하면서, 많이 아프겠다.. 생각하면서 보고있었는데 오빠가 다시 나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자존심상한 오빠가 이해되면서도 아프고 미웠다. 그때 말고도 몇 번 오빠에게 맞아 속상한 기억이 있고, 오빠가 자주 나를 질투하고 있다고 느끼곤 했다. 
그런 오빠를 내가 아이 둘을 낳고보니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다. 연수가 연호를 바라보는 마음처럼, 오빠도 제게서 부모님 관심을 빼앗아가는 것같은 어린 동생이 미운 순간이 있었겠지..

학교를 다니면서 받은 체벌은 지금도 큰 두려움으로 남아있다. 긴장감, 무서움.. 나는 초등학교때 회초리를 맞기도전에 두려움만으로 기절한 적이 있었다. 꼭 내가 맞는게 아니어도 긴장감이나 두려움에서는 내가 맞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폭력에 대한 공포를 가장 깊이 체험한 것은 대학시절이다. 대학시절 나갔던 집회에서 만나는 전투경찰은 너무 무서웠다.
나는 전투경찰이 나를 붙잡거나 때리려고하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무서웠다. 실제로 잡히거나 맞은 적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이 잡히고 맞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무서웠다.

연수가 연호를 때릴때 나는 마음속에서 '어리고 약한 존재'를 향해 휘두르는 폭력에 대한 적개심이 확 일어난다.
내가 연호가 된듯 무섭고 싫다. 게다가 지금은 내가 연수보다 훨씬 힘센 어른이니 폭력을 쓰는 연수를 응징(?)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 나도 모르게 연수를, 연수가 연호를 아프게 한 것보다 몇배나 더 아프게 때려주고 싶어지곤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떄린다고 무엇이 나아질까. 내 마음이 시원해질까, 연수가 때떄로 속상한 마음과 고단한 몸상태를 이기지못해 어린 동생에게 그 모든 상황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풀어줄 수 있울까. 
아프고 서럽고 그 순간 엄마가 야속하기만 할 것이다. 매가 무섭고 싫고, 나처럼 폭력이 두려워질 뿐이다.
그러면서도 폭력이 학습되어서 어느순간 화가 나면 저도 폭력을 휘두르고 싶어질 것이다, 화낼 수 있는 약한 존재에게..
나도 한번 때리면 더 때리고싶고, 마음은 더 헝클어지고, 그래서 상황을 추스르지 못하고 한동안은 연수를 바로 볼수도, 웃을 수조차 없게되고만다.

그러니 그만 두어야한다. 나부터, 나는 아이들을 때리지 말아야한다. 때리지 말자.









 
연수는 요즘 자주 '아기처럼 안아달라'고 한다. 
엄마가 연호를 안고있으면 저를 업어달라고 하고, 연호를 업고있으면 저는 안아달라고 한다.
식탁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에는 연호를, 한쪽 다리에는 연수를 안고 내 밥도 떠먹고 연수밥도 먹일 때도 있다.
혼자 입고벗을 줄 알면서도 때때로 옷도 아기처럼 입혀달라, 벗겨달라 해서 엄마를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동생 생긴후 더 심하게 퇴행하는 아이들도 있다는데 연수의 요구는 그저 응석부리는 수준이고
제가 졸리고 엄마한테 속상했을 때를 제외하면 평소에는 연호를 참 좋아라하니 그만해도 참 다행이고 고맙다..

결혼할때 신영복선생님께서 서화를 한장 선물로 주셨다.  
액자로 만들어서 거실에 걸어두었는데 마음이 힘들때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함께 여는 새날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부부간에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아이키우는 요즘, 아이와 어떻게 지내야할까 고민할때 저 말씀이 마음에 절절하게 와닿는다.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도 힘들다고, 엄마를 좀 이해해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네살배기 아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네살배기 아이에게 서른네살짜리 엄마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봐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아이가 바라보는 곳을 내가 함께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이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내 마음도 함께 머물고, 네살아이의 발길이 가는 곳으로 그 보폭에 맞춰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거듭거듭 깨닫게 된다. 

너무 졸린 날은 자고, 별로 졸리지않은 날은 억지로 재우지않고 맘껏 놀다가 배부르면 곯아떨어져 잘 자고 
그래서 한번도 울지않고 보내는 날이 많아지면 그게 평화지... 
어느새 그만큼의 생활은 제 의지와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 큰아이. 
연수의 성장에 맞춰 나도 새롭게 연수와의 날들을 꾸려가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모두 또 힘든 과정을통과해온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늘 새날을 열어야한다, 부지런히.. 유연하게.
그러다보면 나도 새로운 사람이 되어있을 수 있겠지.
내 안에 들어있는 폭력성, 나약함, 이기심 같은 것들을 조금씩 더 극복할 수 있기를..
우리가 함께 하는 이 날들이 진정 우리 모두에게 '함께 여는 새날'이 되기를..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