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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3 연수의 두 돌 14
umma! 자란다2010. 6. 3. 22:29







2010년 6월 3일, 오늘로 연수는 세상에 태어난지 만 2년이 되었다.

두 돌을 맞는 아이의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어제밤에는 무척 분주했다.
오후에 투표를 하고 돌아오면서 연수랑 너무 오래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바람에
저녁먹고 연수가 잠든 뒤에야 음식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약밥과 소고기 미역국, 간단하게 두 가지만 내 손으로 준비할 생각이어서 너무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찹쌀을 불리고, 약밥에 들어갈 재료들을 준비하고, 대추씨물을 끓이는 한편으로 
국거리할 쇠고기의 핏물을 빼고 미역을 불리고
낮에 헹궈만 놓았던 연수의 천기저귀까지 삶자니 
뜨거운 불옆에서 아무리 여유롭게 움직이려해도 몸에 후끈후끈 열이 났다.  

오후에 연수랑 많이 뛰어논 아빠는 고단해서 일찌감치 연수와 같이 잠들어있었다.
나는 혼자 조용히 집안을 오가며 음식준비를 하고
내일 다시 출근할 남편이 입을 남방셔츠와 바지들도 다렸다.
여러가지 집안일을 한꺼번에 하려니 아무래도 동동거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럭저럭 그 모든 일을 잘 마무리한 11시쯤에는 뿌듯하고 다행스러웠다.

옛날에 우리 엄마도 내 생일을 이렇게 준비하셨겠지..
전날밤 미역국을 끓이고, 강릉집에서는 늘 생일 아침에 찰밥을 해주셨으니 그 준비를 하면서
엄마도 이렇게 고단하고 또 설레었겠지..
내 몸을 열고 또 한 명의 아이를 세상에 내놓은 날, 해마다 돌아오는 그 날을 맞으며
건강하게 커주는 아이에게 감사하고
그동안 살아낸 수고로운 날들과 그속에서 느낀 기쁨과 힘겨움을 가만가만 짚어보셨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미역국 끓는 냄새를 맡고 있자니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수고에 뭉클한 마음이 되었다.









오늘 연수는 평소보다 1시간쯤 늦게 일어났다.
지난 2년동안 어김없이 햇님과 함께 일어나온 이 아이는 요즘처럼 해가 일찍 뜨는 여름에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난다.
어제 많이 뛰어놀아 고단했는지 오늘은 더 오래 자서 6시 반에 일어났고 눈등도 좀 부었다.
연수가 깰때면 신기하게도 늘 같이 깨지만 연수가 일어나 이부자리 위에서 노는 동안 잠시 더 누워있곤 하는 나도
오늘은 더 누워있지 않고 같이 일어나 연수를 끌어안고 인사해 주었다.
"연수야, 생일 축하해~"
부시시 덩달아 눈을 뜬 아빠도 "와.. 우리 연수 두 돌이네.. 생일 축하해, 연수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배위에 올라가 뛰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엄마아빠를 보며 연수는 '왠 일인고~?'하고 신기했을 것이다.

케익을 만들기전에 먼저 약밥 한그릇, 미역국 한그릇, 수저 한벌을 담은 쟁반을 베란다로 들고가
장독대위에 올려놓고 삼신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지난 2년동안 우리 연수를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클 수 있게 보살펴달라고 빌었다. 
두돌에도 삼신할머니 상을 따로 차리는지 알아본건 없었지만 그저 엄마 마음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이 내 힘만으로, 부모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친지들, 이웃들, 친구들 그리고 세상 만물의 기운과 보살핌속에서만 가능한 일인것만 같아 어디를 향해서라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소박하지만 정성껏 내 손으로 생일상을 차리면서 내내 그 고마움에 대해 생각했고, 내 기운도 거기에 보태지기를 빌었다.  

낮에는 지난 일년동안 아이들 덕분에 참 가깝게 지냈던 이웃들과 아파트 정자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이 돌쯤되던 지난해 봄에 만나 일년 동안 맑은 날, 궂은 날 가리지않고 함께 놀았던 친구들.
연수는 이제 아침밥먹고 나면 "쌍둥이들이 놀이터에 나왔나.. 살펴 보자"하면서 베란다 창문으로 가 놀이터부터 확인한다.
찾던 얼굴들이 보이면 반가워서 "쌍둥이 아줌마 놀이터에 있다! 쌍둥이한테 가자~" 하고 크게 외치고, 옷 입는다 신발 찾는다 바쁘게 돌아다닌다.
연수가 커서 이 시절을 기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들은 연수 인생의 첫 친구들이다. 
아이들도 친구고 엄마들도 친구인 우리들은 모처럼(일년만에 거의 처음으로!) 함께 야외에서 짜장면과 피자를 시켜먹으며
연수와 또 얼마전에 생일이 있었던 쌍둥이들의 생일잔치를 함께 했다.
 
화창한 날, 신나게 놀이터에서 뛰어논 뒤에 함께 시원한 정자 그늘에 앉아 먹는 점심은 정말 맛있었다.
아이들도 모두 잘 먹고, 그 아이들 먹이느라 참 정신없기는 하였으나
엄마들도 모처럼 같이 밥을 먹어 너무 좋고, 밖에서 먹으니 한결 맛있다고 입모아 말하며 맛있게 먹었다.
(천방지축 잘도 뛰는 세살 네살 애기 다섯과 엄마 넷이 같이 먹는 점심은 사진기를 미처 꺼낼 사이도 없이 후다다닥 시작해서 후다다닥 끝났다. 사진을 못찍은게 무척 아쉽다..ㅎㅎ) 

연수는 그 점심이 아주 인상깊었는지 낮잠자고 일어나서도 점심 얘기를 한참 했다.
"준태랑 수진이랑 쌍동이아줌마랑.. 건우아줌마랑 건우형아랑 다같이 먹었지! 많이많이 같이 먹었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피자 남아서 우리집에 싸가지고 왔지. 비닐봉지에 담아 왔지..."
기억력도 좋다. 싸온 피자, 엄마 혼자 먹을 수는 없겠다. ^^;
내가 만든 약밥도 조금씩 이웃과 나눠먹었다. 그 아이들의 생일에는 우리도 케잌과 떡을 받아 먹었었다.
음식을 나눠먹으며 우리 아이들이 다같이 잘 커주기를 빌고 새삼 이웃있는 고마움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저녁에 잠이 와 이불위에서 뒹굴거리는 연수 옆에 누워있다 두런두런 이년전 연수 낳던 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블로그에 연수를 낳으러 가던 날 썼던 포스팅도 있다. "똑순이 태어나는 오늘은 축제일"
다시 찾아 읽어보니 또 눈물이 나는 것이.. 연수엄마는 어찌 이리 눈물이 많은지ㅠ)

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연수를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다.
그때까지 둔위(아이가 자궁속에서 머리를 돌리지않고 똑바로 앉아있는 것)인 아이가 걱정스러워 병원에서 권하는데로 수술을 하기로 했다. 
자연분만을 꼭 하고싶었던 나였지만 난산의 우려앞에 그만 여유와 대범한 자세를 잃고 말았다.  
스스로 태어나고자 하는 생명의 의지나 고통스러운 과정도 이겨낼 수 있는 힘, 그리고 그를 위한 엄마의 믿음 같은 것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그때는 잘 모르기도 했다.  
그 때 내가 첫아이를 조산원에서 낳고, 둘째와 셋째는 집에서 가정분만한 평온님의 블로그 '평온한 강가에서'를 알고 있었다면 아마 진통이 올때까지, 연수가 스스로 나오겠다고 신호를 보낼때까지는 기다렸을 것이다. 진통이 시작됐는데도 계속 둔위라면 아마 수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연수가 천천히 제 속도대로 준비해서 제 힘으로 엄마몸을 열고 세상에 나오도록 기다려주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미안했던 나는 오늘 나도 모르게 연수와 누운 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연수야. 연수는 딱 2년전 오늘 저녁에 엄마 배속에서 나왔단다.
저녁 5시 35분쯤.. 37분이었나.. 우리 오늘은 그 시간에 뭐했지? 목욕했던가? 아님 수박먹고 있었나... 
연수야 그때 기분이 어땠니? 좀 무서웠지..? 무서웠을 것 같아. 아직 네가 나올 준비가 안 됐는데 갑자기 나오게 됐으니까..
그때 엄마는 좀 무서웠었거든.
네가 계속 엄마 배속에서 돌지않은 채로 있다가 나중에도 발부터 먼저 빠져나올까봐..
그래서 나오다가 네가 어딜 다치거나 할까봐 엄마는 겁이 났었어. 
더 기다려줬으면 좋았을텐데... 네 힘으로, 네 의지로 나올 준비를 해서 스스로 나올 때까지 더 기다려줬으면 좋았을텐데..
엄마는 그게 많이 미안하단다.
너를 안전하게 태어나게 하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나중에는 그게 참 미안했단다.
물론 어느 것이 더 좋았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네가 무사히 태어나고, 지금껏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이 엄마는 정말 고마워.
스스로 준비해서 네 힘으로 세상으로 나오게 해주지 못한게 미안한만큼 
너를 키우면서는 더 많이 기다려줄께.
네 힘으로, 네가 준비가 되어서 스스로 하고싶을 때, 할 수 있을 때까지
채근하지 않고, 엄마가 너무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천천히 더 오래 지켜보고 기다려줄께..."

조금씩 뒤척거리며 엄마 얘길 듣고 있던 연수가 조용해졌다.
연수는 잠이 들었지만 나는 조용조용 얘기를 계속 했다.
잠든 아이의 꿈결에, 또 그 애 곁을 지키는 내게 조금 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 벌써 이년이 지났다니. 정말 신기하다.
너를 처음 낳고 병원에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아.
어쩜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을까..
그 시간동안 엄마는 네 덕분에 참 행복했단다.
앞으로도 우리 지금까지처럼 행복하게 지내자.. 늘 사랑하면서.. 
고마워, 연수야. 엄마를 엄마가 되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어느새 감정이 복받쳐서 나는 끝내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축축해졌다.
2년, 참 짧고도 긴 시간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내 인생에서 지난 2년은 엄마로 살아온 날들이었고 앞으로의 내 삶도 이 아이가 곁에 있는 한 늘 엄마로 살아갈 날들이다.
엄마가 되고나서 나는 그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많은 감정들을 경험했고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계속해서 자라게 해주고 있음을 알겠다. 아이와 함께 살아갈 앞으로의 많은 날들도 더 기대하게 되었다.

고맙다, 연수야.
엄마를 엄마가 되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사랑한다, 우리 아기.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