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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5 노래의 힘 14
umma! 자란다2009. 12. 5. 15:14



노래는 힘이 세다.
기저귀를 하지 않겠다고 막무가내로 도망치는 19개월 짜리 사내아이를 고분고분 누워있게 만드는
노래는 힘이 세다.
재미있는 책과 장난감이 가득한 거실을 떠나 그만 자자고 부르는 안방의 엄마 곁으로 아이를 이끄는
노래는 힘이 세다.
옷 벗는건 좋아도 입는건 싫은 두살배기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뜬채 동물그림이 그려진 옷 한벌을 다 입게 만드는
노래는 힘이 세다.


노래가 연수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무엇을 하다가도 엄마입에서 노래가 나오면 방실방실 웃으며 귀를 기울인다.
노래의 주인공인 동물 그림을 보면 엄마에게 어서 노래를 부르란 뜻으로 제 몸을 먼저 흔들흔들 흔든다.   
그러면 쌀을 씻다가도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하고, 
방을 닦다가도 '딸랑딸랑딸랑 딸랑딸랑딸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하며 신나게 같이 부른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는 연수에게 루돌프가 그려진 내복을 입힐때 부른다.








+ '한겨울에 밀짚모자 꼬마 눈사람~' 눈사람 노래도 아주 좋아해요~




언제부터 이렇게 노래를 좋아하게 됐을까..
아마도 최근 들어 '말'을 잘 알아듣게 된 것과 관계있을 듯하다.  
아는 단어들이 재미있는 운율로 반복되는 동요가 아이 마음에 쏙 들어버린 것이다.

갓난아이때부터 귓등으로 흘러다니는 엄마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몸도 따뜻해지고, 정신도 까무룩해지다 잠드는 일이 많았던 탓에 엄마가 부르는 노래에 친근한 감정이 들어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업어야만 잠이 드는 아이를 등에 업고 작은 거실을 한없이 오고가며 할 수 있는 일은 가만가만 노래를 불러주는 일밖에 없어서 그야말로 기억나는 모든 동요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었다.  
구름, 바람, 나뭇잎배, 반달, 오빠생각, 나무야 나무야, 등대지기, 과수원길, 섬집아기, 바닷가에서...

아이는 엄마등에 머리를 대고 오래오래 노래를 듣고 있다가 마침내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잠든 뒤에도 한참은 더 불렀다. 어쩌다 한번 하는 뒤척임도 멈추고 깊은 잠에 빠질때까지.
많이 큰 요즘은 누워서 엄마 노래를 듣다가 스르르 잠들곤 한다.
덕분에 내 인생에서 이렇게 노래를 많이 부른 시절이 또 있었나.. 싶을만큼 아이를 낳은후 지금까지 참 많이도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다.
한밤중에 노래하다 목이 칼칼할때면 '가수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날로 늙어가는 엄마가 그윽한 서정이 담긴 동요들을 넘치게 부르며 살수 있게 해주는것이 고맙기도 하다. ^^;







+  어느새 훌쩍 큰 아이는 이제 제 곰돌이를 '어부바~'해준다. ^^



TV를 보지않아 요즘 신식(?)동요를 거의 모르는 나는 어린시절에 내가 불렀던 동요를 연수에게 불러준다.
가끔 율동도 곁들여진 신나는 신식동요들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나는 이 옛날 동요들이 참 좋다. 
이 동요들에는 '풍경'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며 마음속으로 노래속의 풍경을 그린다.
달이 뜨고, 기러기가 날고, 논가에서 뜸북새가 우는 내 고향 풍경같은 그림들을 그리고 있노라면
갓난아이 재우기의 고달픔도 조금은 덜해지고, 마음에는 새로운 서정같은 것이 잔잔하게 차오르곤 했다.

그 그림속에는 둘이서 말없이 얼굴 마주 보고 웃던 하얀 아카시아꽃길의 사연이 있고, 시집간지 석삼년이 되도록 소식이 없는 누나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이야기도 있다. 망태들고 장대들고 뒷동산으로 달따러 가는 씩씩한 꼬마 무리도 있다. 
때로는 애잔하고, 때로는 귀여운 아이들이 등장하는 풍경과 이야기에 마음과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린시절의 내 모습도 만날 수 있고, 내 아이가 자라서 소년이 되었을때 그 마음속에 담길 감정들을 미리 만나고 느낀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조금씩 아는 '말'이 많아지는 아이도 아마 노래를 들으며 제 나름의 '그림'을 마음속에 그릴 것이다.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제가 알아듣는 가사만큼 그리고 제가 본 풍경만큼 아이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그 그림은 더 풍성해지고, 촘촘해지겠지. 
하얀 종이위에 소가 나타나고, 강아지가 달려오고, 다람쥐와 토끼가 뛰어가는 모습만 보이다가
차츰 그 뒤로 연두빛 산도 더해지고, 맑은 호수도 비치고, 단풍든 숲도 그려지는 식은 아닐까..
그리고 제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 풍경속으로 풍덩 뛰어들어가겠지..










어린 시절, 새 학기 교과서를 받으면 제일 먼저 펼쳐보는 책은 언제나 음악책이었다. 
음악에 큰 소양도 없고, 번듯한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나지만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은 참 즐거웠다.
새 음악책을 한장한장 넘기며 아는 노래가 있으면 불러보고, 모르는 노래는 언니나 엄마에게 배워 부르며 보내던 방학.
음악책 다음으론 국어책. 새 국어책을 넘기며 재미있는 수필과 짧은 소설들을 읽고 그 다음으로 미술책을 꺼내 그림을 보던 그 방학들을 생각하니 문득 나는 정말 '교과서'를 좋아했던 아이였나보다 싶어 푹~ 하고 웃음이 터졌다. ^^;
(이 얘길 듣고 신랑은 자기는 수학책을 젤 먼저 펴서 문제를 다 풀어봤었노라고 얘기했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ㅎㅎ)
 
내가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엄마 덕분인 것 같다.
어린시절, 엄마와 함께 논두렁을 걸어 논에 새참을 나를때면 우리는 자주 동요를 같이 불렀다.
다 커서도 가끔 고향에 가서 엄마와 논길을 산책하거나 하면 우리는 손을 잡고 동요를 부르곤 했다. 
지난 여름에는 어린 조카는 걷고, 연수는 내가 업고 넷이 함께 동요를 부르며 그 길을 걸었다. 

연수도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악기도 멋지게 함께 연주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우선 제 맘껏 목청껏 신나게 노래를 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때론 우스꽝스럽게, 때론 진지하게 마음이 담긴 노래를 우리에게 많이 들려줬으면 좋겠다. 
연수가 좀더 크면 함께 노래를 들으러, 음악이 있는 곳을 자주 찾아가고 싶다.
야외공연도 좋고, 멋진 음향시설이 갖춰진 공연장도 좋겠지... 집 가까운 곳에 콘서트홀이 있으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좀 멀면 전철도 타고 버스도 타고 함께 찾아가 듣고 돌아오는 저녁이 종종 있었으면 좋겠다. 

귓가로 흐르는 노래를 얼핏설핏 잠결에 듣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먼저 부르자 하고, 몸을 흔들어가며 열심히 듣고 재미있어 하는 지금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작은 입을 열고 노래를 불러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하는 날도 곧 오겠지. 기대된다. ^^ 

언젠가는 노래방에 같이 가서 이 녀석의 열창을 들을 날도 있을 것이다. 우와...
엄마는 클래식과 월드뮤직을 좋아하고 아빠는 인디밴드와 락을 좋아한다. 
엄마는 아이와 클래식 공연을 들으러가는 날을 꿈꾸고, 아빠는 아이와 락페스티벌에 가는 날을 꿈꾼다.
이 녀석은 과연 어떤 음악을 좋아하게 될까.. 엄마아빠완 전혀 다른걸 좋아하려나? 이런 상상을 해보는건 무척 재미있다. 
'요즘 애들은 왜 저런걸 좋아하나 몰라~'라는 뻔한(?) 멘트가 우리 입에서도 흘러나오는 날..같은거 말이다.ㅎ
어쨌든 음정은 아빠보다 엄마를 닮아줬으면 좋겠다. ^^V


  
 

 




+ 요즘 부쩍 제 곰돌이 인형을 잘 데리고노는 녀석.. 어렴풋이 '친구'란 개념을 알아가고 있는걸까?




어른에게도 노래는 힘이 세다.
아니, 돌아보니 살아오는 동안 언제나 노래는 큰 힘이 되었었다. 아이에게도 '노래'가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노래의 날개 위에' 때론 고달픈 삶의 무게를 실어 보내기도 하고,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의 마음도 담아 보내고, 
제 아이를 낳았을때는 가만가만 엄마가 들려주던 옛날 자장가도 들려줄 수 있게되길 빈다. 
그렇게 노래의 날개를 타고 우리는 엄마에게서 아이에게로, 또 그 아이에게로 가만가만 이어져갈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