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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14 폭발하는 엄마 10
umma! 자란다2013. 8. 14. 23:45


아이들의 특정 행동에 내가 확 폭발할 때가 있다.

동생을 때리거나 아프게 할 때.. 소리를 빽 지르며 큰 애를 때리거나 현관문 밖으로 쫓아낸다..

나중에 후회할만큼, 아니 화를 내는 그 순간에 이미 후회하고 있으면서도 멈춰지지가 않는다.


엄마의 분노지수가 너무 높다는 것이 아이들을 얼마나 두렵고 무섭게 하는지 우리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알겠다.

오늘은 제가 동생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팔꿈치로 눈을 쿡쿡 찍어가며 때리는 엄마를 연수가 정말 말간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순간 '아... 내가 뭐하는거지...' 싶었다.


연호가 태어난 뒤로 연수에게 내가 진심으로 분노를 느끼는 떄는 주로 연수가 연호를 때리거나 아프게 할 떄였다.

막 세돌이 지났던 네 살무렵부터 연수는 동생을 때리는 순간 엄마로부터 모질게 얻어맞거나 안방 문밖으로 쫓겨났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패턴은 늘 동일하게 반복됐다.

하지 말라고, 안된다고 해도 끝내 아이들은 고집을 부려 기어코 동생을 때리거나 깔아뭉개려할 때가 있었고, 어른인데도 나는 늘 번번히 같은 상황에서 심리적 극한을 느끼며 폭발하고, 아이를 때리거나 쫓아내고, 울고불고 눈물콧물 범벅이 되어 공포심에 오들오들 떠는 아이를 다시 집안에 들여놓으며 남은 분노와 후회와 가책이 뒤범벅이 되어 넝마처럼 되어버린 정신으로 멍해질 떄가.. 

그럴 때가 있다.


소위 '눈이 확 뒤집히는' 이런 떄가 일관되게 있다는 건 분명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일거다. 

병원에 가보거나 상담을 받아봐야할까..


연호는 아직 엄마에게 맞아보지는 않았다. 

차마 이제 두돌 막 지난 어린 아이를 때릴 정도로 내가 이상해지지는 않았다.

대신 근래 들어 두 번쯤 현관문 밖으로 쫓아냈다.

잠겨진 문 밖에서 연호는 많이 울었고, 공포의 메세지가 어린 마음에 아주 분명하게 각인된 듯 연제를 아프게 하는 장난은 치지 않았다. 

그렇게 하려고 하다가도 엄마가 '또 쫓겨난다'고만 말해도 움찔하며 '아니 할꺼야. 연호 아니 쫓겨날꺼야..'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가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내가 다시 폭발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연수는 그렇지 않다.

연호만큼, 아니 어쩌면 연호 이상으로 공포는 느끼면서도 연수는 이미 분노 조절을 잘 못하는 엄마를 닮아버린 것 같다.

연호에게 뭔가 화가 나면 기어코 때려서 응징을 하려고 한다. 

'너는 도대체 왜 그러니!'라고 말하고 도대체 내 큰아이가 왜 그럴까.. 고민하지만 이런 밤에 생각해보면 엄마인 내가 저에게 보여준 그 분노의 기운을 고스란히 동생에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싹하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맞는게 아주 싫었다.

누가 죽도록 나를 때린 것도 아닌데, 한두대 가끔 맞는 것도 그렇게 싫었다.

두살 위인 오빠가 나를 아프게 떄리는 것도 싫었고,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때리는 것도 공포스러웠다.

엄마에게 맞은 회초리는 그래도 그렇게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은데, 제일 싫었던 것은 오빠한테 맞을 때였던 것 같다.

청소년기가 되기 전의 남자아이들에게는 뭔가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순화되지 않는 폭력성이 있는 것 같다고 나는 그 무렵의 내 오빠와 지금 어린 연수를 보며 생각한다.

연수가 연호를 때리는 데는 정말로 아프게, 저보다 약한 존재를 짓밟아보려고 하는 잔인한 기운이 있다.

여섯살밖에 안된 아이를 두고 무슨 그런 얘기를 하냐.. 싶기도 하겠지만 인간에게는 여러 심성이 공존하고 어린 인간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어리기에 더 곱고 순수하고 여린 심성도 있지만 자기 방어, 혹은 경쟁의 측면에서 승부욕이 들거나 뭔가 마음의 분노를 느끼면 더 폭력적이 되는 것도 어린아이인 것 같다.


맞는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아프고 그래서 무섭고 싫은 것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드는 모욕감과 수치심도 참 싫었다.

대학시절에 집회현장에서 보았던 공권력의 폭력은 죽을 것 같은 심리적 공포를 경험하게 하기도 했다. 

나는 권위에 굴복하는 것이 싫었다. 어릴때부터 그랬다. 억눌리는 것이 싫었고, 공포를 조장하는 것, 그 아래 숨죽이고 있어야하는 것이 싫었다. 집안이나, 교실이나 그 순간들이 참 싫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가끔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야멸차게 모욕을 주고, 저희들이 행한 폭력보다 몇배는 더 센 힘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증오하는데 되풀이한다.

지금 내가 내 아이들에게 저지르는 잘못들은 분명히 내가 과거에 아주 싫어하던 바로 그 것들이다. 


한 선배언니는 어릴때 엄마가 발가벗겨서 문 밖에 쫓아냈던 기억을 얘기했었다. 

'우리 엄마 정말 너무 하지 않았냐, 어린 딸을 (아마도 추운 날) 발가벗겨 집 앞에 세워놓다니...' 정말 너무 했다. 나도 우리 엄마에게 섭섭하고 슬펐던 내 어떤 기억을 언니에게 얘기했다. 뭐였을까, 숟가락 놓다가 상에 떨어뜨릴 때마다 폭풍처럼 야단쳤던거? 어린 마음에 일을 도우려고 그랬던 건데 엄마는 내게 '너는 왜 맨날 그러냐'며 야단쳤었지..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야단 절대 안 치고 싶었는데 어느새 연수는 약간 그런 기미가 보인다. 엄마한테 맨날 같은 야단맞기...

무튼 지금은 그 언니 엄마의 심정이 이해될 것 같다. 

언니 엄마도 아마 나처럼 어떤 심리적 극한에 내몰렸을지 모른다. 아마 그럴거다.. 


한 후배는 엄마의 우울증 얘기를 해주었었다.

'어릴 때였는데.. 엄마가 갑자기 막 울면서 나랑 내 동생한테 밥그릇이랑 숟가락젓가락을 줬어. 이거 가지고 옆집 아줌마한테 가서 밥 달라고 하라고... 그러면서 엄마가 우리를 막 떠미니까 우리도 엉엉 울면서 옆집 아줌마한테 가서 엄마가 시킨 대로 말했지. 그랬더니 아줌마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우리를 데리고 다시 우리집에 왔는데 엄마가 약(수면제?)을 삼키려고 하고있었어..'

그 후배의 결혼식날, 나는 후배의 어머니 얼굴을 잘 보고 싶었다.

젊은 엄마이자 아내로 살던 날에 어떤 괴로움이 엄마를 그렇게 몰고 갔을까.. 

어머니는 다행히 건강하게 지금까지 잘 계시고, 후배도 잘 지내지만 어린날, 동생과 밥그릇을 손에 들고 울면서 아파트 복도를 뛰어가던 날의 기억은 아마 오래도록 후배의 마음에 남아있으리라. 후배가 혹시 엄마가 된다면 그 기억의 의미가 그전과는 또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


연수도 나중에 커서 어린 저에게 분노하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할까.

연수는 내 성장과정에서 내가 저항하고 응징하고 싶었던 그 폭력의 주체들이 아니다.

아이들의 폭력에 분노하면서, 나는 실은 어린 시절에 내가 하지 못했던, 혹은 내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을,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잘 있다가, 밥 먹여주고 그림책 잘 읽어주다가 갑자기 폭발해서 '너 자꾸 그럴래!'하며 연수를 때리는 그 순간에,

내가 도를 넘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것은 

내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상처가 있고, 그토록 두렵고 싫은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실은 아직 나부터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여섯살, 세 살 아기들한테 낼 화가 아닌데 

나는 지금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고 살고있는 것 같다.


상처없이 자랄 수는 없다해도

어른이 된 뒤에는 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제발.



























  

Posted by 연신내새댁