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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5 미안해 8
umma! 자란다2010. 1. 15. 00:25



오늘은 연수와 이웃집에 놀러갔다.
날이 너무 추워서 어제는 꼼짝도 못하고 집안에만 있었더니 아침에 출근하는 아빠와 삼촌의 얼굴을 잠시 본 것말고는
연수는 하루종일, 밤에 잠들 때까지 엄마 얼굴밖에 못보고 지냈다.
오늘도 그럴 것 같아 낮잠에서 깬 연수를 따뜻하게 입혀서 대문을 나섰다.
음식물쓰레기도 버릴겸 우선 들린 아파트 마당은 추웠다.
그래도 밖에 나온 연수는 신이나서 이쪽저쪽 걸어다니다가 이내 많이 추웠는지 '어부바~'를 외쳤다.

연수를 업고 아파트 마당가를 한바퀴 돌며 추운 날씨덕분에 아직도 녹지않고 고스란히 있는 화단의 눈을 구경했다.
눈 속에서도 여전히 푸른 소나무 잎과 철쭉나무 잎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아파트 마당에 살던 고양이들과 쥐들은(쥐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다만 살고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을부터 연수랑 나는 화단에 나오면 쥐 얘기를 하곤했었다) 이 추운 겨울을 어디서 어떻게 날까.. 얘기도 나누었다.
추웠지만 오랫만에 바깥공기를 마시니 마음은 무척 상쾌했다. 

이웃집에 가니 어른도, 아이도 모두 반가워했다.
겨울잠자는 곰들처럼 따뜻한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게 되는 겨울, 잠깐씩 보는 아빠 얼굴외에는 하루종일 다른 누구의 얼굴도
못 보고 지내기는 매 한가지인지라 가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반갑고 좋다. 문에서 몇발짝만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새삼 너무 고마운 겨울이다.

이웃집에는 연수에게 없는 장난감들이 아주 많아서 연수는 한동안 나를 찾지도 않고 그 장난감들을 가지고 신나게 놀았다.
이웃의 애기엄마가 자기 아이에게만이 아니라 연수에게도 워낙 잘 응대하며 놀아주어서 나는 잠시 그집 식탁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얻어마시는 호사도 누렸다.

그런데 잠시후 그 일이 일어났다.
대단한 것은 아닌 작은 장난인데 이렇게 깊은 밤에 하루를 돌아보다 보니 내 마음에 가시처럼 걸리게 된 일.

자기 아이와 함께 아주 높이 블록을 쌓고있던 애기엄마가 연수가 그 블록옆에 가 서서 관심을 보이자 장난으로 
"연수야, 발로 한번 뻥 차봐~ **이(자기 아이)가 어떻게 하나 보자"하고 시켰던 것이다. 
처음에는 하지 않던 연수는 아줌마가 거듭 권하자 블록을 발로 찼다. 높은 블록탑이 한번에 와르르~~ 허물어졌다. 
당연히 제가 열심히 쌓던 탑이 무너진 아이는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지고, 연수도 순간 놀랐다. 
정말로 연수가 탑을 무너뜨린 것이 재미있었던 애기엄마는 호호 웃으며 "연수야, 이제 얼른 엄마한테 도망가야지" 하고 말했다.
그러자 연수는 또 얼른 내게로 도망와 안겼다.

나는 그녀가 처음 연수에게 발로 찰 것을 권할때 '친구가 열심히 쌓은걸 무너뜨리면 안되지~ 그러지 마, 연수야'하고 말했었다.
그런데 막상 연수가 무너뜨리고 내게로 오자 엉겹결에 그냥 연수를 감싸안아주기만 하고 별다른 얘길 못했었다.
내심 구태여 시킬 필요없는 일을 내 아이에게 시킨 이웃엄마에게 당황하기도 하고, 살짝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리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그 뒤의 상황도 그저 '재미있는 상황극'이 하나 벌어졌던 것처럼 이웃 애기엄마와 이웃 애기가 연수의 행동을 다시 얘기하고 흉내내어 나까지도 함께 웃으며 '그래, 연수가 그렇게 했지'하고 얘기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연수가 잠들고난 이 깊은 밤, 혼자 내일 아침에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고 빨래를 하던 중에 
갑자기 이 일이 다시 생각나면서, 그 순간에 나는 연수에게 '미안해'하고 말하도록 했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마음을 치고 지나갔다.
다른 어른이 시켜서든, 아니면 재미있을 것같아 일부로 그랬든, 혹은 실수로 그랬더라도 친구의 탑을 무너뜨리면 
'미안해~'하고 사과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하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바로 가르치는 것이 나중에 잘못 배운뒤에 바로잡으려고 고생하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이다.
애초부터 나쁜 습관은 안 들도록 하는게 좋다는 점에서 오늘 그 이웃애기엄마의 장난은 악의는 없었다해도 잘못한 일이었다.
제대로 말리지 못한 내게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 뒤에라도 잘 정리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이들은 스폰지처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 말과 행동, 분위기같은 것들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연수를 보며 나는 매일 그런 것들을 느낀다. 못 알아듣고 있는 것 같지만 아이는 어른들이 저를 두고 하는 말, 제게 흘리듯 하는 말들도 다 알아듣고, 또 나중에 커서 그 얘기를 다시 해서 부모들을 놀래킨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다.
정말로 별것아닌, 작은 장난이지만 그때 아이들이 보여줬던 표정이나 그 이후 따라하는 행동들을 보니 연수에게도, 그 이웃아이에게도 오늘의 장난은 제법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내일 아침이 되면 연수와 다시 그 장난 이야기를 해야겠다. 
엄마가 아줌마의 잘못된 지시를 막아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그리고 그런 일이 다시 생기면 그때는 꼭 '미안하다'고 친구에게 사과해야한다는 것도.. 

가끔 어른들은 아이들을 상대로 짖궂은 장난을 친다.
어린 동생의 장난감을 뺏으라고 시키기도 하고, 같이 있는 누군가를 가서 한 대 때려주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잠깐 화장실에 간 엄마를 두고 '너희 엄마는 너를 두고 가버렸다. 인제 안온다, 어쩔래?'하고 거짓말하며 아이를 겁주기도 한다. 아이의 성격을 알아본다며 일부러 아이를 약올리기도 한다.
그저 '짖궂다'고 말하고 그냥 두기에는, 물론 악의는 없는 행동들이고 어린 아이를 귀여워서 그러는 것이긴 하겠지만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할 '나쁜 행동'들이다.

이웃애기엄마만 해도 그녀가 연수를 무척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도 나도 우리가 함께 놀때는 자기 아이만큼이나 서로의 아이들에게 잘 해주려고 애쓴다. 다만 그녀는 그녀의 아이에게도 똑같은 장난을 무심코 하고 있을 뿐이다.
무심코 하는 이런 행동들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클 거라고 생각한다.
어른에게 해서 무례한 장난은 아이에게도 무례한 장난이다. 걸러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른에게보다 훨씬 큰 해악을 끼치는 위험한 장난들이다.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고, 아이를 망치는 장난들..
나는 혹시 그런 장난이나 행동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도 돌아본다. 
오늘 일도 처음부터 '하면 안되는 행동'을 하지 않게 옆에서 제어하지 않은 내 잘못이 더 큰 것 같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 어렵고 무거운 일이다.






   


모자를 쓰고 앉아있으니 연수가 더 포동포동해 보인다.
휴... 매일매일 엄마를 반성하고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게 해주는 연수야 고맙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커다오! 엄마도 더 노력할께~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