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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17 가을날 짧은 해 14
umma! 자란다2009. 10. 17. 22:50









요즘 이 녀석 수난시대다.
며칠전 자다가 가을 모기에 얼굴과 귀를 여러방 물렸는데 얼마나 가려웠던지 밤새 귀를 긁어
아침에 일어나보니 귀가 평소보다 세 배는 부어있었다.
귀가 채 다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엄마를 타넘으며 뒹굴다가 방바닥에 눈두덩이를 쿵 하고 박아서
눈등이 권투선수처럼 부어올랐다.
눈속은 괜찮아보였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에 병원에도 다녀왔다.
다행히 '눈은 다치지 않고 눈등만 부은 것이니 약은 안먹어도 되겠다'는 얘길 듣고 돌아왔다.

이런저런 수난의 흔적들이 이제는 거의 다 사라졌건만 그래도 아이를 볼 적마다 괜히 맘이 아프다.
자란다는 것은 이렇게 몸에 상처의 흔적들을 새기며 나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나이테를 늘리듯 아이도 제 몸에 하나둘씩 작은 상처들과 딱지들과 종내는 허물도 다 떨어지고난 뒤 보일듯말듯한, 엄마만 찾을 수 있는 그런 흔적들을 가지고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몸에 남는 기억에 힘입어 다음에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넘어지는 일은 없는 조금 더 큰 아이가 될 것이다. 









가을날은 해가 짧다.
이 짧은 해안에 해야할 일이 참 많다.
햇빛이 조금이라도 더 쨍할때 기저귀과 다른 빨래들을 빨아 널어야하고, 늘 기본으로 챙겨먹는 밥 세끼와 간식을 챙겨 먹이고 뒷설거지하고, 늘 어지러운 집도 치워야하는데...
그중 제일 중한 일은 아이와 내가 해바라기를 하는 일이다.

날이 추워져서 내복위에 외출복까지 두툼하게 껴입고 때론 모자까지 든든하게 씌워서 나가야하는지라 
준비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밖에서 노는 시간은 짧아졌다. 
밖에서 노는걸 좋아하는 우리 모자에게 짧은 해와 줄어든 나들이는 아쉽기만 하고,
덕분에 나가노는 시간은 더 애틋하고 소중해졌다.

날이 조금 추운 듯해도, 아파트 꼭대기 우리집에서 듣는 바람소리가 '휘이잉~' 센 것 같아도... 
조금 망설이다 이내 씩씩하게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선다.
막상 나가보면 바람은 조금 쌀쌀해도 햇살은 따뜻하다.
볕좋은 놀이터에 옹기종기 앉아 옅은 가을볕을 쬐고 노닥거리다 들어올 수 있는 것이 고맙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부지런히 손을 놀려 급한 일들을 얼른얼른 해놓고, 옷을 따뜻히 입고 집을 나선다.










아주 부지런을 떨었을때는 이웃 아기엄마와 나눠먹을 커피를 보온통에 타가지고 나가기도 한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잠시 가을 하늘을 바라보다 다시 아이를 찾아보면
아이는 저 쪽에 쪼그리고 앉아 젖은 나무잎위에 모래를 올려놓느라 여념이 없다.
다시 고개를 들어 포플러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아이와, 놀이터와, 커피가 있는 서른두살의 가을.
이런 가을도 참 좋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웃었다.











놀이터앞 공중전화.
어디 전화하고 싶은데가 있니?
한동안 못들었던 그리운 목소리들.. 생각하기도 하는 가을날이다.





Posted by 연신내새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