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나무들2010. 8. 6. 23:14










금전산을 가득 채운 안개는 어느 날보다 진했다.
아빠가 창밖을 바라보며 "구름인가 안갠가.." 하고 말한 것이 재미있어서 연수는 거듭거듭 그 말을 따라하며 웃었다.
"구름인가~ 안갠가~!"













밤처럼 어두웠던 세상이 천천히 밝아졌다.
구름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안개가 천천히 걷힌 것도 같다.
천천히, 천천히 우리도 이제는 짐을 챙기고 다시 세상속으로 나갈 시간이다.











여행 마지막날 아침, 오래오래 낙안민속자연휴양림안을 산책했다.
삼일동안 머물면서도 날이 흐려 가보지못했던 물놀이장에도 들어가보고 서울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굴피나무며 여러 풀과 나무들도 구경했다.
민속놀이장에 있는 투호도 재미나게 던져보고 잔디밭과 평상에서 한참동안 놀았다.
여행지에서의 아침도 이제 마지막이다. 숲 속의 아침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시고 계곡물소리를 듣으며 어린 연수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던 날들이 꿈같아질 것이다. 












9일간의 여행동안 연수는 아주 많이 큰 것 같았다.
말도 많이 늘고 힘도 세졌다. 무엇보다 매일 새로워지는 풍경과 낯선 장소로의 이동, 자연속에서의 많은 놀이들이 연수에게 큰 자극과 인상을 남겼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이 금방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연수의 내면을 조금 더 풍성하게, 따뜻하게 채워주었기를 빈다.  











순천에서 서울까지는 300km가 넘는 먼 거리.
이번 여행길에 우리가 들리고 싶었던 두 곳, 담양과 전주를 거쳐서 올라가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담양에서 점심을 먹고 전주에서 저녁을 먹고 가는 것이다. 둘 다 남편의 추천 맛집이 있다. ㅎㅎ

밥먹으러가는 길에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콰이어길에 들렸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첫장면은 택시기사인 주인공이 너무도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달리는 것이다.
택시는 이어서 농부가 일하고있는 푸른 들판을 지나고, 그 하늘위로 공수부대를 태운 헬기가 날아간다.
그 아름다운 가로수길이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이다.

이른 낮잠에서 깬 연수를 태우고 가족 자전거도 한바퀴 탔다.
사진이 무척 멋있게 나올줄 알았는데 긴 여행에 시달린 카메라가 그만 고장이 나서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담양시내에 있는 '승일식당'은 밖에서 보면 조그만 가게같지만 안에 들어가보면 어찌나 큰지 깜짝 놀랄 정도다.
맛은 더 놀랍다. 돼지갈비가 다 구워진채로 나오는데 어린 연수도 잘 먹고, 어른들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가게입구에 있는 화덕에서는 갈비만 굽는 아주머니가 세 분쯤 따로 계실만큼, 손님많고 바쁘고 정신없는 맛집이었다.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
작은 산 하나쯤은 될만한 큰 대나무숲이 들판 곳곳에 동그란 섬처럼 서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대나무숲은 부드럽게 수런거렸다.

짧은 한나절이라 담양에서 많은 곳에 갈 순 없어 딱 한곳, 소쇄원을 찾았다. 
식영정, 면앙정 같은 조선시대의 정자들도 가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연수가 좀더 크면,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담양 곳곳을 여행해보고 싶었다. 
대숲들이 섬처럼 드문드문 솟아있는 마을길을 달려 이 정자에서, 저 정자로.. 메타세콰이어길도 지나고 너른 논길도 지나며.
    
 









소쇄원의 내원으로 가는 대숲에 사는 오리들.
검은 오골계들이 검푸른 대나무 사이로 걸어다니며 목청껏 울고 있었다.












소쇄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광풍각'.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을 가진 이 정자는 소쇄원을 찾은 손님들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했다한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소쇄원을 찾은 많은 손님들이 이 정자에 앉아 소쇄원을 관통하는 개울을 바라보며 더위를 식히고있었다.

소쇄원은 중선중기에 양산보(梁山甫,1503~1557))란 이가 조성한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로 죽자 세속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창암촌에 낙향하여 소쇄원을 만들었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소쇄원을 구성하는 큰 두 건물중 또 하나인 '제월당'이다.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었다 한다.
500년 세월을 버티고도 누각은 튼튼하게 서있었다. 어린 객은 그 마루바닥 위에서 제 집처럼 구르고 뛰었다. 
'제월당' 현판의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라한다.

조선중기 호남 문인들의 교류처에 와 앉은 선글라스 김 선생님, 시 한 수 읊어달라는 청에
"별다방 미스김은 아메리카노 다 됐느냐 콩다방 미스최는 까페라떼 아직 멀었느냐..." 하고 계신다. 부끄럽다. --;;;;;
그러나 나보고 읊어보라했어도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들고있던 소쇄원 여행안내책자를 거꾸로 놓고 열심히 보고계신 김연수씨.

연수는 아빠엄마보다는 시에 대한 감성이 있는 것 같다.
얼마전 엄마와 작은 동산에서 풀꽃을 보며 놀던 연수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분다
꽃이 흔들린다
....
꺽자!"

둘째연까지 듣고 나는 말도 못하게 감동을 받았다.
24개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하다니... 이건 정말 한편의 시야! 하고 감탄하다가
마지막 연을 듣고는 그만 푸~!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쨌든 고슴도치 엄마는 이 것을 김연수의 생애 첫 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운율도 좋고 대구도 있고.. 3연의 반전도 멋지지 않은가! 라고 양껏 흐뭇해하면서.  











여행책자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나... 슬며시 밀쳐놓더니 누워버린다.
무더운 한낮, 단잠 한숨 자고가면 정말 좋을 곳이구나.
저렇게 귀를 대고 누우면 이 정자 주인들이 시대와 정치와 문학을 두고 나누었을 대화들이 자장가처럼 울려나올 것 같던 마루.













소쇄원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이 나무물통이다.
나무속을 파고 작은 구멍들을 뚫어서 나무안을 흐르는 물이 아래 개울로 떨어지게 해놓았다.
구슬을 엮어 만든 발같다.
가는 물줄기들이 일으키는 작은 물보라가 큰 더위를 정말 멀리도 밀어내주었다.
이 작은 장치 하나로 소쇄원을 관통하는 작은 개울은 보통 개울이 아니라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정원의 훌륭한 정원수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소쇄원 안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 
광풍각으로 갈 때, 또 제월당으로 갈 때 개울위로 놓인 가느다란 나무다리를 건너다보면 속세와의 격절감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건너왔다'는 것.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대숲 사이로난 좁은 길을 통과하는 것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비현실적인 어떤 공간, 낙원으로 들어서는 느낌. 비밀의 정원으로 입장하고있다는 기분.
정원은 결국 그런 장치와 상징들로 가득찬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연수는 시원한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놀았다.
어딜가든 이제는 물이 있으면 서슴치않고 들어가 첨벙거린다.












깊은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것인지 냇물은 아주 찼다.
연수는 개울물을 거슬러 계속 올라가보고 싶어했다. 나도 연초록 대나무 숲이 우거진 저 길로 더 걸어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야할 시간.. 아쉬움을 안고 겨우 발길을 돌렸다. 
 











저녁 무렵 우리는 전주시내에 도착했다.
연수는 차가 달리는 동안 오후낮잠을 한번 더 잤다.
긴 여행의 마지막 저녁, 연수도 엄마도 꽤나 노곤했다. 몇 걸음 걷다 연수가 길가의 돌위에 주저앉았다.
전주의 느낌은 정갈하다. 왠지 그렇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릴때쯤 다시 와서 천천히 이 도시에서만 며칠 있다가면 좋겠다.
여행은 해도해도 허기진 구석이 생겨서 다음에, 또 다음에 하고 자꾸 계획만 늘려놓는다.











우리 식당 바로 옆에옆 식당앞에 이 큰 개가 있었다.
연수는 꼼짝도 안하고 서서 한 20분은 이 개를 보고 있었다.
아빠가 혼자 식당에 가서 세사람 몫의 저녁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무료한 개가 하품하고, 공연히 앞뒤를 두리번거리고 밥그릇을 덜그럭거리며 굴리는 것을 내내 지켜보았다.












처음엔 지켜보는 우리를 좀 의식하는 듯하더니 저도 지루해졌는지 기지개를 쭉 켠다.
연수는 큰 개앞에서 좀 긴장했다. 길 건너편 가게계단에 앉아서 보자했더니 기어코 개 앞에 가서 봐야한다고 가서는 
딱 저기서 더 움직이지 않는다. 이만큼의 거리를 두고 연수는 신비한 존재라도 만난듯 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 뻘속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게, 파도에 닳은 둥근 조약돌, 식당앞의 큰 개. 
대단치도 않아 보이는 그 것들의 무엇이 아이 마음을 뭉클하게 할까. 엄마는 옆에서 짐작해볼 뿐이다. 

 










맛있는 전주비빔밥 한그릇을 끝으로 여름여행은 끝났다.
여러 사람에게 걱정과 폐를 끼치며 다녔던 여행이었다.
인생의 큰 전환점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세식구에게는 작은 매듭 한번 정도는 짓는 여행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길고 자유로운 여행을 한 남편에게도, 결혼과 출산을 포함해 꼬박 3년만에 여행다운 여행을 떠나본 나에게도, 생후 2년을 꽉 채우고 처음으로 먼 여행을 소화한 연수에게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행을 포함해 남편이 낸 2주간의 휴가는 우리 세식구가 가장 오래 같이 있어본 시간이기도 했다.












다시 일상에 복귀했다.
연수는 다시 산더미같이 그림책을 꺼내놓고 읽어달라며 엄마를 못살게군다.
꽃게보행기만 소파위에 올려진채로 다시 여행을 꿈꾸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벌써 2주가 넘었는데 이제서야 여행기를 끝낸다. 휴....
여행사진을 다 정리하고, 이렇게 포스팅도 다 하고나니 비로소 여행이 다 끝난 것같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우리 가족에게는 오래오래, 작은 것 하나라도 더 기억해두고싶은 추억이라 길게도 썼지만
더운날, 땀흘리며 고생하시는 이웃들께는 저희들끼리만 신나게 놀러다닌 얘기를 줄창 늘어놓는 것 같아 죄송했다.

세살배기 아이와 지지고볶으며 오늘도 더운 하루를 용케도 살았다.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그때는 좀 더 푸근하게,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더 큰 연수와 동행하게 되겠지.
9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한 한달은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것 같던 여행가방에 다시 눈이 가는 요즘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8. 4. 22:22



오늘 아침도 비와 함께 시작했다.
서울에는 해가 쨍하고 무덥다는데 비구름도 우리의 이른 여름휴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
비가 오니 아침산책도 짧아지고 밥되기를 기다리며 잠시 시간이 떴다.









그리하여 김연수어린이는 여행 출발후 처음으로 아빠 노트북으로 '벼랑위의 포뇨'를 봤다.
포뇨는 토토로와 함께 연수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영화다.
집에서도 하루에 30분쯤은 꼭꼭 챙겨보던 포뇨를 여행하면서는 한참동안 잊고 지냈는데 이제 여행도 길어지고, 비도 자꾸 오고하니 가져온 그림책 몇권도 너무 많이 봐 지루하고 장난감도 시들해져버렸다.
엄마아빠도 놀아줄 거리가 궁해지던 차에 엄마가 예전에 노트북에 받아놓았던 포뇨를 기억해낸 것이다.
포뇨의 출현으로 연수는 초집중, 아주 조용해졌다.

 








이 틈을 놓치지않고 연수아버지는 얼른 트위터에 집중.
남자 둘이 아주 조용하게 각자의 세계에 빠져있어준 덕분에 나는 혼자서 천천히 카레를 만들고 비오는 창밖도 바라보며 모처럼 찾아온 고요한 아침을 누렸다.











아침을 먹고 조계산 선암사를 찾아갔다.
숙소가 있는 금전산에서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깊은 산속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인지라 시간이 제법 걸렸다.
이 길의 이름도 조정래길이다. 그러니까 조정래길은 벌교읍내에서 시작해 조계산으로 이어지는 길인 것이다.
빨치산의 입산로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주위의 산을 다시 보게 된다.
저 깊은 산으로 들어가버리면 정말 찾기 어려울 것같다. 빙 둘러 포위하기에도 너무 크고 게다가 산들은 계속 이어져 그야말로 '산맥'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이 짙은 푸르름속으로 숨어드는 사람도, 쫓는 사람도 모두 참으로 막막했으리라.

가는 길에 연수가 잠이 들어 남편은 차에 남고 나 혼자 선암사에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를 떠날 때부터 아마도 그렇게 될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혼자 길을 걷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어린 아기를 키우다보니 혼자 어디를 가는 일이 거의 없다.
늘 아이와 함께 가고, 때때로 남편도 함께 가고.. 어쩌다 이렇게 혼자 어딜 가게되면 홀가분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육아의 시간은 늘 긴장과 함께 한다.
어린것을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동안에도 행여 다치지 않을까 긴장하고, 늘 애정을 요구하는 아이와 감정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일도 굉장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하루종일 그렇게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쉼없이 하다가 아이가 잠을 잘때, 잠깐의 낮잠이나 제법 긴 밤잠을 잘 때.. 그때에야 엄마는 비로소 긴 한숨이 '후....'하고 터져나오고 어린 생명을 키우며 느끼는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도 아이가 잘 때 마시는 커피가 제일로 맛있고, 아이가 잘때 엄마도 자는 것도 좋겠지만 그 시간만이라도 긴장을 풀고 홀가분하게 나만의 생각과 일을 해보고 싶어서 피곤한 몸으로 인터넷도 보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하는 것이다. 

연수와 남편 없이 혼자서 카메라가방을 메고, 우산을 받쳐들고 인적없는 선암사 길을 조용히 걸어가자니
대학시절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불안한 행복'이 숨쉴 때마다 느껴졌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 마음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이 참 그리웠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선암사 매표소에서 절 경내까지는 2km 가까이 되는 제법 먼 길이었다.
넓고 평평한 길이 짙은 녹음속으로 구부러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길 옆의 계곡은 요며칠 비로 물이 불어나서 곳곳에 작은 폭포를 이루며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 길 내내 누군가의 이름을 단 꽃등이 걸려있었다.
그 이름을 달아준 사람들의 극진한 마음들이 꽃등이 되어 환하게 이름표들을 비추고 있었다.
선암사 아름다운 길에 둥실 떠있는 이름표들은 행복할 것 같았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저 이름의 주인들도 모두 행복하시기를..
 










소원을 비는 돌탑들이 군데군데 쌓여있었다.
돌 두개가 놓여있던 곳에 내 돌도 하나 얹어보았다.
바로밑의 돌이 기우뚱하더니 한쪽으로 기운채로 내 돌을 받혀주었다.
고마웠다.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저 혼자 살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으로 사는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나도 누군가를 받쳐주는 일... 우리 엄마가 나를 받쳐주었듯 나도 이제 연수를 받쳐준다. 내게 기대서 내 아이도 자라고, 남편과 나도 서로 기대고 산다. 이웃들과 친구들에게도 마음으로 얼마나 많이 기대고 사는지..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제 위에 얹힌 내 돌을 받혀주기 위해 원래의 자기 자리에서 기우뚱 하고 움직였다. 제 모습, 제 자리를 바꾸고 잃는 것을 감수해야만 누군가를 제 위에 받혀줄 수 있다. 스스로의 변화를 감내하는 것, 그것이 관계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돌탑 앞에 서서 참으로 뭉클했다. 












일주문에 닿기전, 작은 호수와 그 속에 떠있는 동그란 섬을 보았다.
'삼인당'이라 부르는 이 작은 섬은 뒤의 키큰 나무숲과 어울려 신비롭게 보였다.
연수가 봤으면 좋아했을텐데.. 아마 저 물에 들어가고 싶어했겠지.
엄마의 여행은 혼자 있어도 아이와 함께 가는 것 같다.










삼인당 바로 옆에 걸려있던 저 플랭카드를 보고 나는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왠지 선암사의 스님들은 유쾌한 분들일 것 같다.
그 옆에 진짜로 서있던 버스는 또 얼마나 재미있던지~!









자세히 안보이지만 "가자! 선암사로!! 영원한 중생의 도량!" 이라고 써있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 영원한 청춘의 도시, 영원한 낭만의 해변... 신성한 불전앞에서 이런 경망한 생각들을 한것이 죄송하지만 '영원한 중생의 도량'이라는 씩씩한 문구앞에서는 이런 상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왠지 정말로 이 절은 씩씩한 호남사람들, 털털하게 웃고 농담 잘하는 남도사람들의 기운이 배어있는 절 같았다.   










선암사 종무소 앞에 서있던 빨간 우체통.
저 우체통을 보며 출가한 젊은 스님이 속가에 계신 어머니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는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그 편지도 '그리운 어머니께'로 시작할까..











버드나무 푸른 가지가 낭창하게 드리워진 작은 연못에 수련이 참 예쁘게도 피어있었다.
저 꽃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한 나절은 가겠구나.. 싶게 아름답던 꽃.












신영복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떡신자' 이야기가 있다.
군대도 그렇겠지만 옥에서도 일요일에는 교회 예배도 열리고 절의 법회도 열리는 모양이다. 거기에 가면 쵸코파이도 주고 떡도 주는데 떡을 좋아하는 신선생님은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법회에 참가해서 떡받는 일이 큰 즐거움이었다는 얘기였다. 그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먹기 힘든 간식들이 좋아 그렇게 종교행사에 참가하는 이들을 '떡신자'라 불렀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나도 '밥신자' 정도는 될 것이다. 
절에서 먹는 절밥(바리공양)이 좋아 잘 알지도 못하는 불교의 절들을 즐겨 찾으니 말이다.

아직 입문 수준인 밥신자의 눈으로 보건데 제일 훌륭한 절이 이 선암사다. 
밥먹는 곳이 어딘지 크게 써붙여놨기 때문이다. 
다른 절에서는 점심때쯤 도착해 눈치껏 밥냄새나는 곳을 찾거나, 마음씨 고와보이는 보살님께 체면불구하고 절밥을 먹을수 있겠냐고 여쭤봐서 공양간을 찾아야하는데 이렇게 크게 '식당'하고 붙여놓고, '스님들은 11시 40분부터, 일반인은 12시부터 점심을 드실 수 있습니다'하고 친절한 안내문까지 붙여놓으셨다.
이렇게 감사할데가... 연수랑 아빠가 자고있어서 먹고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뒤ㅅ간'이라고 써있는 이 나무집이 선암사 해우소다.
애초 선암사에 올 마음을 먹은 것은 이 해우소 때문이다.
보성 근방까지 왔는데 선암사 해우소에서 똥을 한번 싸보지 않으면 인생이 불우할 것 같았다. 
김훈씨가 '자전거여행'에 그리 썼다.

"선암사 화장실은 배설의 낙원이다. 전남 승주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아, 똥이 마려우면 참았다가 좀 멀더라도 선암사 화장실에 가서 누도록 하라. 여기서 똥을 누어보면 비로소 인간과 똥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선암사 화장실은 3백 년이 넘은 건축물이다. 아마도 이 화장실은 인류가 똥오줌을 처리한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금자탑일 것이다. 화장실 안은 사방에서 바람이 통해서 서늘하고 햇빛이 들어와서 양명(陽明)하다." 
(김훈, 자전거여행 1, '그리운 것들 쪽으로' 선암사 중에서)
   










화장실 앞에는 손씻는 돌절구도 있다.
저렇게 호스 하나만 꽂으면 땅속에서 물이 나온다.
이런 단순함이 때로는 너무 신비롭다. 우리가 워낙 자연에서 멀리 사는 탓일게다.











나무로 지은 이 오래된 화장실 안에서는 햇살도 은은하고 바람도 은은하다.
화장실의 칸들은 문은 물론 없고 벽도 들어가서면 가슴쯤까지 오는 낮은 나무벽으로 구분되어 있다.
선암사 화장실 안에서는 남녀칸도 "철벽으로 가로막힌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떨어져" 있다.
이렇게 남녀 화장실이 한 건물안에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분리된 건축양식이 남도지방에서는 수백년전부터 있었던 모양인데 남아있는 것은 이 선암사 화장실뿐이라한다. 그래서 이 뒤깐은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그 문화재 안에 들어와 쉬도 하고 똥도 싸게된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선암사 화장실 자리에 앉으면 바깥풍경이 보인다. 하지만 화장실이 높이 있어서 밖에서는 안이 안보인다.

여기서 똥누는 기분을 김훈씨는 이렇게 썼다.
"똥을 안 눌 때 똥누는 사람을 보는 일은 혐오스럽지만, 똥을 누면서 창살 밖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계면쩍고도 즐겁다. 이 즐거움 속에서 배설 행위는 겸손해진다. 햇빛은 창살을 통해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빛은 굴절되어서, 화장실 안에는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고 늘 어둑어둑하면서도 그늘이 없다. 바람이 엉덩이 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서 엉덩이가 허공에 뜬 것처럼 상쾌하다. 똥을 누기가 미안할 정도로 행복한 공간이다."

그러니.. 이 화장실에 꼭 한번 와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해우소 옆모습. 윗층에서 싼 똥은 아래층에 떨어져 나무탄 재와 짚과 섞여 두엄이 된다.


김훈씨는 또 이렇게도 썼다. 
"똥을 누는 일은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파트 변소처럼 감옥 같은 공간에 갇혀서 해야 할 일도 아닐 성싶다. 똥을 누는 것은, 배설물을 밖으로 내어보내는, 자유와 해방의 행위다. 거기에는 서늘함과 홀가분함이 있어야 한다. 선암사 화장실은 이 자유의 낙원인 것이다. 이 화장실에 앉으면 창살 사이로 꽃핀 매화나무며 눈 덮인 겨울숲이 보인다."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연수가 한사코 화장실 안에서 똥을 안싸고 "밖에서, 밖에서 싸~!"하며 도망치는 이유도 이게 아닐까 싶었다. 감옥이 어떤 곳인지야 아직 알 수 없는 어린 아이지만 좁은 화장실안이 답답하기도 할 것이고, 정해진 규칙이란 것은 속박처럼 느껴져서 거부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똥이 그저 어디서든 급할때 얼른 싸기만 하면 되는 일같기도 하지만, 작은 행위 하나에서도 자유롭고 홀가분한 기분을 깊이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대학시절 농활다닐 때 남편은 화장실이 설어 열흘이 넘는 긴 기간동안 똥을 한번도 안 싼 적도 있다했지만, 나는 시골집에 별채처럼 떨어져있는 변소에 앉아 시원하게 뚫린 창밖으로 펼쳐지는 산과 들판 풍경을 볼떄가 참으로 좋았다.  보통 그 창들은 창문도 없이 시멘트벽에 그저 네모낳게, 벽의 위쪽에 옆으로 길게 뚫어놓은 그야말로 큰 구멍이지만 그 안으로 쏟아져오는 바깥풍경과 바람만큼은 도시의 내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그런 것이었다. 












선암사 해우소 벽에는 손으로 옮겨쓴 시가 붙어있다.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나는 이 시를 순천에 도착해서 받은 '순천관광안내' 책자의 한 귀퉁이에서 처음 읽었다.
선암사 해우소에 와서 앉아보니 정말로 좀 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울기에 참 좋은 곳.. 오래 참았던 눈물을 뚝뚝 떨굴 수 있는 곳.











선암사 뒷산에는 편백나무 숲이 있다한다. 
너무 오래 지체한 것 같다는 생각에 멀리서 건너다보며 저 돌길끝에 있는 키큰 나무숲이 그 숲이 아닐까... 생각만 했다.
나중에, 나중에 템플스테이같은 것을 할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온다면
나는 여기 선암사에 와서 하고 싶다.
편백나무숲을 걷고,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에도 다녀오고 싶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 무지개 모양을 한 아름다운 돌다리 '승선교'를 사진에 담아보았다.
1689년에 호암대사가 이 옆의 절벽에서 관음보살을 뵙고 나서 만든 다리라는 전설이 있다.
무지개다리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나기에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주차장에 돌아오니 연수는 벌써 일어나서 아빠와 차 안에서 잘 놀고 있었다.
부쩍 친해진 둘을 보니 안심도 되고, 이제는 내가 좀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면 그런 시간을 더 만들어봐야지.
 











순천 시내로 돌아와서 먹은 점심.
금빈회관의 돼지떡갈비는 전날 낙안읍성 앞에서 큰맘먹고 먹은 소고기 떡갈비보다 정말 몇배나 더 맛있었다. 값은 더 싸다.
이번 여행에서 먹어본 여러 맛집중 단연2위로 등극했다.

밥을 먹다말고 밖에서 놀고싶어하는 연수를 데리고 나와 순천시내의 오래된 골목을 천천히 걸어다녔다.
순천시청이 바로 앞에 있으니 구도심 정도 될 것 같은 그 길에는 '셋방있음'이라고 종이에 펜으로 써서 붙인 주택도 있었고, '달방 있음'이라고 써붙인 작은 여관도 있었다. 
열린 대문으로 여관 마당이 보였는데, 작은 문앞에 놓인 빨래가 가득 널린 빨랫대와 어린아기 유모차가 눈에 들어왔다.
연수 유모차와 같은 것이었다. 연수는 "연수 유모차가 있네" 하며 반가워했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달씩 달세를 내며 여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내가 잘 짐작할 수 없는 그 삶을 생각하며 시내를 떠났다.


   









오후에는 순천만을 찾아갔다.
유명한 철새도래지인 순천만은 자연생태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입구의 넓은 잔디밭에는 "12세 미만 출입가능" 팻말이 붙어있었다. ^^
3세 김연수는 마음껏, 혼자서 그 넓은 잔디밭은 독차지하고 뛰어다녔다.











회색의 고운 진흙뻘위로 갈대숲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었다.











연수는 여행을 시작한 이래 최고로 신이 났다.
우산도 던져버리고 비를 맞으며 신나게 나무길위를 뛰고 또 뛰었다.
이렇게 놀고도 감기 한번 안걸린 것이 고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도대체 이 펄펄한 사내아이는 얼마나 뛰어놀면서 자라야하는 걸까.
 
 















한껏 친해진 둘이서 뒤도 안돌아보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사실 모기가 너무 많아서 이 갈대숲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ㅜㅜ
순천만을 여름에 여행하려면 모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가야만할 듯.










게가 딱 한마리 보인다.
실제로보면 게도 정말 많고, 짱뚱어라는 다리달린 작은 물고기도 정말 많아서 연수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저기! 꽃게! 저기! 짱뚱어!"하면서 연방 탄성을 질렀다. 
그 사이에도 모기는 쉼없이 연수 다리와 엄마 아빠의 다리를 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꽃게를 더 보고싶어하는 연수를 데리고 나오느라 무진 애를 먹었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공간이었다. 마음껏 뛰고, 진흙뻘속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동물들을 마음껏 보고, 갈대잎를 꺽어쥐고 낚시대라면 마음껏 흔들고 다닐 수 있는... 
다음에 연수와 또 올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다.
  
















멀리 보이는 산들이, 바람에 눕는 갈대들이 아련했다.
아름답구나, 이 땅의 곳곳은.. 눈물겹기도 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숙소로 돌아오니 여행의 마지막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암사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갈대밭에서 잘 뛰어논 연수도 순하게 잠이 들었다.
내일이면 돌아간다. 우리들의 집으로.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7. 28. 14:58









여행 7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아주 가는 실비가 내린다.
비가 와도 아침산책을 안할 수는 없어서 연수와 아빠는 우산을 받쳐들고 자연휴양림 안을 슬슬 걸어다닌다.
세살 남자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는 작은 방안에서는 감당이 안된다.

혹시 몰라 챙겨온 연수 우산과 장화가 톡톡히 빛을 발했다.
좋아하는 장화와 우산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 연수는 비가 반갑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에는~ 우산 쓰고 장화신고~ 그렇게 하고 나가는 거지요~"
노래인지 말인지 여행중에 말이 한층 는 연수가 재잘재잘 떠들며 앞장선다. 


지난 밤에 도착한 숙소는 전남 순천 금전산에 자리잡은 '낙안민속자연휴양림'이다.
순천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인 낙안읍성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금전산에 머무르는 삼일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덕분에 금전산을 둘러싼 아름다운 안개는 실컷 보았다.
떠나는 날 아침에야 날이 갰는데 멀리 내려다보이는 낙안들판 풍경도 아름다웠다.

휴양림 안에는 사람만큼 많은 다람쥐가 산다. 아니, 우리가 못 봐서 그렇지 사람보다 더 많이 살 것이다.
그 중 몇 마리가 늘 연수의 산책길에 살짝 살짝 동행했는데 연수는 서울에 돌아와서도 금전산 다람쥐들을 자주 추억했다.
그래.. 엄마도 또 보고싶다. 우리집 돌계단에도 다람쥐가 앉아있었으면 좋겠구나..
그치만 다람쥐는 서울 우리집이 그닥 편치 않을거야..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순천에 온 것은 남편이 보성차밭을 보고싶어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계산에 있는 선암사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양쪽 모두에서 가까운 순천에 숙소를 잡았다. 
우선 보성부터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차밭을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수가 우산을 받치고 걸어가기에는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보를 보니 오후엔 그칠 것도 같다해서 차밭이 있는 산을 타고 그대로 내려와 가까운 율포해수욕장에 들렀다.

남해 바다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강물 만나서 바다로 간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연수랑 내가 자주 부른 노래처럼.. 우리도 흘러흘러서 우리가 사는 땅의 제일 남쪽 바다까지 왔다.
용현계곡에서 출발해서 서해바다를 지나 깊은 산과 큰 강들을 따라 여기 남해까지.
우리 세 식구.. 먼 길을 참 씩씩하게 왔다.   










여름이라 해도 흐린 날 바다바람은 추웠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 바람을 맞으며 춤을 춘다.
연수는 출줄아는 유일한 춤인 '짝발뛰기'를 해가며 모래사장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지난 밤에 연수는 여행와서 처음으로 토를 했다.
평소에도 거의 토하는 일이 없었는데 졸릴 때쯤 심하게 울더니 그만 그 전에 먹은 포도를 왈칵 다 토해버렸다.
포도는 연수가 제일 좋아하는 여름 과일이라 광주에서 장볼 때 큰맘먹고 비싼 것을 두 송이 샀었다.
포도 한송이를 숨도 안쉬고 급하게 먹은 탓인지, 광주에서 낙안읍성 쪽으로 들어오는 꼬불꼬불한 국도길에 속이 불편했었던 것인지 알 수없지만 연수의 토는 엄마아빠를 일순간 긴장시켰다. 
어린 연수에게는 너무 무리한 여행인게 아닐까... 어린 것이 힘들고 고단한데 말을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과 자책으로 어제 저녁 우리는 조금 무거운 분위기로 잠이 들었었다. 
   
이럴떄는 내가 아직 젖을 먹이고 있다는게 다행스럽다.
아이에게 엄마젖은 세상에서 제일 큰 위안이고 안식이다. 
연수는 먹은 것을 다 토한 지친 몸으로 엄마젖을 천천히 잘 빨아먹고는 곤히 잠들었다.
그 젖이 연수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한번 뒤집어졌던 위장속도 쓸어주고, 날카로와졌던 마음도 부드럽게 다독여주기를 빌었다.
이번 여행이 끝나고나면 밤에만 먹이는 이 젖도 끊을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나는 연수의 만병통치약 하나를 잃은 것같이 허전하고, 때때로 연수가 아프기라도하면 불안할 것이다.
 
연수는 밤새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다시 기분좋게 잘 웃고 잘 놀았다.
다행이었다. 연수가 많이 힘들어하면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가자고 엄마아빠끼리 얘기했던 터였다.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는 않았지만 씩씩한 연수를 보니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것 같았다.
고맙다. 연수야.. 남은 여행도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가자. 











율포에서는 비는 오지 않았지만 바람도 차고 해서 실내에서 놀기로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율포 녹차해수탕' ^^
녹차해수 물놀이장도 있지만 역시 실외고, 어른이나 아이나 뜨뜻한 물에 들어가 좀 쉬는 것도 좋겠다 싶어 목욕탕으로 갔다. 
아빠는 홀홀단신 남탕으로 가고, 연수와 엄마는 여탕으로. 
결과부터 말하면 아빠는 잘 쉬었고, 엄마는 운동 아주 제대로 했다.

남도 할머니들의 사투리가 이쪽 저쪽에서 튀어오르는 오래된 목욕탕은 정겨웠다.
쉴 새 없이 이 탕 저 탕을 오고가며, 또 쫑알쫑알 쉬지않고 떠드는 연수가 재밌어서 할머니들은 웃었다. 
"아고~ 뭐라는겨? 쪼그만 놈이 참 쉬지도 않고 떠드네잉~" ^^;;

지난 봄에만 해도 목욕탕의 큰 탕들에는 무서워서 들어가지 않던 연수는 이번 여행에서 물놀이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아니면 만 25개월쯤되면 호기심이 겁을 이기는 것인지 이번에는 제 가슴까지 차오르는 목욕탕 물에 들어가 신나게 걸어다녔다.
냉탕도 가고, 온탕도 가고.. 3개쯤 되는 큰 탕들을 번갈아 들어가며 노는 세 살짜리 아이를 따라다니려니 나는 목욕의자에 느긋하게 엉덩이 한번 붙일 수가 없었다. 목욕하러 온게 아니라 목욕탕 안을 산책하러 온 셈이다. 무려 한시간 반동안...ㅠ.ㅠ   
 
점심을 먹고 다시 차밭들이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오니 밑에서는 내리지 않던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차밭 입구에 있는 매점 간판에 크게 '우산 비옷 카메라 음료수"라고 써있는 걸로 보아서 
여기서는 비오는 날이 맑은 날보다 많을 것도 같았다.
우산을 받쳐쓰고 살살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비보다 더 큰 문제는 목욕하고 밥도 먹은 연수가 본격적으로 졸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보성차밭으로 통칭되는 이 지역의 많은 다원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듯한 '대한다원'이 바로 큰 길옆에 있어 거기에 가보기로 했다. 차밭으로 가는 길에는 키 큰 삼나무들이 빼곡하게 서있었다. 
이 길을 본 것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이 있다 싶을만큼 아름다운 길이었다.

입구에 가서 대한다원을 소개한 입간판 글을 읽어보니
차는 원래 따뜻하면서도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것이어서 일부러 주위에 키큰 나무들을 빽빽하게 심어 그 습도를 보장하는 모양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녹차를 대량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
인공적으로 차를 대량생산하기위해 적합한 산지를 물색하다가 전남 보성일대가 제일 적합하다고 평가되어 시험포전을 만들었다고 적혀있었다.

이번 여행을 하며 절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차에 대해서도 천천히 좀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 모르는 눈에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이 조금씩 보이기는 하지만
역사와 깊은 이야기를 알고 보면 더 깊은 감동이 있지 않을까.











차밭은 아름다웠다.
앞으로는 녹차를 마실때 이 풍경을 떠올리게 되리라.
빗방울을 매달고 있던 작은 차잎들과 차나무들로 만들어진 길고 푸른 이랑들을.
사람도 그가 자란 고향을 알면 왠지 그 사람의 정서나 감정 한자락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듯이 
차의 고향을 보고나니 녹차에 대해서도 조금 더 친근하게, 그윽하게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린 우리 아들은 너무 졸렸다.
엄마 등에 업혀 거의 반쯤 잠든 녀석을 업고 넓은 차밭을 계속 걸어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비도 조금씩이지만 계속 온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오기로 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보니 전국의 아름다운 곳마다 초등학생쯤 되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가족여행객이 정말 많았다.
그래...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방학이 남아있는가. 너무 일찍부터 많이 다니면 나중에 갈 데가 없어질꺼야... 가자 가자, 그만 돌아가자. 보성차밭은 연수 좀 큰 뒤에 또 오자.










갈 때 가더라도 여기까지 왔는데 녹차아이스크림은 하나 먹고가야지. ^^
연수는 사랑하는 '아크림'을 보더니 무거운 눈꺼풀을 번쩍 쳐들었다. 











잠든 연수를 차에 태우고 먼저 찾아간 곳은 벌교읍내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이었는데 아쉽게도 월요일, 휴관이었다.
순천에서 보성으로 나오는 국도의 이름도 '조정래길'일만큼 보성벌교는 '태백산맥'이라는 뜻깊은 소설의 무대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살아있는 작가의 이름을 길 이름으로 한 것은 작가 입장에서 왠지 쑥스러울 것도 같았다.
아주 오래전에 읽어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소설이 준 감동과 결연함, 그전까지 몰랐던 현대사에 대한 충격 같은 것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어서 보성, 벌교까지 왔으니 한번은 다시 그 이야기속에 빠져봐야할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벌교를 지나며 표지판을 보니 고흥도 가까이 있었다.
대학시절에 나는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달려 고흥 친구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행여 귀향을 한다면 아마 그때는 고흥에도 다시 한번 가보게 되지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정래길을 되돌아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숙소에 가기전 '낙안읍성'을 잠시 산책하기로 했다. 
    

 








이 길은 낙안읍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위 길이다.
꽤 넓고 평탄해서 성곽을 빙 돌며 읍성 안과 밖을 볼 수 있다.
도련님이 땅을 밟지 않으려고 하셔서 전속 하인 둘이 낑낑거리며 유모차를 들고 제법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야했다. -.,-

도련님, 어떻게 전망은 마음에 드시는지...?  
음~~ 좋구나, 너는 거기서 계속 그렇게 뛰어오도록 해라...











도련님, 유모차에 탄채로 들꽃들을 흐뭇하게 보고있다. 
"이건 강아지풀, 이건 개망초..." 
이름도 제법 많이 기억한다. 
연수가 풀꽃들을 좋아해서 함께 여행하는게 훨씬 수월하다.
어딜 가든 풀꽃 한송이 피어있으면 한참 보고 놀 수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성곽과 관아, 민가들에 연수가 관심을 가지기야 어려웠지만 초가집 돌담을 따라 곱게도 만들어진 화단에 핀 야생화와 도라지꽃들은 어린 연수를 즐겁게 해주었다.











수로가 있다. 나리꽃 떨어지고, 도라지꽃 떨어지는 작은 수로.
어딜 가든 수로있는 마을이 나는 좋다.
이 수로도 400년전에 이 읍성이 만들어질 때 함께 만들어졌을까.
이 수로를 따라가면 성곽 밖에는 물레방아간이 있다. 빨래터는 어디쯤이었을까.. 
지금도 이 오래된 마을에는 사람들이 산다. 
마을에 사시는듯한 아주머니 한 분이 읍성 안에 있는 벤취에 앉아 핸드폰 너머에 있는 아저씨와 부부싸움을 하고계셨다.
"당신이 그라믄 안되재..!!" 
이 읍성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 같은 대화를 들으며 낙안읍성을 나왔다. 해가 저물고있었다.   











숙소에 돌아온 아빠와 아들이 뒹군다.
연수는 엄마아빠 겨드랑이털 만지는걸 정말 좋아한다. 만지기만해도 쑥스러운 기분을 참기가 어려운데 잡아당기기까지 한다.
따그닥 따그닥 아빠 등위에서 말을 타던 연수가 드디어 아빠 겨드랑이털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벌러덩... 도망간 아빠를 향해 무지막지한 발차기를 날린다.
세살 아들이 찬 것이 뭐 얼마나 아플까.. 하겠지만 맞아보면 진짜 아프다.
불쌍한 아빠.. 안쓰럽다.
하지만 평소엔 주로 엄마가 당하던 것을 여행때만이라도 아빠가 당해주니 고맙고 좋기 그지없다. ㅎㅎ

여행을 하며 아빠와 연수는 눈에 띄게 친해졌다.
2주의 휴가.. 연수가 태어난 후로 이렇게 아빠와 오래 있어본 것은 처음이다.
일년에 두어차례 연휴를 제외하면 주말 외에는 거의 아빠와 놀지 못하는 도시 아이들, 연수도 그중 하나다.
아빠가 큰 마음을 먹고 어렵게 낸 두 주일의 휴가는 늘 아빠에게 목말라있는 아이에게는 그야말로 단비같은 시간.
여행 전에 연수는 한동안 아빠에게 뽀뽀를 해주지 않았다. 아빠가 '연수야, 뽀뽀~'하고 다가가면 도망가고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버리곤 해서 아빠도 엄마도 마음이 아팠다.
여행을 하면서 연수가 다시 아빠한테 뽀뽀를 한다. 꼭 안아주기도 한다. 물론 저렇게 발로 차고 털도 많이 뽑지만 말이다. ^^;

아빠에게도 천천히,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여행 7일차, 여기 순천에서부터 아빠가 연수 밥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에도 내가 부탁하면 아빠가 연수에게 밥을 먹이긴 했다. 조금 먹이다 금새 '잘 안먹어' 하면서 포기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연수 밥그릇과 숟가락을 챙겨서 먼저 먹이고, 끝까지 먹인다.
엄마가 부탁하기 전에 옷도 갈아입히고 자주 손과 얼굴도 씻어준다.
'말하기 전에' 가 중요하다.
연수를 지켜보며 연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 아빠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아이와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러니까 평소에 아침 일찍 잠깐 얼굴보고, 주말에만 아이와 놀아줄 때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자신이 아이의 주양육자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은 바로 이 것이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7. 17. 00:12









나흘째 여행을 시작하며 꼼꼼히 부안관광안내책자를 읽고계신 김연수씨.

여행의 새로운 하루를 여는 첫 일정은 연수와 함께 하는 아침산책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연수의 손을 잡고 어제 놀았던 바닷가를 한바퀴 빙 돌며 산책했다. 
물이 많이 차서 울퉁불퉁하던 자갈밭은 반도 넘게 줄었다. 만조는 낮 12시경이라 하니 물은 앞으로도 몇시간 더 차오를 것이다.

연수와 나는 생활리듬이 많이 닮았다. 둘다 아침잠이 없고 밤잠은 많다. 남편은 반대다. 밤잠은 없고 아침잠이 많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연수는 남편 대신 내 짝꿍을 하라고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 아닐까..
아침산책을 할때는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혼자 보는 것보다는 둘이 보는게 좋다. 둘이 같이 손을 잡고 나무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고, 천천히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어 고맙다.
모래사장에 앉아 예쁜 돌멩이와 조개껍질을 주으며 함께 웃을 때 참 행복하다.
우리가 산책에서 돌아올 때까지 달콤한 아침잠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는 남편도 행복할 것이다.
연수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내가 놀고싶을 때 자고싶어하는 남편때문에 곧잘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연수 덕분에 우리에게 평화가 온 것일까. 
요 작은 짝꿍과의 산책은 보살펴야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고 나를 업어주기는커녕 내 등에 업고 돌아오느라 낑낑거릴 때도 많지만 말이다.   









아침을 먹고 숙소를 출발해 찾아간 곳은 부안에 있는 내소사. 
오래된 전나무 숲 사이로 일주문에서부터 사천왕문까지 500m가 넘는 긴 길이 나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시원해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내소사는 어제 수덕사에서 불편했던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주었다.
절을 향해가는 길은 그 절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 같다. 길이 주는 느낌과 절이 주는 느낌은 서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의 길은 절의 첫인상이자 이 길 속에 그 절이 추구하는 정신이 상징적으로 담겨있는 것같다.
개심사의 소박한 길은 그것을 감싸는 자연도 소박했고, 절도 소박했다. 세속에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씻어주는 엄마의 손길 같았달까.
수덕사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주는 수직적인 고양감이 내게는 좀 벅차고 권위적으로 느껴졌던 절이다.
내소사 길은 넓고 평탄했다. 하지만 좌우에 서있는 푸르고 높은 전나무숲으로 인해 그 길을 걷는 사람의 마음 또한 높은 이상과 아름다움의 세계에 깊이 매료되고 고무되는 길이었다. 
위압적이지 않되, 마음을 곧고 정갈하게 가다듬게 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능가산 아래 펼쳐진 내소사의 대웅보전은 목조건물의 소박함과 단청과 문의 화려한 문양들이 참 조화롭게 어우러진 불전이었다.








빛깔이 아니라 문양만으로도 이렇게 화려하다. 나무의 자연스러운 색채만 있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화려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구석구석 아름다운 곳이 많아 눈길닿는 곳마다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되던 절.









내소사에서는 대웅전 오른편에 찻집이 있었다.
값은 써있지 않고 차를 마신후 문앞에 있는 작은 불전함에 내고싶은만큼 넣고가면 된다.
작은 나무상마다 다기들이 준비되어있다.
책을 읽고 계시던 보살님이 '뽕잎차'를 우려 주셨다. 그냥도 먹어보라고 연수와 우리에게 조금 주셨는데 바삭하게 잘 마른 뽕잎은 고소했다.
더운 날, 많이 걸어 힘들었던지 엄마에게 자꾸 업히고 매달리던 연수는 방에 들어오니 좋았는지 양말까지 벗고 차를 마셔가며 잘 놀았다.
차에서도 그 절 느낌이 난다. 은은하고 담담한 뽕잎차같은 절, 내소사는 내게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내소사 공양간에서 점심공양까지 감사히 얻어먹고 내려오는 길, 연수는 전나무길을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유모차안에서 잠이 들었다.
전나무길가에 있는 벤치 옆에 유모차를 세우고 나는 둥근 탁자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블로그에 첫날 여행기를 올렸다.
여행와서 처음으로 써보는 포스팅이었다. 여행중에도 틈만 나면 아이폰을 꺼내 트위터를 보는 남편에게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왔는데 그 아이폰 덕분에 전나무 숲길에 앉아 인터넷을 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고보니 그간의 구박이 살짝 미안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가보고싶었던 절들을 찾아다니는 여행이었다.
남편과 아이에게는 또 각자의 의미가 있을 것이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떠난 '긴 여행'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중요하고 맨밑바탕에 놓인 의미겠지만 그위에는 자신만의 무언가가 놓이게 될 것이다. 

36개월된 아들과 함께 한 한달동안의 터키 베낭여행기인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에서 오소희씨는 여행 후반, 자신은 너무나 지쳐있었던 터키의 한 대도시에서 마침내 아이는 여행의 절정을 만끽하고 있었다고 했다.
내 여행은 내소사에서 절정을 맞은 것 같았다.
내소사는 그만큼 내게 큰 충족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소사'하고 말하면 입에서 전나무숲을 스치고 지나가던 시원하고 푸른 바람 소리가 날 것 같은.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키워온 나무처럼, 오랜 수행끝에 얻은 곧고 정갈한 마음들이 느껴지던 단아한 절.










연수의 낮잠이 끝나자 아쉬운 인터넷 시간도 함께 끝났다.
이제는 물놀이 시간! 꽃게보행기를 데리고 바다로 갈 시간이다. ^^










엄마의 무릎 정도까지 오는 물이지만 연수에게는 꽤 깊은 물이고, 처음으로 바다에서 해보는 수영(?)이다.
작년 여름 첫 돌을 막 지난 후였던 연수는 바닷물에 발을 적셔보기는 했지만
바다에 몸을 담그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를 온 몸으로 느껴보는 경험은 오늘 처음 해보는 것이다.
무서울 법도 한데 이 녀석, 보행기를 타지 않고 그냥 물에서 수영을 해보겠다고 무척이나 떼를 썼다.  
누굴 닮아 이렇게 물을 좋아할까. 수영을 좋아하는 엄마를 닮은걸까, 술을 좋아하는 아빠를 닮은걸까..? ^^
깊은 물로 가고싶어하는 연수를 얕은 물에서 데리고 노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엄마의 배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던 태아 시절의 기억이 연수의 몸과 마음에 깊이 기억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중력의 중압을 벗어난 보는 것은 사실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쁜 일인가.
사는 일이 몹시 고단하고 팔과 다리가 천근같이 무겁게 느껴질 때면 나는 물위에 가만히 떠있을 때의 편안함, 배영을 하며 누워서 하늘을 볼 때의 시원함을 가끔 꿈꾸곤 했다.
현실은 아직 연수가 저도 엄마처럼 튜브없이 수영하겠다고 따라하는 바람에 제대로 바닷물위에 한번 누워보지도 못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해변에 앉은 선글라스 김선생님. 놀고있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망치처럼 생긴 돌멩이를 찾아내 신나게 다른 돌들을 두드리고 다니던 연수.
이 맑은 서해바다에서는 멸치같이 작은 물고기들이 우리 다리 옆으로 떼지어 헤엄쳐 다녔고
조금 먼 바다에서는 탁탁 물위로 튀어오르는 제법 큰 물고기들도 있었다.
신기하고 즐거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바닷가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이 날 저녁 온가족을 매혹시킨 부안 '칠산 꽃게장'.
연수는 꽃게장 국물에 쓴 것과 같은 간장으로 맛을 낸 '메추리알 조림'을 혼자서 두 접시나 먹고, 그 국물에 밥을 비벼 먹었다.남편과 나는 각자 공기밥을 두 그릇씩 먹었다.
이 게장을 먹고 남편은 '이렇게 맛있는 게 세상에 있는줄 모르고 살았던 지난 세월'을 안타까워했고 이 식당에 취직하고 싶다고 했다. 이 사진도 처음 한입 먹어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그만 정신없이 반 이상 먹고나서야 '아 사진!'하고는 뒤늦게 찍은 것이다.
부안의 갯벌이 키워내는 꽃게의 비밀인지, 간장의 비밀인지, 그도 아니면 햇살과 바람이 곰소 염전에서 만들어내는 소금의 비밀인지 이 간장꽃게장의 깊고 오묘한 맛은 정말 대단했다.

우리가 가는 곳의 맛집을 찾아가고파했던 남편에게도 칠산꽃게장은 여행중 단연 으뜸으로 꼽히게 되었고,
연수도 조약돌이 가득하던 해변과 바다에서의 수영을 너무나 즐거워했다.
나는 내소사에서 깊은 평화로움과 충족감을 맛보았다.  
우리 가족은 이 날, 모두 함께 여행의 절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그만 돌아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본 것 같았고 행복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길게 여행하는 것을 걱정하는 집안 어른들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거듭되고 있기도 했고,
1년동안 우리집에서 함께 살아온 연수 삼촌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 다음주 목요일로 거의 확정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나는 주말지내고 다음주 초에 일찍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러고싶지 않아했다.
20대의 오랜 시간동안 한번도 이렇게 긴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남편이었다. 
대학시절의 농활이나 동아리 산행,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청년회에서 단체로 가는 짧은 여행을 제외하면 거의 여행을 하지 못했던 남편에게 이번 휴가는 처음으로 긴 시간동안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여러 곳을 돌아다녀보는 여행이었다.
비록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 떠난 길이기는 하지만 남편은 최대한 오래, 더 많은 아름다운 곳을 가보고 싶어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긴 휴가를 낼때 얼마나 어렵게 결심했을지, 얼마나 떠나고 싶었을지.. 그 마음을 짐작하면서도 나는 자꾸 뒷걸음질치게 되었다. 
어린 아이가 고단할까 걱정스럽고, 어른들의 근심이 길어지는게 마음에 걸렸다. 

여행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면 우리의 여행은 이제 '전'의 시점, 그러니까 갈등의 국면에 접어든 것 같았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여행하는 나무들2010. 7. 9. 14:06








금요일 저녁 퇴근한 남편이 말했다.
"월요일부터 2주 휴가냈어. 여행가자."
"뭐라고?"

25개월된 아이와 함께 하는 8박 9일의 가족여행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예정대로 친구들을 만나고 공원에 다녀오는 주말을 보낸 뒤 
월요일 하루는 여행준비를 했다. 처음 묵을 숙소를 정하고 간단한 생필품을 샀다.
화요일 아침, 덜마른 연수 옷을 자동차안에 널고 우리는 출발했다. 










날짜가 급히 결정되긴 했지만 우리는 올 여름에 천천히 긴 여행을 한번 하자고 전부터 얘기했었다. 
나는 절들이 가보고 싶었고 남편은 전국의 맛집들을 가보고 싶어했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서산의 맛집 '향수가든'이었다.
연수는 이 집의 콩비지 뚝배기를 독차지하고 먹었고, 나는 나물넣고 비빈 비빕밥을 쌈에 싸서 입이 시원하도록 와구와구 씹어먹었다. 
구수한 장맛이 갑자기 오른 여행길의 불안함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것 같았다. 괜찮아.. 좋은 여행이 될꺼야. 











첫 여행지는 충남 서산으로 정했다. 
여기있는 '개심사'라는 절을 내가 가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숙소는 개심사에서 가까운 용현자연휴양림으로 정했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고 평일인지라 하루 전에도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었다.
휴양림은 처음 와봤는데 숲이 주는 고요함과 청량감이 참 좋았다. 노루귀란 이름의 4인실 숙소는 아담하고 깨끗했다.










용현자연휴양림 안에는 용현계곡이 있다. 
산 속에 있는 휴양림에서는 그리 깊지 않은 작은 개울인데 휴양림을 빠져나가면서는 제법 물길도 넓고 깊어져서 계곡을 따라 민박집과 물놀이장들이 꽤 많았다. 
이 산과 계곡에 기대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연수는 며칠전에 장만해두었던 '꽃게 보행기'튜브를 타고 신나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깨끗한 계곡물은 정말 시원했다.
연수는 물속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숲, 계곡.. 이런 곳에 들어와있으니 정말 휴가가 시작되었구나, 우리가 여행을 떠났구나.. 실감이 되었다.
부모님들께 갑작스런 휴가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드리는 것은 휴가 첫 날의 제일 큰 일이었다.
계곡물에서 용기를 얻은 나는 전화를 드렸고, 예상대로 부모님들은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닌가'싶어 걱정을 하셨지만 
연수가 물속에서 나오지도 않고 잘 논다는 말에 웃고 마셨다.  










개울물을 따라 걸어내려갔다.
연수는 휴양림 입구에서 멀지 않은 야트막한 곳을 특히 좋아해서 거기서 돌멩이와 나무가지를 주우며 해저물때까지 놀았다.
남편이 연수를 데리고 계곡과 그 옆 산책로들을 걸어다니는 동안
나는 혼자서 개울가에 앉아 햇빛이 물속에 만드는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소금쟁이가 내 발 옆에서 가만히 가만히 움직였다. 
소금쟁이 그림자는 물속에 작은 동그라미 여섯개로 그려진다는걸 태어나 처음 알게 되았다.
물소리, 바람이 나무가지를 흔드는 소리, 새소리... 소리와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연수를 낳은 후 처음으로 내가 이렇게 긴 여행을 떠났다는 것과 이 여행동안 나는 가끔 이렇게 혼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있게 될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갑자기 행복해졌다. 





Posted by 연신내새댁
umma! 자란다2009. 8. 9. 21:27


지난 일주일동안 똑순이와 함께 강릉 친정에 다녀왔습니다.
신랑은 회사일이 바빠 주말에만 잠시 왔다갔다했으니, 새댁만 제대로 여름휴가를 보낸 셈입니다.
아. 똑순이도 신나게 외가집에서의 여름방학(?)을 보냈네요~^^ 

시골 외가에서 보내는 똑순이의 하루는 온통 초록색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외할아버지를 따라 뒷동산에 새를 보러 나갔다 들어오고,
아침먹고 나서는 엄마랑 사촌누나랑 마당가에서 물장난하며 놀고,
오후에는 외할머니랑 누나랑 손잡고 동네 산책을 다니며 온갖 들꽃들을 따들고 돌아왔습니다.






+ 강릉은 저온현상으로 밤에는 살짝 추웠지만 그래도 한낮에 해가 나면 무더웠습니다.
아이들은 마당가에 있는 작은 돌절구에 물을 받아놓고, 꽃잎과 나뭇잎을 띄우며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모릅니다. ^^






+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을 얼굴에 받으며 요녀석, 어찌나 행복해하던지요..
옷은 늘 하루에 두세번씩 적셔냈지만 함께 노는 엄마도 참 재밌었습니다^^






+ '엄마 나 좀 봐요~' 젖은 옷이 추울까봐 걱정되면서도 깔깔 웃는 아이들 웃음이 너무 좋아 말릴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돌절구를 붙잡고 찬물로 온몸을 흠뻑 적시며 놀던 녀석에게
서울집, 매끈한 플라스틱 욕조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놓고 놀으라고 하려니 왠지 새댁도 김이 빠지는것 같습니다. ^^;;  


졸린 똑순이를 재우려고 업고 동네길에 나서보면 눈돌리는 곳 어디나 눈부신 초록색이어서
아. 이런 곳에서 우리 아이가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한여름, 절정의 초록색 사이에 피어난 봉선화, 민들레, 붓꽃, 도라지꽃, 달맞이꽃, 호박꽃, 토끼풀, 들국화, 코스모스... 
꽃분홍, 연한 분홍, 노랑, 보라, 흰색으로 빛나던 그 많은 들꽃들의 향연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제가 걸어 학교에 가던 논둑길은 이제 하얗게 빛나는 시멘트길이 되었지만
여전히 길옆으론 벼이삭들이 피어나는 논들이 넓게 펼쳐져있고
구릉구릉한 산들도 그대로였습니다.

고향집 마당에서 똑순이를 업고있다 오래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장면도 보았어요.
멀리 보이는 논둑길 사이로 분홍포대기에 작은 조카를 업은 엄마가 걸어가시고, 
그 뒤를 따라 큰조카를 업은 오빠가 따라가고..
멀리서 자전거를 탄 아버지가 오시다 엄마와 오빠를 만나 큰 조카를 받아 등에 업으시고
오빠는 아버지가 타고 오시던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장면.

초록색 논을 배경으로 가족들이 걸어가고, 만나고, 함께 걸어오는 한참 동안
저는 잠든 똑순이를 업고 꼼짝않고 서서 영화라도 보듯 그 장면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지켜보았습니다.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들이 뛰어놀던 길, 논일하시는 엄마 아빠를 찾아가 기다려서는 함께 손잡고 돌아오던 그 길을
이제는 조카들이, 내 아이가 걸어다닙니다. 
따뜻한 힘이 마음에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힘으로 또 한동안은 평화롭게 살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 똑순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바닷물에 발을 담궈보았습니다. 아. 차가워라!





+ 아빠와 함께 만난 이 바다는 강릉 경포입니다. 똑순아, 저 넓고 푸르고 둥근 물이 바다란다!

 





+ 아빠와 똑순이에게 와서 부딪히는 하얀 파도가 시원합니다. 
외가에 있는 동안 똑순이는 두번 해수욕을 했는데, 이 사진은 처음 갔을 때 찍었어요.
이 날 똑순이, 열심히 탐색하더니.. 바다가 마음에 들었는지 두번째 갔을때는 어찌나 신나게 놀던지요! 
바다로 퐁당 뛰어들려는 아이를 꼭 붙잡느라 사진찍을 엄두를 못냈내요~^^ 



똑순이는 일주일 사이에 쑥 큰 것 같습니다. 
어제 오후 서울집에 돌아오니 제가 늘 뛰어놀던 아파트 복도가 반가웠는지 
맨발로 뛰어나가 복도에 철퍼덕 주저앉고 한참을 웃으며 놀았습니다.
문득 이 아이에게는 여기가 나고 자란 고향집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일주일만에 돌아온 집이 살짝 낯설기까지 했는데
이 녀석은 익숙한 제 장난감들과 제 놀이터, 그리고 엄마와 둘이 지내던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마음 푸근한 모양입니다. 
 
돌아온 서울은 참 덥습니다.
너무 더워서 똑순이랑 두번이나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목욕겸 물놀이를 했습니다.
젖은 옷을 입힌채로 밖에 데리고 나가 놀기도 해서 행여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합니다.

짧은 휴가가, 여운은 참 길어서
오랫만에 똑순이랑 둘이 보내는 한나절 동안 문득문득 고향집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엄마가 요리하는 동안 놀아달라며 매달리는 똑순이를 보니 
똑순이가 찡찡댈만 하면 얼른 안고 마당에 나가 놀아주시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손길이 아쉽고
엄마가 싸주신 물김치와 깻잎 반찬 펼쳐놓고 밥 한그릇 뚝딱 하면서 엄마가 차려주시던 따뜻한 밥상이 그리웠고요..
똑순이는 어디 넘어지기만 하면 외할머니의 '땟지'소리가 생각나는지 제가 넘어진 곳을 한참 가리키곤 합니다.

오랫만에 나가본 아파트 놀이터에서 똑순이는 외가집에서 생긴 습관대로 꽃을 따달라 조릅니다.
시골에서야 지천에 널린 들꽃 두어송이를 선뜻 꺽어 아기 손에 쥐어주고, 꽃시계도 만들어주고 꽃반지도 만들어줬지만
아파트 화단에 드문드문 핀 꽃은 차마 꺽어줄 수가 없습니다.
'이 꽃은 경비원 아저씨들이 어렵게 키우시는 꽃이라 안되겠다, 똑순아.. 
우리가 꺽으면 다른 친구들, 형아누나들도 다 꺽고싶을텐데 그럼 더는 꽃을 볼수가 없을꺼야...' 
열심히 달래는 마음이 조금 서글픕니다. 

이 다음에 똑순이가 크면 여름방학마다 강릉 외가집으로, 상주 할아버지댁으로 많이 보내고, 데려가고 해야겠습니다.
혼자 보낼만 하면 그렇게 하고, 아직 그러기 어렵겠다 싶으면 제가 같이 내려가서
여름, 겨울만이라도 시골에서 보내고 오고 싶습니다.
올해는 갓난이 엄마라고 차려주시는 밥만 맛있게 받아먹고 아이 봐주시는 수고만 엄마아빠께 잔뜩 끼치고 왔지만..
다음에 가면 맛있는거 장봐서 부모님께 며칠이라도 제 손으로 밥을 지어드리는 '좋은 휴가'를 보내고 와야지..결심했네요.
새댁, 이제사 철이 쬐금 들려나봅니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