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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7 연수의 냉장고 9



1. 우리집 방들


연수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책중에 '찔레꽃울타리' 시리즈란 것이 있다.
질 바클렘 이란 영국작가가 쓰고 그린 예쁜 그림책인데 들쥐들이 모여 사는 질레꽃울타리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사건들이 담겨있다.  
그 책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세대와 이웃간의 따스한 정이 넘치는 마을공동체의 이야기가 정겹고, 계절감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담아낸 그림도 참 좋다. 
특히 들쥐들이 사는 돌능금나무집, 자작나무집, 산사나무 오두막 등의 집안 풍경이 너무 예쁜데
한 나무속마다 큰 부엌, 저장실, 침실, 아이들방, 다락방, 거실, 화장실 등등 아기자기한 방들이 층층이 그려져 있다. 
그중 느티나무성 이라는 큰 성에는 연회장도 있고, 꼬불꼬불한 비밀의 계단도 있고, 아무튼 이것저것 멋진 방이 엄청나게 많다. 
그 느티나무성의 수많은 방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연수가 말했다. 


연수: 이 집은 방이 참 많네! 우리집은 놀이방이 한개 뿐인데.
엄마: (속으로 깜짝 놀라) 응? 그렇지만... 우리집에는 공부방도 하나 있잖아. 또 안방도 있고... 
연수: 화장실도 있고! 
엄마: 그래, 부엌도 있고 거실도 있잖아..
연수: 와~ 우리집에도 방이 많네! 
엄마: (다행스러워하며) 그럼그럼.. 우리집에도 방이 많지. 그리고 넓은 방도 있고..
연수: 우리집에도 넓은 방이 있어?
엄마: 응? 어.. 그럼. 안방이 아주 넓잖아.(우리집에서 현재 제일 넓은 공간이다. 손님이 2명 이상 오면 우린 안방에 상을 편다. ㅎㅎ) 또 거실도 넓고... 손님들이 오면 거실에서 다같이 밥도 먹고 놀기도 하잖아.(어른 2명+유아2명까지는 소화 가능.^^;;)


저 그림책을 보다보면 집안에 계단이 있고,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며 뛰어다닐 수 있는 단독주택의 꿈이 더 간절해진다.
들쥐들이 사는 인간다운(?) 주거환경이 우리에게도 부디 허락되기를...! ^^








+ 30개월 연수, 어부바를 좋아한다. '고양이가 졸린가봐~'하며 들고와서는 제 등에 업혀달라고 한다.



방들이 다 고만고만하게 작고 낮에는 연수랑 나랑 둘만 있는 집에서는 안방도 연수 놀이방이고, 거실도 놀이방이다. 놀이방이라 이름붙인 작은 방에서 실은 제일 뜸하게 논다. 안방 이부자리는 연수가 타고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됐다가, 고양이 인형의 침대가 됐다가 한다. 좁은 집에서도 아이는 하루종일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놀이를 지치지않고 반복하면서 논다.
맘껏 뛰어다닐 수 있는 넓은 집이나 마당있는 단독주택이 아쉽다가도 아이 입장에서 제일 아쉬운 것은 눈을 마주치며 제 앞에 함께 앉아 놀아줄 엄마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당신과 함께라면 단칸방이라도 행복해!' 이 말을 제일 진심으로, 절절하게 하고싶은 사람은 바로 엄마와 놀고싶어하는 어린 아기가 아닐까.    






2. 연수의 냉장고 


연수와 거실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연수: 엄마, 이것봐. 음식이 아주 많아~~~. 
엄마: 그래, 정말 많구나... (야채나 과일 모양을 한 소꿉놀이용 음식도 몇개 있지만, 연수한테는 볼풀공, 우유병 뚜껑도 다 음식이 된다)  
연수: 냉장고에 넣어놔야지! 어.. 그런데 연수는 냉장고가 없네?
 
헉. 예전에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본 소꿉놀이 냉장고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소꿉놀이 음식들을 층층이 넣어놓을 수 있는 제법 큰 플라스틱 냉장고를 연수는 신기하게 열어보고 닫아보고 했던 것이다. 
무슨 말이 이어질까... 나는 긴장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연수는 거실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더니 갑자기 눈을 반짝! 하며 말했다.  

연수: 여기를 냉장고로 하면 되겠다! 여기다 음식을 넣어놓을꺼야~.

바로 옆에 있는 책장이었다.
휴~~,
연수는 꽂혀있는 책들위로 제 음식들을 하나씩 잘 넣어두었다.



아직은 뭘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마트에서 다른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거나, 새 장난감 세트를 손에 들고 있으면 '연수도 저거 먹고 싶어, 저거 갖고 싶어~'라고 말하긴 하지만 아직은 그럭저럭 엄마아빠가 말하는 '이만이만하니 다음에 먹자, 사자'는 얘기를 수긍해주어 다행이다. 관심이 금방 다른 곳으로 돌려지는 것도 고맙다. ^^;;

어느 정도 더 크면 연수도 비교를 할 수 있고, 하게 될 것이다. 
큰 집과 작은 집을 비교할 수 있고, 다른 아이가 가진 좋아보이는 장난감과 먹을 것을 두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도 커지겠지.
소유욕도 겁나고 비교도 겁난다.
그러나 어느만큼 시간이 또 흐르고 나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은 마음도 생겨나겠지.
그러기를 바란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부모의 마음과 태도일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비교와 소유욕과 낮은 자존감 같은 것들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물려지면 어쩌나... 걱정하다보니 아이가 만날 가족 밖의 다른 어떤 세계보다 내가 더 무섭다. 
나부터 좀 달라져야 할텐데... 쉽지 않다는걸 느낀다.

새해가 멀지 않았다.
새해에는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 사람에 나부터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꼬물꼬물 애쓰며 살아야지..
메롱메롱 개구장이와 꼬물꼬물 갓난쟁이와 함께 할 새해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평화가 태어나기 전까지 반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어느 시절보다 '평화'로운 시절이 되기를..
평화가 태어난 후의 반년은 그 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진정 '평화'로운 시절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ㅎㅎ
이웃님들도 모두 행복한 새해 맞으셔요~.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