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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03 연호의 백일 6
umma! 자란다2011. 10. 3. 00:55









연호가 태어난지 백일째 되던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삼신상을 차렸다.
새로 지은 흰쌀밥에 미역국과 세 가지 나물을 올리고
거실 창문앞, 멀리 동이 터오는 하늘쪽으로 놓고 잠시 혼자 서서 기도를 했다. 










그리고는 안방에 들어가서 자고있는 연호 머리맡에 삼신상을 놓았다.
'우리 연호 발크게 해주세요'
잠든 아이의 두 발을 감싸쥐고 이 말을 하는데 곤한 잠이 깰까봐 조심스러웠다.
연호는 '끙~'하고 몸을 살짝 움직이더니 다행히 계속 잘 잤다.
발크게 해달라는 말은 건강하게 잘 크게 해달라는 뜻이란다.

엄마의 인기척을 듣고 깬 연수가 '엄마 뭐해?'하고 큰소리로 묻는 바람에 더 뭐라 길게 빌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상들고 연수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삼신상에 차린 것은 엄마가 다 먹어야한대서 거실로 들고나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부지런히 먹었다.
연수와 나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지 백일이 되면 이렇게 삼신상을 차린다는 것과 연수 백일에도 엄마가 삼신상을 차렸었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삼신상에 놓는 나물은 소금간을 하지않는다고해서 들기름만으로 볶아놓은 고사리나물, 호박나물, 콩나물을 다 먹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먹는 것이 내 아이 건강하게 자라는 길(?)인 것같아서 꾹 참고 다 먹었다. 
다행히 연호는 엄마가 밥 다먹고, 나물들 간장넣어 다시 손질해놓고 아빠와 형아 밥상까지 차린 후에 깼다.
연호가 깨자 셋이 함께 '연호야, 건강하게 잘 커'하고 인사도 해주고 뽀뽀도 해주었다.
안그래도 아침이면 늘 기분이 좋아 벙실벙실 웃는 연호는 온식구가 돌아가며 뽀뽀를 해주니 작은 입을 있는 대로 벌려서 웃는데 너무 좋아서 미처 다 못 웃을 정도였다.

연호가 웃고, 연수도 들기름과 간장만으로 끓인 미역국이 맛있다며 한그릇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연호 백일을 잘 치뤘구나... 다행이다.. 이제는 좀 긴장풀고 오늘 하루는 조용히 좀 쉬면서 보내야지.. 생각했다.

작은 삼신상인데도 차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이 둘과 밥 세끼 차려먹고 놀이터 두어번 나갔다오고 청소기 한번 돌리고 하다보면 어느새 날이 어두워진다.
연호 재우고나면 저녁 8시나 9시. 연수 양치시켜 재우고나면 10시가 훌쩍 넘는데 그때부터 또 기저귀빨고 밀린 설겆이도 해야하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내는 날들.

전날 낮부터 고사리랑 미역을 물에 불려놓고, 저녁에는 연수 밥먹이면서 고사리 삶고, 미역국도 안치고 부랴부랴 한다고 했는데 그만 연수 재우면서 고단해서 함꼐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에 잠이 깬 연호를 젖물려 다시 재워놓고 부엌에 나와보니 새벽2시. 
그때부터 콩나물삶아 무치고, 호박 볶고, 고사리볶고, 쌀씻어 불려놓고.. 대략 준비를 끝낸 시간이 새벽3시반이었다.

그 새벽에 부엌에 서서 나는 '엄마라는 직업이 참 힘들구나...' 생각했다.
'엄마학교'를 열고있는 서형숙씨가 쓴 책중에 <엄마라는 직업>이란 제목의 책이 있었다. 나는 <엄마 학교>만 읽어보고 그 책은 안읽어봤지만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아있었다. 내가 서른한살부터 아마도 평생토록 갖게될 직업인 엄마.
야근도 밤먹듯하고 휴가도 거의 없고 휴식시간도 따로 없는.. 이 고단한 직업을 내가 선택했지.
그래도 이 일이 참 좋지... 안해보면 모르지... 그래도 또 참 힘들지..
그러면서 고사리를 볶다가 '삼신할머니.. 우리 아이 건강하게 탈없이 잘 크게 보살펴주세요...'빌고, 콩나물 무치면서 또 빌고 했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낸 새벽이 지나고 동틀무렵 다시 일어나 상을 차리고 나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뿌듯했다.
더욱이 연호 삼신상에 놓은 호박과 콩나물과 고사리는 모두 청상증조할머니가 키우신 것들이고, 들기름과 간장도 청상에서 받아온 것이고
쌀은 강릉에서 외할아버지가 농사지어 보내주신 햅쌀이고 미역도 엄마가 산후조리하는 동안 내내 먹었던 강릉미역이니
만들기는 내가 만들었어도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사랑과 정성도 모두 같이 들어간 상이다싶어 더 흐뭇해했다.  

연호야, 연수야.. 엄마들은 이런 사람들이란다.
고단한 하루하루 사이에도 때때로 찾아오는 특별한 날에는 더 마음 기울여 더 고단한 몸으로 상을 차리는 사람들.
정성껏 차리고 정성껏 비는 사람들.. 그게 엄마란다.
때때로 엄마가 너희에게 화도 내고, 지쳐서 퉁명스럽게 대할 떄도 있지만.. 또 이런 마음으로 애쓸 때도 있다는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백일이 있었던 지난 주 주말에는 강릉에서 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올라오셨다.
연호의 백일을 서울에서 치르게 되면서 안그래도 한번 아이들보러 오시려던 일정을 조금 당겨 백일있는 그 주 주말에 오셔서 같이 백일상을 차리기로 했다.
서울에 사는 오빠네 가족이 엄마아빠를 모시고 함께 와주었다.

아빠 무릎에 앉은 연호를 보니 흐뭇했다.
북실하게 잘 컸다고 기뻐하시고, 잘 키웠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런 말씀을 들으면 내 힘껏 최선을 다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더 다정하게 잘 살펴줄껄..하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 더 잘 키워야지... 싶어진다. 











사진에는 잘 안보이지만 외할머니가 연호 허리에 실타래를 감아주셨다. 
범보의자에 혼자 앉히는게 아직은 조심스러워서 옆에서 내가 같이 잡고 사진을 찍었다.

백일상을 위해 동네 떡집에서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맞추고, 다시 삼색나물을 하고 조기를 구웠다. 
이번에는 고사리나물과 도라지, 시금치나물을 했다.
고사리, 도라지나물은 이번에 처음 만들어봤는데 어렵고 조심스러웠지만 다행히 먹을만한 맛이 나왔다.
연호 백일덕분에 엄마가 나물 요리들을 많이(?) 할수있게 됐다.. 고맙다. ^^











아이들 덕분에 나날이 자란다.
부모님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살아간다.

역시나 하루 전날부터 미역국 끓이고 나물들 준비하고 집 청소하느라 혼자 엄청 부산을 떨고, 
당일날에는 모처럼 부모님 뵙는데 최대한 깨끗한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하고 며칠째 안감았던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아이들도 나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장난감으로 발디딜틈없는 집안 정리도 했다. 
그래봐야 바닥에 어질러져있던 것들이 책장위로 옮겨쌓인 것이고, 아이들과 씨름하는 막내딸의 고단한 일상이 부모님께 읽히지 않을리 없지만.. 그래도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봐주시고 잘했다, 잘큰다 격려해주셔서 참 행복한 날이었다. 

내 집에서 친정식구들과 조촐히 아이 백일 치르는데도 이렇게 종종거리는데 돌은 어떻게 지내나.. 까마득하지만
그때되면 그만큼 나도 더 자라있어서 또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 부모님께 밝게 잘 지내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고, 내 아이들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따뜻한 엄마가 되고싶어서
그러려고 애쓰면서 나는 매일매일 지금도 자라고 있으니까..

젖도 잘먹고, 잠도 잘자고... 순하게 건강하게 잘 자라준 연호야.. 고맙다.
늘 든든히 엄마 곁을 지켜주는 연수도 고맙고..
나를 언제나 칭찬해주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는 여보도 고마워요.
백일동안 늘 지켜봐주고 격려해주었던 이웃여러분도 정말 고맙습니다.

백일동안 갓 태어난 아이와 그 아이와 함께 울고웃으며 자라는 우리들을 감싸주었던 따뜻한 기운이 앞으로도 늘 이어지기를..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